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TER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

제가 쓴 책인 ‘회사언어 번역기’에서 다루었던 주제인데, 요즘 회사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 묘하게 닮아서 오늘은 글을 몇 자 써 봅니다. 더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은 책을 참고하시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최근 회사에서 데이터를 활용한 프로젝트가 증가하면서 새로운 인프라도 늘리고 인원도 충원하는 등 예전에 비해 해당 파트가 커지고 있습니다. 덕분에 새로운 좋은 동료들을 회사에서 만날 수 있지만 팀원들의 표정은 밝지 못했습니다. 야근을 가장 많이 하는 팀인 것은 물론 특근도 서슴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늘어난 자원이 일을 효과적으로 받아주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팀의 한 친구와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결국 기승전 흔한 팀장 뒷담화였습니다. 다루는 업무의 범위가 급증하고 새롭게 활용할 수 있는 좋은 인프라도 깔렸지만 깊숙이 들어가 보면 결국 예전에 일하는 것 그대로 아직 일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다만 늘어난 일을 새로 충원된 사람들이 여기저기 예전 방식으로 더 많은 곳을 막고 있다는 것이었죠. 그러면서 일의 규모에 맞게 방식을 바꾸는 개인적인 생각을 이야기했는데 들어보니 참 맞는 이야기였습니다.

하지만 팀원 개인적인 생각일 뿐 팀장에게 건의해서 전체적인 업무 프로세스를 바꾸는 것은 다소 먼 미래의 일처럼 들렸습니다. 팀장 위의 보스가 제너럴 매니저에 가까운 타입으로 데이터 아키텍처나 새로운 처리기술에 대해 많이 알지 못하고 또 전적으로 지금 팀장에게 맡기고 신경도 크게 쓰지 않기 때문이죠. 최근에 잦은 일정들을 보면 그럴 만도 했습니다. 그 친구는 당분간 이런 고생이 계속 이어질 걸 생각하니 좀 답답하다고 그러는데 이야기를 듣는 저도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그 팀장은 회사 내에서 흔히 말하는 ‘대체 불가능한 사람’입니다. 그 분야를 잘 아는 사람이 팀장 위에는 없기 때문이죠. 그래서 그가 말하면 그게 곧 길이 됩니다. 회사가 작으면 작은대로 크면 큰대로 이런 현상은 회사에서 많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회사의 사업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는 조직을 두 가지 방법 중 하나의 방향으로 분화시킵니다. 하나는 조직의 여러 중간 관리자들을 두어 일의 범위를 쪼개어서 맡고 책임을 분화하는 책임과 일의 현상 관리 중심인 관료제 조직이고, 하나는 각각을 분화시켜서 위계질서가 서로 평등한 세부 팀 단위로 쪼개는 방법입니다. 각각의 장단점이 있습니다. 관료제에 비해 세부적인 팀 단위로 나누어 일하기 위해서는 구성원들의 맨파워가 훨씬 좋아야 하며 리스크에 따른 보상도 철저하게 이뤄져야 합니다. 그리고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일을 운영하는 조직과 새로운 것을 만드는 조직 간에 형평을 어느 선으로 맞추어 줄 것인지 고민이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앞서 다룬 사례는 전형적인 관료제 조직이며 실무자가 업무 프로세스 혁신을 위한 아이디어가 있어도 커뮤니케이션 채널이 막혀서 사장되고 곧 동기부여도 잃게 되는 단점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습니다. 큰 문제는 이런 팀장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상위 보스에 있죠. 실무를 모르고 피드백을 하지를 않으니 팀장에게 휘둘리고 마는 것입니다. 실무자와의 적절한 스킨십도 없는 상태이고요.

현재 팀장은 급할 게 없습니다. 지금 하는 일을 계속 이런 식으로 해도 뭐라고 할 사람이 없고 사세가 커지는 상황에서 일의 효율을 당장 측정 지표로 요구하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죠. 다만 지금 자신이 가장 잘하는 방식을 고수하는 것이 본인 중심의 조직 체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업무 노하우를 뺏기지 않는 방법입니다. 자신의 권력이 오랜 시간 동안 유지될 수 있는 길을 택합니다.

당장 성장이 목마른 실무자는 처음에는 팀장의 업무 방식을 배우는 데 시간을 쓰겠지만 곧 그 정도는 반복 숙달을 통해 도달할 것이고 이후에는 본인의 생각을 넣어 일의 성과를 만들고 싶어 할 것입니다. 하지만 말씀드린 대로 곧 떠나거나 스스로 안주하는 방식을 선택할 것입니다. 그렇게 조직 전체의 역량은 어느 순간 정체될 것이고 사세 확장의 키를 쥐고 있는 부서는 곧 사세 정체의 보이지 않는 견인차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조직이 커지면 어떤 방식으로 조직을 분화시키는 게 좋을까요?

조직행동론을 연구한 가레스 모건(Gareth Morgan)은 7가지 조직 모델로 조직의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그의 1993년 저작인 『상상력 : 창의적 경영의 예술(Imaginization : the art of creative management)』에서 시간의 변화에 따른 조직 모델의 변화를 설명했습니다.

가장 처음에는 완전한 탑다운(Top-down) 방식의 조직모델을 하고 있습니다. 관료주의 모델로서 변화에 살아남기 힘든 구조입니다. 그러다가 가치사슬의 리더와 경영자 수준에서만 커뮤니케이션이 일어나는 모델로 바뀌게 됩니다. 경영자의 과업이 너무 많아 기능 조직의 리더 수준까지는 권한을 일부 오픈한 것입니다. 이런 조직은 가치사슬의 리더들끼리도 업무에서 유기적인 관계를 맺게 됩니다. 프로젝트와 테스크포스(Task Force) 조직이 대표적입니다. 기능 조직의 리더들이 중요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는 있지만 아직 관료주의가 살아 있는 조직이죠.

그다음 단계는 매트릭스(Matrix) 조직입니다. 각 기능별로 권한이 완전히 이양되는 조직 구조입니다. 프로젝트와 함께 기능도 자율적으로 수행해야 함을 뜻합니다. 매트릭스 조직은 이후 진정한 프로젝트 조직으로 변하는데 각 프로젝트는 완전한 팀 단위 자율 안에서 팀을 옮겨 다니며 경력을 발전시켜 나갈 수 있습니다. 프로젝트 조직은 이후 아웃소싱의 활성화 및 재택근무를 통한 업무 환경의 변화를 맞이하게 됩니다.

이 경우 조직은 거대 전산망을 이용하여 일정한 형태가 규정되지 않는 네트워크 조직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최종적으로는 ‘거미 나무 조직’으로 마치 거미 나무 모양으로 하나의 컴퓨터 프로세스 중심으로 넓게 퍼져 계약에 의해 조직 기능이 확장되고 수행되는 조직에 이르게 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조직 모양의 이름이 아닙니다. 가레스 모건은 조직의 힘이 어떻게 분산되고 변화하는지, 그것이 가능하기 위한 시스템 발달 조건은 무엇이 있는지에 기초하여 조직의 변화를 설명합니다. 중앙 집권적 관리 시스템의 범위가 어디까지 미치고 있는지를 보면 답이 나올 것입니다.

대체 불가 팀장 스스로를 위해서든 그 아이디어 많은 실무자를 위해서든 현재의 조직은 또 한 번의 구조 변화를 맞이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그 자리에 누가 들어오든 요구하는 성과 지표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므로 새로운 팀장도 자신의 방식을 처음에는 혁신적인 방식으로 말하면서 시간이 지나면 그것을 고착화시킬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바꾸는 것 이상으로 조직의 구조 자체를 새롭게 모색하는 방법이 필요합니다. 앞서 가레스 모건의 조직 변화 모델을 참고하는 것도 좋습니다.

『상상력 : 창의적 경영의 예술 Imagination : The Art of Creative Management』, 가레스 모건(Gareth Morgan), Berrett-Koehler Publishers, 1993

가레스 모건은 조직 이론 분야에서 독보적이고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교수이자 컨설턴트입니다. 국내에 소개된 책은 『조직의 8가지 이미지 Images of Organization』나 『창조 경영 Imaginization : New Mindsets for Seeing, Organizing, and Managing』 등이 있습니다. 가장 먼저 쓰인 『조직의 8가지 이미지』에서는 조직을 기계, 유기체, 두뇌, 문화, 정치, 심리적 감옥, 흐름과 변화, 지배 수단으로 비유하며 설명합니다. 조직을 하나의 관점이 아니라 늘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보는 시도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죠. 조직에 대한 새로운 탐구는 전통적인 관점에 머물러 있던 조직을 현대 경영에서 혁신을 만드는 틀 그 자체로 격상시켜 놓았습니다.

뒤를 이어 출판된 『상상력 : 창의적 경영의 예술』은 조직의 형태가 어떻게 분화되는지 7가지 모델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처음에 엄격한 상하관계를 보이던 조직에서 상하 간의 소통과 의사결정 참여, 프로젝트형, 매트릭스형, 팀 단위, 나중에는 컴퓨터에 의해 연결된 거미 나무 조직 (Spider Plant Principle)까지 점점 자율성과 계약에 의한 조직의 전문화와 분화의 단계로 옮겨가게 됩니다. 조직 모델의 이러한 변화는 한국 기업의 7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변화 양상에 대해서도 잘 설명해줍니다. 엄격한 수직 구조의 명령 체계만 있던 기업에서 오늘날의 자유롭고 다소 느슨한 구조의 조직까지 기업이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지 말해줍니다. 하지만 경계해야 할 것은 마치 겉모습만 그다음 단계의 모델로 조직의 형태가 갖추어지는 것입니다. 내부 문화는 엄격한 상하 관계와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없는 구조, 특정한 수직 구조가 조직 내부의 평가에 끝까지 영향을 미치는 구조인데 직함과 조직 편제만 자유분방한 위임 구조를 보이는 기업이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문화와 제도가 보완해 주지 못해 내부적으로 혼란만 가중됩니다. 인사 제도와 조직에 대해 큰 그림이 필요할 때 먼저 읽어야 할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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