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스타트업에서 “유일”하게 중요한 한가지
클래스101은 20대 초중반의 창업자들이 만든 스타트업으로 준비물을 함께 보내주는 온라인 클래스를 제공한다. 클래스101은 2019년 소프트뱅크로부터 120억원의 시리즈A 투자 유치를 받게 되었는데, 당시 창업가들은 담당 심사역에게 왜 이렇게 큰 금액을 투자 했는지 물어 봤다고 한다. 그 심사역이 얘기하길, 현재의 이런 상태(?)의 앱을 가지고도 매월 100%씩 매출 성장을 하고 있는 사업이라면, 정말 제대로 만들었을 때의 가능성이 너무 커 보인다고 … 했다고 한다.
클래스101의 창업가들은 숙력된 전문가들도 아니었고, 그들이 놀라운 실행력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하지만 어떻게 이렇게 성공적인 사업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일까?
라클리프의 스타트업 성공 방정식
유일하게 중요한 것은 프로덕트 마켓 핏을 찾는 것이다 (The only thing that matters is getting to product/market fit.)
출처: the Marc Andreessen’s blog post
마크 안드레센의 유명한 블로그 포스트를 보면, 스타트업에서 유일하게 중요한 것은 프로덕트 마켓 핏을 찾는 것이라고 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ONLY가 아닐까 싶다. 다른 어떠한 것보다 중요하다가 아니라, 프로덕트 마켓 핏만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션 엘리스는 핏을 찾기 전에 회사를 키우는 일이 스타트업이 가장 빨리 사망하는 길(Using Product/Market Fit to Drive Sustainable Growth)이라고 그 중요성을 얘기했다. 이 두 가지 의견을 결합한다면, 스타트업이 프로덕트 마켓 핏을 찾는 것 외에의 모든 활동은 그 핏을 찾기 전에는 무의미하다는 것이 된다.
그럼 정확히 프로덕트 마켓 핏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마크 안드레센은 프로덕트 마켓 핏을 “Product/market fit means being in a good market with a product that can satisfy that market.“이라고 정의했다. 프로덕트 마켓 핏을 찾았을 때는 제품이 날개 돋힌 듯 팔려 나가고 금고에는 돈이 쌓이며, 이건 내가 말아 먹지 않는 이상 절대 망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사실 프로덕트 마켓 핏은 Y컴비네이터의 만트라 중에 하나인 “Make something people want.” 와 일맥 상통해 보인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창업자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프로덕트 마켓 핏의 정의는 그 용어를 처음 정의한 앤디 라클리프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수적이며 자생정인 성장 (Exponential organic growth).
출처: Foundr podcast with Andy Rachleff
정말 간결하고, 다른 해석의 여지를 주지 않아서 참 좋은 정의인 것 같다. 이런 지수적이고 자생적인 성장은 캐시워크가 좋은 예 중에 하나일 것이다. 불과 런칭 5개월만에 사실상 0에서 경쟁사 대비 4배 이상의 규모로 검색량이 늘었다.
캐시워크 창업자 중 한 명인 박정신 대표의 글에서 프로덕트 마켓 핏을 찾았을 때의 느낌이 잘 전달된다. 그땐 정말 부러웠다 ㅜㅠ (지금도 부럽다).
2. 창업가의 외면
하지만, 많은 창업가들은 프로덕트 마켓 핏을 찾는 다고는 하지만, 이러한 정의는 외면하려고 한다. 왜 그럴까?
프로덕트 마켓 핏은 시장, 제품 뿐만 아니라, 유통 채널과 수익 모델을 모두 포함한다고 한다 (Why Product Market Fit Isn’t Enough). 그렇기 때문에 창업가는 수익을 제대로 내지 못하는데 비용을 늘려서 고객을 확보 하면서 프로덕트 마켓 핏을 찾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또는 대형 플랫폼과의 관계에 힘 입어 고객을 확보하고 있지만 그 관계를 지속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걸 애써 무시하고 있을 수도 있다. 혹은 PR과 마케팅 스턴트로 말미암아 단기간에 많은 고객이 쏠리고 있지만, 실제 고객이 가치를 못느끼고 있는 상황을 인지하고 있지 못하고 있을 수 있다.
그런 점을 인지하고 있다고 해도, 창업가가 자신의 회사가 프로덕트 마켓 핏을 찾지 못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는 매우 어렵다. 이건 창업가의 심리이다 (The Real Product Market Fit). 그걸 인정하는 것이 너무나 싫고 힘든 일이다. 하고 있는 사업이 얼마나 잘 되고 있는지, 그리고 더 잘된 것인지 끊임없이 사람들을 설득해야 하는 입장인데,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 프로덕트 마켓 핏이라면, 현재 프로덕트 마켓 핏을 찾지 못했다고 인정하는 것이 핏을 찾아가는 가장 중요한 첫 걸음이 된다.
3. 프로덕트 마켓 핏을 찾는 프로세스
자생적이고 지수적인 성장이 없는 상황에서, 이제 스스로 프로덕트 마켓 핏을 찾지 못했다고 인정하고 나면, 그 다음에는 핏을 찾아 가는 효과적인 방법이 필요하다.
린스타트업 방법을 사용하면서 프로덕트 마켓 핏을 찾아가는 좋은 예 중의 하나는 슈퍼휴먼의 케이스 (How Superhuman Built an Engine to Find Product/Market Fit)이다. (1) 션 엘리스가 개발한 서베이 방법 (PMF Survey)을 통해서 핏의 정도를 정량적으로 파악한 뒤, (2) 정말 만족하고 있는 고객을 찾아 왜 만족하는지, 만족하지 않은 고객을 찾아 왜 만족하지 않는지를 인터뷰를 통해 정성적으로 이해한다. (3) 그리고 어떤 가치를 전달해야 하는지를 정하고, 그 가치를 느끼는 고객에게 점점 집중해 가면서 프로덕트 마켓 핏을 찾아가는 것이다.
엘리스의 서베이 외에도 NPS (Net Promoter Score), 고객 재방문율, 전환율 등을 측정하여 얼마나 우리 사업이 프로덕트 마켓 핏에 가까워 지고 있는지 측정할 수 있다 (The Never Ending Road To Product Market Fit). 초기 스타트업은 이와 유사한 측정을 많이 하지만, 그 측정의 목표가 명확하고 유일하게 프로덕트 마켓 핏에 얼마나 가까워 지고 있는지를 보는 것이 되어야 한다.
앤디 라클리프는 왜 이런 지표들이 프로덕트 마켓 핏으로 가는 길인지 매우 간결하며 논리적으로 설명해 준다.
지수적이고 자생적인 성장 ← 입소문 ← 행복해 하는 고객들
(Exponential Organic Growth ← Word of Mouth ← Delighted Customers)
출처: Foundr podcast with Andy Rachleff
즉, 지수적이고 자생적인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고객들의 입소문을 타야 하는 것이 절대적인 필요 조건인데, 이런 입소문은 정말 제품에 대해 만족한 고객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이런 알려진 방법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회사들이 프로덕트 마켓 핏을 직접적인 목표로 삼고 체계적으로 지표를 체크해 나가는 것 같지는 않다. 아마도 당장의 현안이 넘쳐 나는 상황에서 관심이 분산되기 때문일 것 같다. 하지만, 앞서 얘기한 것처럼 스타트업에서 유일하게 중요한 것은 팀도, 문화도, 자본도 아닌 프로덕트 마켓 핏이고 이게 없는 상황에서 스케일업과 관련된 모든 활동은 빨리 사망하는 지름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4. 피벗을 통해 프로덕트 마켓 핏으로
이제 프로덕트 마켓 핏을 찾지 못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선행 지표로 핏 정도를 측정해 가면서 실험을 계속하게 되었다고 생각해 보자. 이런 과정을 반복할 때 빠르게 프로덕트 마켓 핏을 찾는 창업가와 그렇지 않은 창업가의 역량 차이는 피벗에 있다고 생각한다. 피벗이란 원래 검토하던 사업 아이디어가 별로라는 것이 린스타트업 방법으로 검증 되었을 때 지금까지 고객과 시장에 대해 배운 것을 바탕으로 다른 사업 아이디어로 검증 대상을 바꾸는 것이다.
피벗을 잘 하는 방법은 결국 좋은 스타트업 아이디어를 얻는 방법과 비슷하다.
Y-컴비네이터의 폴 그레험은 스타트업 아이디어는 자신이 고객인 자생적인 아이디어와 자신이 고객이 아닌 온-디맨드 아이디어로 분류했다. 그레험은 온-디맨드 아이디어를 검증할 때에는 창업가가 스스로 판단하면 절대 안된다고 조언했다. 즉, 피벗을 할 때 어떤 것으로 방향 전환을 해야 할지, 그 분야의 고객이 아닌 창업가라면 스스로 판단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재미 없어 보이거나 하기 싫은 아이디어를 제외하는 실수 또한 피하라고 한다.
피벗에 있어서 이렇게 창업가의 직관을 신뢰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앤디 라클리프가 좋은 투자(=사업)이 어떤 것인지 설명하면서 명쾌하게 알려 주었다.
위의 도표는 어떤 사업 아이디어에 대해 좋다, 나쁘다에 대한 다수의 동의가 있는지, 그리고 실제 그 사업이 좋은 사업인지 (Right), 별로인 사업인지 (Wrong)에 따른 수익률을 비교한 것이다. 즉, 사업 아이디어에 대해 많은 사람의 동의가 없어야 오히려 매우 좋은 사업 아이디어가 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동의하는 사업은 많은 사람과 경쟁해야 해서, 비록 그 사업이 성공하더라도 리턴은 매우 작다. 이건 피터 틸이 투자를 희망하는 창업가에게 묻는 질문과 맥락이 같다 (제로 투 원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 하려는 사업과 관련해서 당신만 알고 있는 사실이 무엇인가? 예를 들어 트레바리는 사람들이 독서 모임에 1회 5만원가까이 되는 비용을 내면서도 참여할 거란 사실을 알고 있었고, 트레바리에 투자한 소프트뱅크는 그런 사람이 많을 것이라는 것에 베팅을 한 셈이다.
그러므로 좋은 사업 기회들은 그 산업에 새로운 변화가 있어서 균열이 생길 때 발생하게 된다. 변화 없이는 기회 또한 없다. 즉, 좋은 피벗의 방향은 기술의 발전 덕에 이전에 불가능했던 것이 가능해 지면서 아직 사업화가 안된 사업 기회들이 있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다. 국내에서 이런 피벗의 가장 좋은 예 중에 하나는 캐시노트가 아닐까 한다.
카드 결제가 점점 많아 지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나라 신용카드 경제 시스템의 특징상 소상공인이 카드 결제를 받았던 내역이 누락되어 수익을 놓칠 수 있었다. 점점 카드 결제가 더 많아지면서 이런 신용카드 매출 누락 문제는 더욱 큰 사업 기회가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위의 사전 지식들을 가지고 있더라도 피벗을 잘 하는 것은 쉽지 않다. 피벗의 방향에 있어서는 분명 경험이 쌓인 창업가가 더 잘 할수 밖에 없다. 다행히도 경험이 부족하여도 잘 하는 방법은 있다. 그 방법은 동일 확률의 법칙(Equal Odds Rule)을 활용하는 것이다. 캘리포니아주립대의 케이스 사이먼턴 교수는 아래와 같은 동일 확률의 법칙이라는 이론을 1977년에 발표했다.
동일 확률은 법칙
한 과학자의 특정 연구 성과는 다른 어떤 연구원의 평균적인 연구 성과와 통계적으로 차이를 가지지 않는다. (The Equal Odds Rule says that the average publication of any particular scientist does not have any statistically different chance of having more of an impact than any other scientist’s average publication.)
이 이론이 얘기하는 바는 많은 연구 성과를 만드는 것이 유의미하게 뛰어난 연구 성과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즉 창의성을 필요로 하는 많은 분야에서 뚜렷한 큰 성과를 내는 방법은 여러 시도를 많이 해 보는 것이다.
이 이론은 Y-컴비네이터의 “빨리 런칭하고, 그냥 배포 해버려라 (Launch fast. Just ship it.)“이라는 만트라와 일맥 상통한다. 직관적으로 좋은 아이디어가 아닌 숨어있는 사업 아이디어를 찾기 위해서는 빠르게 제품을 내고 피드백을 받아 피벗하는 과정을 빠르게 반복하는 것이 가장 유효한 방법일 것이다.
5. 시간이 흐르면 프로덕트 마켓 핏도 변한다
2012년에 창업하여 2년만에 연 매출 355억원, 누적 가입자 1,300만명을 돌파한 서비스가 있다. 프로덕트 마켓 핏을 분명히 찾은 회사인 것이다. 이후에도 국내에서 해당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서비스 사업자로 성장하였다. 하지만 2017년 2월에 런칭한 캐시워크에 의해서 사용자와 수익 모두 급감하게 되었다. 바로 이 회사는 캐시슬라이드를 운영하는 (주)NBT이다.
캐시슬라이드가 리워드라는 가치를 주는데 반해서, 캐시워크는 만보기라는 유틸리티 기능이 고객에게 더 큰 가치를 전달해 주었다. 뿐만 아니라, 주 수익원인 광고 지면이 리워드성 광고가 아닌 유틸리티 기능에 추가되어 있는 일반 광고 지면이었기 때문에 수익율 또한 월등히 높았다. 캐시슬라이드가 없었다면, 캐시워크가 만보기를 잠금 화면에 노출할 아이디어를 떠 올리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캐시슬라이드가 프로덕트 마켓 핏을 찾아서 사업에 성공하면서 오히려 캐시워크라는 경쟁사를 불러 오게 된 것이다.
이처럼 새로운 제품과 기술은 끊임없이 시장을 변화시키며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 내게 된다. 즉, 한번의 프로덕트 마켓 핏을 찾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핏은 서서히 움직이며 어긋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프로덕트 마켓 핏을 찾는 노력은 계속 되어야 한다. 그래서 그런 노력을 하는 것을 프로세스화 하는 것은 스케일링업을 해야 하는 회사에서도 중요하게 된다.
그런 프로세스는 지금까지 얘기한 내용으로 대략 아래와 같이 정리될 것 같다.
프로덕트 마켓 핏 용어, 잘 알고 씁시다
지금까지 얘기한 내용을 대략 요약해보면 아래와 같은 그림이 될 것 같다. 여기서 여전히 가장 중요한 것은 스타트업의 목표가 분명하게 프로덕트 마켓 핏을 찾는 게 되어야 하는 점인 듯 하다.
스타트업 업계에서 프로덕트 마켓 핏이라는 용어는 뜬 구름 잡는 것 같이 사용 되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주)사운들리를 미국 스타트업에 매각하려 했을 때, 그쪽도 누적 투자 금액이 200억원이 넘어가는 결코 초기 스타트업이 아니었음에도 프로덕트 마켓 핏을 “그럴싸한 사업 아이디어”라는 뜻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렇게 사용하는 심리의 저변에는 “이제 나는 찾았어”라는 창업가의 스스로의 위안이 깔려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믿지 않으면 창업가에게 세상은 얼마나 험난한지 알기에 이해는 간다. 하던 사업의 방향을 바꾸고 팀원을 설득하다가 몇몇을 내어 보내야 하며, 투자자는 왜 이런 방향으로 가냐고 태클을 걸 테지만, 그들을 설득할 수 있는 자료는 부족할 것이다. 그리고 계속 비용은 나가고 있으며 창업가의 신용 대출도 이제는 바닥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걸 인정하는 순간부터 성장할 수 있는 방향으로 들어서게 되는 게 아닐까.
해당 콘텐츠는 김태현(tkim.co)님과 모비인사이드의 파트너쉽으로 제공되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