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를 그리다 팀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번 더 소개합니다.
다양한 크기의 망치로는 어떠한 모양과 크기의 못도 잘 박을 수 있다. 그러나 와인병을 열기는 너무 어렵다. 반대로 다양한 툴을 가지고 있으면 못 박는 일에는 효율이 떨어질 수 있겠지만,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문제를 해결해 낼 수 있다.
다양한 크기의 비슷한 능력과 사고방식을 가진 인재들이 모인 회사
vs.
다양한 능력과 다양한 사고방식을 가진 인재들이 모인 회사
이 두 조직은 문제 해결방법이 상당히 다를 것이다. 전자는 모든 직원들이 표준화된 방식으로 빠르게 주어진 일을 할 수 있지만, 새로운 유형의 문제가 나타났을 경우 해결하기가 너무 어려울 것이다.
다양성이 만든 실리콘밸리
미국은 서로 다른 인종과 문화가 동화되어 만들어진 용광로(“melting pot”)에 많이 비유된다. 단일민족, 단일 문화인 우리나라와 많이 대조된다.
지난 13년 동안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여러 단계의 테크 회사에서 일하면서 가장 다르다고 느낀 것은 사고의 다양성과 그에 대한 포용성이다. 팀원의 배경, 직함, 성별이 전혀 걸림돌이 되지 않고, 작은 벤처기업에서 거대 글로벌 기업들까지 회사의 미션을 위한 창조적인 문제 해결 방안과 그 실천에만 힘을 집중한다. 전 세계에 있는 다양한 고객들의 생활에 유용하고 적합한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다양성과 포용성이 필수적이다.
사고의 다양성(diversity)은 실리콘밸리의 특징이자 세계적으로 기술 시장을 리드할 수 있는 중요한 힘 중 하나이다. 내가 본 실리콘밸리 다양성의 모습들은 다음과 같았다.
#나이와 직급
나이와 관련해서 가장 크게 느낀 점은, 나이와 생각의 크기가 전혀 비례하지 않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나는 아직도 대학생이고 인턴이니 회사에 크게 기여할 바가 없어’라든지, ‘내가 이런 생각을 공유하면 직장 상사들이 우습게 여기겠지. 주어진 일이나 조용히, 성실히 하자’ 등의 생각을 하다 보면 좋은 아이디어를 만들어 낼 기회를 스스로 버리게 된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인턴이나 직장 말단 직원이더라도 미팅에 들어가면 듣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미팅에서도 도움되는 관점들을 제시하고 토론에 참여한다. 그리고 경험이 있는 직원들은 당연히 그 의견들을 존중하고 경청한다. 모든 의견이 존중되는 것은 ‘참고 듣는 것’이 아니라 팀을 이루어서 함께 일을 하기 위해 ‘당연한 일’이다.
누군가가 충분한 정보가 없어서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다면 그들에게 자세히 설명을 해 주는 것도 선임(Senior) 직원들이 해야 하는 당연한 업무의 일부이며, 후임(Junior) 직원들을 얼마나 잘 가르쳐서 성장시켰는지도 중요한 인사평가 기준 중 하나이다. 그 평가는 해당 Junior 직원이 직접하며 절대 간과할 수 없는 업무 중 하나이다.
그리고 선/후임과 나이는 전혀 상관이 없다. 특히 스타트업에서는 일찍 들어온 20대의 직원들이 나중에 들어온 30대 후임들에게 정보를 전달하고 가르치는 것이 자연스러운 풍경이다. 물론 의사소통에 권위주의적인 측면이 없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20대가 30대를 가르친다고 해서 어색해하거나 불안해하는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사람들과 생각들
실리콘밸리의 인재들은 전세계에서 온다. 그리고 그 인재들을 평가하는 기준은 그들이 무엇을 이루었고 어떠한 일을 하였는지 (실패한 벤처도 포함해서) 등이다. 학벌은 당연히 절대적 기준이 될 수 없다. 전 세계 대학 순위를 외우고 있지 않는 이상 세계 각지에 대학이 좋은 대학인지 아닌지 알 수도 없다. 학벌이나 이력서 스펙 같은 표준화된 평가 방법이 없다보니 면접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의 능력을 검증하기 위해 많은 인력과 비용이 투입된다. 이렇게 실력을 검증해서 엔지니어, 디자이너, 프로덕트 매니저 등 각 직무에 따라 전 세계에서 가장 일을 잘 할 사람을 학벌과 전공에 구애받지 않고 뽑는다.
현재 실리콘밸리 회사들의 리더들을 보자. 최근 발표된 클라이너 퍼킨스 (Kleiner Perkins Caufield Byers)의 2017년 인터넷 트렌드 보고서 (pg.347)에 따르면, 미국 상위 25대 테크 회사들의 60%가 1세대 혹은 2세대 이민자에 의해 세워졌다.
애플은 시리아 이민자 2세대인 스티브 잡스가 공동 설립했고, 2위인 알파벳/구글도 러시아 이민자 1세대인 세르게이 브린이 공동 설립했다. 이는 창업자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현 구글의 CEO 순다 피차이(Sundar Pichai)나 마이크로소프트의 CEO 사티아 나델라(Satya Nadella)는 인도 태생의 이민자 미국인으로,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미국 기준으로 비주류 배경을 지닌 이들이다. 이런 다양한 배경과 고유의 비전을 바탕으로, 실리콘밸리의 회사들은 여러 방면에서 문제를 관찰하고 해결 방안을 만들어낸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일이 가능할까 생각해 본다.
이러한 사고의 다양성이 존재하는 것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다양성을 포용하고 그 무엇보다 실행으로 옮길 수 있는 것, 자신의 아이디어가 실현되는 것을 보여줄 때에 직원들에게 동기부여가 된다.
#혁신을 이루는 프로젝트들
구글에서 9년 동안 일하면서 경험한 ‘20% 프로젝트’를 비롯해 생각과 의사소통의 흐름/자유로움은 더운 날에 마시는 시원하고 톡 쏘는 사이다처럼 상쾌했다. 이제는 잘 알려져 있지만, ‘20% 프로젝트’는 자신의 일하는 스케줄의 20%는 장기적으로 회사에 도움이 될 만한 본인이 원하는 프로젝트에 할애할 수 있는 일에 선택의 자유로움이다. 이는 어느 공식 프로그램에 지원하는 것도 아니었고, 자신의 매니저에게 허락을 받고, 같이 일할 수 있고 마음이 맞는 팀원들을 유치하여 본인들의 의지와 투기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때론 자체적으로 회사 내에서 발표도 하고 프로젝트 페어(project fair)까지 한다 (밑의 사진은 2007년도 구글 사내 프로젝트 페어이다).
이렇게 해서 나온 프로덕트는 AdSense, GMAIL, Google Talk, Google News 등이다. 그들은 회사에 이바지한 바를 인정받아 창업자 공로상 (Founders Award)를 받기도 한다.
구글이 2004년 IPO 했을 때에 공동 창업자 페이지(Larry Page)와 브린(Sergey Brin)이 쓴 편지 (Founder’s Letter) 에도 다음과 같이 20% 프로젝트에 대해서 언급된 바 있다.
“직원 여러분, 주 업무 외에 20%의 시간을 구글에게 도움되는 일에 할애해 주세요. 여러분의 창의력과 혁신적인 능력이 더 많이 발현되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20% 프로젝트를 통해 광고 플랫폼 AdSense와 구글 뉴스 등 많은 뛰어난 프로젝트들이 탄생했습니다. 어려운 프로젝트들은 성공하기 쉽지 않지만 그 안에서 배울 수 있는 것도 많습니다. 성공한 경우에는 멋진 사업 모델이 될 것입니다.”
사고의 다양성을 실행으로 옮길 수 있는 좋은 기회로 해커톤 (hackathon)이 있다. 이는 아이디어를 제안해서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 (부서와 상관없이) 프로토 타입을 만들기 위해 자유롭게 프로젝트를 해 보는 것이다. 실리콘밸리의 작고 큰 회사들 내에서 흔히 볼 수 있고 축제 분위기 속에서 팀원들끼리 열심히 밤샘 작업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지금 내가 속한 100명도 안 되는 시리즈 B 벤처회사인 컬러 제노믹스, Color Genomics에도 정기적으로 해커톤을 개최하고 있다. 내가 드롭박스 있을 때에도 “Hack Week”을 일년에 두번씩 해왔다. 해커톤이 있는 주 동안에는 컨퍼런스룸이 그 팀원들에게 주어졌고, 해커톤의 시상식을 AT&T Park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메이저리그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야구 스타디움)를 빌려하곤 했다. 페이스북, 트위터, 에버노트 등 많은 기업들이 해커톤을 통해 여러 아이디어가 직원들로부터 제안되고 장기적으로 회사에 기여할 수 있는 프로덕트의 프로토타입의 시작이 되길 기대한다. 부차적으로 직원들과의 친목도 도모할 수 있는 기회가 되며 다양한 아이디어 창출에 디딤돌이 된다.
#다양성에 뿌리를 둔 실리콘밸리의 성공
인재의 다양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그들의 잠재력을 최대화하여 창의적인 기술개발과 기술혁신이 필요한 시대이다. 기업 간 경쟁우위를 유지할 필요가 더욱 더 중요한 세대이다. 글로벌 상장기업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맥킨지 & 컴퍼니가 낸 리포트에 따르면 다양성이 우월하게 반영된 기업들은 산업평균보다 35% 더 높은 이익 창출을 보였다고 한다.
자발적으로 각기 회사들이 다음과 같은 Equal Employment Opportunity (“EEO”) 리포트를 내어 이 분야에 더 심혈을 기울이고자 한다. (리포트 예, Airbnb, Google, Facebook, Apple)
보드리스트(the Boardlist) 여성들을 보드멤버로 유치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이트이며, 유명 벤처캐피털 회사들의 펀딩으로 시작됐다.
복리후생 중에 냉동 난자 (egg freezing)를 포함하는 회사들(트위터, 애플, 구글 등)이 늘어나고 있다. 이는 기존에 있던 혜택에 (on-site daycare, on-site gym, on-site doctor, on-site haircut, 드라이클리닝 등) 회사 내의 모든 직원(워킹맘 포함)들이 일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함으로써, 창의적인 기술 혁명의 씨앗을 심는다고 생각된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종종 다음과 같이 물어본다
‘What problem are you most excited about?’
‘꼭 해결해보고 싶은 문제가 무엇입니까?’
앞으로 우리가 해결해야 할 작고 큰 문제들은 혼자의 힘으로 보다는 다양한 경험과 시각을 가진 최고의 영재들과 같이 창의적인 해결책을 준비하는 과정이 얼마나 즐거운 여정이 될지 기대해본다. 그렇기 때문에 회사의 하루하루가 단순한 월급날이나 여름휴가를 기다리는 즐거움이 아닌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서로에게서 배울 수 있는 성장의 기회인 것이다.
– 글: Christine. 디지털 헬스케어 파트너십 담당. 모바일, 클라우드 서비스에 많은 경험. 조직의 다양성, 성장형 마인드셋, 여성 CEO 스타트업에 관심이 많음.
– 그림: Chili. 디자이너. 생각을 그림으로 요약하는데 관심이 많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