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지도사 최재현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

창업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피해갈 수 없는 것이 바로 정부지원사업이다. 다양한 정부지원제도 덕분에 조금이나마 사업에 도움이 될까 싶어 대표자들은 정부지원사업에 관심을 갖기 마련인데 정보의 홍수 속에서 우리에게 어떤 사업이 적합한지, 어떤 사업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각종 정부지원사업의 설명회는 연초에 개최된다. 관계를 맺고 있는 기관이나 유사한 사업을 하고 있는 동료 사업가, 가끔씩 SNS를 통해서 공유되는 콘텐츠를 통해서 정보를 얻은 후에 이러한 설명회에 참석을 하게 되는데 각양각색의 지원사업을 가만히 듣다 보면 우리 회사가 지원받을 수 있는 내용이 정말 많아 보여서 관심으로만 머물러 있던 생각이 신청을 해야겠다는 마음의 다짐으로 바뀌게 된다.

신청해야 할 서류가 다소 생소하기도 하고 챙겨야 할 서류도 어느 정도 있어 보이지만 지원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소망하는 마음으로 하나씩 준비해 나간다. 신청을 마무리하고 서류라도 통과될 때면 눈 앞에 지원금이 성큼 다가온 것 같지만 최종 결과가 ‘탈락’으로 돌아올 때면 마치 내 사업이 선택받지 못한 것 같은 쓰라린 고통이 마음에 새겨진다.

image: gettyimagesbank

정부지원사업은 말 그대로 ‘지원’사업이다. 스타트업을 영위하는 대표자, 창업한 대표자, 소위 사업을 시작한 대표자들은 지원사업의 속성에 대해서 우선 인지해야 한다.

지원사업은 지원업체의 수나 예산이 한정되어 있다.

한정된 자원을 가지고 계획된 절차에 따라 지원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지원사업을 따내야 한다는 목적이 기업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지원을 받을 수 있다면 기업을 운영하는데 도움이 되겠지만 설령 지원을 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사업을 하는 데 있어서 지장이 없을 만큼 더욱 사업을 안정적으로 이끌어 가야 한다.

평가위원이나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면서 수 없이 많은 스타트업을 보게 되는데 모두 지원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고 자신의 아이템을 설명한다. 제출한 서류도 확인하고 PT발표도 받아보지만 사실 제삼자의 입장에서 볼 때 사업 아이템의 결점이 더 잘 보이게 되므로 어김없이 평가위원의 입장에서 부족한 부분을 지적하게 된다. 지난 수년간 평가, 심사위원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스타트업 대표자들을 만나보니 탈락의 고배를 마시는 대표자의 표정이 이따금씩 떠오른다.

악의를 갖고 그들을 떨어뜨린 것은 아니지만 끝끝내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광탈해야만 하는 스타트업을 보면 차마 지나가다가 얼굴을 마주 보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평가위원도 평가위원의 입장이란 것이 존재하지만 광탈하는 그들 앞에서 모든 것은 한낱 변명에 불과하다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정부지원사업을 한 번도 안 해본 스타트업은 있어도, 한 번만 지원해본 스타트업은 없다. 중독되면 위험한 지원사업, 눈먼 돈이라는 수식어까지 붙어 있는 지원자금들. 지원자금만을 노리는 스타트업이 있다는 소문이 옛말이 아니다. 오늘 우리가 사업하는 바로 이 현장에, 그런 업체들이 도사리고 있으며 우리들은 그들과 경쟁해야 하는 관계에 놓여있다.

우리가 정직하게 사업을 영위하고 있고 정말 좋은 아이템을 가지고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면 정부지원사업에 선정되어 일정 부분 지원을 받는 것은 사업에 큰 도움이 된다. 좋은 기회가 좋은 자양분이 될 수 있도록 우리가 ‘선택’을 받으려면 앞선 선배들의 ‘광탈의 기록’을 답습해서는 안된다.

스타트업의 광탈의 기록

평가위원으로서 현장에서 경험한 광탈한 스타트업에 대한 기억을 떠올려 본다.

1. 너무 가벼운 그대

사업계획서가 무척 화려했던 스타트업이었다. 설립된 지 1년이 안 된 곳이었는데 대표자가 굉장히 젊었고 IT 관련 사업을 영위하고 있었다. S/W 개발을 위한 자금을 받기 위해 지원사업을 신청했었는데 서류는 어찌어찌 통과를 했던 모양이었다. PT발표가 있던 당일.

서류를 차분히 검토해보니 빈틈이 많이 보였다. 화려한 색상과 디자인으로 사업계획서를 채웠지만 근본적으로 아이템은 기존 시장에 있는 아이템과 중복되는 부분이 많았다. 좋은 것만 모아서 융합제품을 만든 느낌이라고 할까? 그리고 개발 이후의 판로개척에 대한 내용이 너무 허황되었다.

PT발표를 위해 발표장에 입장한 대표자. 그런데 대표자가 소개하는 사업은 사업계획서에 있는 내용과 달랐다. 이러이러할 것이라는 계획이 무성했고 계획을 추진해 나가기 위한 세부계획이 터무니없었다.

기존 기술을 응용하여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하는 것이면서도 기존 기술에 대한 이해도가 너무 부족했다. 평가위원이 하는 모든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고, 심지어 사업계획서를 외주에 맡긴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사업계획서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실 제가 쓴 것이 아니라 우리 개발자가 쓴 것입니다. 제가 인지를 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개발자가 일어섰다.)

‘사실 제가 쓴 것은 기술개발에 대한 부분이고 다른 부분은 외주를 주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너무 가벼운 그대. 너무 가벼운 그대들의 사업계획서.

대표자가 어떤 아이템으로 지원사업을 신청하는지 조차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단순히 지원금을 받기 위해 지원사업을 신청한 사실은 평가에 아주 좋지 않은 요소로 작용한다. 사업계획서의 무게는 사업계획서 자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대표자의 이해도에서 나온다는 사실.

대표자는 그것을 망각했기 때문에 광탈했다.

2. 노쇼(No-Show)와 지각

3차였던가 4차였던가, 예산을 나누어 반복적으로 지원을 하는 사업에 심사위원으로 참여를 했었다. 사전에 기관의 담당자가 브리핑을 하는데 심사에 참여하는 업체에 대해서 일반적으로 언급하진 않는데 한 업체에 대해서 언급을 했다.

‘1차, 2차에도 지원한 업체입니다.’

떨어져서 다시 지원을 하는 것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는데 1번 순번을 받은 그 스타트업은 발표 시작 10분 전에 연락이 와서는 마지막 순번으로 바꾸어달라고 연락을 주었다고 했다. 마지막 순번이 오후 4시였는데 오후 3시 50분이 되어서도 해당 업체는 오지 않았다. 재차 연락을 취해보는 기관 담당자는 정각 4시가 되자 심사위원들에게 업체에 대해서 언급했다.

‘1차 때도 지각, 2차 때도 지각, 3차 때인 오늘도 마지막 순번으로 미뤘는데도 불참한 업체입니다.’

업체는 늦었지만 탈락은 빨랐다.

※ 지각을 했다고 해서 모든 지원사업에서 탈락되는 것은 아니지만 일부 지원사업의 경우 순번을 정해놓고 심사나 발표를 평가하기 때문에 지각하는 경우 탈락시킬 수도 있다.

3. 공고가 중요해

분명 IT가 결합된 융합 제품을 지원하기 위한 지원사업인데 IT가 하나도 없고 융합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스타트업이 있었다. 제출한 서류를 보면서 서류 심사 단계에서 걸렀어야 할 업체인데 서류 심사와 PT심사를 동시에 보는 심사절차로 인해서 미처 필터링되지 못한 업체였다.

그래도 발표를 한 번 들어보자는 다른 심사위원들의 의견에 따라 발표를 받아보았는데 대표자는 지극히 제품 제조 위주의 발표를 했고, 본 지원사업과 전혀 해당 관계가 없는 사실을 발표했다. 모 심사위원이 지원사업과 무관한 아이템으로 신청했음을 알렸는데 대표자는 당황해하며 답변했다.

‘(IT가 결합된 융합 제품이란 말을 생략하고) 공고에 제품 지원사업이라고 적혀 있길래 지원했습니다. 저도 제품을 만드는데 지원받을 수 없습니까?’

공고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대표자. 발표시간과 질의응답 시간을 가득 채워 심사위원 모두에게 사정만 하다가 자리를 떠났다. 안타까운 마음이 가득했지만 지원사업에 있어서 공고에 적시된 내용은 매우 중요하다.

4. 논리적인 비약

사업계획서를 읽다가 갑자기 논리가 급 전개되고 비약하는 사업계획서를 제출하는 스타트업들이 있다. 제품을 소개하는 것 까지는 다른 스타트업과 차이가 없는데 제품 개발 이후나 서비스 상용화 이후의 파급효과에 대해서 우주를 정복하는 식의 비약을 보여주는 업체가 바로 여기에 해당된다.

굉장히 단순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인데 서비스가 상용화가 되면 지역사회 발전과 더불어 아름다운 세상이 눈 앞에 다가오고 서로가 상부상조하는 국가 이미지 발전에도 도움이 된다고 파급효과를 적어두었다. 어떤 스타트업은 제품이 개발되고 나면 3개월 이내 아마존에 입성하고 순식간에 미국 시장을 잠식할 수 있다고 적어두었다.

어떤 업체는 공공기관 하나만 뚫으면 국가 정책에 의해서 삽시간에 국내의 모든 기관이 사용할 수밖에 없다는 말도 적어두었다. 어떤 스타트업은 애국가를 적어두기도…

사실, 이런 논리적인 비약이 적힌 문구 때문에 스타트업을 탈락시키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렇게 대표자들이 논리적인 비약을 쓰는 경우, PT발표를 받아보면 대표자가 자신이 개발하고자 하는 제품이나 서비스, 자신이 제공하고자 하는 아이템에 대해서 자신이 없거나 정확하게 분석되지 못한 경우가 다반사이다.

논리적인 비약이 담긴 문구, 어쩌면 자신의 아이템의 결점이나 허점을 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일 수 있다.

5. 진심은 아니었어

아이템을 다듬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서 최종적으로 몇 팀을 선발하는 방식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유독 눈에 띄는 한 스타트업이 있었는데 자신이 분명 A 아이템으로 지원을 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A 아이템에 대해서 자신이 없다고 했다. 진행하는 도중에 A 아이템이 B 아이템으로 바뀌고, 조금 다듬어질까 싶었는데 이내 C아이템으로 아이템이 바뀌었다. 최종 발표를 앞둔 3일 전, 다시 A 아이템으로 복귀한 대표는 A+아이템으로 약간 업그레이드하여 최종 아이템을 선정했다.

최종 사업계획서를 받아보았는데 A+가 아니라 AB+아이템이 되어버린 대표자의 사업. 대표자의 설명은 중구난방이었다. 어느 하나 맥을 짚지 못하고 무조건 되어야만, 해야만 한다는 그의 발표는 각양각색의 좋은 말이 잔뜩 써져 있는 믹스 제품을 개발한다는 내용이었다. 중구난방 아이템은 역시나 심사위원들을 충분히 설득시키지 못했다.

최종 결과가 나오고 나서 대표자는 이실직고했다.

‘사실 집에서 놀고 있는데 사업이나 하나 해볼까 해서 급하게 아이템을 만들었습니다.’

사업을 진심으로 대하지 않았던 대표자.

대표자를 진심으로 대했던 멘토들과 심사위원은 뭐가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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