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트롯을 보며 느낀 점들
미스터트롯이 엄청난 시청률을 기록하며 화제 몰이를 하고 있다. 지상파는 물론, tvN, jtbc 같은 종편의 예능 강자들을 완전히 압살해 버리는 모양새다. 당연지사, 미스터트롯을 따라 하는 프로들이 하나 둘 등장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게 MBC에브리원의 ‘나는 트로트 가수다’, 하지만 1프로대 시청률… 미스터트롯의 시청률이 30프로에 육박한다는 걸 생각해 볼 때 비교조차 부끄러운 수치다.
이걸 어떻게 봐야 할까? 왜 미스터트롯은 되고, 나는 트로트 가수는 안될까… 심지어 미스터트롯의 경우 출연자들의 인기가 아이돌에 필적하는 수준이다. 2020년, Z세대보다도 어린, 그리하여 어떤 세대로 명명하기조차 어려운 유치원생과 초등학생들이 트로트 프로그램에 열광할 줄을 어떻게 짐작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아니, 도대체 왜 지금 트로트일까? 미스터트롯은 어떻게 트로트를 리브랜딩 하고 있는 걸까, 궁금한 마음으로 미스터트롯을 정주행 했다. 그리고 미스터트롯이 트로트를 리브랜딩 하고 있는 데 있어 눈여겨볼 만한 내용들을 정리해봤다.
미스터트롯의 트로트 리브랜딩 전략
1. 무엇(What) 보다는 어떻게(How), 어떻게(How) 보다는 누가(Who)
한때, 잘 나갔던 필라가 추락했던 것은 필라의 소비자층이 나이가 들어가면서였다. 젊은 이미지를 잃어버린 필라는 마치 중년을 타깃으로 하는 아웃도어 브랜드처럼 인식되기 시작했었다. 위기를 느낀 필라가 정구호를 영입하면서 리브랜딩의 핵심으로 삼은 것은 철저하게 십대와 이십 대 중심의 젊은 층을 타깃으로 하는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었다. 십대를 타깃으로 하는 모델을 발탁하고, 제품을 디자인하는 동안 필라는 점점 젊은 세대가 쓰는 브랜드가 되어갔다. 미스터트롯 역시 마찬가지 전략을 취하고 있다. 트로트는 전통적인 것에 가깝지만, 출연자들은 철저하게 젊은 세대로, 그것도 아직 알려지지 않은 무명의 사람들로 밀어붙인다. 그렇다 무엇을 하는가 보다 어떻게 하는가가 중요하다. 여기서 한 발자국 더 나가면 어떻게 하는가 보다 누가 하는가가 중요하다. 트로트도 젊은 세대가 하면 신선해 보일 수 있다는 걸 미스터트롯은 잘 보여주고 있다.
미스터트롯의 트로트 리브랜딩 전략
2. 오래된 것일수록 더 유연하게
미스터트롯을 보며 인상 깊게 느낀 부분 가운데 하나는 출연자의 상당수가 트로트가 아닌 타 장르 출신이라는 점이었다. 아이돌 출신, 성악 출신, 국악 출신, 락커 출신 등등 오히려 정통 트로트 출신 가수는 그리 많지 않아 보였다. 타 장르에 대한 유연성은 가수 출연자뿐만 아니라 심사위원 구성에서도 느껴졌다. 기존에 식상했던 트로트 가수 중심이 아닌 다양한 분야와 장르의 인물들이 출연해서 심사를 하는 점이 신선했다. 사실 미스터트롯의 유연성은 출연자의 구성뿐만이 아니었다. 트로트 장르를 다루면서도 노래와 함께 퍼포먼스를 굉장히 비중 있게 가져가면서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했다. 자칫 단조로워지거나 지루해질 수 있는 요소를 굉장히 유연한 방식으로 차단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됐다.
오래된 것일수록 더욱 유연해야 확장성이 생긴다는 것을 미스터트롯은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미스터트롯의 트로트 리브랜딩 전략
3. 타깃을 좁히지 않고 최대한 넓힌다.
트로트를 가지고 프로그램을 만들 때,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전략은 타깃을 최대한 좁히는 것이다. 확실한 소비층이 있으니까, 타깃을 해당 소비층으로 최대한 좁혀서 공략하는 것이 일반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기존 트로트 가수들의 콘서트나 디너쇼가 그렇다. 그래서인지 그런 콘서트나 디너쇼에서는 비슷한 레퍼토리가 반복되기 마련이다. 타깃이 분명할수록, 그런 레퍼토리는 성공을 확실히 보장한다.
하지만, 미스터트롯의 경우 트로트를 대상으로 하면서도 타깃을 최대한 넓히는 전략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유소년부, 신동부, 아이돌부, 직장 인부, 현역부, 타 장르부 등으로 나뉜 출연자들을 보면서 미스터트롯이 어느 한 세대나 계층을 타깃으로 하기보다는 트로트를 최대한 다양한 세대들이 소비할 수 있도록 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느껴졌다.
미스터트롯의 트로트 리브랜딩 전략
4. 그럼에도 트로트의 원형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
이 부분은 좀 개인적인 느낌일 수도 있지만, 트로트를 가지고 ‘낯설게 하기’를 시도하고 있는 미스터트롯이 오히려 트로트의 원형은 무엇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질문을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 적이 있었다. 그 느낌이 언제 불현듯 들었냐 하면, 류지광이라는 출연자가 ‘돌아가는 삼각지’라는 노래를 불렀을 때였다. 뭔가 기묘한 중저음의 보이스가 TV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데, 그 가사가 굉장히 인상 깊었다.
“삼각지 로터리에 궂은 비는 오는데
잃어버린 그 사랑을 아쉬워하며
비에 젖어 한숨짓는 외로운 사나이가
서글피 찾아왔다 울고 가는 삼각지
삼각지 로터리를 헤매 도는 이 발길
떠나버린 그 사랑을 그리워하며
눈물 젖어 불러보는 외로운 사나이가
남몰래 찾아왔다 돌아가는 삼각지”
다시 봐도, 감동적인 가사다. 뭐랄까, 그 시절의 아버지들은 과거 삼각지역 부근에서도 저런 낭만적인 생각을 하시며 젊은 시절을 보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아버지가 된 우리들은 삼각지역 부근 아파트값에 대해 아쉬워하며 한숨 짓고 있는데, 그때의 사람들은 그때의 노래들은 삼각지 로터리에서 ‘비에 젖어 한숨 짓는 외로운 사나이’를 이야기하고 있구나… 문득 그런 얼토당토않는 생각을 하며 노래를 듣고 있자니, 뭐랄까 트로트의 원형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나는 과연 남은 인생에서 저 노래의 가사처럼 ‘외로운 사나이가 되어 남몰래 삼각지역에 찾아가 볼 수 있을까’하는 망상에 가까운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이번 주 미스터트롯은 또 어떤 트로트의 변신과 원형을 보여줄지 기대가 된다.
Min님의 브런치 글을 모비인사이드가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