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글은 직장인들의 모든 고통과 회한의 결정체인 ‘급여’에 대해 좀 적어볼까 합니다. 길고도 복잡한 이야기라서 아마 여러 편에 걸쳐 적게 될 것 같습니다.
급여는 과연 어떤 노동의 대가인가?
1.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일을 하는 경우
편의점이나 카페 아르바이트가 이런 경우입니다. 정해진 시간동안 정해진 일을 정해진 수준으로 하면 그에 대한 대가로 급여가 나오죠. 국가에서 정한 최소한 이 정도는 받아야 한다는 최저임금을 하한선으로 해서 협상을 좀 잘하거나, 씀씀이가 좀 큰 가게 주인을 만나면 아주 약간 더 받는 돈입니다.
다만 이런 노동은 사실상 일의 품질에 따른 편차를 별로 인정하지 않습니다.일 못하는 알바도 최저임금은 받고, 일 아주 잘하는 알바라고 해도 다른 알바의 2~3배를 주지는 않죠.
2. 일의 품질이 중요한 경우
최저임금보다 훨씬 많이 받고 싶다면 ‘일의 품질’이 중요한 일을 해야 합니다. 가령 프리랜서 개발자라면 노동 투입 시간 그 자체보다는 개발된 결과물의 품질이 훨씬 중요하고, 그것이 급여의 규모를 결정합니다. 동일한 맥락에서 프로야구 선수는 타율과 타점, 홈런 등의 지표에서 높은 점수를 기록하거나 낮은 자책점이 나오는 것이 일의 품질입니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합니다.
일의 품질, 수준이라는 것은 일이 끝나고 결과가 나와봐야 확인이 됩니다. 하지만 프리랜서나 프로야구 선수는 결과가 나오기 전에 급여를 정해집니다. 프리랜서는 업무 수행전에 계약서에 대가가 얼마인지를 표시하고, 야구선수는 연봉을 연초에 미리 정하죠. 이 경우 급여는 정확히는 노동이 ‘만들어낸’ 가치에 대한 대가라기 보다는 노동이 ‘만들어낼 것이라고 예측’되는 가치에 대한 대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래에 대한 전망을 기준으로 급여를 정하는 건 자칫 잘못하면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불만이 생길 수 있습니다. 야구에서는 나이 많은 베테랑이 과거 2~3년 잘해줬음에도 나이가 많다고 연봉 협상에서 불리한 결과가 나오는 경우도 많고, 반대로 엄청난 연봉을 받으면서도 시즌 초에 부상 등으로 아예 개점 휴업을 하는 선수도 있으니까요.
3. 일의 결과나 실적이 중요한 경우
때문에 이런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일의 품질 중에서 특히 일의 결과 즉, 실적에만 집중해서 급여를 책정하기도 합니다.
영업직에 있는 분들이 이렇게 정해지는 경우가 많죠. 이 직종에 계신 분들은 대부분 영업 실적에 따른 인센티브가 급여의 많은 부분을 차지합니다. 실적이 아주 좋아서 많이 받아가는 분들도 일부 있지만, 이 방식의 계약은 보통 노동자에게 불리한 경우가 많습니다. 소위 파레토 법칙이라고 해서 20%의 실적 상위자가 전체 급여의 80%를 가져가는 경우가 굉장히 흔하니까요.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능력급이라고 좋아하는 분들도 계시기는 합니다만.
좀 넓게 생각하면 변호사의 성공 보수 등 대형 인센티브 계약은 대부분 이 범주에 들어갑니다. 요약하면 이 방법은 노동의 대가 중 특히 결과를 만들어내는 노동에 대해서만 대가만을 지불하는 방식입니다.
정리해보면 급여는 분명 노동의 대가가 분명합니다. 하지만 노동을 투입한 시간으로 볼 것인가, 만들어낼 것으로 예상되는 일의 품질로 볼 것인가, 아니면 만들어내는 실적에만 집중할 것인가에 따라 급여 책정 방식이 달라지게 됩니다.
대부분 직장인의 급여는 첫번째와 두번째의 혼합입니다. 일단 우리 회사 사무실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에 대한 대가와 그 노동을 통해 만들어낼 것으로 기대하는 결과물에 대한 대가가 섞여 있는 것이죠. (여기에 회사가 그 해 벌어들인 수익을 일정 부분 나누는 수익 공유가 추가됩니다만, 이건 예상이 쉽지 않은 돈이고, 이걸 나눌만큼 많이 버는 회사도 그렇게 많지 않으니 넘어가겠습니다.)
급여 액수는 어떻게 정해지는 걸까?
이제 급여 책정 논리를 이해했으니, 급여의 규모를 책정하는 방식을 생각해보겠습니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일을 하는 경우, 급여의 규모는 법적으로 정해져있습니다.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같은 알바라도 일의 품질 차이는 분명히 있는데도 불구하고, 대부분은 이 차이에 대해 크게 인정하지를 않죠. 때문에 최저임금을 기본으로 하고 이런 저런 조건에 따라 약간씩을 추가하는 형태가 됩니다.
예상되는 결과를 기준으로 급여가 책정되는 경우, 급여 규모는 철저히 두 가지 항목에 따라 정해집니다. 하나는 ‘협상’이고, 다른 하나는 ‘비교집단의 급여’ 입니다.
프로야구 FA 금액을 보면 수요가 많은 포지션이냐 아니냐, 그 해 그 선수가 수행할 역할을 필요로 하는 팀이 많냐 아니냐에 따라 연봉의 편차가 매우 큽니다. 아주 약간의 실적 차이 혹은 작년과 올해냐의 차이 정도인데 연봉이 2배씩 차이가 나기도 한 이유는 바로 ‘협상’의 결과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아무리 협상이 중요하다고 해도 국내 프로야구 시장의 규모, 기존의 비슷한 플레이어들이 받은 있는 연봉, 각 팀의 연봉에 대한 시각 등의 영향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이렇게 그 선수 개인의 가치만큼이나 주변 상황, 특히 기존의 유사한 선수의 연봉을 기초로 협상을 진행하는 경우를 ‘비교 집단 방법(Reference Pricing)’이라고 합니다.
때문에 우리나라에 커쇼만큼 던지는 투수가 나와도 그의 연봉이 300억원씩 하는 일은 있을 수 없죠. 비교집단이 MLB가 아니니까요. (물론 MLB 를 다녀온 선수들은 그곳에서 실패했다고 하더라도 국내FA보다 월등히 높은 계약을 하기도 합니다. 이 경우엔 비교집단의 이슈보다는 협상에서의 힘, 즉 스타성 때문에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었다고 이해하는게 맞겠죠. 뭐, 야구팬들 중에서는 그냥 각 팀이 미쳐서 실패한 선수에게 과다한 계약을 했다고 욕하는 분들도 있겠습니다만, 프로야구 팀도 기업이니 나름의 계산이 있어서 많이 주겠지요.)
실적만으로 급여를 받는 경우는 보통 기업체 내부에 상품별 원가 테이블이 있고, 급여로 얼마까지 쓸 수 있는가를 정해놓는 경우가 많습니다. 판매가 많이 늘어나면 영업사원 한명에게 너무 많은 급여를 주는 것 아닌가 싶겠지만, 사실 판매 증대에 따라 전체 수익도 늘어나니 이 중에서 일정 비율을 떼주는 것은 기업 입장에서 손해가 없거든요.
그럼 내 연봉은 어떻게 정해진거야?
그럼 일반 직장인의 급여 규모는 어떻게 정해질까요? 대표가 마음먹기에 따라 다를까요? 노조가 강성이면 급여가 올라갈까요? 조금만 더 살펴봅시다.
앞서 직장인은 투입 시간의 함수와 만들어낼 것으로 예상되는 가치에 따라 급여가 책정된다고 언급드렸습니다.
상대적으로 투입 시간 함수는 쉽죠.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대략 2천만원 전후니까요. 문제는 직장인이 만들어낼 것으로 예상되는 가치입니다. 이게 정말 측정도 예측도 잘 안됩니다. 게다가 신입이냐 경력이냐에 따라 또 다르고, 생산라인에 투입되는 직원의 기대가치와 마케팅 전략을 할 직원의 기대가치가 또 다르죠.
기업체에서 이 모든 기대가치를 계산하는 건 프로야구처럼 선수 한명 한명의 가치가 매우 높고, 인원 제약이 심한 산업에서라면 몰라도 아니라면 시간 낭비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다른 방법을 씁니다.
첫 번째 방법은 바로 ‘Reference pricing’ 입니다.
“우리 회사가 속해있는 산업에서 다른 업체가 경력 3년의 마케터에게 대략 얼마 정도 주니까 우리도 그 정도 주면 되겠다” 라는 논리입니다. 이 논리가 작동하는 건 정확히는 직원 개개인의 스펙보다는 그 업무를 하는 사람들이 대략 얼마쯤 받더라라는 논리에서 나오는거죠.
비교 집단에 포함되는 건 우선 ‘동일 산업내 다른 회사’가 기본입니다. 하지만 직원들이 이직하는 건 동일 산업내에서만 하는게 아니죠. 산업을 넘나듭니다. (직원들이 입사 경쟁을 하는 것처럼 회사는 채용 경쟁을 합니다. 채용 시장에서의 경쟁사를 고려해서 얼마나 줄까를 정한다는 뜻입니다. 현대차같은 경우 삼성전자 직원들의 급여도 고려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산업은 다르지만 유능한 인력을 놓고는 경쟁 상대이니까요.) 그래서 해당 직무는 산업별로 어느 정도를 받는 것 같다도 함께 고려합니다. 그리고 그 산업, 그 직무에 대해 회사가 원하는 위치를 정합니다.
가령 자동차 생산을 한다고 하면 산업내 비교군은 현대차, 기아차, 르노삼성, 쌍용 같은 회사가 됩니다. 여기서 내가 현대차인데 산업내 압도적인 1등이니 직원들에게도 1등 대우를 하겠다라고 결정하면 동종 산업내에서 가장 많이 주는 걸 택하는 것이고, 일 잘하는 직원을 우리보다 더 큰 업체에게 빼앗기지 않을 정도만 주겠다고 선택하면 1등 업체의 80~90% 선에서 연봉 테이블을 결정하겠죠.
만약 우리가 정말 작은 스타트업이라고 해도 완성차를 만든다면 현대차나 기아차 연봉 테이블과 괴리는 엄청나겠지만 고려 대상에 넣어야 합니다. 안그러면 능력있는 직원이 대기업으로 이동하려고 할지 모르니까요. 그래서 정해진 급여는 얼마 안되지만 하다못해 스톡옵션 같은 식으로 보상의 규모를 키워서 주는 겁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Reference pricing은 직원 개개인의 가치보다는 산업의 평균치와 산업내의 규모 및 위상에 따라 연봉 테이블이 정해집니다. 때문에 이 경향이 강하면 일 잘하는 직원은 자기 연봉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고, 일 못하는 직원은 월급 루팡이라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직원 개개인에 대한 고려가 많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두번째로는 기본 테이블내에서 직원 개개인의 차이를 반영하려고 합니다.
뭐, 우리나라는 이 항목의 금액 차이가 크지 않고, 개인 업무 평가의 공정성 등에 대한 논란도 많아서 제대로 이뤄지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경력직들의 경우엔 기존에 받던 연봉도 하나 reference가 됩니다. 다만 회사의 연봉테이블에 영향을 주기보다는 입사시 연봉 협상의 기초 자료 정도가 되는거죠. 많은 경우 경력직들은 이직할 때 전 직장에서 받던 연봉내역서와 건강보험 내역을 제출하기를 요구받죠.
그러면 산업별 급여의 격차는 어떤 논리에 따른 걸까요? 이건 산업별, 업체별 고정비와 인건비의 비중, 그리고 수익률의 함수입니다. 이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하지요.
내 연봉이 적은 이유는 뭘까?
정리를 좀 해보겠습니다. 직장인의 급여는 대부분 내가 잘하건 못하건 상관없이 일정한 기준에 따라 정해집니다.
가장 기본이 되는 건 ‘근무 시간을 투입한다는 사실’에 따른 급여이며, 대략 2천만원 내외입니다. 만약 이 정도 급여를 받고 있다면 내가 열심히 하고 잘하지만 회사는 어떤 이유에서건 내 노동의 개별적 가치 대신 누구를 대신 써도 비슷한 성과를 내고 있다고 가정하고 그 대가를 지불하고 있는 겁니다.
두번째 요소는 산업별, 직무별 reference, 즉 비교 집단의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받는 급여입니다. 내가 분명 많은 기여를 회사에 하고 있는데도 급여가 너무 낮다면 많은 경우 내가 속한 산업에서 내가 하는 직무의 급여 평균이 낮던지, 아니면 산업내에서 우리 회사가 짠돌이 포지션을 갖겠다고 결정했다는 뜻입니다. 승진을 엄청 빠르게 하거나, 산업을 벗어나지 않는 한 이직한다고 큰 폭의 급여 변동은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산업내에서 한 직무의 급여는 어떻게 보면 기업들이 일종의 담합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유능한 직원이 회사를 떠나서 경쟁사로 가겠다는 결정을 하지 않을 정도로만 노동의 가격을 매긴다는 것이 reference pricing이니까요.)
그리고 산업내에서 특정 직종에 대한 수요가 갑자기 발생해서 그 직종 자체의 몸값이 치솟는 경우들이 가끔 있습니다. 주로 기술 직군에 속한 인력들에 해당되는 것인데요, 산업 외부적 충격 – 중국 반도체 업체가 대규모의 투자를 단행하며 인력이 필요해졌다던지, AI 가 주목을 받으면서 AI 및 빅데이터 프로그래밍 인력이 급격히 부족해졌다던지 – 이 주어질 경우 생겨나는 일입니다.
세번째 요소는 내 개인의 업무 고과에 따른 급여 차이입니다. 이건 평가와 엮여 있고 기업문화 등 또 다른 이슈와 많이 연관된지라 이번 글에서는 패스하겠습니다. 하지만 보통은 직급과 연차가 낮은 직원일수록 앞의 두 요소 영향이 크고, 직급이 높을수록, 그리고 경력직일수록 개개인의 능력에 따른 급여 차이가 커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내 연봉이 낮은 이유는 물론 내가 일을 잘 못해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내가 산업과 직무, 그리고 회사를 잘못 택해서 그럴 가능성이 커보입니다. 이러니 너도나도 대기업에 가려고 머리를 싸매는 것일 테지요. (물론, 연차가 낮을 때 이야기이고 10여년차 이상 정도 되면 개개인의 능력과 업적이 훨씬 중요해집니다.)
다음 글에서는 급여 차이를 가져오는 개개인의 업무 성과와 평가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 급여와 보상은 이 분야만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연구원이 있을 정도로 복잡한 분야입니다. 짧게짧게 쓰려다보니 언급하지 않고 지나간 부분이 매우 많으나, 연구 논문이 아니고 간략한 이해를 위한 글이니 양해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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