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테크 스타트업 튜터링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

 “스타트업을 하면서 가장 좋은 점은 뭔가요?” 퇴사를 고민하는 직장인들이나 취준생들은 내가 스타트업을 하고 나서 어떤 것이 달라졌는지를 종종 묻는다. 혹자는 ‘스타트업’이라는 용어 자체가 거부감을 준다며 일반 창업, 사업이랑 뭐가 다르냐고 묻는다.

개인적인 생각은 이 ‘스타트업’이라는 단어는 시대를 반영하는 용어인데, 일반적인 사업자에서 좀 더 폭을 좁혀 ‘혁신’을 하겠다고 덤비는 창업자 내지 문제 해결을 하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업자들이라고 보면 될 것 같아. 시대적으로도 시작 단계에서 투자로 자금 마련이 쉽고 이전 세상엔 없던 인터넷과 스마트폰으로 서울 사무실에서도 해외를 넘나들 수 있다. 그렇다 보니 과거의 일반적인 ‘사업해요’의 사람들과는 다소 다른 사장님들이 많다. 다시 돌아가 본 질문. “스타트업을 하면서 가장 좋은 점은 뭔가요?”에 대한 대답은 이렇다.

굳이 누군가를 설득하지 않아서 좋습니다. A라고 하면 상대방이 A라고 받아쳐서 핑퐁이 이루어지고 정말 순식간에 일하고 있습니다. 아하하하하. (속 시원해서 내뱉는 말이다.)

 사람의 인식을 바꾸기는 정말 쉽지 않다. 내가 A라고 해서 그걸 그대로 A라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옆에 있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그 A는 점점 확장과 발전을 거듭한다. 그런데 그간 내가 일해왔던 업계는 같은 상황 사물을 A라고 인식하지 못하거나 인식하더라도 그것이 진행될 수 없는 곳이었다. 이래서 저래서, 정부에서, 행정상, 관례상 등을 들어 그 A를 A로 실행할 수 없어, 시작 때의 A는 온데간데없이 @#$$%가 되는 상황을 여러 번 겪었다. 그 안에서의 좌절은 매우 크다.

 불과 3~4년 전에 한 대학에서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에 대한 산업 트렌드 소개를 한 적이 있다. 앞으로 입사해야 할 곳은 제1금융권 은행이 아닌 디지털 뱅크이며 앞으로 가상화폐, 빅데이터, 인공 지능 등에 대한 산업이 크게 성장할 것이니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 강의의 골자였다. 강의평은 극과 극으로 나뉘었다. 인상 깊었던 강의평 중 하나가 “강사는 마이너리티 리포트 팬이다.”, “강사는 자신이 믿는 환상의 세계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SF영화는 그만 보고 현실감을 갖고 강의했으면 좋겠다.” 강의를 마치고 내가 이러려고 강의를 했나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튜터링을 시작하며 가장 신난 건 내가 내뱉는 말에 SF 수준의 환상의 단계로 받아쳐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그 사람들은 그런 것으로 비즈니스를 진행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공부해야 하고 발전할 수 밖에 없는 업이 이 분야이다. 하지만 이런 스타트업에서도 좌절과 자괴감은 당연히 있다.

내부의 사람들과 주변에 A라면 A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스타트업 테두리에서 벗어나) 세상으로 나가 일반 중견기업, 대기업과 경쟁하기 위해선 그들의 리그 안에서 또 다른 고민을 할 수뿐이 없게 된다. 내가 이러려고 스타트업했나 하는 자괴감 뫼비우스의 띠다.

스타트업이 꼭 봐야 한다고 하는 그 영화 ‘인턴’ 이젠 히든 피겨스에 밀림

이런 자괴감이 들 때 마침 딱 맞는 영화 한 편을 찾게 되었다. 주인공들이 흑인 여성들 3인. (포스터 보면 진정한 센 언니들의 #걸 크러쉬)  미국의 NASA가 러시아와 달로 사람을 보내느냐 마느냐를 한창 경쟁하던 1960년대. 그 시절 NASA에서 일했던 차별의 끝단에 있던 여성들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고 그들이 이런 차별을 어떻게 극복하고 깨나가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그려낸다.

흑인 여성 vs 백인 남성 구도의 프레임으로 보자면 흑인 여성은 부당하게 차별받고 이를 힘겹게 이겨내고 있는 우리네 ‘스타트업 종사자들’의 모습과 비슷하다…. 고 생각한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뭔가 컴퓨터로 슝슝 돌려 계산 및 예측을 할 수 없었기에 사람들이 손으로 일일이 계산을 했다. 대부분 프로그래머가 남성이 월등히 많은 현재 모습보다 Computer라 불리는 전산팀 여직원들 (전원 흑인이다.)이 실제 계산을 담당하는 일을 한다.

영화는 몇 가지로 스타트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시사점을 주고 있다.  (스포일 것 같아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

 

첫째. 오리지널리티 가득한 ‘혁신’의 과정과 모습을 볼 수 있다.

스타트업을 하다 보면 여기도 혁신, 저기도 혁신이다. 워낙 tech 혁신의 시대에 살다 보니 인공지능, VR 등이 우리의 삶의 경험을 새롭게 만들고 있다. 주의할 것은 이런 ‘신기함’과 ‘혁신’을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영화를 보면 1960년대 그들이 혁신했던 방법이 나온다.

아무도 가보지 않았던 달에 사람을 보내는 것, 알 수 없는 미지의 공간, 가보지 않은 곳을 예측하고 계속 수정하며 시도를 한다. 이야말로 용감한 일 아닌가. 종이에 볼펜으로 숫자 계산을 하면서 달에 사람을 보내는 과정을 보면 내가 얼마나 ‘편하게’ 혁신을 외치고 있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스타트업, 앙터프루너는 시대별로 이름을 달리했다. 이 이름들이 변화/혁신/창조의 아이콘이라면 과거에는 지구 밖으로 인간을 보낸 과학자들도 혁신했던 사람들이다.

하다못해 우리가 편히 쓰는 볼펜의 초기 모습은 깃털에 잉크를 찍어 쓰던 것 아니던가. 잉크병과 깃털을 하나로 묶어 주머니 안쪽에 넣고 다닐 수 있게 한 사람 또한 혁신을 한 사람이다. 지금 우리의 삶은 누군가의 혁신들로 가득 차 있다. 영화를 보고 나면 변화와 도전을 외치는 내가 겸손해진다. 내가 저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저만큼 용기 있었을까? 저만큼의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스타트업을 로켓에 비유하는 것을 보면 moonshot thinking이라는 단어를  쓰는 걸 보면 사람을 달에 보내겠다는 생각이 정말 큰 혁신의 시작이었던 것 같다. 엘론 머스크가 그 대를 잇는 듯.

 

둘째.  그리고 그 혁신을 이끄는 리더십을 볼 수 있다.

이 NASA의 프로젝트를 이끄는 수장은 알 래리슨 (케빈 코스트너)이다. 흑인 전용 화장실이 800m나 떨어져 있어서 하이힐과 스커트를 입고 종종걸음으로 화장실을 갈 수 밖에 없던 주인공 캐서린 존슨을 위해 그는 당시 너무도 아무렇지 않았던 흑인/백인 전용 화장실의 표지판을 부수어 버린다. 흑인 전용 커피포트도 치워버린다. 수십 년이 지나고 난 다음의 관점으로 보면 이 얼마나 어이 상실한 이야기지만 그 시대에 그렇게 누군가 화장실을 표지판을 떼 버린 사람이 있기에 가능한 진보이다.
 

 여성들은 규정에 없어서 참여할 수 없던 회의에 분필을 쥐여주던 것도 그다. 장영실이 세종대왕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의 재능은 크지 않았을 거라는 이야기처럼 열린 마음의 리더가 불합리함을 알았을 때 이를 올바르게 잡아주는 파괴적인 리더십은 혁신을 빠르게 이루어낸다. 이때 속도야말로 달로 사람을 보내는 속도~

앞으로 흑인 화장실 없음이야!! 화장실은 그냥 화!장!실!

셋째. 시대를 준비해야 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인공지능 때문에 일자리가 없어진다고? IBM이 회사에 들어왔을 때 전산팀 직원들은 어떻게 대응했는가?

Girls! 기계 컴퓨터가 들어왔다구! 자! 다들 준비! 언니 믿지?

인공지능 때문에 다들 난리다. 앞으로 일자리가 없어진다고? 이를 대비하기 위해 인공지능을 이기는 방법이 무엇이 있는지 생각하고 있다. 저 가운데 풀색 옷을 입은 도로시는 전산팀 직원들에게 IBM이 회사에 왔으니 이를 사용하기 위해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흑인이기 때문에 승진에서도 빠졌던 그녀는 몰래몰래 혼자 공부를 한다.

백인 남성들도 이 기계를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서 쩔쩔매고 있을 때 혼자 공부하고 (도서관에서 포트란 책도 훔쳐 나온다.) 인간 컴퓨터가 기계 컴퓨터를 다룰 수 있는 경지로 준비시킨다. 미래를 대하는 방법을 그녀에게서 배울 수 있다.

https://www.ibm.com/thought-leadership/hidden-figures/
IBM은 히든 피겨즈에 나온 내용을 바탕으로 페이지를 만들어서 여성 리더들을 재조명했다.

 

넷째. 시대의 편견과 어려움을 싸워나가며 부러지지 않고 이겨내 가는 노하우를 보며 무릎을 탁! 치게 된다.

주인공 중 한 명인 메리 잭슨이 엔지니어가 되기 위해서 이수해야 하는 수업이 있다. 그런데 이 학교는 흑인 여자들을 한 번도 받았던 적이 없다는 것. 결국 그녀는 재판한다. 너무도 멋진 건 재판장에게 우아하고 차분하게 그러나 아주 힘 있는 말로 설득을 한다는 것이다. 영화의 베스트 장면은 이 장면이라고 여겨질 정도로 멋진 장면이다.

판사에게 본인이 왜 이 학교에 들어갈 수뿐이 없는지를 설명하는 내용. 스타트업을 하면 뭔가 할 수 없는 제도와 규제 앞에 많이 막히게 된다. 매번 그녀처럼 이렇게 차분하고 우아하게 헤쳐나가면 좋으련만.

통째로 외우고 싶은 그녀의 말

https://www.nasa.gov/content/mary-jackson-biography
그녀의 삶은 NASA 사이트에 잘 기록되어 있다.

 

다섯째. sisterhood!를 제대로 보여준다.

대기업의 고위 간부나 리더에도 여성이 많이 없지만, 스타트업 업계에서도 여성 창업자들은 드물다. 네트워크 행사를 가도 강연 자리를 가도 여성 창업자는 잘 보이지 않는다. 여성 창업자의 수는 전체 창업 기업의 10%도 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이 셋은 NASA의 각기 다른 곳에서 일하지만 그들끼리의 자매애는 정말 끈끈하다. 영화 속에서 한 사람의 성장을 지켜보고 응원해주는 것을 보면서 시스템과 환경에 저항하기 위해서 위로되는 인간의 정을 느낄 수 있다.

“네가 잘 되는 것이 우리가 잘 되는 길이야.”라는 대사는 경쟁에 익숙해진 현대 사회에서 사뭇 어색하게 느껴질 만큼 멋진 대사로 느껴진다.

내가 좋아하는 철학자이며 교육학자인 이반 일리치는 ‘전문가 집단은 인간을 불구로 만드는 사람들’이라고 이야기했다. 문제를 해결해보겠다고 ‘모이면’ 그것이 아무리 좋은 의도라도 모임이 형성되면 다양한 사람들의 권력과 사익으로 조직은 제대로 굴러가는 것이 정말 어렵다. 이 가운데 이런 조직을 이끌어가는 리더, 불평등함에 저항하며 올바른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이 있어 세상은 발전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영화는 이런 우울한 내용과 다르게 너무도 유쾌하고 즐거움이 가득하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이야기의 주인공 중 한 명인 캐서린 존슨은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자유 메달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정말 스타트업 다운 영화를 보고 싶으시다면 실리콘밸리나 인턴이 아닌 히든 피겨즈를 강추한다.

 
이 세 여인이 영화의 실제 주인공들이다. 그 시대의 걸 크러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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