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판을 활용한 마케팅/브랜딩 전략
버거킹은 불가능을 시도하다
재밌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4월 1일 버거킹(BURGERKING)이 임파서블 와퍼(IMPOSSIBLE WHOPPER) 실험을 시작했습니다. 2019년 4월 기준, 버거킹은 약 100개 국가에 18,000여 개 매장을 갖고 있는데요. 미국엔 7200여 개 매장이 위치합니다. 미국에 존재하는 매장 가운데 59개 매장에서 임파서블 와퍼를 시험 삼아 판매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여기서 임파서블 와퍼란, 패티 재료로 동물성 단백질을 일절 쓰지 않은 와퍼를 뜻합니다.
이때까지 버거킹 패티의 주원료는 소, 돼지, 닭처럼 대부분 동물성 단백질였습니다. 버거를 만들어 판매해온 다른 브랜드들도 마찬가지였죠. 그러나 임파서블 와퍼 패티의 주원료는 콩나무 뿌리와 유전자 변형 이스트라고 합니다. 게다가 heme 단백질을 활용해 동물성 단백질 맛을 구현했으며, 육즙의 식감까지 느낄 수 있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 버거킹은 창립 65년 만에 고기 버거를 대신할 채소 버거를 실험하는 것이죠.
채식주의자는 임파서블 와퍼를 먹지 않는다
고기의 맛과 육즙의 식감. 임파서블 와퍼는 불가능해(impossible) 보였던 동물성 단백질의 대체를 가능케(possible)하고 있습니다. 이쯤 되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임파서블 와퍼를 두고 채식주의자를 겨냥한 제품이라고 여깁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컨설팅 기업 글로벌데이터(Globaldata)는 2020년 세계 식품시장의 규모를 7조 7000억 달러로 전망했는데요. 또 2013년~2020년 기간 중 세계 식품시장의 연평균 성장률을 1.9%라고 예측했습니다.
한편, 시장조사기업 유로모니터(Euromonitor)에 따르면, ‘식물성 고기’ 시장의 규모는 2020년까지 약 30억 달러로 커지리라 예상됐습니다. 성장률로 환산했을 땐, 2015년부터 2017년까지 3년간 연평균 50%를 웃돌았습니다. 또 미국 채식 식품시장의 경우, 2014년 7억 달러에서 2016년 10억 달러로 3년간 매년 16%씩 커져왔습니다. 유럽의 채식 식품 시장도 비슷한 상황입니다.
즉, 채식 관련 시장이 세계 식품시장에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는다는 소리죠. 심지어 가구 기업으로 알려진 이케아도 여기에 참여했는데요. 산하 혁신 기구 SPACE10이 연구에 박차를 가하는 중입니다. 이처럼 채식을 즐기는 사람이 느는 상황에서 임파서블 와퍼는 채식주의자를 위한 식품처럼 보입니다.
채식 시장은 그리 단순하지 않습니다. 경우에 따라선, 7가지 8가지로 채식주의자를 구분 짓기도 하는데요. 기업과 시장은 무엇을 정의 내릴 때 객관을 추구하지만, 개인이 내리는 정의는 어디까지나 주관적입니다. 따라서 채식주의자를 위한 식품이 채식 식품이 아닐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어떤 채식주의자냐에 따라 채식 식품을 채식 식품이 아니라고 인식하는 것이죠. 때문에 버거킹은 목적을 직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고, 트렌디한 인상적인 단어를 배제했습니다. 예컨대 베지(VEGE) 와퍼나 비건(VEGAN) 와퍼 같은 네이밍은 실제 채식주의자로 하여금 반감을 살 수 있습니다. 대신 버거킹은 임파서블 와퍼를 선택하면서, 반감의 위험을 회피하고자 했습니다. 즉, 임파서블 와퍼라는 네이밍은 단백질의 ‘출처’보단 단백질을 ‘대체’했다는 것에 방점이 찍혀있는 셈이죠. 이를 두고 경제지 QUARTZ는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These plant-based, high-tech burgers aren’t just meant to appease vegetarians. Rather, they are intended to reach an omnivorous general public interested in “alternative proteins.”
(임파서블 와퍼는 대체 단백질에 관심 있는 대중을 목표로 했다.)
채식에 관심을 가진 기존 고객과 대중을 목표로 한, 버거킹에게 프레이밍 효과(framing effect)도 고려 대상입니다. 대상이 제시된 형태(frame)나 대상을 바라보는 사람의 관점(frame)에 따라, 대상에 대한 반응이 달라지는 효과가 프레이밍 효과입니다.
흔히 쓰이는 예시로 물컵이 있는데요. 반 컵의 물을 두고 ‘물이 반이나 남았네’, ‘물이 반밖에 안 남았네’ 이렇게 반응이 갈리는 것이죠. 그렇다면 가상의 베지 와퍼에 적용해보겠습니다. 베지 와퍼는 채소를 직관적으로 연상시키는 와퍼인 동시에, 식물성 단백질을 동물성 단백질처럼 구현하는 신기술 덕에 태어난 와퍼입니다. 신기술의 유해성에 관한 프레이밍, 동물성 패티가 아닌 채소 패티라는 막연한 이질감의 프레이밍에서 베지 와퍼는 결코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따라서 채식주의자가 아닌 채식주의에 관심을 가진 대중을 목표로 하는, 버거킹에게 베지 와퍼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소위, 베지 와퍼의 실체와는 별개로 ‘베지’ 와퍼라는 이유로 부정적인 낙인이 찍힐 수 있는 것이죠.
2016년 실제로 일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2016년은 임파서블 푸드가 임파서블 버거(임파서블 와퍼의 패티를 재료로 한 버거)를 출시한 해입니다. 당시 임파서블 푸드는 패티의 안정성을 입증하는 1천 여장의 자료를 미국 식약청(FDA)에 제출했습니다. 2년이 지나, 임파서블 푸드는 미국 식약청으로부터 ‘이의 없음’ 서신을 받았습니다. 그러던 와중 환경보호 단체와 운동가가 중심이 되어, 신기술에 대한 안정성을 두고 임파서블 푸드와 미국 식약청을 비판했습니다.
이에 따라 여러 매체가 반론을 제시했는데요. 그중 경제지 비즈니스 인사이더(Business Insider)는 일부 운동가들이 확실치 않은 잠재적인 안전 문제에 신기술을 연결 지어 논란을 확대했다고 일축했습니다.
정리하자면, 복잡한 채식주의와 프레이밍 효과 등으로 직관적인 네이밍은 논란의 여지가 존재합니다. 때문에 버거킹은 논란의 여지를 회피하고, 동시에 채식에 관심을 둔 기존 고객과 대중을 끌어들이고자, 베지 와퍼를 임파서블 와퍼로 이름 붙인 것이죠. 이런 의도는 임파서블 와퍼 제품에도 반영되어 있는데요. 미래 식량 전문 미디어 그린 메더스(greenmatters)가 버거킹 대변인과 진행한 인터뷰에 따르면, 패티를 제외하고 기존 와퍼 재료는 동일하며, 마요네즈에 계란 성분이 첨가됐다고 합니다.
따라서 진정한 의미의 채식 버거를 먹으려면, 마요네즈를 빼서 주문하라고 버거킹 대변인은 인터뷰했습니다. 요컨대, 진짜 채식주의자 보단 채식에 관심 있는 대중이 임파서블 와퍼의 잠재 고객 집단입니다.
소프트 채식주의자를 끌어당길 장치, 평판
설명에 편의를 돕고자, 임파서블 와퍼의 목표고객 집단을 ‘소프트 채식주의자’로 부르겠습니다. 앞으로 버거킹이 할 일은 소프트 채식주의자를 임파서블 와퍼 앞으로 불러들이는 일입니다. 이를 위해선, 이들이 왜 채식주의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는지 알아야 합니다.
배양실 단백질은 식물성 단백질과 더불어 대체 단백질로 주목받고 있는데요. 이 그림은 배양실 단백질과 일반 가축에게서 얻는 단백질 간 생산 비용의 차이를 보여줍니다. 경제적 비용인 돈으로 따졌을 땐, 가축에게서 얻는 동물성 단백질이 배양실 단백질보다 10배가량 저렴합니다. 그러나 그간 비경제적 가치로 여겨지던, 자연과 환경의 비용은 동물성 단백질이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다시 말해, 가치를 경제적 가치에서 자연과 환경의 가치로 확장해 봤을 때, 대체 단백질이 훨씬 효율적인 것이죠.
또 환경 파괴로 인해 다양한 자연재해가 빈번하게 발생하면서, 지속 가능한 삶 나아가 지속 가능한 지구를 꿈꾸는 사람이 늘고 있습니다. 재밌는 점은 경제적 비용입니다. 제품 생산에 소모되는 비용은 곧 고객이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됩니다. 실제로 버거킹 임파서블 와퍼의 경우도, 일반 와퍼보다 1달러 비싸다고 합니다.
요컨대, 자연과 환경의 가치는 추상적인 가치인 동시에 먼 미래에 있을 가치입니다.반면, 경제적 가치는 1달러처럼 직관적이면서, 돈을 지불하는 그 즉시 소모되는 가치입니다. 따라서 지금까지 경제적 가치가 중심이 되어온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체 단백질에 대한 관심은 모순된 상황입니다.
이타적 주의자에게 돌아가는 편익은 상호적 이타성의 경우처럼 자신이 이타적 행동을 베푼 사람에게서 직접 나오는 게 아니라, 자신이 관대한 행동을 하는 것을 목격하거나 이야기를 들은 다른 사람들에게서 나온다.
– 책 ‘진화심리학’, 데이비드 버스, p.438
이 상황을 설명코자 진화심리학에서 말하는 ‘평판’을 가져오려 하는데요. 진화 심리학은 진화의 관점에서 동물의 심리를 연구하는 학문으로, 특히 사람의 심리에 중점을 둡니다. 따라서 번식의 가능성과 후손의 생존을 위해, 주어진 자원을 사람이 어떻게 사용해왔는지, 또 과거 환경과 현재 환경의 차이로 인해 어떤 괴리가 발생하는지 설명해주는 학문입니다. 우리는 어려운 상황에 처한 이웃을 돕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만약 이 이웃이 친인척이나 가까운 사람이라면, 미래에 자신이 처할지도 모르는 위험한 상황에 도움을 주리라 기대하고 도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상황도 많습니다. 예컨대, 제3세계 아이들을 위한 정기 기부를 하면서, 어느 누구도 기부받는 아이들이 자신을 도우리라는 보상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기부합니다.
그 이유는 평판에 있습니다.
기부는 하나의 선한 행동입니다. 이런 행동들이 누적되어 평판을 이루는데요. 이런 평판은 제삼자에겐 그 사람을 평가하는 지표가 됩니다. 다시 말해, 착한 평판은 유대가 깊지 않은 사람에게도 기꺼이 도움을 제공한다는 신호가 됩니다. 이 신호는 자신이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타인의 도움을 이끌어낼 가능성을 높입니다.
따라서 현재 도움을 제공하는 사람에게 있어 “내가 지금 이 사람을 도우면, 언젠가 다른 누군가가 날 도와주겠지”라는 심리적 기제가 존재하는 것이죠. 물론, 수렵/농사/전쟁/중세/조선/자본주의 등 인류가 처한 상황의 모습은 변화해왔습니다.
다만 어떤 상황에서도 개인은 생존과 번식을 위해 끝없이 투쟁해야만 합니다. 그럼에도 기부나 구호활동처럼 대규모 협력이 인류 사회에서 보이는 건 평판 덕분일지도 모릅니다.
임파서블 와퍼 정식 출시 후 버거킹의 전략은?
서두에서 말했듯, 버거킹은 아직 임파서블 와퍼를 일부 매장에서 실험 중입니다. 채식 버거에 대한 시장성과 정식 출시 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질 데이터를 모으는 과정입니다. 다만 분명한 건, 시장성이 더 큰 소프트 채식주의자를 목표고객 집단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죠. 그렇다면 앞으로 펼쳐질 버거킹의 마케팅 전략은 채식주의-평판을 목표로 이뤄질 듯 보이는데요. 2가지 포인트로 전략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습니다.
1) 평판의 소재는 집단 내 많은 사람들이 알아야 하고, 2) 공통의 유쾌한 관심사가 되어야 합니다.
case1. 2011년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의 ‘don’t buy this jacket’ 캠페인
평판을 형성하는데 영향을 주려면, 평판의 소재에 사람들이 인지하고 있어야 하며, 브랜드는 평판의 소재를 상징해야 합니다. 2011년 블랙프라이데이에 파타고니아는 ‘don’t buy this jacket’ 캠페인은 펼쳤습니다. 블랙프라이데이는 11월 넷째 주 목요일인 추수감사절의 다음날로, 연중 미국 최대 최고의 쇼핑시즌입니다. 때문에 보통의 기업과 브랜드는 가격 인하처럼 판매촉진 캠페인에 집중합니다. 그러나 파타고니아는 캠페인 이름 그대로, 자신들의 제품을 사지 말라는 캠페인을 진행했습니다. 덕분에 많은 이들의 이목을 모았을 뿐 아니라, 파타고니아는 환경보호 브랜드로 널리 알려지게 됐습니다.
즉, 파타고니아는 사람들이 이목이 집중되는 시기에, 평판이 되어줄 자신들의 선한 브랜드 철학을 소개해, 곧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 2012년 파타고니아의 매출은 5억 4300만 달러로 전년 대비 30%로 성장했습니다. 경쟁 기업인 노스페이스는 전년 대비 10%로 성장했고, 컬럼비아의 경우 16억 9000만 달러에서 16억 6000만 달러로 1%가량 감소했습니다.
(노스페이스는 VF코퍼레이션이라는 패션 그룹 기업 산하 브랜드로, 구체적인 매출액 대신 성장률만 표시되어 있습니다. 대신 그룹 전체 매출액은 표시되어 있습니다.)
case 2. 2018년 식품 브랜드 미원의 ‘#O OO마리를 살렸다’ 캠페인
이 사례는 평판의 기준을 대중에게 활성화하는 사례보다는 구체적인 활용 방향을 말하고자 가져왔습니다. 보통 평판은 환경보호, 기부처럼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내가 가진 자원을 희생해야 합니다. 또 당장의 이익을 기대하기 어려워, 모호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게다가 지속가능 관점의 소재가 평판을 형성하는 요소로 주로 사용됩니다. 따라서 평판을 활용할 때, 손실을 회피하려는 사람의 심리와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소재가 문제가 됩니다. 브랜드 미원의 ‘#O OO마리를 살렸다’ 캠페인은 이러한 문제를 잘 해결했습니다. ‘소 한 마리’, ‘닭 100마리’처럼 구체적인 정보로 모호성을 줄여줌과 동시에, 자기 자원을 희생하는 데 명분을 부여했습니다. 또 자칫하면 동물 보호, 나아가 생명 존중으로 무거워질 수 있는 소재를 유쾌한 코드로 잘 풀어냈습니다.
마치면서
버거킹의 임파서블 와퍼를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봤습니다. 그러나 어떤 브랜드든 마케팅이든 잊지 말아야 할 게 있습니다. 바로 진정성입니다. 더군다나, 환경보호와 지속 가능한 삶을 꿈꾸는 미래 식량을 다룬다면 더욱이요. 실제 파타고니아는 매년 전체 매출의 1%를 기부해오고 있으며, 헌 옷 평생 수선 캠페인 등 여러 가지 환경보호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진정성을 이야기하자면, 글이 너무 길어질 거 같네요. 대신 이타적 행동주의 영국 화장품 브랜드 러쉬 창업자가 인터뷰에서 남긴 말로 대신하려 합니다.
Q : 러쉬는 캠페인을 많이 하는데, 성장에 악영향을 줄 수 있지 않습니까?
A : “그건 캠페인과 비즈니스 모델을 동일시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입니다. 많은 회사가 캠페인을 광고처럼 이용하고 이를 통해 더 많은 돈을 벌고자 합니다. ‘우리 회사는 착한 회사예요. 그러니까 우리 제품을 쓰세요’라고 말합니다. 이건 캠페인이 비즈니스 모델에 포함된 겁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다 보면 시간이 흐르면서 캠페인의 의미가 퇴색되고, 캠페인으로 광고하는 데도 한계가 드러납니다. 사람들이 더 이상 봐주지 않거든요. 그러면 회사가 무너지게 됩니다. 러쉬는 캠페인과 비즈니스를 별개로 봅니다. 정확하게는 비즈니스로 돈을 벌어서 캠페인 벌이는 데 쓰고 있습니다.”
(4) 실리콘밸리엔 노키즈존 대신 ‘이것’이 있다?
(3) 에어비앤비의 여행은 다르다
(2) 인스타그램 알고리즘의 거의 모든 것
(1) 중국 스타벅스는 배달도 한다?
장운진님의 브런치에 게재된 글을 모비인사이드가 한 번 더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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