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잘 알려지지 않은 회사에 가기는 싫어요
아래의 대회는 좋은 회사를 가고 싶은 이와 상담을 하던 도중에 나눈 대화를 압축하여 전해드립니다.
Q. 코치님, 다음 회사는 지금 다니고 있는 곳보다는, 되도록 크고 유명한 회사에 가고 싶습니다.
A. 왜요? 왜 꼭 그래야 할까요? Q. 뻔한 걸 왜 물어보세요. 당연히 크고 유명한 회사일수록 더 많은 기회와 능력 좋은 사람들, 게다가 체계적인 시스템과 좋은 급여 수준에 복지까지 갖추고 있을 테니까요.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도 대부분 다음 회사를 고를 때, 늘 그런 부분을 우선적으로 고려하여 선택하지 않을까요?
A. 그럼 OOO님은 회사는 유명하고 클수록 좋다고 생각하고 계신다는 것이네요.
Q. 네 그럼요. 그래야 제가 가진 이력에도 더 빛나는 한 줄이 만들어지지 않겠어요? 코치님이 그러셨잖아요. 이력서 한 줄 한 줄이 모두 중요하다고요. 가장 앞에 쓰게 될 ‘OO회사 출신’이라는 타이틀이 제 커리어나 실력에 +@를 만들어줄 테니까요.
A. 그럼, 말씀하신 그런 부분에 (+)가 된다고 합시다.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럼 그게 진짜 나에게 (+)가 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어떤 회사에서 얼마나 근무해야 할까요? 또는 그 안에서 어떤 경험을 어느 수준까지 해야 할까요?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미래의 내 커리어의 최종 모습에 그 회사의 경험이 얼마나 도움이 될까요? 내 실력에 더욱 배가시키기 위해, 들어가기 전과 후에 어떤 추가적인 노력이 필요할까요? 괜히 상대방의 기대 수준을 괜히 높이는 것은 아닐까요? 거기에 ‘좋은 회사 = 크고 유명한 회사’라고 하는데, 그게 본인의 기준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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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좋은’ 회사는 ‘크고 유명한’ 회사일까요?
“다음 직장은 꼭 OOOO이어야 해”
여기서 ‘OOOO’은 어떤 직장을 말할 수도 있고, 어떤 조건을 말할 수도 있다. 어디가 됐든 지금 다니고 있는 곳보다는 ‘좋은(Good)’곳에 가기를 바란다. 누가 그렇지 않을까?! 나도 그랬다. 가급적 새로운 경험을 좇아, 지금 보다 더 크고 유명한 회사에 가게 되면 지금과는 다른 세상이 펼쳐질 것이라 기대했다. 위 사연자처럼 말이다.
“좋다 = 크고 유명하다”
이 말에 100% 동의할 수 없다. 그 ‘좋다’라고 평가하는 ‘주체와 기준’이 불명확하기 때문이다. 만연된 집단주의에 맞춰, 모두가 그렇게 보고 있기 때문에, 나도 그렇게 봐야 한다고 세뇌당했다고 이야기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왜? ‘좋다 나쁘다’의 판단은 경험하기 전에는 확실한 분별도 평가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해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다. 오히려 나에게 맞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닐까?
나는 회사에 얼마나 맞출 수 있을까,
회사는 나에게 얼마나 맞춰줄 수 있을까.
오히려 ‘좋다’에 대한 기준을 위와 같이 조율하는 것은 어떠할까. 그러나, 문제는 이런 부분에 대해 ‘근로 및 계약 조건’ 등으로 규정하거나 또는 조직문화에 의해 보완할 수 없다는 것 때문에 ‘좋다’라는 생각에 확신을 갖기 어렵다. 또한, 폭넓은 경험이 없는 상황에서는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포기하는 등의 결정을 내리기 어렵다.
그럼, 차라리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어떠할까.
‘회사’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거나, 하지 않는 것이다.
또는 요구 가능한 최소한의 근무조건을 구체화하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회사가 아무 이유 없이 들어줄까.
좋은 회사는 세상에 없다
나에게 맞춰주면 좋고, 아님 싫다.
언제부턴가 ‘기대’를 하지 않았다. 다음 회사는 ‘좋은 회사’라고 하는 것을 말이다. 좋은 사람에 대한 기대치가 점차 줄어드는 것처럼, 좋은 회사에 대한 기대치도 점차 하락하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한 번도 본적도, 들은 적도, 경험한 적도 없는데 어떻게 ‘좋은 회사’가 있다고 믿을 수 있냐 말이다. 차라리 믿지 않는 편이 마음이 편하다.
좋은 회사란… 상상 속에서나 존재하는 것
세상에 좋은 회사는 없다. 다른 글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나쁜 회사 그리고 더 나쁜 회사’만 있다. 그리고 이 둘을 판단하는 기준도 지극히 ‘개인적’인 판단이다. 나에게 얼마나 맞춰주는가에 따라, 내 요구 조건을 얼마나 수용하는가에 따라 제각각 다른 평가를 할 수 있다. 그리고, 원래의 기준보다 많은 가치와 혜택을 주면 비로소 ‘좋은 회사’를 만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회사를 보는 ‘눈높이’도 성장한다
하지만, 문제는 과거보다 내 눈높이가 높아졌다. 과거의 경험의 폭과 깊이가 넓어진 이상, 점점 더 많은 것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계약 관계’가 이난가. 성장을 위해 만났으니, 스스로 성장하고 있음을 회사로부터 다양한 계통과 방법을 통해 영향을 받아야 하지만, 어디 그런 ‘느낌’을 가질 여유가 있냐 말이다. 판단할 만한 시점이 되면, 어느새 높아진 눈높이가 자연스럽게 느껴질 뿐이다.
회사(일)에 대한 확실한 기호와 취향만이 답이다.
그래서, ‘회사에 요구 가능한 내용’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밝힐 수 있어야 한다고 권유한다. 그래야만, 실력과 눈높이의 성장 변화를 체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일에 있어서, 또는 조직에게 요구하는 바가 실제 조직에서 있거나, 나를 통해 충분한 변화가 가능한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당연히 그럴만한 눈도 갖추어야 한다.)
‘크고 유명한’ 회사에 ‘가야만 하는 이유’?!
(X≠Y)
가고 싶은 이유(X)가 있고,
그들이 나를 받아야 하는 이유(Y)가 있다
‘크고 유명한 것’과 내가 ‘가야 하는 이유’는 별개다.
구분하는 눈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해당 조직에 ‘내가 필요한 이유’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논리와 합리에 의해 설득적으로 피력해야만, 비로소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어찌 보면, 크고 유명한 회사에 가야 하는 이유가 나를 그쪽으로 인도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들로 부터 공감대를 얻어 실제 합류할 만한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만들기는 한다. 그러나, 그 이유가 ‘합류하게 해주지 못한다.’
보지만 말고, 실제 행동해보자.
대부분 ‘가고 싶다는 마음’만 앞서는 것이 보통이다. 그냥 ‘바라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현재 시점에서 그들과 함께 일하기 위해서는 어떤 것이 필요하고, 현재 부족한 것이 무엇이고, 그 부분을 채우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등에 대하여 자세히 분석하고 이를 메워가는 것에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막연히 ‘바라보는 것’ 말고 말이다.
마지막으로는 내 커리어 방향성과 Match up
실제 그럴만한 충분한 자격 및 실력의 조건이 있다고 해도, 마지막 Fit을 맞춰봐야 한다. 그곳에서 하게 될 경험이 나를 성장은 시키지만, 내가 바라는 성장 방향과 ‘맥 또는 궤’를 같이 하는지 비교 말이다. 자칫 전혀 반대의 경험을 하게 되어 원하지 않는 삶을 살게 되지 않도록 방지하는 것이다.
원래 알고 있던 기준(편견)으로는 좋은 회사는 (고를 수) 없다.
내가 맞춰줄 수 있는 회사, 나에게 맞춰 줄 수 있는 회사만 있다.
여기서 얼마든지 조율이 가능하다. 그러면, 그나마 내가 바라거나 기대하는 ‘좋은 회사’에 가깝지 않을까.
이직스쿨 김영학님의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