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을 보면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이 글의 구성
-한국의 노키즈존, 차별의 문제인 동시에 권리의 문제다
-그럼에도 노키즈존이 존재하는 이유
-실리콘밸리에는 왜 노키즈존이 없을까?
-본질을 보면, 시장이 보인다
* 이 글의 마지막에, 영화 미스트를 스포일러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 글에 대한 의문점이 생기신 분은 제 댓글을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한국의 노키즈존, 차별의 문제인 동시에 권리의 문제다
참고 기사 : 노키즈존 카페에 사장 딸 출입하자… 손님들 “차별이다” 발끈
위 기사 요약
1. 카페를 운영했는데 다수의 아이들로 인해 기물이 파손되고, 일반 손님들에게 피해가 됨.
2. 이러한 악영향으로 인해 1년 전부터 노키즈존으로 카페를 운영
3. 카페 사장이 본인의 8살 딸아이를 카페로 데리고 와 혼자 조용히 숙제를 시키거나 공부를 하게 한다.
4. 어느 날 여성 손님 두 명이 노키즈존인데 애가 왜 있냐며, 자기 자식은 되고 남의 자식은 안된다고 클레임을 걸며 지역맘카페에 올리겠다고 함.
5. 이 기사에 누리꾼의 댓글은 “어린이가 없으니깐 노키즈존이지. 사장 딸이라도 있으면 안 된다” “이거야 말로 내로남불” “사장 마음이다. 애도 조용히 있다는 데 무슨 상관인가” “사장 딸은 손님이 아니다” 등 엇갈린 반응
나는 노키즈존이 궁극적으론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노키즈존을 찬성하는 사람들도 충분히 이해된다. 왜냐면 노키즈존은 차별의 문제인 동시에 권리의 문제다. 찬성파는 분명 아이들과 함께할 권리로 인해 자신의 권리를 약탈당했기 때문이다.
그럼 차별의 문제인 이유는 뭘까? 얼마 전 사회를 뒤흔든 펜스룰과 마찬가지로, 노키즈존도 대상의 기질을 잣대로 대상을 평가하기 때문이다. 기질은 말 그대로 타고난 성질이다. 아이가 하나에 오랫동안 집중을 하지 못하고 주변에 호기심을 갖는 건, 당연한 아이의 기질이다. 이러한 기질을 잣대삼아 평가하는 건, 굉장히 불합리한 처사이자 차별이다.
게다가 모든 아이가 예의가 없다, 요즘 부모들은 아이를 방치한다처럼 소수로 인한 오류와 편견의 문제이기도 하다. 때문에 노키즈존은 없어져야 한다.
문제는 본질을 보지 못하는 소수의 사람들이다
기사 요약본 속 댓글을 보자. “어린이가 없으니깐 노키즈존이지. 사장 딸이라도 있으면 안 된다.” “이거야말로 내로남불”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노키즈존의 설치 이유를 아이의 기질에 있다고 본다. 즉, 문제의 본질을 보지 못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전적으로 본질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을 나무라선 안된다. 그들은 오로지 자신의 권리를 침해받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노키즈존의 본질을 즉시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이런 사고 회로는 이미 우리 사회에 만연해있다.
노키즈존의 본질은 아이의 사회 적응을 위한 훈육을 제대로 하지 않은 부모에게 있다. 아이를 가진 모든 부모의 문제가 아니며, 더더욱이 아이에겐 잘못이 없다. 아이는 단지 아이처럼 행동했을 뿐 옳고 그름을 모르는 게 당연하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부모가 아이 훈육의 필요성을 느껴야 하고, 아이 기질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도가 필요하다.
하지만 소귀에 경읽기라고 ‘자신의 권리’ 프레임에 갇혀,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아무리 떠들어봤자 소용없다. 이런 사람들이 노키즈존을 원하는 권리의 피해자인, 동시에 그들의 아이들로 노키즈존을 만들게 한 장본인이 아닐까 문득 생각이 든다. 이런 문제가 되는 소수의 부모 때문에 선량한 다수의 부모가 피해보고 있다. 때문에 노키즈존을 무작정 반대하거나 찬성하는 대신, 제대로 된 본질을 볼 수 있도록 사회적 교육이 절실하다.
사람의 인식은 학습에 의해 바뀌기 때문이다. 사회적 교육으로 부모로 하여금 아이에게 적절한 훈육을 할 수 있게 해야한다. 이와 동시에, 노키즈존을 차차 줄여나가는 사회적 합의가 우리에게 필요하다.
실리콘밸리에는 왜 노키즈존이 없을까?
그 이유는 문제의 본질을 꿰뚫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의 기질을 부정하는 노키즈존을 설치하는 대신, 부모가 적절한 훈육을 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서비스를 론칭하고 있다.
덕분에 서비스의 종류는 다양해졌고, 관련 시장도 거대해졌다. 한편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려운 20대 젊은 사업가가 아닌, 아이를 키우고 있는 워킹맘과 워킹대디가 직접 사업가로 나섰다. 업을 단순히 돈벌이의 수단으로 여기는 게 아니라,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공동체의 삶을 개선하고자 노력하는 이들의 정신도 엿볼 수 있었다.
1. chairman mom
‘체어맨 맘’ 은 워킹맘을 위한 질의응답 소셜 플랫폼이다. work와 life 두 가지 키워드로 이용자의 질문을 큐레이션하고, 다른 이용자의 답을 업로드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계정 자체는 실명으로 등록하며, 질문과 답은 익명으로 올라간다. 본인의 선택에 따라 이름을 밝혀도 된다. 창업자는 워킹맘에 대한 막연한 선입견으로 워킹맘이 되는 데 겁을 먹었다고 한다. 근데 오히려 그녀는 워킹맘이 되고, 삶에 의욕이 생기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게 됐다. 그래서 사람들의 선입견을 깨주고자 기획하게 됐다고 한다. 구독자 형식에 기반을 둔 서비스다.
2. winnie
위니는 노키즈존 맵과 비슷한 서비스지만, 서비스의 방향성이 전혀 다르다. 아이와 동행하면 안 되는 가게를 보여주는 대신 아이와 동행하기 적합한 가게를 보여준다. 이런 카테고리로 말이다.
즉, 아이중심적인 서비스가 아닌, 부모중심적인 서비스라 할 수 있다. 위니의 CEO는 트위터-구글-유튜브 등에서 소비자 기술 및 제품 관리로 재직했다. 창업자는 아이들을 잘 돌볼 수 있을지는 물론, 일반 고객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까 걱정했다고 한다. 그래서 위니를 만들었으며, 장소에 대한 자세한 코멘트 등 세심한 서비스를 기획했다.
3. peanut
피넛은 가입을 할 때 관심사를 선택하고, 관심사가 유사한 사람끼리 매칭시켜준다. 부모가 되는 과정에서 느끼는 외로움의 해소를 니즈로 봤다고 한다. (보자마자 네이버 웹툰 ‘아기 낳는 만화’가 생각났다. 임신과 출산을 다룬 웹툰.) CEO는 Badoo와 Bumble 등 해외 소개팅앱 스타트업에서 일을 했다고 한다. 때문에 유명 소개팅앱인 틴더와 비슷한 서비스를 기획했다.
본질을 보면, 시장이 보인다
한국과 실리콘밸리가 아이를 대하는 판이한 시선은 마치 영화 미스트를 떠올리게 한다. 미스트는 어느 날 마을에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안개가 깔리고 안갯속 괴생명체가 사람을 죽이는 내용이다. 영화 말미에 주인공 가족은 인간성을 상실해가는 쉘터를 탈출해 괴생명체가 도사리는 안갯속으로 나아간다.
주인공은 끝없는 안개에 좌절하고 결국, 본인을 제외한 가족 모두를 죽인다. 그리곤 스스로 안갯속으로 나아가 괴물과 맞서려 한다. 하지만 그가 마주한 건 군인들이었다. 안개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을 구조하러 온 것이었다. 아마도 주인공이 안갯속의 인물이 누구인지를 알았더라면 가족을 죽이진 않았을 것이다.
이처럼 본질을 파악하는 건 더없이 중요하다. 본질만 파악한다면 실리콘밸리의 사례들처럼 다양한 서비스를 기획할 수 있고 또, 새로운 시장 발굴의 단초가 될 수 있다. 따라서 나는 니치시장과 마이크로시장을 단지 트렌드나 세분화된 현상이라고 해석하지 않는다. 소비자들의 니즈에 좀 더 가까워졌다고 판단한다.
따라서 우리는 본질 파악을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어떤 대상을 완벽히 알았다는 생각이 제일 위험한 생각이기 때문. 자기 자신조차 정확히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남을 판단하는 것은 자만이다. 되려 어설프게 아는 것은 선입견을 만들어 개인의 시야각만 좁힐 뿐이다.
장운진님의 브런치에 게재된 글을 모비인사이드가 한 번 더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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