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의 작은 의원은 세 가지로 나뉜다. 서울대 출신 의사와 연세대 출신 의사와 그 밖의 의사가 있다. 한의원은 둘로 나뉜다. 경희대 출신 한의사와 그 밖의 한의사가 있다. 서초동에 가정법원이 있어서 양재역 근처에는 변호사의 광고를 자주 접하게 된다. 광고를 보면 세 가지 종류의 변호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서울대 법대 출신과 서울대 출신 변호사와 그 밖의 변호사가 존재한다.

나의 실력은 오직 출신대학으로만 판단해 주세요. 과연!

최근 채용에 대학과 스펙을 가린 블라인드 채용이 시도되고 있다. 차별을 없애자는 의도에서 시작되었지만 진정한 실력은 학교와 규격화된 스펙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현장의 호응도 있었다. 동네 의원이나 변호사들이 출신대학을 밝히면 좀 더 많은 고객이 찾아줄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간판이나 광고에 넣었을 것이다. 그러나 출신대학이 의사로서의 실력과 변호사로서의 실력과 정비례한다는 어떤 통계적 근거와 보장도 없다. 고객의 입장에서는 유능한 의사와 변호사를 찾을 방법이 특별히 없으니 그나마 좋은 대학을 나왔으니 실력도 있을 것으로 생각할 수는 있겠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의사와 변호사는 최고 수재들의 집단이다. 그런 수재들 사이에서도 영어, 수학과 같은 제도권 공부를 좀 더 잘하고 못한 차이는 존재한다. 고등학교에서 최우등 실력으로 서울대 법대에 입학한 수재도 사법시험이 안된 경우가 많다. 오히려 서울대 법대가 아니거나 그 밖의 대학을 입학한 그들이 사법시험에 합격한 수가 더욱 많다. 이는 사법시험에 합격한 비서울대 법대, 비서울대 출신이 불합격한 서울대 법대, 서울대 출신보다 ‘법률서비스’분야에서 더욱 우수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의사는 더욱 그렇다. 예를 들어, 정형외과/성형외과/흉부외과/일반외과는 수술을 하는 영역이다. 영어와 수학 실력과는 관계가 없다. 그렇다면 서울대와 연세대 출신 외과 의사를 찾아야 할 이유는 없다.

 

<서울대, 연세대와 경희대 출신이 간판에 출신대학을 표시하고 모표를 붙이곤 한다.>

이렇게 (한)의사와 변호사의 영역에서는 출신대학이 하나의 경쟁요소로 발휘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소비자 측면에서도 나를 진료하는 의사와 나를 대변하는 변호사의 실력을 추정하는 방법의 하나로 출신대학을 궁금해하고 있다. 반면에 출신대학을 전혀 궁금해하지도 않고 노출하지 않는 영역이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병원 다음에 꼭 들려야 하는 약국이 그렇다. 약학대학도 우수한 대학이 존재한다. 그런데도 서울대 모표가 붙은 약국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처럼 약국의 약사는 국가로부터 자격만 인정받으면 더 따져보지 않는다.

저는 도쿄대학 법학과를 졸업하고 SONY에서 일했습니다

기업으로 돌아가 보자. 회사에 먼저 들어온 선임들은 학교에서 배운 것 소용없다면서 회사에서 다시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이처럼 회사에 입사한 신입사원의 출발선은 같다. 마치 국가고시에 합격한 약사가 같은 대우를 받는 것과 같다. 그렇다고 약국의 매출액이 같은 것이 아닌 것처럼 약사의 능력이 같은 것은 아니다. 기업에서도 출발선은 같으나 성과는 다를 수 있다. 문제는 신입사원이 무엇을 잘하는지를 기업이 모른다는 것이다. 기업은 신입사원의 강점을 정확히 파악하여 실력을 발휘할 곳에 보내야 한다. 무엇을 잘하는지도 모른 채 협업을 하게 하는 것은 협업의 효과보다 협업 비용이 증가하게 만든다.

일본의 굴지의 전자업체에서 경력사원을 뽑으면서 질문을 했다.

■ 면접관 : 지원자께서는 잘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 지원자 : 저는 도쿄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습니다.

■ 면접관 : 그래서 지원자께서는 잘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 지원자 : 저는 도쿄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SONY에서 근무했습니다.

■ 면접관 : 그래서 지원자께서는 잘하는 것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 지원자 : 저는 도쿄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SONY 관리팀에서 근무했습니다.

경험이 많은 임상 분야를 알려주세요. 네. 저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나왔습니다. 변호 업무 중 가장 잘하시는 분야는 무엇입니까? 네. 저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나왔습니다. 이러한 대답은 우리 팀에서 필요한 특정 분야의 전문가를 해당 분야와 무관한 홍길동씨가 ㅇㅇ대학교를 졸업했으니 팀에 합류시키는 것과 동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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