저는 금융과 돈에 관심이 많습니다. 금리 0.1%만 차이가 나도 즉시 주거래 은행을 옮기고, 좀 더 좋은 혜택을 주는 카드가 나왔다 싶으면 바로 넘어갑니다. (물론 이런 노력에도 돈이 별로 없는 게 반전입니다) 남들은 귀찮게 여기는 일임에도 꽤 즐겁게 하고 있습니다.

하고 있는 일도 이쪽인지라 여러 가지 은행, 카드 서비스를 써 보려 노력하는데요. 카카오뱅크의 움직임이 최근 눈에 띄어서 몇 자 적어보려 합니다.

카카오뱅크는 인터넷 전문은행이라는 속성으로 인해 꼬마 은행 코스프레(?!)를 하고 있지만, 제가 볼 때는 더 이상 작은 은행이 아닙니다. 일반적인 은행에서는 기업금융과 개인금융비가 최근에는 5:5 정도인데, 개인금융만 하는 카카오뱅크임에도 대출액 규모가 벌써 10조를 넘어섰습니다. 사실상 지방은행들은 다 넘어섰다고 봐야 합니다.  

 

은행 대출금 추이 분석 (출처: 데일리한국)

 

이렇게 한국시장에 탄탄히 자리를 잡은 카카오뱅크, 이제 뭘 할까요? 앞으로 카카오뱅크는 어떻게 발전해 나갈까요? 그리고 카카오페이와 카카오뱅크는 어떻게 시너지를 낼까요? 이런 게 늘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카카오뱅크가 상당히 특이한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 부분을 조명해 보려 합니다.

 

 

1. 제휴상품을 팔기 시작한 카카오뱅크

 

지난 글에서 말씀드렸지만, PLCC가 유행입니다. PLCC는 Private Label Credit Card로 제휴사의 브랜드를 더 강조한 제휴 신용카드입니다. 보통은 유통사, IT 등에서 카드사와 협력해 만듭니다. 그런데, 카카오뱅크에서 타 카드사와 제휴해 PLCC를 내놓았습니다.

 

카카오뱅크 홈페이지의 PLCC 설명. 4개 사와 제휴하여 카드를 내놓았습니다.

 

카카오뱅크는 어엿한 은행입니다. 은행은 은행업법에 의해 체크카드 발급은 가능합니다만 신용카드를 발급하려면 신용카드 라이선스를 신청해서 받아야 합니다. 카카오뱅크도 2015년 인터넷 전문은행 예비인가를 신청할 때 신용카드 라이선스를 취득하겠다는 계획을 언급한 바 있습니다만, 업황이 좋지 못하니 직접 라이선스를 받아 참여하기보다 제휴카드 형태로 먼저 출시하기로 한 모양입니다.

눈에 띄는 점은, 1개 카드사와 손을 잡은 게 아니란 거죠. 시티, 삼성, 신한, 국민에서 각각 신용카드가 나왔습니다. 수익배분과 마케팅 비용 분담에 대해 치열하게 싸움을 붙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

또 하나, 몇몇 증권사와 제휴 마케팅도 시작했습니다. KB증권, 한국투자증권, NH투자증권과 하고 있습니다. 생애 첫 고객이면 5천 원을 준다는 말에 덥석 낚여서 저도 계좌를 만들었는데요. 만들면서 ‘카카오뱅크 App에서 주식까지 되나 보다 킹왕짱이네’ 했는데, 그냥 연결해 주고 끝이었습니다. 앱은 따로 다운로드하여야 했지만 특이한 경험이었습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토스가 1,700만 명, 카카오뱅크가 1,200만 명의 가입자를 든 상황입니다. 뱅킹 앱으로만 보던 카카오뱅크였습니다만 어떻게 보면 핀테크 플랫폼으로 보아도 되지 않을까요?

일개 은행의 App으로 보는 것과, 플랫폼으로 보는 것은 천지차이입니다. 저는 카카오뱅크의 제휴 서비스 시작이, 플랫폼으로서의 실험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토스에서 카드를 가입하나 카카오페이에서 가입하나 카카오뱅크에서 가입하나 고객 입장에서는 별로 차이가 없다는 말입니다.

더 나아가 볼까요.

토스나 뱅크 샐러드가 하는 기능 중에서 카카오뱅크가 못할 기능은 무엇일까요. 금감원의 관리를 받아서  마케팅을 과하게 못한다 뿐이지 카카오뱅크가 못할 BM은 없습니다. (아, 타행과 직접대출비교는 좀 그렇겠네요.)

카카오뱅크가 플랫폼이 된다면 어떤 모습이 될까요. “고객의 금융생활을 카카오뱅크 App 하나로 끝내 드리겠습니다!”라는 Scene이 가장 아름다울 겁니다. 개인금융생활이란 게 사실 별게 없거든요. 높은 금리 주는 은행에 계좌 몇 개 터놓고 용도별로 쓰면서, 송금하고, 현금 출금하고, 돈 필요할 때 대출하고. 발생하는 트랜잭션이 뻔하다는 겁니다.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카카오뱅크의 야망(?)은 다른 곳에서도 보입니다. 바로 오픈뱅킹입니다.

 

 

2. 카카오뱅크의 오픈뱅킹은 달랐다

 

오픈뱅킹이란 모든 은행들이 금결원을 통해 API를 제공하고 제공받아 타행의 계좌 상태를 확인하고 이체까지 가능하게 해 준 것을 말합니다. 더불어 이용료도 기존 대비 1/10 수준으로 저렴하게 했지요. 사실 진짜 목적은 핀테크 스타트업들이 은행 계좌 정보를 활용하여 고객 서비스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자 함이었습니다.

작년 말 메이저 은행들마다 오픈뱅킹 행사를 한다고 난리였습니다. ‘저희 은행 App에서 오픈뱅킹으로 타행을 연결하시면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드립니다’ 같은 행사가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그 덕에 은행마다 돌아다니면서 스벅 한 잔씩 다 받았는데 어찌나 감사하던지.. 은행들은 오픈뱅킹 첫날에 보다 많은 가입자를 모으고 자랑하기 위해서 안간힘이었습니다.

그로부터 반년이 흘렀습니다. 사람들의 UX가 크게 변했을까요? 여러분은 어떠세요? 저는 시작할 때부터 고객 측면에서의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정확한 통계는 없습니다만 사람들이 변한 것 같진 않습니다. 오픈뱅킹으로 복수의 계좌를 관리할 니즈가 있는 고객은 이미 해당 은행의 App을 사용 중이었다고 보는 게 자연스러우니까요.

 

2020.7.6 있었던 오픈뱅킹 세미나의 금결원 발표자료. 가입, 등록 모두 핀테크가 압도적입니다. 이는 은행 앱이 채널 경쟁력을 현저히 잃어가고 있다는 슬픈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위 그래프의 의미는 토스나 카카오페이를 통해서 각 은행의 계좌 현황을 파악하고, 이체를 수행하는 고객이 훨씬 많다는 뜻입니다. 사실 오픈뱅킹 때문은 아닙니다. 원래 핀테크 앱이 처음부터 추구한 방향이 그랬고 사람들이 App을 쓰는 형태도 그래서 고정되어 가고 있는 것이죠.

카카오뱅크는 초기에 오픈뱅킹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시스템 연결 이슈도 있었지만 공인인증서를 사용하지 않는 은행이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카카오뱅크는 오픈 때부터 공인인증서가 아닌 자체 인증 시스템을 만들어 사용했고 이로 인한 득실이 있었죠. App이 훨씬 더 완성도 있고 빠르게 나온 점이 ‘득’이었다면 공인인증서로 SSO(Single Sign On)이 구현되는 기형적인 국내 환경에서 혼자 떨어져 있었던 게 ‘실’입니다. (같은 인터넷 전문은행인 케이뱅크는 공인인증서를 지원합니다)

기왕 이렇게 된 것, 급할 거 없으니 카카오뱅크는 찬찬히 오픈뱅킹 시장 진입을 어떻게 할지 고민했을 것입니다. 그런 고민 끝에 나온 오픈뱅킹 형태는 꽤나 뜻밖이었습니다. 아래 3가지 측면으로요.

 

(1) 최대 5개의 타행 계좌까지만 등록 가능

 

오픈뱅킹으로 가져올 수 있는 계좌수에 제한을 두지 않는 다른 은행들과 달리, 카카오뱅크는 연결할 수 있는 계좌수를 최대 5개로 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이것도 오픈 이후 늘인 것이고 처음에는 3개였습니다.

하나라도 더 보여주려고 다들 난리인 마당에 카카오뱅크는 왜 이럴까요?

오픈뱅킹 수수료를 아끼려는 것 아니냐 싶기도 하지만 돈도 많이 버는 카카오뱅크가 그럴 것 같지는 않습니다. (오픈뱅킹은 공짜가 아닙니다. 계좌조회마다 몇십 원씩 이용료를 내야 합니다)

저는 App 구동 속도 때문일 거라고 확신합니다.  

카카오뱅크 App은 조그마한 딜레이도 용납지 않는 완성도를 자랑하고 있습니다만.. 오픈뱅킹을 통해 타행 정보를 가져오는 것은 카카오뱅크 혼자 잘한다고 되는 일이 아닙니다. A 은행 계좌를 가져온다고 하면, A은행 – 금결원 시스템 – 카카오뱅크로 API가 연결되어 전달되게 됩니다. 연결된 은행이 많아질수록 앱에 결괏값을 표출하는 속도는 느려질 수밖에 없습니다.

토스나 뱅크 샐러드와 같은 앱들도 이 이슈 때문에 고민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연결 계좌수에 제한을 두지 않는 다른 사업자와 달리, 카카오뱅크는 큰 결단을 한 것이죠.

카카오뱅크는 자행 고객들을 면밀히 분석하고, 5개 이상 타행 계좌를 쓰는 고객은 매우 소수일 것이니 이렇게 구축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결론을 낸 것으로 보입니다.

 

오픈뱅킹 화면 비교. 재미있는 부분이 많습니다.

 

(2) 거래내역은 못 보고 잔액 현황만 볼 수 있음

 

위 그림 왼편을 보시면 되는데, 카카오뱅크의 오픈뱅킹에서는 타행의 거래 내역을 볼 수 없습니다. 딱 잔액만 보여줍니다. 저 돈이 누가 언제 보낸 돈인지 안 보여줍니다. (…)

 

(3) 타행에서 타행으로 이체 불가. 오직 카카오뱅크로 ‘돈 가져오기’만 가능

 

충격적인 부분입니다. 카카오뱅크와 연계된 A은행에서 B은행으로 이체 명령이 불가능합니다. 할 수 있는 건 오직 하나, 카카오뱅크 계좌로 돈을 가져오는 것뿐입니다. 이것만 됩니다.

1,2,3 은 고객의 자유도를 꺾고 카카오뱅크로 돈이 모이게 하는 장치입니다. 이름 모를 핀테크 App이 이렇게 했다면 폭망 할 테죠. 카카오뱅크의 자신감이 엄청나게 엿보이는 부분입니다.

 

 

3. 결론 : 카카오 금융 플랫폼은 카카오페이일까, 카카오뱅크일까

 

카카오의 금융 플랫폼은 페이일까요 뱅크일까요? 구성을 조금만 살펴보면 당연히 카카오 페이라고 답하실 것입니다. 자산관리, 투자, 송금 등등 고객 금융생활 전반을 아우를 준비를 하고 있는 건 카카오페이입니다. 더구나 카카오톡 안에 직접 자리 잡고 있으니, 더욱 그렇게 보이죠. 카카오에서도 그렇게 전략을 준비해 나갔을 겁니다.

그런데 카카오뱅크가 App도 잘 나왔고, 고객 호응도 좋아서 엄청 많이 깔렸습니다. 각종 지표도 잘 나오고 있습니다. 뭔가 금융 트래픽이 슬슬 분산되는 느낌입니다. One of Them 일 줄 알았던 카카오뱅크가 그냥 One 이 되어 가는 거죠. 이는 핀테크 플랫폼 사용 고객군과 카카오뱅크 사용 고객군이 매우 중복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이 카카오 CEO라면 이 정리를 어떻게 하실 건가요? 은행이 할 수 없는 분야가 분명히 있기 때문에 카카오페이를 젖히긴 애매합니다. 또 작년 금융위원회에서 선언한 ‘종합지급결제업’이 본격화되면 카카오페이가 마치 은행처럼 기능할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사실 이는, 네이버가 인터넷 전문은행을 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플랫폼(페이)과 콘텐츠(뱅크)의 충돌은 카카오그룹만의 고민은 아닙니다. 다가올 ‘토스뱅크’도 ‘토스’와 같은 갈등을 겪어야 할 겁니다. 누가 슬기롭게 풀어나갈까요? 고민은 사업자가 하고, 우리는 혜택을 누리며 지켜보도록 하죠.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길진세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