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창업기업의 낮은 처우나 복지가 이슈 거리는 아니지만, 스타트업의 처우와 창업기업의 문화를 주제로 다양한 뉴스나 기삿거리가 나오는 것을 보면 많은 근로자가 적지 않게 공감하는 소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일과 삶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Work and Life Balance)이 회자가 되면서 이런 소재는 더욱 자주 논의되고 있는데 무엇하나 기준점으로 제시되는 것이 없어 많은 기업에선 그저 옆 회사의 좋은 제도를 답습하는 정도로 처우나 복지를 조금씩 개선하고 있다.
아무리 좋은 제도와 방법이 있다고 해도 우리 회사에 적용할 수 없는 것이라면 무용지물에 불과하듯이 기업마다 실정에 맞는 다양한 제도를 처우 개선이나 복지 차원에서 시행하고 있다. 옆 회사에서 벤치마킹한 것이든 새롭게 고안한 것이든 이런 제도가 있는 회사라면 ‘그래도 다닐만한 곳이 아닐까?’ 하고 많은 근로자가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진정한 처우 개선은 사실 높은 연봉과 낮은 근로 시간, 쉬운 일이라는 것은 근로자들이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기업에서 일했을 때 선배들이 웃으면서 ‘돈 주는 만큼 일 시킨다’라고 자주 말하곤 했다. 하지만 현실은 판타지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니까 높은 연봉을 받으려면 근로 시간이 길거나 일의 난이도가 높아지게 된다. 반대로 연봉이 낮으면 일의 난이도는 낮을 수 있어도 근로 시간이 적정 시간으로 수렴하게 된다. 물론 최악의 상황은 연봉도 낮고 근로 시간도 길며 굉장히 어려운 일을 소화하는 것이겠지만 이런 일은 일찌감치 사람들이 피한다고 보아야 한다.
창업 초기기업의 대표자들은 자기 나름의 방법으로 처우 개선이나 복지를 위한 다양한 방법을 고안하게 되는데 그동안 보아왔던 대표님 나름의 고뇌에 대한 기억들이 문득 떠오른다.
1. 기억을 잘하자
10인 미만의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모 대표님은 B2C 업무를 맡다 보니 대표님과 모든 직원이 소비자 대응에 온종일 신경을 쓰고 있었다. 사람이 모자라니 대표님도 소매를 걷어 올리고 함께 제품을 만들고 포장하는데 열심이었는데 그 덕분인지 하루하루가 늘 전쟁터와 같은 시간의 연속이었다.
출근해서 퇴근하는 시간까지 전화는 불이 나고 직원들은 만들랴 포장하랴 대응하랴 한숨을 돌리기도 쉽지 않으니 처우나 복지라곤 점심시간과 연차휴가 이외에는 제공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나마 연차휴가를 쓰는 직원이 있으면 남은 직원들은 더 죽어나는 판이었으니 대표 입장에서는 이렇다 할 복지마저 제공하기 어려웠다.
급여를 올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복지는 하고 싶고. 고민하다가 대표자는 ‘기억을 잘하자’라고 마음을 먹기로 했다. 직원들의 사소한 말을 잘 기억해두었다가 말해주고, 경조사나 생일을 챙기기로 말이다. 그때부터 대표자는 늘 메모지를 곁에 두고 하나하나 사소한 것을 메모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직원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기억하려고 애를 썼다.
하루가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고 시간이 지날수록 대표자는 직원들의 사정과 상황을 잘 알게 되었고, 생일날엔 선물을 미리 준비하기도 하고, 휴가가 필요한 직원에겐 미리 연락해서 휴가를 눈치 보지 않고 쓸 수 있도록 배려를 하기도 했다. 대표자가 기억을 잘하고 직원들을 위하고 나니 회사에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직원들이 반대로 대표자의 사소한 것까지 기억하고 배려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마냥 거리감이 느껴졌던 대표자와 직원들 사이를 가깝게 만든 기억의 효과. 오늘도 대표자는 책상 위 달력에 빼곡하게 직원들의 기록을 하나둘 적어 내려가고 직원들 역시 서로의 일정들을 기억하려고 애쓴다. 값비싼 복지보다 서로를 위하는 회사생활이 얼마나 필요한지 알게 해주는 사례로 기억된다.
2. 신속하고 정확하게
창업 전부터 대표자는 들떠있었다. 기존에 운영하던 기업이 충분히 캐시카우 역할을 하자 새로운 사업 분야로 스타트업을 창업하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새로운 일, 새로운 사람. 그리고 성공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다 보니 대표자는 기존에 운영하던 곳과 다른, 복지성 대우를 해주기로 마음을 먹고 있었다.
기존 회사는 야근이 많았다. 처우는 좋았고 휴가도 제때 쓸 수 있었지만 높은 업무강도 탓에 직원들의 이탈이 심심치 않게 발생하곤 했다. 대표자는 이런 단점을 해결하기 위해 신속하고 정확한 복지를 시행하기로 했다. 이름하여 ‘의사결정은 신속하게, 퇴근 시간은 정확하게.’
우선 회의시간을 간결하게 좁혔다. 30분 시간을 정해놓고 진행 상황과 결론만 간단히 들었다. 사전에 의사결정이 필요한 요소를 담당자에게 지시하여 자신이 의사결정만 할 수 있도록 회의를 준비하라고 지시도 내렸다. 업무시간은 칼 같이 지켰다. 12시 종이 울리면 무섭게 점심을 먹으러 나갔고, 18시 종이 울리면 빠르게 직원들을 퇴근시켰다. 대표자는 야근할지언정 직원들의 휴식을 배려한 대표자 나름의 방침이었다.
처음엔 퇴근하는 직원들이 눈치를 많이 보고, 회의가 짧아지자 중간관리자들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업무효율은 올라가고 업무 시간 내에 직원들이 집중하여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기록적인 업무성과를 달성한 것은 아니었지만 처우가 부족한 틈을 복지로 일정 부분 커버하다 보니 직원들의 이탈률이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3. 중간관리자 채용
대표자가 스타트업을 운영한 지 몇 달째, 잦은 퇴사율과 인사업무로 인해 회사 본연의 수익 업무에 집중할 수 없게 되었다. 영업을 담당하는 팀장에게 관리까지 맡기려니 기존에 하던 업무와 너무 달라서 영업팀장도 직원들의 마음을 잘 대변하지 못했다.
고심하던 끝에 대표자는 내부와 조직관리에 경험과 역량이 있는 경력자를 채용하기로 했고 소개도 받고 수소문한 끝에 중간관리자를 내부 관리직으로 채용하게 되었다. 관리자에게 수익 창출의 성과를 기대하기보다는 안살림을 맡아달라는 것으로 대표자는 업무지시를 내리게 되었는데 생각보다 이 방법이 기대 이상의 매력적인 효과를 만들어주었다.
중간관리자는 우선 인사관리 업무를 총괄하면서 내부의 체계를 다져가기 시작했다. 복잡한 업무처리 절차를 간소화하고 직원들의 사소한 문제까지 청취하던 대표자의 어려움을 자신이 한 차례 걸러 보고량을 줄였다. 자신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점은 즉시 해결했고, 직원 한 사람 한 사람의 소소한 일들은 자신이 정리하고 책임을 졌다.
내부가 안정되니 수익 부서에서는 수익을 내는 본연의 업무에 더욱 충실할 수 있게 되었고 지지부진하던 매출은 한 달이 조금 지난 시간부터 서서히 오르기 시작했다. 시기적절하게 중간관리자를 잘 들여온 대표자의 판단이 주효했던 사례였다.
4. 소소한 캠페인
대표자가 사소한 일까지 관여해야 모든 업무가 돌아가는 구조를 가진 기업이 있다. 이 기업의 경우도 대표자가 문서를 만드는 작은 일 하나하나까지 직접 관여를 하는 곳이었는데 대표자가 바쁘다 보니 다른 쪽으로는 전혀 신경을 쓸 수 없어서 늘 사소한 애로사항이 문제로 곪아 터질 때까지 손을 전혀 쓰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사람을 데려다 놓으면 오래 버티지 못하고 튕겨 나가기만 하니 대표자의 속만 늘 타들어 갈 뿐이었다.
묘책을 내어야만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다고 판단한 대표자는 소소한 캠페인이라도 자주 시행해서 직원들의 사기를 북돋아 주어야 하겠다 생각했다. 옆 회사의 캠페인도 참고하고 다른 회사가 효과를 본 것이라고 하면 메모해두었다가 회사의 상황에 맞게 시행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가장 먼저 시행한 캠페인은 ‘가족의 날’이었다. 일주일에 하루를 정하여 퇴근 시간보다 2시간을 앞당겨 퇴근을 시켜주는 작은 이벤트였다. 급여는 정상적으로 나가되 그 날 하루는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라는 의미였다. 또 다른 이벤트로는 ‘사복 데이’, ‘문화의 날’도 있었고 굳이 ‘환경 캠페인’이란 타이틀을 붙여놓고서는 대뜸 직원들과 바람을 쐬러 나가기도 했다. (강가에 쓰레기를 청소하러 간다며 20L 쓰레기봉투를 준비하라고 지시는 하였으나 강을 보면서 백숙을 먹고 왔다고 한다)
처음에는 이런 소소한 이벤트가 너무 귀찮고 대표자가 어떤 마음에서 그러는지 대응하기가 어려웠던 직원들은 매달 캠페인이 반복되고 대표자가 직원들의 위하는 마음을 지속해서 내비치자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 적극적으로 캠페인 아이디어를 먼저 내기도 하고, 캠페인이 진행될 때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서로의 사기를 북돋우기 시작했다. 물론 업무효율은 자연스럽게 올라갔다.
5. 통 큰 시상
대표자가 통이 크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된 사례가 하나 있었는데, 평소에는 대리운전 부르는 것도 아까워서 술을 마시지 않고 신발 한 번 쉽게 바꾸지 못하는 자린고비 대표자가 직원들에게는 통 크게 시상하고 보너스를 준다는 사실을 듣게 된 적이 있다.
입사 연봉은 타사와 비교해서 소폭 낮은 수준인데 정기 승진 이외에 특별 승진도 많고 직원들의 연봉도 능력에 맞게 빠르게 인상해주는 것이 대표자의 특징이라면 특징이었다. 연봉이야 특별 승진으로 1년에 한 차례 올려줄 수 있다고 이해할 수 있지만, 대표자의 가장 큰 특징은 보너스가 예사롭지 않다는 점이었다.
대표자는 자신이 덜 가져가면 덜 가져가지 고생하는 직원들에게 한몫을 챙겨주어야 한다는 시각을 마음에 갖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만큼 업무강도가 만만치 않은 곳이었지만 처음엔 직원들도 반신반의했다고 한다. 연말이 되자 어마어마한 보너스를 주는 대표자. 그리고 그 보너스를 한 번 두 번 받다 보니 대표자의 마음과 보너스에 대한 기대감으로 더욱 업무에 열을 올리게 되더라는 직원들.
작게 시작한 기업이 알고 있기로 업계 1위에 등극한 것으로 알게 되었는데 대표자의 사업수완도 있겠지만 내부적으로 직원들의 사기 진작과 처우 개선에 노력한 대표자의 통 큰 마인드가 한몫했다고 믿는다. 바로 이전에 가장 좋은 복지는 ‘제값’을 주는 것이라고 적은 글이 있는데 나는 여전히 가장 큰 동기 요인이 ‘금전적 요소’에 있다고 생각한다.
대표자의 이런 통 큰 마인드. 어쩌면 창업기업에서 가장 필요한 마인드가 아닐까 싶다. (성과급으로 2~300% 정도가 나갔을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정확하진 않으나 직급에 따라 1,000%까지 매년 지급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나도 여기에 입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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