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제품 서비스를 만들 때, 가장 괴로운 것은 소비자들에게 이것을 어떻게 알리냐? 하는 문제입니다.
지금까지 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는 제품을 설명한다는 것은 한번도 바다를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바다를 설명해야 하는 것과 비슷할 것 같습니다. 아무리 설명한들 물이 가득하다는 개념이 이해가 갈까요?
하늘을 나는 자동차나 자율주행차 같은 제품은 상상할 수 있습니다. 1980년대에 엄청난 히트를 했던 전격 Z작전이라는 미드에 키트라는 무인 자동차가 등장했습니다. 오늘날 모두가 상상하듯 자동차가 말을 하고 스스로 달리기도 하며 주인공을 도와 주어서 주인공만큼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 이후 무인자동차는 기술의 문제일 뿐, 이미지를 상상하지 못할 건 없었습니다.
화질이 좀 나쁩니다만, 분명히 AI로 구동하는 무인자동차입니다!
키트처럼 이미 존재하는 카테고리에서 어떤 기능이 더해지거나, 용도가 좀 바뀐 것은 약간의 지적 능력을 사용해서 상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개념조차 생각해 보지 않았던 제품 서비스는 상상하기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머리에 없는 개념의 경우 설명을 듣는다 하더라도 논리적으로 추론하는 기능과 이미지를 떠올리는 기능이 싱크로 되어 작동하지 않습니다. (보통의 경우는 그렇습니다.) 설령 어찌어찌 상상력이 작동된다 하더라도 의도대로 제대로 이해할 가능성은 크지 않습니다.
알아차릴 때까지 말할 것인가
세상에서 가장 힙한 신제품 발표회의 원조인 애플이 아이폰을 세상에 처음 내 놓을 때, 스티브 잡스는 “아이팟, 인터넷, 전화” 라는 세 단어를 말합니다. 그의 뒤에 있는 큰 스크린에는 아이팟, 인터넷, 전화가 번갈아 가며 나타났습니다. 두 번째 말할 때, 잡스는 감이 오냐고 웃으며 물어봅니다. 사람들은 흥분하기 시작했고, 이 세 가지는 각각의 제품이 아니라 하나의 제품이고 그게 아이폰이라고 말합니다. 그 세 가지 제품이 하나로 합쳐진다는 것을 전달하기 위해 세 제품을 번갈아 보여주고, 말해 줌으로 힌트를 준 것입니다.
세 제품을 계속 차례로 보다가 사람들은 머릿속에서 불이 반짝 켜졌습니다. 잡스는 반복하면서 사람들이 정보를 소화해 개념을 이해하기를 기다린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날 누리는 디지털의 혜택이 펼쳐진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이폰 출시 이벤트에 가서 한정된 공간에서 잡스의 설명과 애플의 기술로 아이폰의 출시를 목격하는 일이 일반적으로 흔하게 경험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아마 전 세계 인구의 0.00001%에게도 주어지기 어려운 특별한 기회겠지요.
그렇다면 보통의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개념도 생소한 제품을 알려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잡스가 두 번을 말했으니 우리는 알아들을 때까지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말해주면 될까요?
Seeing is Believing
보여주는 것이 답입니다.
백 번 말로 설명해도 본 적 없는 것은 이해도 상상도 안됩니다. 1885년 칼 벤츠가 만든 최초의 자동차를 두고 사람들은 말이 없이 어떻게 마차가 움직이냐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사악한 힘이 무거운 마차를 저절로 움직이게 하는건가? 라는 의심까지 했다고 합니다. 곧 자동차가 거리에 나타나 굴러다니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말이 끌지 않는 자동차가 무엇인지 이해했습니다. 말은 없지만 마부(처럼 보이는 드라이버)에 의해 조종되며 이리저리 움직인다는 것을 그냥 알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아주 중요한 포인트가 하나 있습니다.
제품 자체를 정적인 모습으로 제시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그 제품을 이용하는 상황 속에서 제품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보여주면 사람들은 이해의 과정을 단박에 뛰어넘어 받아들입니다.
말이 없이도 마차가 움직일 수 있다, 말은 지치지만 새로운 마차는 전혀 지치지 않고 달릴 수 있다, 마부 같은 사람은 여전히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직접 눈으로 보고, 상황에서 경험을 하면 자신들이 당면한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의 현실을 백 마디의 설명 보다 더 빨리, 효과적으로 이해합니다.
만약 자동차를 마구간에 쉬고 있는 말처럼 차고에서 정차한 상태로 보여줬다면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저 크고 시커멓고 무거운 쇳덩이로 만든 마차의 본체를 보고 더더욱 의문에 빠졌을 것입니다.
멀티스크린 시대의 제품 서비스 알리기
요즘은 웬만해서는 누구나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고, 두세 개씩 스마트폰을 사용하기도 하는 멀티스크린의 시대입니다. TV를 켜거나 영화관을 가야만 동영상을 볼 수 있었던 과거와 달리 영상과 이미지의 접촉이 24시간 내내 장소를 가리지 않고 가능합니다. 영상을 만드는 기술도 훨씬 쉬워져 초등생도, 어르신도 유뷰브로 영상을 만들어 올리고 있습니다. 게다가 인터넷은 5G의 시대에 접어들어 영화나 드라마 스트리밍 서비스를 불편함 없이 즐기고 있습니다. 말로만이 아니라 진짜로 영상의 시대입니다.
손에서 놓는 일이 거의 없는 스마트폰에 기회가 있다는 건 너무나 명확한 사실이기도 하죠. 그러니 제품소개도 스마트폰에서 접할 수 있게 하는게 소비자들 입장에서도 편리하지 않을까요?
매체를 결정하고 컨텐츠를 만드는 방식은 스마트폰 시대에 새로 나온 것이 아닙니다. 전통적 4대매체 시기에도 매체가 가진 위상, 용도, 접근성 등이 컨텐츠의 방식을 결정하는데 중요한 고려 요소였습니다. 예를 들어 신문은 발행부수와 공신력, 매일 발행되는 빈도 때문에 진지하고 선언적인 내용은 예외없이 신문을 이용했고, 가볍게 보고 돌려 읽어서 전염성이 강한 매체는 잡지였기에 생활 속에 소소하게 스며드는 내용들은 잡지를 주로 사용했습니다. 이렇듯 매체가 가진 힘과 특성을 잘 파악하는 게 커뮤니케이션 기획을 위한 기본입니다.
요즘 소비자들이 스마트폰 어플 중 제일 많이 사용하는 것은 영상&사진 어플입니다. 제품 모양새 뿐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는지를 알려줘야 무엇인지 알 수 있는 new category 제품 서비스라면 스틸 컷으로 몇 컷 멋지게 보여주는 것으로는 부족할 수 있겠죠. 설령 함께 써 놓은 설명문이 있다 해도, 의도대로 정확하게 전달된다는 보장이 없으니 이미지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물론 사진을 여러장 찍어서 잘 보여주면 되지 않느냐 생각할 수 있지만, 사진과 사진의 연결 역시 정보처리 리소스를 들여야 하고, 소위 스압이 심하면 중간에 포기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럴 때는 무조건 사용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영상이 답입니다.
잘 만들 생각보다 일단 만들자
초기 스타트업의 경우 마케팅 비용이 아주 적기 때문에 퀄리티 높은 영상을 만들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우리 회사는 돈도 없는데 무슨 영상이야. 라고 생각한다면 생각의 방향을 바꾸시길 권유 드립니다.
여기서 핵심은 유명한 배우, 세련된 편집 등으로 광고 자체의 퀄리티를 높여 영상을 만들자는 데 있지 않습니다. 소비자가 제품 서비스를 이용하는 상황이 들어가 있는 영상이 있으면 됩니다.
의도한 대로 사용 상황과 사용자의 혜택이 충분히 잘 표현된다면 광고물 자체의 완성도를 판단할 퀄리티는 상대적으로 덜 이슈가 됩니다. 요새는 오히려 일부러 퀄리티 낮아 보이게 만들어 이슈를 만들기도 합니다. 그런 영상들이 성공하는 이유는 상상을 초월한 스타일이나 B급 감성으로 만들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 제품 서비스가 놓이는 상황에 가장 확실하게 혜택을 전달하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감성은 덤, 케잌 위의 장식인 거죠.
만약 딱 하나의 퀄리티 가이드가 필요하다면 그건 철저하게 제품이 사용자의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어떤 삶의 맥락에 놓이는지가 제시되느냐 여부입니다. 그건 사실 퀄리티라기보단 영상물을 만드는 목적이 충족되었는가의 문제라 그게 없다면 그다음 단계인 미적 완성도의 퀄리티는 논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정 퀄리티가 아쉽다면 돈을 조금이라도 번 다음, 비용을 더 투자해서 고급스럽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누가 언제 어떻게 사용하는, 무슨 혜택의 제품인지 모른다면 아무리 화려한 영상미가 있다 한들 소용이 없습니다. 목적이 불분명한 수많은 광고물, 홍보영상을 보고 나면 그래서 뭐? 라는 생각을 하거나, 보고 난 즉시 지워집니다. 내가 기억해야 할 의미나 가치가 하나도 없었는데 머릿속에 남을 리가 없지 않나요?
최근 제 눈에 띈 새로운 개념의 제품 소개 영상입니다. 마우스, 컨트롤러, 키보드가 합쳐진 제품인데 상당히 컴팩트합니다. 대충 알 것도 같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거지? 어떻게 사용하지? 하고 궁금해하다 아래 영상을 보니 아~ 하고 무슨 제품인지 어찌 사용하는지 바로 이해가 됐습니다.
자 이제 기억합시다.
1. 설명하기 복잡하고, 설명해도 잘 모를 것 같다면 우리에겐 영상이라는 좋은 도구가 있다는 것을.
2. 사용 상황을 잘 보여주면 된다는 것을.
매드해터님의 브런치 글을 모비인사이드가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