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하던 TV 프로그램이 끝날 무렵, 프로그램과 관련된 정보 — 예를 들어 여행 프로그램이었으면 여행지 정보, 드라마였으면 여배우의 화장 방법들을 스마트폰으로 보내주면 어떨까?

 

내가 창업한 (주)사운들리는 음파 통신 기술(사람의 귀에 안 들릴 정도의 높은 옥타브 소리를 신호로 사용해서 디지털 정보 전송하는 기술)을 사업화하는 스타트업이다. 이 기술은 WiFi나 블루투스와는 다르게 소프트웨어만으로 스피커와 마이크를 사용해서 통신을 가능케 한다.

2012년도 창업 후 13억 원의 기관 투자를 유치한 다음, 한때 일간 250만 명이 넘는 사용자들을 서비스하며 36개가 넘는 TV 캠페인을 진행하는 성장의 모멘텀을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구글이 자사 서비스 외에는 백그라운드에서 마이크 접속을 금지하는 바람에 그 모멘텀을 잃고 결국 사업을 중단하기까지 이르렀다.

어찌 되었든 간에 7년이라는 시간 동안, 4번의 메이저 피벗, 초기팀 외에 2번의 팀 리빌딩, 그리고 수많은 사업화 시도에도 불구하고 나는 성장하는 사업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감정적으로 힘들었지만, 실패를 인정하고 지난 시간을 되짚어 보았다. 창업하기 전부터 린스타트업 방법론에 공감하고 빠르게 사업 모델을 찾는 걸 목표로 했는데 왜 이렇게 오래 걸렸을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그중에도 특히나 개발자/엔지니어 출신이었던 나의 백그라운드가 큰 역할을 했던 것 같다. (1) 기술 중심의 피벗을 했던 것, (2) 단순한 사업 모델을 유지하지 못한 것, (3) 린스타트업을 알고도 장인 정신에 털린 것, 이렇게 세 가지가 가장 큰 요인이었던 것 같다.

 

 

 

(1) 기술 중심의 피벗

 

사운들리는 처음에 식당의 붐비는 시간대를 피해서 방문 예약을 하면 음식값을 할인을 해 주는 블랙솔트라는 앱 서비스로 시작했다. 블랙솔트 사업의 아이디에이션 과정에서 우리는 방문 고객이 누군지를 매장에서 알 수 있으면, 수많은 새로운 서비스가 가능해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하지만, 그때 당시는 블루투스 비콘도 나오기 전이라 실제 그걸 구현할 수 있는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어느 매장이던 구비하고 있는 스피커를 사용해서 음파(Acoustics)에 정보를 담아 스마트폰으로 보내면, 고객이 설치한 앱이 음파를 수신해서 어떤 사람이 매장에 방문했는지를 알 수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아이디어에 대한 반응은 정말 뜨거웠다. 기술에 대한 아이디어만 가지고 나는 주위 선후배와 친구들로부터 개인 투자를 받았고, 학교 후배인 국내 VC 한 명이 공동 창업자로 개인 출자했다. 또한, 당시 CISCO 본사의 시니어 엔지니어 분이 파트타임으로 합류했었다.

하지만, 정작 블랙솔트 앱은 사용자 확보에 성공적이지 못했다. 당시 마진율이 높은 고급 식당에서는 붐비지 않은 시간은 직원들의 쉬는 시간이어서 매니저를 포함한 직원이 블랙솔트를 도입하려 하지 않았다. 결국 마진이 낮아도 당장의 홍보가 필요한 식당들만이 섭외가 되었고, 이는 사용자들이 앱을 설치하는 번거로움을 감내할 만한 딜을 만들어 내지 못한 것이다.

블랙솔트 사업이 잘 풀리지 않자 나는 피벗할 사업 아이디어를 열심히 찾기 시작했고, 고심 끝에 나는 블랙솔트 앱을 버리고 음파 기술을 판매하는 솔루션 사업으로 피벗 하였다. 그게 그때 당시에 우리 팀의 가장 큰 차별점이자 큰 자산이라고 생각했다.

이 기술 중심의 피벗이 내가 한 가장 큰 실수였다.

동작하는 사업 모델을 찾는 것은 시장과 고객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깊은 이해가 필요하지 않는 사업 모델은 이미 남들이 다 해본 것들이거나 동작하지 않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술 중심으로 피벗을 하게 되면 지금까지 쌓아온 지식을 버리고 새로운 시장과 고객에 대해 다시 학습해야 한다. 개발자였던 나는 기술을 지나치게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고, 그로 말미암아 기술을 사업의 중심에 두려 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매몰 비용에 대한 것 때문에 음파 기술을 버리는 피벗은 점점 어려워졌다.

물론 그런 기술 중심의 피벗이 필요할 때가 있고 성공한 케이스도 있다. 하지만, 음파 기술은 정말 다양한 분야에 쓰일 수 있어서, 기술이 사업화에 성공하는 케이스를 찾기 전까지는 계속해서 시장을 바꾸어 가야 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로 7년이라는 기간 동안 정말 다양한 산업- 외식산업, 소프트웨어 SaaS 및 SI 산업, 리테일, 방송 산업, 극장 체인 산업, 신용 카드와 페이먼트 산업 그리고 마지막 2년간은 온오프라인 광고 산업에 대해 끊임없이 새로 학습하고 배우며 시간을 쓰게 되었다.

만일 음파 기술이 아닌 하나의 산업에 집중했더라면 새로운 사업 아이디어가 비록 동작하지 않아도 시장과 고객에 대해 계속 학습할 수 있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만일 외식 산업에 계속 남아 있었다면, 그때가 모바일이 도입되기 시작하며, 새로운 사업 가능성이 열리던 시기였기 때문에 충분히 좋은 사업 모델을 발굴할 수 있었을 것 같다. 음식 배달, 소상공인의 수입/비용 관리, 외식업장의 초단기 알바 구하기, 목이 좋지 않아도 찾아가는 외식 문화의 변화 … 많은 기회가 다 열려 있었던 것 같다.

 

 

특허 검색하다 나온 음향 기기 그림. 기술을 중심에 두고 사업을 했던 내 모습 같다.

 

 

(2) 단순한 사업 모델을 유지하지 못한 것

 

사운들리가 제공한 음파 기술은 용도에 따라 (a) WiFi, 블루투스 비콘, QR코드, NFC와 같은 기술적인 대체재와 (b) 사용자가 직접 번호를 입력하거나 체크인을 하는 UX 대체재들이 존재한다. 이런 상대적으로 싼 대체재가 존재하는 기술은 기술을 제공만으로는 좋은 수익 구조를 만들기 어렵다.

그 결과 사운들리는 두 개 이상의 사업자를 음파 기술로 연결하는 방식으로 수익을 내려고 했었다. 그런 특성이 있는 것이 광고 사업이었다. 광고 사업은 광고주와 모바일 광고 매체(광고 지면을 보유한 앱)사를 연결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한 쪽에서는 음파를 송출하고, 다른 한쪽에는 음파를 수신하여 전체 서비스 시나리오를 완성한다.

하지만 여기서 내가 정말 간과한 점은 사업에 필요한 고객 사이드의 수가 늘면 사업 개발에 필요한 시간이 지수적으로 증가한다는 사실이다. 광고주와 모바일 광고 매체 양쪽이 필요한 양면 사업은 다른 플랫폼 사업과 유사하기 때문에 거기까지는 괜찮았다. 하지만, 방송 속에 음파를 넣을 수 있는 TV 방송국, 방송국 광고를 처리하는 미디어렙, 매장 방송 속에 음파를 넣을 수 있는 리테일러, 광고 에이전시, 앱 사용자 등의 고객 사이드가 계속 증가하는 것 때문에 사업 개발의 시간이 정말 오래 걸렸다.

 

사업 검증에 걸리는 시간 ≈ A고객 사이드의 수

 

내가 이런 사실을 잘 인지하고 있었다면, 더 간결한 사업 모델의 범주 내에서 피벗을 진행하거나 아니면 좀 더 일찍 메이저 피벗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걸 몸으로 깨닫는데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 고객 사이드 수를 늘리는 사업적인 결정을 한 배경에 나의 개발자 성향이 짙게 깔려 있었다. 개발자는 현재의 사업 모델에서 부족한 부분을 해결해야 할 별도의 문제로 모듈화해서 바라본다. 비개발자의 경우 문제가 어려우면 정말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하기 쉽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 몰입하는 개발자는 그런 사고의 전환이 어렵다. 개발자로서의 경험이 그런 무의식적인 성향을 만들어 왔기 때문이다. 회상해 보면 나는 오히려 그런 복잡하지만 명쾌하게 해결되는 사업 모델을 만들어 내는 것에 자부심이 들 정도로 무지했던 것 같다. 마치 남이 생각하지 못하는 멋진 사업 계획을 완성한 것처럼 말이다.

 

 

(3) 린스타트업을 알고도 장인 정신에 털린 것

 

장인 정신을 가지고 소프트웨어 제품과 음파 기술을 만들려고 했던 것도 오랜 시간을 보내는 데 큰 몫을 했다. 즉, 필요한 것만 만들기 보다, 잘 만들려고 했고 그러기 위해서 시간을 많이 허비했다. 나 스스로 놀라운 것은 내가 항상 린스타트업을 강조하면서 팀 리딩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일은 그대로 발생한 것이다.

 

 

한참 광고 사업을 진행 중일 때의 사운들리 백엔드 아키텍처. 대부분 SaaS 솔루션으로 대체 가능했다

 

사운들리 제품은 초기 고객이 10곳이 안될 때부터 백엔드 API 서버, 프론트엔드 CMS, 로그 처리 서버, 애널리틱스를 모두 구축하여 제공해 왔다. 외부의 SaaS를 사용해서 대부분의 백엔드 개발을 대체할 수 있었지만, 당시 개발팀은 내부 논의를 통해서 직접 개발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외부 솔루션을 썼을 때 우리 입맛에 딱 맞게 되어 있지 않은 점이 심리적인 걸림돌이 되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번에 회사를 폐업하면서 서버 비용을 더 이상 지불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더 극단적으로 아예 서버 자체를 없앨 수 없을까 고민해 보았다. 7년의 시간이 흐른 뒤 살펴보니 가능해 보였다. 음파 기술의 핵심은 서버에 있지 않다. 백엔드 서버는 이 음파 기술을 더 잘 활용할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더 나아가, 애시당초 고객이 서버 없는 제품을 쓰기가 불편한데도 서버 없이 도입할 수 있는 것이 검증되었어야 하는 게 아닐까?

 

 

이런 접근 방법이 린스타트업이 강조하는 것이고, 나는 그 부분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는데, 왜 이런 시간 허비를 하게 되었을까.

 

개발자들은 뭔가를 만들고 고치는 일을 할 때 느끼는 몰입감에 대해 중독되어 있는 장인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린스타트업의 멘탈리티가 있다고 하더라도, 개발자들은 최소한의 개발을 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다. 구체적인 예로 톱니가 맞아 들어가는 듯이 제품을 구성하는 것에 대한 욕심이 있다. 내부 리소스를 아끼기 위해 외부 솔루션을 쓰려 했을 때 당연히 모든 게 입맛에 맞지 않을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이 모두 들어가 있는 외부 솔루션은 SI 밖에 없다. 하지만 아구가 맞지 않은 내부 개발 제품과 외부의 솔루션을 우격다짐으로 연동해서라도 실험을 실행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

극단적인 개발 리소스 부족으로 허덕이는 경우이거나 기술에 깊은 이해가 있는 제품 관리자가 있는 것이 아니면 최소한의 개발을 실행하는 것과 개발자가 추구하는 몰입을 만족시키는 것 두 가지를 조화시키는 것은 매우 어렵다. 불행히도 이런 조화를 이뤄줄 인재들은 정말 드물다. 제품이나 개발을 총괄하면서 사업의 니즈에 맞춰서 그 개발의 범위를 줄이고 개발팀이 안 하면 정말 큰일 나는 최소한의 개발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하는 것, 그런 와중에서도 개발자들이 가진 호기심과 흥미를 발산시키고 만족시킬 수 있는 밸런스를 찾아주는 사람- 이런 사람들은 정말 드물다.

 

 

 

그럼 개발자 출신의 창업가는

이런 세 가지 타입의 실수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까?

 

개발을 해 오며 훈련된 사고방식들은 의식의 영역을 넘어 무의식의 영역에 자리 잡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린스타트업 방법론을 인지하고 있어도 사고의 흐름이 그 방법론을 엄밀히 따라가지 못하는 무의식중의 의사 결정을 하게 된다.

존경할 수 있고, 그 사람의 말이면 내 생각에 반하더라도 한 번쯤 곱씹어 생각할 수 있는 좋은 선배 창업가를 찾아서 끊임없이 스스로의 의사 결정에 대해 검증을 받아야 한다. 내가 하는 실수를 그대로 경험해보고 느껴본 선배 창업가의 조언은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이라 할지라도 가슴속을 파고든다.

좋은 선배 창업가는 꼭 성공한 사람이어야 하는 것은 아닌 듯하다. 사업의 성공이 온전히 그 창업가의 노력의 결과가 아니듯, 사업 실패의 모든 원인이 그 사람의 실수 때문은 아니다. 내 주위를 봐도 처음의 아이디어가 한 방에 잘 된 경우는 시행착오가 없어서 그런지 생각보다 내공이 약한 “성공한 창업가”도 많다. 그래서 오히려 비슷하게 시행 착오를 하고 있는 다른 창업가들과 많은 대화를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제 3자의 관점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것 같다.

나는 시간이 흐르고 계속된 삽질 때문에 그런 조언이 얼마나 소중한지 뒤늦게 깨달았다. 나 스스로 귀를 열어 조언을 들은 게 아니라 강제로 귀가 뚫린 경우이다.

 

다른 창업가들은 제발 그러지 않기를 바랍니다.

 

 

 

해당 콘텐츠는 김태현(tkim.co)님과 모비인사이드의 파트너쉽으로 제공되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