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과 같은 가상화폐에 대한 관심이 뜨겁습니다. 세계 파생상품 시장의 거인인 미국 시카고옵션거래소가 비트코인 선물거래를 시작하는 한편, 정부는 13일 가상화폐 규제안을 만들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습니다. 이 시간에도 비트코인과 알트코인의 가격은 널뛰기를 거듭하고 있으며, 거래소에는 현금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습니다.
정부의 규제안은 예상보다 수위가 낮았습니다. 외국인과 청소년의 거래를 금지한 대목과 은행의 거래 불가 원칙, 거래소에게 투명한 운영방안을 제시한 것은 ‘적당한 수준의 규제’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가상화폐의 제도권 편입을 시도했다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15일에는 업계를 대표해 한국블록체인협회 준비위원회가 정부의 규제안에 화답했습니다. 자본금 20억원 이상 보유, 금융업자에 준하는 정보보안시스템, 또 투자자의 원화 예치금을 100% 금융기관에 맡기는 등의 내부원칙을 발표했습니다. 여전히 남해버블, 튤립버블의 공포가 어른거리지만 현 상황에서 가상화폐를 둘러싼 논란은 일단 고무적이라고 봐야 합니다.
그러나 정부와 업계가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대목’이 하나 있습니다. 사실 많이 있는데 가장 중요하게 봐야 하는 지점입니다. 바로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은 같을까? 다를까?’의 인식차이입니다.
같을까? 다를까?
최흥식 금융감독원장은 13일 언론사 경제 금융부장과의 조찬 간담회에서 “가상화폐는 금융상품도 화폐가 아니다”면서 “블록체인과 가상화폐를 분리해서 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모두 논란의 여지가 있는 주장입니다. 다만 널뛰는 가상화폐의 가치, 불확실성 등을 고려하면 당장 가상화폐를 화폐로 보기 어렵다는 주장에 무게가 실립니다. 그렇다고 금융상품으로 인정하기에는 소위 ‘밑도 끝도 없어서’ 문제가 됩니다. 가상화폐의 가치 등락은 확고한 호재나 악재가 있는 주식 시장과는 다릅니다.
물론 최근 라이트코인이 글로벌 게임 플랫폼 스팀의 활용방안이 발표된 후 가치가 급등하는 등 명확한 등락의 연결고리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이유 없이 오르고 내립니다. 아, 아니죠. 전혀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기업의 가치에 투자하는 주식 시장과 달리 가상화폐 시장은 온전히 인간의 욕망에 좌우됩니다. “내가 지금 구입하는 비트코인을 다른 누군가가 비싸게 사 줄 거야”라는 믿음. 혹은 욕망입니다.
이러한 논란은 차치하고, 최 원장의 다음 말에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바로 블록체인과 가상화폐를 분리해 살펴봐야 한다는 전제. 이건 단순하게 생각할 대목이 아닙니다. 매우 중요한 함의를 가진 발언입니다.
살펴보겠습니다. 블록체인과 가상화폐를 분리해 바라봐야 한다는 주장에는 ‘두 기술은 엄연히 다르고, 다르기 때문에 힘의 집중도 달라야 한다’는 전제가 있습니다. 더 깊숙이 들어가면 가상화폐는 워낙 뜨거운 이슈이기 때문에 세밀한 ‘핸들링’이 들어가는 규제의 대상이며, 블록체인은 정말 필요한 기술이기 때문에 ‘육성의 대상’이라는 논리와 만날 수 있습니다.
당연히 ‘분리해서 봐야 한다’는 주장에 가상화폐 거래소들이 반발합니다. 실제로 15일 김화준 한국블록체인협회 공동대표는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은 같다”면서 “동일한 시각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발언을 다소 정치적으로 해석하자면 가상화폐를 규제의 대상으로, 블록체인을 육성의 대상으로 보는 정부의 발언에 선을 긋는 것으로 보입니다. ‘둘 다 소중하니 다 육성해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블록체인에 대한 기술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상황에서, 가상화폐의 가치도 블록체인의 가치와 동일하다는 항변입니다.
결론은?
2008년 10월 31일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사람이 암호화 기술 커뮤니티 메인에 ‘비트코인:P2P 전자 화폐 시스템’이라는 논문을 올립니다. 그리고 2009년 1월3일, 사토시 나카모토는 비트코인이라는 가상화폐를 직접 구현합니다. 논문을 통해 분산형 장부 알고리즘인 블록체인 기술을 소개한 후 이를 현실로 빚어낸 것이 바로 비트코인이라는 뜻입니다.
블록체인부터 살펴보자면 블록체인은 공공 거래장부, 즉 디지털 장부(distributed ledger)의 개념입니다. 예를 들어 A라는 사람이 B라는 사람과 거래를 했다고 가정한다면, 그리고 B라는 사람이 C라는 사람과 또 거래를 했다면 이러한 과정은 각자가 가진 모든 거래장부에 자동으로 기입되는 구조입니다. 거래장부(블록)이 연결(체인)이 된다. P2P(Peer to Peer) 분산 네트워크로 구동되는 배경입니다.
사토시 나카모토는 비잔틴 장군의 딜레마를 해결하며 길이가 짧아지는 체인을 삭제하는 방식을 고안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블록체인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셈입니다. 다만 일반에 알려진 것처럼 블록체인을 해킹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또 체인이 급격히 늘어나며 소위 ‘쪼개기’가 필요할 때가 있지요. 하드포크라는 용어가 여기서 나왔습니다.
비트코인은 이 블록체인이라는 기술, 아니 알고리즘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해킹이요? 당연히 가능합니다. 거래소 해킹은 꽤 빈번하게 벌어지며 한 때 최고의 비트코인 거래소였던 일본의 마운트 콕스도 해킹을 당해 파산하기도 했습니다. 최근 국내 최대 거래소인 빗썸도 북한 해커로 추정되는 사람에게 개인정보를 유출당한 일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가상화폐와 블록체인은 어떻게 봐야 할까요?
같은 시각으로 봐야 할까요? 아니면 다른 시각으로 봐야 할까요?
‘블록체인 방식으로 구현할 수 있는 사용자 경험 중 하나가 가상화폐’가 정답입니다. 블록체인은 최근 금융권에서 인증 분야에 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다만 활용분야는 무궁무진하죠. 선거에도 활용할 수 있고 중고차 거래는 물론 콘텐츠 구입에도 활용할 수 있습니다.
퀀텀의 페트릭 최고경영자(CEO)는 보디 네트워크(bodhi network), 인크체인(ink chain) 등의 앱 서비스에 자신들의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했다고 말한 적 있습니다. 보디 네트워크는 ‘내일 날씨가 어떨까? 비가 올 것 같아’라고 생각한다면 여기에 판돈을 거는 일종의 ‘도박 앱’이며 인크체인은 작가의 저작권을 보호해주는 서비스입니다.
우리 모두 블록체인 기술의 가치에 대해서는 이견의 여지가 없습니다. 정부도 가상화폐 규제안을 발표하며 블록체인의 미래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대통령 직속으로 4차 산업혁명 위원회까지 구성한 정부가 블록체인 기술을 규제하면 앞뒤가 맞지 않죠.
다만 가상화폐에 대한 시각에는 이견이 있습니다. 일단 블록체인과 관련이 없는 것은 아니며, 일종의 결과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또 가상화폐 스스로가 가지는 가치도 있어요. 개인과 개인이 가치를 거래한다는 사용자 경험은 매우 특별한 가치가 있습니다.
미리 마지노선을 구축하지 말자
1차 세계대전 후 프랑스는 142개 요새와 352개의 포대, 5000개가 넘는 벙커를 이어 만든 거대한 마지노선을 구축합니다. 그러나 막상 나치 독일의 기갑부대가 1940년 5월 10일 마지노선의 북쪽 끝인 아르덴 고원 지대로 전격전을 벌이자 맥없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포위망 밖에 모인 80만 명의 프랑스 집단군이 발만 동동 구르는 사이 1940년 6월 11일 프랑스 파리는 함락됩니다.
실전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던 마지노선. 프랑스는 왜 엄청난 자금을 들여 마지노선을 구축하는데 열을 올렸을까요? 당연히 무너질 줄 몰라겠지만, 여기에는 더 내밀한 이유가 있습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는 말 그대로 지옥을 경험합니다. 특히 서부전선에서 벌어진 참호전은 나폴레옹 전쟁 이후 전략의 정석으로 여겨지던 공격 제일주의가 종언을 고하는 결정적인 사태였습니다. 불과 몇백 미터를 진격하기 위해 무수히 많은 프랑스 젊은이들이 피를 뿌려야 했고, 당시 젊은이의 20%가 끔찍한 참호전을 통해 사망했습니다. 한국전쟁 말기에도 발생한 이 끔찍한 사건에 프랑스 정부는 진저리를 쳤으며, 방어가 곧 최고라는 믿음을 가지게 됐습니다. 1차 세계대전의 참호전을 경험했던 안드레 마지노 국방장관이 마지노선 계획을 주도한 것도 이해가 됩니다.
비트코인과 같은 가상화폐와 블록체인에 대한 정부의 접근법도 이와 비슷해 보입니다. 일각에서는 거대한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규제 카드를 꺼냈다는 비판도 나오지만 냉정히 분석하면 꼭 그런 것도 아닙니다. 가상화폐에 대한 규제안은 상당한 균형감각을 보여줬고 블록체인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는 육성으로 방향을 틀었기 때문입니다.
맞습니다. 정부는 두려워하는 겁니다. 그 생각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난 대목이 바로 정부의 가상화폐 규제안과 최흥식 금융감독원장의 13일 발언입니다. 이견의 여지가 없는 육성의 대상인 블록체인을 과감하게 품으면서도 가상화폐 규제에 중심을 잡고, 두 개념을 연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연결하는 순간, 2000년대 논란이 되었던 바다 이야기의 제도권 진출로 이어진다는 공포가 잔뜩 배어있습니다. 그래서 마지노선을 구축하려 합니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정부의 조치도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다소 전향적인 태세전환도 필요합니다.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두렵다는 이유로 움츠러들지 말고, 과감하게 뛰어들어 정확하게 장단점을 파악해 우리의 방식에 맞도록 끌어오려는 의지가 필요하다는 말이 나옵니다. 금융입니다. 디지털 금융의 허브로 부상할 수 있는 이 순간을 포기하지 말고 최악의 사태에 대비하려는 ‘미래 행보’가 필요합니다.
따지고 보면 정부는 항상 그랬습니다. 카풀앱 논란과 배달앱 탄압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움직임으로도 해석되지만 정부는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방어전만 준비한다? 4차 산업혁명 위원회까지 신설한 마당에 무엇을 두려워합니까. 무작정 받아들이고 풀어주자는 뜻 아닙니다. 불안을 해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공부하는 겁니다. 그래서 선점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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