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이즈게임과 모비인사이드의 파트너십으로 제공되는 기사입니다.

by 디스이즈게임 반세이, 장이슬 기자

 

“전 사실 사람들하고 잘 어울리지 못해요. ‘아웃오브인덱스’ ‘노랑던전’ 같은 행사는 제가 친구를 찾고 싶어서 만든 거예요.”

이 무슨 “나는 마리오지만 소니 사장이다” 같은 선언인가. ‘부산인디커넥트페스티벌(이하 ‘BIC’)’부터 실험 게임 축제 ‘아웃오브인덱스’, 1인 개발 게임 전시회 ‘노랑던전’까지, 국내 유수의 인디 게임 행사의 목적이 세이클럽에 있다니. 여러 인디 게임 행사에서 주최자로 활동하는 박선용 터틀크림 대표의 이야기다.

방심했다. 생각해보면 스팀과 험블 번들에 아주 이른 시기부터 게임을 출시하고, 국내 게임 심의에 저항하기 위해 여러 퍼포먼스를 벌인 사람이 평범한 이야기를 할 리가 없다. 확고한 개발관과 신념으로 행보마다 주목을 받는 박 대표를 만나 인디 게임과 국내 게임 심의 제도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 디스이즈게임 반세이, 장이슬 기자

 

터틀크림 박선용 대표

 

# ‘인디 게임’은 없고 ‘인디 게임 개발자’가 있다

 

Q)다소 물린 질문이지만 물어야 할 것 같습니다. 박 대표님께 인디 게임이란 무엇인가요?

역설적이지만 ‘인디 게임’은 없다고 생각해요. 인디 게임은 없고 인디 개발자가 있어요. 인디 개발자가 만든 게임이 인디 게임인 거죠. 정의할 수 없는 개념이에요. 그냥 인디 개발자가 있을 뿐이에요.

 

Q)모바일게임 시대가 되면서 대중들도 인디 게임을 접하기 쉬워졌는데요. 그만큼 인디 게임을 둘러싸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늘어났어요. 대표님은 요즘 인디 게임 상황을 어떻게 보세요?

외국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한국도 인디 씬이 나뉘면서 점점 어려워지는 것 같아요. 자기 게임 만들고 싶은 인디 개발자가 있고, 타의적으로 혹은 ‘인디’가 팔리니까 뛰어드는 사람들도 좀 있고. 어느 쪽이 나쁘다고 하는 건 아니에요. ‘자기 게임을 만드는 사람이 있는 거죠.

 

Q)지난 2일에 진행했던 1인 개발자 게임 전시회 ‘노랑던전’에서 여러 이야기를 하셨잖아요. 그중 인상 깊었던 것이 “기꺼이 가난하게 살겠다”는 표현이었어요. 

많이 오해하는데, 돈 안 벌고 싶은 건 아니에요. 부자 되고 싶죠.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걸 만들어서 부자가 되고 싶은 거예요. 취향이 대중적이면 대중적인 걸 만드는 거고. 우선순위가 성공이 아닌 거예요.

전 자신을 ‘고장 난 사람’이라고 표현해요. 다른 조건은 생각하지 않고 저 하고 싶은 걸 하는 사람. 지금은 게임을 만드는 것이 재미있어서 계속하거든요. 게임 개발은 오랫동안 제게 재미를 주는 일이에요.

 

지난 2일 열린 1인 개발 게임 전시회 ‘노랑던전’에서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박 대표

 

Q)만약 게임을 만들지 않았다면 뭘 하고 계셨을 것 같나요?

광고를 공부했어요. 미대에서 디자인을 배우고 싶었는데, 부모님이 그러시더라고요. 예고 나온 학생들하고 경쟁이 되겠냐고.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광고를 배우지 않을래? 그림 그리는 사람과도 같이 일하고, 음악 하는 사람과도 같이 일할 수 있고. 네가 하는 건 아니지만 같이 일할 수 있잖니.” 설득력 있잖아요?

그렇게 대학에 가서 광고 공부를 해보니까, 창작의 영역인데 너무 산업적이에요. 광고주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아무리 멋있어도 다 쓰레기가 되고.

여러 광고제에서 상 받은 광고는 거의 대부분 집행 광고가 아니에요. 광고제 수상도 충분히 훌륭한 일이지만, 내가 만든 광고가 TV에 나오면 더 좋잖아요. 이런 제약 속에서 꽃을 피우는 것이 미학이 아닐까, 그런 고민을 하던 중에 우연히 게임 개발을 접하게 됐어요.

 

Q)그 전에도 게임을 좋아했나요?

게이머로서의 경험은 초등학교 6학년 때 끝났어요. 집에 있던 게임 관련 물건이 ‘짝퉁’ 패미콤이에요. CD 들어가는 것은 친구 집 가서 구경하는 정도. 그러다 20살에 PC를 샀으니까 <스타크래프트>나 온라인게임을 하고… 그 사이에 있던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 같은 명작이나 폴리곤 그래픽 게임을 접해보지 못했어요.

 

Q)게임 경험도 많지 않은데, 어떤 계기로 갑자기 게임을 만들게 됐나요?

21살 때 고등학교 친구가 갑자기 연락했어요. “친한 형이 게임 회사를 만들려 한다. 대학생이 모여서 창업하는데 광고 마케팅을 아는 사람이 없다. 네가 광고를 만든다고 고등학생 때부터 말했으니 한 번 왔으면 좋겠다.” 창업이라니 재미있겠다 싶어서 합류했죠.

사업 아이템이 뭐였냐면 보드게임방이 유행할 때였거든요? 온라인 테트리스나 십자말풀이 게임으로 유명했던 넷마블처럼 온라인 보드게임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했어요. 정식 라이센스를 따고 사이트와 게임을 만들면 잘되겠다고 생각했죠. ​결국 그 팀은 없어졌어요. ​소꿉장난처럼 계획만 하다가 끝났죠.

그런데 그새 게임 개발에 관심이 생겼어요. 게임 세계에서는 내가 창조주고, 게임을 만들면 내 것이니까요.​ 그래서 게임 개발로 진로를 정하고 부모님 몰래 다른 학교 시험을 봤어요. 물론 부모님은 화를 내셨지만 결국은 이해하셨죠.

박 대표가 ‘대장’을 맡은 인디 게임 개발사 터틀크림

 

Q)게임 개발을 공부하면서 회사나 조직의 구성원으로 들어간 적은 있나요?

기획, 게임 시나리오 전공이라 학생 때 기획 외주를 한 적은 있는데, 정식으로 어떤 회사에 출퇴근하거나 개발팀의 일원이었던 적은 한 번도 없어요.

4학년 말에는 취직을 생각했으니 면접을 당연하게 보러 다녔죠. 엔씨소프트 면접을 봤는데 면접관이 그런 얘기를 해요. “시스템 기획을 하고 싶으세요, 콘텐츠 기획을 하고 싶으세요?” 대답을 못 하겠더라고요. 둘 다 하고 싶은데 안돼? 팀이 얼마나 크길래? 그러면 게임에 내가 기여하는 부분은 얼마나 되는 거지? 순간적으로 미묘한 감정이 생겼어요.

 

Q)게임에 자신의 창작을 얼마나 담을 수 있는지가 중요했군요.

그때 ‘터틀크림’을 설립했거든요. 사전 출시한 작품도 있었고, 다섯 명밖에 안된 팀이니 혼자서 해야 하는 일이 많아요. 그런데 대기업을 가면 할 수 있는 일이 좁아져요.

두 번째 계기는 게임업계와 관련이 없는 지인과의 대화였어요. “큰 회사에서 일하다 돈 벌고 경험을 쌓으면 독립 스튜디오를 차려 나오겠다”고 하니까 그분이 그러시더라고요. “회사 들어가서 일하는 동안 돈 얼마나 모을 것 같아요? 회사 차리면 얼마 만에 다 쓸 것 같아요? 거기서 배운 걸 독립 스튜디오에서 쓸 수 있어요?”

이쯤 되니까 제가 하고 싶은 건 대기업 시스템하고 상관이 없는 거예요. 거길 왜 가지 싶은 생각이 든 거죠. 그래서 마음을 먹었어요. 그냥 인디 해야겠다.

 

터틀크림의 첫 상용 게임 <슈가큐브: 비터스위트 팩토리>(Sugar Cube: Bittersweet Factory)

 

#인디 개발을 하며 만남을 추구하면 안 되는 걸까

 

Q)*아웃오브인덱스나 *게임잼, *노랑던전 같은 인디 게임 행사를 하는 이유가 궁금해요. 자신만의 게임을 만들고 싶은 사람들, 하고 싶은 걸 하는 사람들의 활동을 촉진하기 위함인가요?

전 그렇게 이타적인 사람은 아니고요. 친구 찾으려고 하는 거예요. (친구 많으시잖아요?) 다 이런 걸 열어서 만든 친구들이죠.

전 고장 난 사람이라 타인에게 별로 관심이 없어요. 사람들은 제가 정말 사교적인 성격인 줄 아는데, 사실은 남과 사귀거나 관계를 유지하는 걸 귀찮아하는 편이에요. 그렇지만 노는 건 좋아하고, 놀 거면 같이 노는 것이 재밌고.

그래서 그냥 관심이 생기는 걸 놀이터로 만들어요. 국내 인디 게임 저변에 기여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씬’이 없으니까 만드는 거죠. 외국 친구들은 한 달에 한 번 만나고 재미있게 노는데 여긴 없네? 그럼 만들자.

그래서 *BIC 스태프를 관뒀어요. 만들어서 제가 놀아야 하는데 BIC 운영진을 하면 못 놀아요. BIC는 더 많은 개발자를 대중에 소개하고 보람을 느껴야 운영진을 할 수 있거든요.

저는, 제가 개발자인데 남의 게임을 홍보해주는 건 보람을 못 느끼는 거죠. BIC는 굉장히 스트레스가 많은 행사인데 지금도 그럴 거예요. 또 BIC는 개발자 행사라기보다는 유저 반 개발자 반 행사라, 개발자끼리 모인다는 느낌은 아니죠.

 

아웃오브인덱스(Out of Index): 2014년부터 시작한 실험 게임 전시회. 실험적인 성격이 강한 게임을 선정해 전시하고 개발자가 게임의 기획 등을 발표하는 행사.

게임 잼(Game Jam): 여러 분야의 개발자가 모여 아주 짧은 시간 동안 게임을 만드는 행사. 세계 여러 나라에서 진행하며 박 대표는 2012년 ‘심의에 걸릴 일 없는 건전 게임’을 주제로 한 게임잼을 개최한 바 있다.

노랑던전: 2017년 12월 서울혁신파크에서 처음 시작한 1인 개발 게임 전시회. 박 대표와 친구들이 자주 모이는 치킨집 이름을 따온 행사로, 서로의 게임을 보여주고 자유롭게 평하는 등 게임 전시와 토크쇼를 결합한 행사.

부산인디커넥트페스티벌(BIC): 2015년부터 시작한 부산 지역 인디 게임 축제. 전시부터 발표회, 대회까지 다양한 행사가 진행되며 부산광역시, 문화체육광부 등 행정 지원을 받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진행되는 인디 게임 관련 행사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인지도 높은 행사.

 

올해는 1만 명이 넘는 관객이 몰리면서 대형 행사로 성장한 BIC

 

 

Q)다른 행사도 준비할 것이 많은데, 그러면 어떤 행사를 해서 놀아도 100% 만족은 못 하실 것 같아요.

아웃오브인덱스도 그런 감정을 느끼고 있어요. 실험적인 게임은 좋아하는데 제 게임은 못 내거든요. 제가 심사를 봐야 하니까. 특히 올해는 기술적인 문제도 많았고 숙제하는 느낌으로 준비해서 아쉬웠어요. 그런 면에서 ‘노랑던전’은 준비하면서 나름 ‘힐링’이 된 행사죠. 역설적이지만 준비를 거의 안 했거든요.

 

Q)인디 씬에 기여할 생각이 없다지만, 결과적으로 행사가 정착하면서 기여를 했잖아요. 이런 차원에서 보면 행사의 목적은 뭘까요? 유저들이 많은 게임을 알게 되는 것?

노랑던전은 정말로 저희끼리 놀려고 만든 거지만, 아웃오브인덱스는 유저보다 개발자가 와서 보기를 바라는 행사에요. “이런 게임을 만드는 사람도 있구나, 우리와 달라!” 이런 걸 느끼는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KGC(Korea Game Conference, 한국 국제 게임 콘퍼런스)에서도 작품 전시를 했는데 큰 회사 다니는 분들이 오셔서 충격을 받으셨어요. 그래서 꾸준히 큰 회사 대표님들도 초대했죠. 아웃오브인덱스 1회 땐 엑스엘게임즈의 송재경 대표님이 오셨고 원더스쿼드의 서관희 대표님도 몇 년째 오세요.

 

Q)아웃오브인덱스는 큰 회사가 와서 보고 “재미있는 것 좀 만들어주세요” 교훈을 주는 것이 목적인가요?

그렇다기보단 “실험 좀 하세요. 이런 거 하는 사람이 있어요.”죠. 기왕 주는 충격이면 강한 충격이 좋다고 생각해요. 어차피 상업 게임을 만드는 회사는 충격을 받아도 열화한 다음 대중성을 강화하니까 충격은 세야 합니다. 강한 충격을 줘도 회사 안에서는 순화되고, 적당한 실험과 적당한 상업성이 들어가죠.

개발자로서 정체성을 가지고 왔을 때 느끼는 것과 플레이어가 느끼는 것이 다른 행사라서 아웃오브인덱스는 철저하게 개발자 시선으로 봤으면 좋겠어요. 아웃오브인덱스는 인디 게임 페스티벌이 아니에요. 극도로 실험적인 작품을 소개해서 충격을 주는 것이 목적입니다.

 

올해로 4회차를 맞은 실험 게임 축제 아웃오브인덱스

 

# 실험적인 게임, 실험적인 삶

 

Q)문득 궁금한 점인데, 왜 실험작을 만들고 해봐야 하는 걸까요?

필요해서 하는 건 아니고 제가 좋아하는 거예요. 광고를 좋아했던 이유도 그래요. 광고는 남을 따라 하는 순간 도태되는 분야거든요. 항상 새로운 걸 만들어 충격을 주는 걸 좋아하니 자연스럽게 실험하고 있어요.

 

Q)실험이 어떤 도전이라기보다, 항상 창의성을 발휘해야 하는 영역이라 그런 걸까요?

<6180 더 문>(원제 ‘6180 the moon’)을 가지고 여러 게임쇼를 갔는데, 가장 즐거울 때가 언제냐면 체험하는 사람이 첫 점프를 할 때입니다. 이 게임은 첫 점프를 하면 백이면 백 모든 사람이 이런 반응이에요. “응? 뭐?”  그걸 볼 때가 제일 즐거워요. 의도한 반응이 나올 때죠.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재미’라는 단어로 표현이 안 될 거예요. 어떤 분은 “터틀크림 게임은 되게 특이하고 되게 재미없다.” 라고 평하셨는데, 그 점이 재미있다는 분도 있거든요. 어떻게 보면 특이함으로 눈길을 끄는 거죠.

 

Q)사람들이 충격을 받았을 때 거기서 끝나지 않고 행동의 변화가 일어나거나 고민의 폭이 넓어지고, 새로운 영감의 가능성이 열리는 걸 기대하는 건가요, 아니면 그냥 놀라게 하는 걸 좋아하는 건가요?

후자에 가까운 거죠. 그게 좋아요. 이상한 장난감 만드는 사람의 포지션에 가까워요. 그게 어떤 가치를 가지거나 세상에 필요한지 아닌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Q)개발자는 의도하지 않았는데 그걸 보는 사람이 의미를 부여한다고 봐도 될까요?

꼭 게임 개발자가 아니더라도, 누군가 사는 방식이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를 준다고 생각해요. 광고를 공부할 때 만났던 친구들은 절 만날 때마다 “너처럼 사는 것이 가능한 걸 보면 세상은 살만하다는 생각이 들어.”  라고 해요. 어떤 분은 저를 보고 “어? 굶어 죽지 않네?” 하면서 인디 게임 개발을 시작하고.

어떤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기도 할 거예요. “저 친구는 뭔데 자기가 하는 것만 인디고, 내가 하는 건 인디 아니라고 하지? 남이 하면 순수하지 않은 거야?” 정확히 말하면, 제가 하는 건 저의 인디에요. 다른 사람이 하는 건 그 사람의 인디죠. 인디 게임이라는 하나의 브랜드로 묶기보다는 모두 자신의 작업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 한국 게임 심의 보이콧, 그 이후

 

Q)그래서 그 결과물을 심의하는 것이 모순으로 느껴지는 건가요?

게임은 대중 예술이니까 심의는 필요할 수 있다고 봐요. 예를 들어 인간의 나신을 소재로 게임을 만들면 아주 어린 아이에게 충격적일 수 있으니까, 뭐 그럴 수 있죠.

문제 삼는 건 사전 심의에요. “심의를 받지 않으면 어디에도 이 게임을 공개할 수 없다!”에 가까우니 그 자체가 문제로 느껴져요. 심의라는 존재 자체가 게임을 만들고 내놓는 행위 자체를 억압하는 상황이 된 거죠.

 

Q)제도 자체보다는 출판의 권리에 가까운 문제 제기인 거죠? 비용이나 사업자 등록 여부처럼 비현실적인 부분도 있고.

사전 심의가 출시를 제약하니 이게 없어지면 심의는 있어도 된다고 생각해요. 사실 아웃오브인덱스와 노랑던전도 불법이에요. 심의받지 않은 게임을 보여주니까. 그런데 BIC처럼 지방자치단체장급이 주최하는 행사는 괜찮아요. 지자체와 기관에서 책임진다 이거죠.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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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그건 정말 이상하네요. 구글도 인디 게임 만들라고 하고, 나라에서도 창업하라고 하는데 정작 제도는 따라오지 않는다. 이 모순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요?

정확히는 모바일 인디 게임 하라는 거죠.

아웃오브인덱스도 4년째 하는 불법 게임 행사고요. 노랑던전에 나왔던 <222 하츠> 만든 친구는 출시 예정도 없는 모바일 버전을 급히 만들었어요. 괜찮으니 PC로 하라고 했는데도 몇몇 분들이 안드로이드 빌드를 가져왔더라고요. 불법 게임이 되고 싶지 않아서.

전시 장소가 서울혁신파크, 서울시니까 그쪽에 문의를 해봤는데 안 된다고 하고요. 결국 모바일 빼면 다 불법 게임이 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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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한국 게임 심의 제도에 반대해서 그간 한국에 게임을 안 냈는데 최근 심정에 변화가 있었다고 들었어요.

학생 때는 나름 퍼포먼스도 하면서 저항했어요. 게임 빌드를 전시하는 프로젝트에서 플레이를 못 하는 게임을 낸 거예요. 타이틀 화면에서 플레이를 누르면 “심의받지 않았으므로 플레이할 수 없습니다.” 라는 문구가 나오고 게임이 종료돼요. 그렇게 시위를 시작했는데 수년이 지나면서 이렇게 됐네요.

그땐 인디 게임 개발자로 자신을 정의하고 얘기하는 사람이 없기도 했거든요. 그래서 처음부터 터틀크림 팀원들에게 이야기했죠. 난 심의 제도 안에 들어가기 싫은데 괜찮냐고. 팀원들의 승낙을 받아서 터틀크림은 국내 활동을 안 했어요.

국내 매체와 인터뷰할 때도 게임보다 우리 이야기를 더 하자고 요청한 경우도 있었어요. 첫 게임 <슈가큐브>를 낼 때 게임보다는 왜 스팀에 입점했는지 들어달라고 해서 의아하게 여긴 기자들도 있었죠. 이런 식으로 심의 시스템을 거부하는 시위를 하게 된 건데, 그렇게 하면 누군가 동참할 줄 알았어요.​

 

Q)게임 심의 제도에 문제가 있다는 인식을 주는 건 성공하지 않았나요?

시스템을 거부하는 시위보다 순응하는 시위가 더 공감을 얻은 거예요. 다른 개발자들이 꾸역꾸역 심의받으면서 제도의 문제를 경험하고 비판하는 목소리를 내는 모습에 힘이 실리는 거죠.

오히려 안티가 안티를 낳는다고, 저희에게 돌아오는 반응이 좋지 않았어요. “쟤들은 도대체 뭐가 잘나서 한국 사람이면서도 한국어 지원을 안 하냐, 진짜 마음에 안 든다.”

스팀에 있는 저희 게임 크레딧에 한국 심의나 상황을 쓰니 외신에서 인터뷰를 요청할 때도 있어요. 그러면 “한 군데라도 더 인터뷰하고 싶어서 심의를 구실 삼는다.” 라고 하는 거예요. 그런 반응을 볼 때마다 이러려고 한 시위가 아닌데, 이런 반응을 의도한 게 아닌데 싶은 생각이 든 거예요.

 

Q)그건 악의적인 해석으로 보이는데요.

그렇게 해석되게 한 건 잘못이죠. 시위는 보는 사람의 공감을 얻어야 해요. 대부분의 1인 시위가 실패하는 이유가 그거예요. 저희는 어떻게 보면 몇 년째 공감을 얻는 것에 실패한 거예요. 공감을 못 얻는 데 그친 것이 아니라 반감까지 얻었으니.

또 한편으로 “어떤 상황이 되면 한국어로 낼 건데?” 그 기준이 몇 년 사이에 모호해졌어요. 게임위가 IRAC( International Age Rating Coalition, 국제등급분류연합)에 가입했어요. 사실상 닌텐도를 통과하면 한국에 게임을 낼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사전 심의는 아직 있단 말이죠.

지금 상황은 한국어로 게임 내도 되나? 판단은 할 수 있지만, 당위가 있어야 하잖아요. 결론적으로 이 시위는 실패한 것이 맞아요. 다른 방식을 찾든, 패배 선언을 하든 방향을 잡아야 하고, 우리 철학도 그렇고 표류하고 있어요.

 

 

# 굿 게임 배드 게임

 

Q)답답한 이야기이긴 한데, 게임 심의 제도만이 문제일까요?

BIC 1회 때 인디 개발자들이 게임물관리위원회와 간담회를 했는데 사건이 있었어요.

게임위에서 “도박 게임을 담당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이 협박도 듣는다, 도박 게임은 이런 것이 있고 그래서 심의 제도가 있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같이 계셨던 교수님이 화를 빡 냈어요. 여기엔 그런 게임 만드는 사람 아무도 없는데 왜 그런 말을 하느냐고.

이 사단의 원인은 결국 ‘바다이야기’에서 나왔다고 생각해요. 도박이 게임의 이름으로 나왔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게임을 같이 규제하게 된 거죠. 게임장, 성인오락실이라는 표현을 지금도 쓰고 있잖아요. 도박과 게임을 같은 카테고리에 놓고 이걸 막기 위해 심의가 필요하다는 논리를 말하죠. 이 둘을 완전히 분리하지 않으면 이 문제는 해결이 안 된다고 생각해요.

 

Q)전통적인 도박과 게임은 어느 정도 인식 상에서는 분리가 됐다고 여겨지는데요. 문제는 ‘뽑기’를 핵심으로 하는 게임에 그런 속성이 없다고 볼 수는 없는 거죠. 서구권에서 한참 시끄러웠던 패키지 게임 내 루트박스도 그렇고요. 어디까지가 도박이고 어디까지가 게임일까요?

확률로써 재미를 만드는 것은 거의 현존하는 모든 게임이 하는 거죠. 절차적으로 생성되는 것도 확률이고 아이템도 확률이고 몬스터 조우나 리젠도 확률이고요. 그 확률을 가지고 아이템이 나오는 상자를 만들었다는 것이 과연 도박이냐 물으면 근본적으로 도박은 아닌데.

 

Q)원리상 도박은 아닌데 현금이 들어가니까요.

게임에서 재화를 사는 행위가 재미가 되는 상황이 되면서 생긴 문제라고 생각해요. 그 전까지는 게임 내 재화를 사면서 재미를 느끼는 게임이 없었잖아요. PC 온라인게임의 끄트머리부터 돈을 내고 아이템을 사는 쇼핑의 재미를 게임이 차용하기 시작하면서 이렇게 올라온 것 같아요.

가챠가 사행성인지는 제가 판단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만들지도 않고 하지도 않으니까. 그래서 더욱 조심스러운데, 진짜 도박 게임들은… 소위 언어기호학적 측면에서 단어조차 다르게 정의해서 분리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진짜 도박’이라는 건 정말로 돈 놓고 돈 먹기를 말하는 거죠?) 그렇죠.

 

 

Q)용어를 혼용하기 때문에 더욱 ‘도박적 요소’라고 부르기 쉬워진 것 같아요. 실제로 일부 사람들은 불법 도박과 게임 과금을 같은 선상에서 보기도 하고요. 게임 중독이라는 표현도 학계에서는 게임 과몰입으로 바꾸긴 했지만, 의미하는 바는 거의 바뀌지 않았죠.

산업도 마찬가지예요. 이번 대한민국 게임대상을 보면서 인상 깊었던 것이, 게임 과몰입 치료에 앞장선 사람이 공로상을 받은 부분이에요. 업계 시상식에서 그 업계를 부정하려 애를 쓴 사람이 공로상을 받는 건 처음 봤어요. 게임학과 교수나 굉장히 오래전부터 게임을 만든 사람이 받아야죠. 결국 게임 과몰입이라는 건 게임을 부정적으로 볼 수밖에 없는 프레임이잖아요.

업계들의 접근 방식이, 괜한 자격지심 때문에 여기저기 눈치를 보는 식이에요. 평소에도 나쁜 걸 만든다고 생각하나 보죠? 이 프레임에서 더 나아가면 ‘굿게임’ 같은 단어가 나와요. 그럼 ‘배드 게임’도 있어요? “여러분, 게임이 사회악이라고 생각하시죠? 아니에요, 굿게임도 있어요!” 그런 취급 받으려고 만든 게임이 아니잖아요.

이상적인 이야기지만 담론을 이렇게 가져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노는 게 왜 나빠? 재미있는 게 왜 나빠? 이게 너무 재미있어서 계속하는 게 왜 나빠? 그렇게 얘기하면 뭇매를 맞는다는 걸 스스로 아니 자기 검열하는 거예요. 저는 그런 조류에서 동떨어진 사람이고 자유로운 입장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거지만요.

 

 

Q)산업의 규모가 커질수록 사회적 의무도 생기고 눈치 볼 곳도 많아지니까요.

게임이 좋은 것이 아니라는 사회적 합의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에요. 물론 도박 때문에 사전 심의로 막고 있는 거지만, 많은 사람이 “그래 뭐 도박은 막아야 하고, 게임도 좋은 건 아니잖아?” 라고 말하는 것이 사실이에요.

인식을 바꾸려 노력해야 하는데, 큰 기업에서 앞장서 노력해주면 좋죠. 게임대상 이야기로 돌아가면, 공로상 다음에 나왔던 사회공헌상은 넥슨이 받았잖아요? 어린이 재활병원 건으로. 박수 많이 쳤어요. 잘하는 일이잖아요.

이런 회사들이 인식 변화에 어떤 식으로든 기여를 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그런 인식을 강화하는 게임을 만드니까요. 사실은 인디 개발자가 만든 게임이 그런 인식 변화에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현실은 여기도 방치형 세상이죠.

 

Q)긴 인터뷰 고생하셨습니다. 질문이 늦었습니다만 요즘은 뭐 하세요?

계속 개발 작업을 하고 있어요. 노랑던전에서 치명적인 버그가 발견돼서 이걸 고치는 일을… 하나도 안 했고요. (웃음) 내년 초에 <6180 더 문> 닌텐도 스위치 버전이 나와요. 이 게임까지는 한국에 안 낼 거예요. 지금 시점에서 한국어를 작업하려면 어려운 부분이 있어서, 이 게임까지는 기조를 유지할 것 같아요.

 

Q)마지막으로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투더헬>이 서울인디즈 모임에서 장례식을 치렀던 게임이에요. 온갖 게임 페스티벌에서 다 떨어지자 낙담해서 “이 게임은 이제 안 만들 거야”라며 기기 끝에 영정 사진처럼 까만 띠를 두르고 육개장 사발면 갖다 놓기도 했어요. 지금은 주목을 많이 받지만 그때는 힘들었거든요.

그런 게임을 장사지낸다고 하니까 다들 엄청 탐냈어요. 이 게임 죽일 거면 리소스 다 내놔라, 내가 클리커 게임 만들 거다. (웃음) 이 소동에서 영감을 받아 올해는 ‘접힌 게임 전시전’ 같은 행사를 해볼까 해요.​ ​​일단은 저희끼리 이야기하는 단계이긴 하지만, ​그 때도 지켜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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