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당장 제주도에 대해 말한다면 아마 이 정도쯤을 얘기하지 않을까 싶다. 한국에서 가장 큰 섬 그리고 한라산, 남녀노소 여행 가기 좋은 곳, 부모님 세대의 몰디브 급 신혼여행지(유채꽃 앞에서 찍은 희뿌연 부모님의 신혼여행 사진 하나쯤 다들 갖고 있을 것이다) 등
그렇다. 우리에게 제주도는 ‘놀러 가는 곳’이다. 제주행 비행기는 아침 8시에도 10편 이상씩 운행되고, 할인석은 풀리자마자 매진된다. 페이스북을 보더라도 제주 콘텐츠는 좋아요나 댓글 수가 엄청나다. 파도 파도 계속 새로운 곳이 나오는 게 진정한 여행 화수분이다. 여행 콘텐츠를 페이스북에 올리던 때에도, 제주는 언제나 캐리하던 콘텐츠였다.(여행이 계절을 타기는 개뿔…) 제주 콘텐츠는 기복도 없이 꾸준히 최상위권 티어의 노출과 조회 수를 확보했다. 그 시절의 기억이 무의식에 남아있었는지 제주도에 오면서도 ‘제주답게 놀’ 생각을 많이 했다. 일을 하러 떠났음에도 외지인으로서 내가 바라본 제주도는 ‘관광지’였기 때문일 것이다.
짧은 OT와 긴 여운
역대급 더위를 뚫고 조금은 붕 뜬 마음으로 참석한 OT에서 제주다움의 진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자유롭고 자율적인 활동을 지원한다는 내용이 주였지만, 제주도에서의 ‘일’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둥실 떠 있던 마음이 순간 차분해졌다.
“많은 분들이 체류지원사업에 대해 쉬기 좋은 제주에서 숙소를 제공받으면서 힐링하는 시간쯤으로 생각하시곤 해요. 하지만 제주다움은 자선사업이 아닙니다. 저희 청년혁신허브팀은 이 사업을 통해 참여자분들이 제주 내 지역사회의 변화를 만들어내고, 서로 간의 교류와 네트워크를 통해 실질적으로 제주 내에서 사업적 가치를 만들어가길 원합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의 OT였지만, 긴 여운이 남았다. ‘뭐 으레 하는 얘기 아니야’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자율근무와 원격근무를 경험하고 이를 알리면서 내가 느낀 고민이 청년혁신허브팀의 고민과 만나는 부분이 있었다. 그건 자율근무 또한 복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자율근무가 사무실 근무를 대신할 거라 확신한다. 먼 미래의 일일 것 같지만 시점은 생각보다 빠를 것이라 예상한다. 왜냐하면 자율근무는 내적 동기를 고양시키는 업무방식이기 때문이다.
지금 새롭게 일을 시작하는 20대 후반에서 30대까지는 더 이상 외적 요소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높은 이직률이나 창업에 대한 관심도 내적 동기를 찾아가는 과정일 뿐이다. 하지만 자율근무가 내적 동기를 상승시키는 업무 방식임을 알리는 것은 늘 어렵다. 외부에서는 자율근무를 자유로움, 칼퇴, 워라밸 등과 연관 지어 바라본다. 자유로움과 워라밸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율근무에 ‘그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제주다움 또한 마찬가지다. 한 달 살이, 체류지원이라는 키워드가 프로그램의 진짜 의미를 가리고 있었다. 자율근무에 대한 외부의 시선에 대해 아쉽다고 생각하면서 체류지원을 외부인의 시선으로만 바라보았던 내가 부끄러웠다.
제주가 고민하는 ‘진짜’ 제주답게 일하는 법
제주에서 제주답게 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혁신센터는 어떤 고민을 하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센터 내 체류존에서 업무를 하며 느낀 것은 센터 이용이 활성화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보통 나는 9시에서 9시 반 사이에 출근하는데, 그 시간에는 이미 많은 사람이 라운지에서 업무를 하고 있다. 사업 관련 미팅은 물론, 비즈니스에 도움이 되는 다양한 이벤트도 개최된다. 이용이 활성화된 J-space는 신선하게 다가왔고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가 그리는 큰 그림에 더 흥미가 갔다.
우리나라는 많은 인력과 인프라가 수도권에 집중돼있기 때문에 지방에서 창업 생태계를 구축하기에는 어려운 상황이다. 모름지기 사람은 서울로 보내고 말은 제주도로 보내야 한다는 옛말도 있지 않은가? 제주도는 육로가 단절된 섬이라는 지리적 특성상 타 지역과 비교해 창업 생태계가 조성되기에 더욱 어려운 환경이다. 이는 주요 도심들이 공항과 떨어져 있기 때문에 접근성이 취약하다는 이유에서다. 또, 관광산업 중심으로 경제가 돌아가기 때문에 IT 기술 기반의 사업을 안착시키는데 몇 배의 수고가 필요한 부분이다.
그럼에도 현재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는 기업과 사람, 아이디어를 잇는 허브로서 창업 생태계를 조성해나가고 있다. 센터는 ‘제주, 스타트업 아일랜드’라는 비전을 수립하고 10가지 핵심요소를 수립해 나아가고 있다.
- 천혜의 자연환경이 주는 제주만의 라이프스타일
- 외부 인력이 제주에 쉽게 거주하기 위한 조건
- 스타트업들이 언제든지 모일 수 있는 다양하고 매력적인 워킹 스페이스
- 스타트업이 제주에서 활동하면서 지역에 기여할 수 있는 가치
- 단계별 스타트업들의 풍성한 네트워크
- 창업 유관기관들의 유기적인 연결
- 제주를 넘어 국내외 다양한 기회들의 접속과 연결
- 제주에서 활동하는 스타트업을 위한 제주 내 투자기금
- 지역의 든든한 자체 투자 생태계
- 국내외 벤처 투자자들과의 적극적인 연결
혁신센터는 제주만이 줄 수 있는 삶을 중심에 놓고 일과 연결시키는 환경과, 다양한 기회 및 투자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는 일과 삶이 모두 중요해지는 시점에서 제주도가 갖고 있는 장점들을 충분히 살려냈다고 본다. 그리고 기업 운영과 성장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혁신센터 중 최초로 Seed Money 투자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스타트업의 경우, 초기 자본금과 투자 레퍼런스가 향후 성장의 밑거름이 되는 만큼 아이디어가 스타트업으로 기업화되는데 기여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더 일하기 좋은 제주가 되려면
지원을 통해 좋은 토양을 공급받는다 하더라고 중요한 것은 실제로 일을 하는 것이고, 결과물들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실행하는 주체는 기업과 개인이다. 제주에서 일을 하며 느낀 점은 첫째로 환경이 달라지더라도 어디서든 일을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마인드이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프로세스가 필요하다는 점을 느꼈다.
1.생각보다 마인드는 중요하다
일에 있어서 개인이 가지고 있는 마인드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상하게 집에서는 공부가 더 안되는 것 같고, 막상 공부하려 해도 엄마가 잔소리를 하면 갑자기 생겼던 의욕도 뚝 떨어지는 걸 체험한다. 그런 면에서 제주도를 비롯해 다른 어느 곳에서 일을 하더라도 크게 영향받지 않고 잘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마인드가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싶다. 마인드를 채 정비하지 못할 경우 제주도는 유혹당하기 딱 좋은 환경이다. 제주는 먹는데만 2박 3일을 써도 시간이 부족하다. 이성의 끈을 놓게 되면 일과 삶의 우선순위를 일 < 삶 <<<< 먹방으로 배열하기 십상이다.
그리고 지금 내가 일하고 있는 곳이 ‘스쳐 지나가는 곳이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것도 중요하다. 실제로 나도 단순히 이곳을 스쳐 지나가는 정도로 생각하지 않기 위해 업무환경과 루틴을 마련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잠시 있다 갈 건데 뭐”라고 생각하게 되면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새도 없이 무턱대로 시간만 낭비하게 된다. 이런 생각은 개인을 신뢰하고 자율성을 부여해준 팀의 방향성을 흔들 수도 있다.
나는 자율 또는 원격근무를 도입하려는 기업이 가장 실수하는 부분도 이런 마인드적인 부분 때문이라고 판단한다. 팀원들과 원격근무를 함에 있어서 기본적으로 가져야 하는 마인드에 대해 충분한 대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스스로가 제어하지 못하는 상황을 맞게 돼 업무 효율성이 떨어지는 상황을 맞게 된다. 사람은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이다(물론 알아서 잘하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경영진이 체감하기에 효율성이 떨어졌다고 느끼는 순간 다시금 팀원을 통제하는 제도를 도입하고 서로 간의 신뢰를 잃고 사무실 근무를 다시 해야 하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원격근무를 도입했다가 철회하는 팀 대부분이 앞선 과정을 겪었으리라 장담한다.
2. 프로세스를 모른다면 마인드가 있더라도 소용없다
떨어져서 일하더라도 팀원끼리 자율성과 신뢰를 높이기 위해서는 업무 프로세스와 그에 걸맞는 도구가 반드시 필요하다. 현재 플링크는 Slack과 Jira & Confluence, PageCall을 사용하고 있다. 하루하루 업무를 하는 데 있어서는 ‘계획-수행-정리’ 순의 프로세스로 운영하고 있고(*현재 활용 중인 상세한 프로세스는 별도의 글로 소개하겠다.), 개별 Task를 수행함으로써 전체 Project를 완성시키는 구조로 운영 중이다.
이러한 프로세스와 툴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장소에 상관없이 일하기란 불가능하다. 원격근무 도입을 고려하는 기업에서는 이런 환경을 변화시키는데 꼭 필요한 프로세스와 툴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 시도 자체를 하지 못하거나, 갑자기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곤 한다. 기존에 시도해보지 않았던 방식이기 때문에 좋은 선례를 찾기도 어려운뿐더러 경영진이 몸으로 직접 체험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로운 업무 방식을 시도하기 위해서는 학습이 꼭 필요하다.
내가 느끼는 제주는 좋은 기업과 인재를 데려오는 방안으로 원격근무를 도입하고, 도내 기업이 외부 이해당사자(클라이언트, 투자사, 법률 및 세무 컨설턴트)들과 효율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하며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허들을 낮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원격 업무를 잘해서 원격 업무를 하는 사람이 늘길
제주도 생활을 계획했던 것은 원격근무를 보다 더 잘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부 팀원 간에 소통은 물론 외부 커뮤니케이션 대상자들과의 소통을 모두 포함해서 말이다. 그리고 원격 업무에 대한 인식이 변화된다면 앞으로 온라인으로 이뤄지는 비즈니스의 장벽이 더 낮아질 것이라 판단하고, 실현되는 순간 우리가 원하는 ‘기술로 커뮤니케이션을 진보시키는 것’에 한 걸음 더 가까이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쪼록 좋은 경험과 결과를 전할 수 있는 한 달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최길효님의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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