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저 호평, 메타크리틱 90점 이상 기록, GOTY(Game Of The Year) 최다 수상을 기록한 게임이라도, 외국어만 지원한다면 선뜻 게임을 플레이하기 망설여진다. 여기에, 고심 끝에 플레이했다 하더라도 내용을 알아듣기 힘들어 몰입하기 힘든 현실. 그러다 보니 유저들 사이에서는 이른바 ‘안 한글 게임’은 플레이하지 않는다는 반응이 많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게임 번역사 ‘BADA 게임즈’ 임바다(닉네임 미리칸)매니저는 “많은 유저들에게 아무리 ‘갓겜’이라고 불리는 게임이 있어도, 자국어(한국어)를 지원하지 않는다면 게임 속 감동과 재미를 느끼기 어렵다”라고 말하며 한국어화 필요성에 대해 전했다.
단순 텍스트 번역을 넘어 ‘현지화’를 통해 게임 속 숨겨진 재미까지 모두 전하고 싶다는 BADA 게임즈. 디스이즈게임은 BADA 게임즈 소속 임바다 매니저와 번역 팀원 김민성 팀원을 만나 게임 번역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디스이즈게임 박준영 기자
디스이즈게임: 먼저, 본인과 회사 소개를 부탁한다.
임바다: 번역을 전업으로 하고 있고, BADA 게임즈 매니저를 맡고 있는 임바다라고 한다.
김민성: BADA 게임즈에서 일하고 있는 번역 팀원 김민성이다. 직접 번역 작업에 참여하기도 하지만, 사내 주 업무는 로컬라이징 및 번역 퀄리티 검수다.
임바다: BADA 게임즈가 주로 하는 업무는 번역이다. 주로 영문판 게임들을 한국어로 번역하고 있으며, 메이저 게임부터 인디 게임까지 가리지 않고 번역하고 있다. 번역 작업뿐 아니라 게임 개발사나 유통사 등 다른 회사와 협력하거나 유통 지원을 하는 등 여러 업무도 겸하고 있다.
게임 번역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임바다: 지금은 생업으로 삼고 있지만, 게임 번역을 처음 시작했을 때만 해도 취미 생활로 시작했다. 과거 여러 게임을 플레이하던 중 “이 게임은 정말 재밌고 좋은 게임인데, 한국어를 지원하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게임 자체를 모르고 재밌다고도 생각하지 않을 것 같다”라고 느낀 게임들이 많았다. 때문에, 조금이라도 많은 사람들에게 해당 게임들을 알리기 위해 번역을 시작하게 됐고, 그때 시도가 지금까지 이어져 BADA 게임즈까지 오게 됐다.
BADA 게임즈를 만든 이유 역시 이와 비슷한데, 전 세계 많은 게임들이 한국어를 지원했으면 한다. 많은 유저들에게 아무리 ‘갓겜’이라고 불린다고 하는 게임이 있어도, 지원 언어에 자국어가 없어 내용을 이해할 수 없다면 게임이 주는 감동을 느끼기는커녕 재미조차 느끼기 어려울 수 있다. 때문에, 언어 장벽을 허물고 같은 게임을 했다면 전 세계 누구라도 같은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김민성: 마찬가지로 취미로 시작했던 일이 지금은 너무 커져버린 것 같다. (웃음) 가장 처음 번역했던 게임은 <FTL: 패스터 덴 라이트>(Faster Than Light)라는 게임인데, 우주를 배경으로 한 로그라이크 장르다. 해당 작품 특징은 유저가 작중 어떤 ‘선택지’를 고르느냐에 따라 게임 진행이 완전히 바뀌게 된다는 것이다. 때문에, 게임 스토리와 내용을 이해하고 숙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했는데, 정작 게임은 영문으로만 서비스됐다.
어떤 선택지를 고르느냐에 따라 게임이 달라지는 것뿐 아니라, 게임 자체도 재밌어 “이 엄청난 게임을 영어로만 서비스하면 플레이가 어려운 것뿐 아니라 입문도 어렵다. 이 게임을 국내 유저들에게도 널리 알리고 싶다!”라는 마음으로 한국어 번역을 시작하게 됐다.
보통 번역 작업은 시간이 얼마 정도 걸리는가?
임바다: 게임 번역 기간은 장르나 내부 텍스트 분량, 그리고 설정과 같은 세부 내용에 따라 달라진다. 빠르면 2주 만에 끝나는 작업도 있고, 길게는 1년 이상 걸리는 작업도 있다. 다만, 현재까지 진행됐던 작업물 기준으로 평균 한 달에서 두 달 정도 걸린다.
게임 번역에서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
김민성: ‘번역’이라는 일은 단순하게 외국어 텍스트를 한국어로 바꾼다고 해서 끝나는 일이 아니다. 번역은 텍스트를 번역하는 건 기본이고, 듣고 보는 입장에서 내용을 이해할 수 있도록 그 나라 정서에 맞춘 ‘현지화’작업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번역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바로 이 부분인데, 여러 작품들을 번역하다 보면 심심치 않게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만 이해할 수 있는 말장난이나 영어권에서만 쓰는 숙어, 속어, 이니셜 등을 접하게 된다. 이런 부분을 단순 텍스트 번역하는 것이 아니라, 외국 게이머들이 보고 즐기고 재밌다고 느낀 부분이 있다면, 그 느낌을 그대로 한국 게이머들도 느낄 수 있도록 신경 써서 번역하고 있다.
번역에 있어 남다른 철학이 있다면 무엇인가?
임바다: 번역자가 원문 내용을 바꿔 ‘초월 번역’하기 보다는, 원문 자체가 가진 의미를 한국 정서로 바꾸는 정도의 번역이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즉, 게임 속 텍스트가 주는 재미를 전 세계 누구나 동일하게 느낄 수 있을 정도 번역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김민성: 번역을 최대한 담백하게 하는 편이다. 생활신조가 ‘기본에 충실하자’인데, 이는 번역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이야기라 생각한다. 번역의 기본은 ‘원문을 다른 나라 말로 전달하는 것’이다. 때문에, 초월 번역이나 작품 속 의미를 새롭게 전달하려는 시도도 좋지만, 기본 내용을 충실하게 전달하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임바다: 그렇다. 번역 자체가 튀어 게임 플레이에 지장이 생겨서는 안 된다. 번역은 원문 자체를 살리기 위한 노력이 있어야 하며, 게임 내용에도 맞춰서 진행되어야 한다.
김민성: 그만큼 게임 진행이나 문맥상 의미 등 원문이 담고 있는 의미를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 번역 작업에 번역자 주관이 들어가고 번역을 다르게 하기 시작하면, 게임 개발자가 의도했던 게임 내 의도와 의미가 흐려진다. 번역은 창작자의 의도를 흐리게 만드는 게 아니다. 창작자의 의도를 전 세계 누구나 똑같이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이다.
지난 6월 번역 논란이 있었던 <다키스트 던전> 재번역에 참여해 화제가 됐었다. 당시 재번역에 선뜻 참여하기 어려웠을 것 같은데, 정말 그랬나?
임바다: 사실, 번역 논란이 있었던 작품을 다시 번역한다는 일 자체가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때문에, 레드 훅 스튜디오에서 번역가를 새로 모집한다는 공고가 났을 때도 선뜻 지원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BADA 게임즈 목표는 많은 사람들이 ‘좋은 게임’을 한국어로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고, 이를 실현하는 게 우리 업무라 생각했다. 이런 이유로 레드 훅 스튜디오에 번역을 하고 싶다고 연락했고, 이후 긍정적인 답변이 와 번역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김민성: <다키스트 던전> 첫 번역이 나왔을 당시, 번역 내용과 퀄리티 문제로 많은 유저들이 질타한 것은 물론이고, 게임이 순식간에 흉흉한 분위기 속으로 빠지게 됐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게임을 번역한다는 게 쉽지 않았고, 여기에 게임을 번역한다는 일 자체가 이 정도로 관심을 받는 것도 드문 일이었기 때문에 큰 부담을 느꼈다.
<다키스트 던전> 번역 중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가?
김민성: <다키스트 던전>을 번역하며 가장 어려웠던 건 ‘내레이션’이 말하는 내용을 현지화하는 일이었다. <다키스트 던전>은 게임 내 ‘내레이션’이 강조된 게임인데, 오프닝과 엔딩뿐 아니라 게임 내 대부분 요소에 내레이션이 등장한다. 여기에, 내레이션이 사용하는 용어 자체가 고풍스러운 고어(古語)들이기 때문에 원문 특유 ‘맛’을 한국어로 살리는 작업에 집중했다.
임바다: 짧은 시간 내에 최선의 결과물을 만들어야 했다는 점이 가장 힘들었다. <다키스트 던전>뿐 아니라 모든 번역 작업에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 하지만, <다키스트 던전>은 번역 기간이 짧은 건 물론이고, 앞서 번역 논란이 있었기 때문에 많은 유저들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워낙 짧은 시간 동안 만든 결과물이기 때문에, 100% 만족하냐는 질문이 있을 때 선뜻 “그렇다”라고 대답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게임 플레이에 지장을 느끼지 못하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앞으로 이루고 싶은 소망이나 목표가 있는가?
김민성: BADA 게임즈 코스닥 상장과 연 매출 100억 달성 등 소박한 꿈이 있다. (웃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야기했지만, ‘번역’은 평생 하고 싶은 일이고 이를 통한 성공 역시 꿈꾸고 있다. 이런 꿈을 배신하지 않도록, 앞으로도 좋은 번역물을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임바다: 향후 목표가 있다면, 번역자가 개발사나 유통사에 “이 게임 번역해도 괜찮은가?”라고 먼저 요청하는 게 아니라, 해외 개발 게임이라 하더라도 개발자들이 먼저 “한국어로 게임을 출시했으면 한다”라고 요청하는 나라가 됐으면 한다.
메이저 게임, 인디 게임 가릴 것 없이 ‘한국어’를 지원하는 게임들이 많아지고, 게임 시장 자체에서 ‘한국’을 고려하는 마음이 더 커졌으면 좋겠다. 최근 한국어를 지원하는 게임이 많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인디 게임에서는 한국어를 지원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게임’이라면 한국어를 지원하는 게 당연하다 싶은 그런 시장이 형성됐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 외국 개발자들이 한국에 더 많이 투자할 수 있고 한국어 게임이 더 많이 나올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가?
임바다: 게임 번역을 아무리 잘 해낸다고 하더라도,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번역을 만드는 건 어려운 일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번역을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하겠으며, 문의 사항이 있다면 언제든 연락 줘도 괜찮다.
더불어, 좋은 게임이지만 아직 한국어로 번역되지 않아 알려지지 않은 게임이 많다고 생각한다. 그런 게임이 있다면 이 역시도 언제든 알려줬으면 한다.
김민성: 유저들이 지금보다 더 서로 취향을 존중하고, 이른바 ‘나쁜 게임’은 없다고 생각했으면 한다. 세상에는 여러 종류 게임이 있고, 그보다 많은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 게임도 사람도 다양한 만큼 같은 게임이라 하더라도 재미를 느끼는 포인트는 다르기 마련이다.
그러니 재밌게 플레이 한 게임이라 하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플레이를 강요해서는 안되고, 그렇지 않은 게임이라도 폄하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선입견을 가지지 말고, 더 많은 게임을 즐겼으면 좋겠다. 세상에는 아직 여러분들이 찾지 못한 좋은 게임들이 많으니까.
디스이즈게임과 모비인사이드의 파트너십으로 제공되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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