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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시 2주 만에 4만 장 판매, 국내 스팀 판매량 2위, 출시 1달이 지난 지금은 판매량 8만. 대학생들이 주축이 돼 만든 인디 게임 <던그리드>의 성적입니다.
사실 <던그리드>는 겉모습만 보면 (적어도 한국에선) 인기를 얻기 힘든 타이틀입니다. 로그라이크 요소는 아직도 국내에서 익숙치 않은 장치고, 게임의 픽셀 아트는 젊은 유저들에게 ‘그래픽 깨진 것 아닌가요?’라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옛 감성이죠. (실제로 예전에 픽셀 아트로 게임 만들던 개발자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입니다) 더군다나 <던그리드>는 대학생 개발자들이 팀을 짜 처음 만든 작품입니다.
이런 작품이 어떻게 스팀에서 국내에서 인기를 얻고, 한 달만에 8만 장의 판매고를 올릴 수 있었을까요? <던그리드>를 만든 ‘팀 호레이’를 만나봤습니다. /디스이즈게임 김승현 기자
왼쪽부터 팀 호레이 한우경 픽셀 아티스트, 안태현 프로그래머(겸 팀장), 문지환 게임 디자이너
# 최저 시급이 목표였던 인디 팀에게 다가온 ‘스팀 대박’
“흥행이요? 생각도 못했죠. 원래 그냥 최저 임금만 벌어도 만족하려 했거든요.” <던그리드>의 흥행을 예상했냐는 질문들 듣자 팀 호레이 ‘안태현’ 팀장이 한 말입니다.
<던그리드>는 안태현 팀장의 말처럼 흥행을 목표로 만든 작품이 아닙니다. 초기 목표는 지금 성적의 1/16에 불과한 5천 장. 5천 장이라는 숫자를 결정한 이유도 ‘이 정도면 13개월 동안 최저 시급은 받으며 일한 셈이다’라는 최소한의 계산 때문이었습니다. 장르가 장르니만큼 한국 흥행은 기대도 안했죠.
어찌 보면 냉정한 현실 파악입니다. 이들의 첫 작품 <던그리드>는 ‘픽셀 아트 + 로그라이크 + 메트로배니아’라는 마니악한 요소들이 총집합한 작품이니까요. 이들이 목표로 한 ‘스팀’이라는 플랫폼도 온갖 AAA급 게임들이 있고, 또 출시되는 만마전이고요. 한국의 무명 인디 개발팀이 만든 마니악한 데뷔작이 이런 곳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리라 생각하긴 힘들겠죠.
※ 로그라이크: 영구적인 죽음, 임의로 생성되는 맵과 아이템 등이 주요 특징인 장르. 옛날엔 주로 RPG와 결합되었으나, 최근 슈팅, 시뮬레이션 등 다양한 장르
※ 메트로배니아: <메트로이드> <캐슬배니아>처럼 거대한 폐쇄 공간을 탐험하는 사이드뷰 액션 장르. 처음에는 가지 못했던 공간도 캐릭터가 성장하거나 새로운 아이템을 얻어 갈 수 있게 되는 등, 탐험 요소를 강조한 것이 특징.
팀 호레이의 데뷔작 <던그리드>
그렇다면 팀 호레이는 왜 최저 시급을 버는 것도 힘든, 이런 마니악한 요소들이 잔뜩 모인 작품을 만들었을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개발자들이 이런 장르를 좋아하니까요.
팀 호레이의 구성원들은 진성 게이머입니다. 팀장이자 프로그래머인 안태현은 PC·콘솔 RPG라면 가리지 않고 플레이하는 마니아입니다. 픽셀 아티스트 한우경은 바닐라웨어의 액션 RPG를, 게임 디자이너 문지환은 2D JRPG를 좋아합니다. 이들은 대학에서 게임 개발을 공부하고 있죠.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대부분 어느 회사에 들어가 수십·수백 명이 참여한 프로젝트에 속해 일을 하겠죠. 팀 호레이는 그렇게 되기 전 직접 만든, 자신들이 좋아하는 게임을 유저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던그리드>에 자신들이 좋아하는 요소들을 최대한 첨가했습니다. <던그리드>의 메트로배니아 같은 구성, 바닐라웨어 게임을 연상시키는 음식 그래픽 등은 그렇게 추가됐습니다. <로그레거시>나 <엔터 더 건전> 같이 팀원들이 평소 재미있게 즐긴 작품들의 감성도 많이 녹아 들었고요. 다들 모바일보단 PC 게임을 주로 하다 보니 플랫폼도 자연스럽게 PC, 스팀으로 결정됐습니다.
어찌 보면 자기 만족. 그래서 게임을 완성시킨 뒤 목적도 ‘최저 임금만 벌면 만족하자’였습니다. 그리고 <던그리드>는 출시 한 달만에 8만 장의 판매고를 기록했죠. 팀 호레이가 처음 세운 목표를 한 달만에 16배 초과 달성한 셈입니다.
이젠 스팀 메인 화면에 배치될 정도로 인지도 있는 작품이 됐다.
# 예상치 못했던 흥행, 콘텐츠가 적은 것이 너무 죄송해
개발진도 흥행을 기대 안한 <던그리드>가 빛을 보게 된 것은 풍월량·우왁굳·머독 등 유명 스트리머들이 게임을 플레이하면서부터였습니다. 출시 첫 주 3~4천 장 팔렸던 게임이 방송을 타자 2주차엔 무려 4만 장의 판매고를 기록했거든요.
팀 호레이 입장에선 생각지도 못한 행운이었죠. 다들 처음 상용 게임을 만들다 보니 마케팅 같은 것은 생각도 못하고 있었는데, 스트리머들의 방송 덕에 게임이 알려졌으니까요. 덕분에 한국에서 예상 이상으로 흥행했고, 출시 한 달째인 지금은 한국 판매량이 많아 해외에서 역으로 관심을 가질 정도죠.
물론 <던그리드>를 구매한 유저들의 호평은 개발진의 공입니다. 직관적인 조작과 액션, 로그라이크와 같은 마니악한 요소를 대중적으로 잘 푼 것, 좋아하는 요소를 여럿 넣었지만 균형을 잃지 않은 것은 게임 자체가 잘 만들어졌단 얘기니까요.
하지만 이런 호평과 별개로, 팀 호레이 일원들의 눈에는 아쉬운 점이 더 눈에 밟힙니다. 버그 같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로그라이크 요소가 있음에도 아이템·지형풀이 적어 기대했던 것보다 다양한 플레이 양상이 나오지 못하고 있거든요.
어떤 부분은 개발진이 예상한 결과이기도 합니다. 일부 요소는 개발할 때 너무 늘어지는 것을 경계해 일부러 빼거나 간단하게 처리하기도 했거든요. 출시 이후 고치자고 하면서도. 게임의 흥행을 기대 안 했기에 한 생각이었죠.
“그래서 요즘은 저희 게임이 이렇게 떠도 되는 게임인가 하는 생각도 자꾸 들어요. 너무 내부 일정을 의식한 탓에 콘텐츠가 많이 부족하거든요. 이건 앞으로 꾸준히 패치하고 업데이트하며 보완해 나갈 수 밖에 없겠죠.”
그래서 팀 호레이의 당면 목표는 <던그리드>의 안정화, 그리고 콘텐츠 확장입니다. 현재 새 아이템과 던전 등이 추가되는 업데이트를 준비하고 있으며, 향후엔 새로운 보스, 보스러쉬 같은 새로운 도전 요소도 추가할 예정이죠. 팀 호레이의 예상으론 최소 몇 달은 <던그리드> 업데이트에만 집중할 예정입니다.
# 최종 목표? ‘좋은 게임’을 만드는 개발자가 되고 싶어요
그렇다면 팀 호레이는 <던그리드> 이후에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을까요? 하고 싶은 것은 많습니다. 기회만 되면 <던그리드> 콘솔 버전도 만들고 싶고, 차기작도 만들고 싶습니다. 아, 만들고 싶은 차기작도 그들이 평소 게임을 접하는 ‘스팀’으로 나올 예정이고.
다만 이런 목표는 어디까지나 과정입니다. 팀 호레이 일원들이 궁극적으로 꿈꾸는 것은 ‘좋은 게임’을 만드는 개발팀, 개발자가 되는 것입니다.
“<던그리드>를 내기 전만 해도 5천 장만 팔면 평가가 어떻든 만족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렇게 성원을 받으니 욕심이 좀 생기더라고요. 계속 좋은 작품을 만들어, 언젠간 우리 이름만 봐도 사람들이 ‘여기서 만든 게임 참 괜찮지’란 생각을 하게 하고 싶어요.”
물론 ‘좋은 게임’에 대한 팀원들의 기준은 조금씩 다릅니다. 프로그래머 안태현이 생각하는 좋은 게임은 ‘돈값 하는 게임’입니다. 게임을 사기 위해 쓴 돈이 정말 알차다고 느껴지는 게임, 유료 게임인데도 부담 없이 남에게 추천해 줄 수 있는 게임이요. 참고로 데뷔작인 <던그리드>는 스스로 보기에 부족한 점이 많이 이 기준을 넘진 못했다고 하네요.
게임 디자이너 문지환이 생각하는 좋은 게임은 ‘플레이 내내 지루함이 없는 게임’입니다. 무의미한 반복작업이나 매번 비슷하게 느껴지는 경험 없이, 플레이하는 매 순간 순간이 클라이막스처럼 느껴지는 작품이요.
픽셀 아티스트 한우경은 유저에게 ‘무언가 남길 수 있는 게임’을 좋은 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재미도 좋고 어떤 감정, 메시지도 좋습니다. 중요한 건 그저 스쳐 지나가는 게임이 아니라, 플레이하고 나서 재미나 감정, 하다 못해 게임 속 한 장면이라도 유저 마음 속에 남기는 것이죠.
팀 호레이 구성원들의 꿈이 어떤 식으로 이뤄질진 아직 미지수입니다. 아직 갈 길도 멀고요. 팀 호레이는 먼저 자신들의 데뷔작인 <던그리드>부터 꾸준한 업데이트로 그들이 생각하는 ‘좋은 게임’으로 바꿔 나갈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