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프터모멘트 크레이티브 랩 박창선 CEO가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번 더 소개합니다.
맨날 브랜딩이 안되는 이유만 하고 있으니 너무 까칠해 보이기도 하고, 뭔가 꼴사납기도 해서 시선을 조금 돌려보았습니다. ‘주변에 잘 나가는 브랜드들은 당최 왜 저렇게 잘되어가고 있는가’라는 쪽으로 말이죠. 물론 회사 내부 사정이야 제가 재무제표를 까본 것이 아니니 카드 돌려막기를 하는지 어떤지는 알 수 없으나, 여튼 소비자 입장에서 딱 들으면 ‘아 그거’하고 알만한 것들에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회사 자체의 문화나 비지니스 내적인 부분은 모르는 셈치고 일단 ‘브랜딩’에 성공한 3가지의 케이스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위에서 말했다시피, 사내 시스템/문화/재무상태가 어떻게 돌아가느냐에 상관없이 브랜딩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브랜딩이란 것은 회사가 ‘이렇게 하쟛!’이라고 해서 이렇게 ‘챡’ 되는 부분이 아니기에, 소비자들이 알아서 판단할 몫이지요. 때문에 어그로를 끌수도 있고, 언플을 할 수도 있고, 셀럽을 동원할 수도 있고, 기타 등등 다양한 발버둥을 치지만 그 결과가 엉뚱하게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결과적으론 브랜딩에 성공하기도 하고, 백날 노력해도 폭망과 닭발과 소주로 귀결되기도 하지요.
1. LG전자, 마케팅을 하지말자
LG는 원래 백색가전이 굉장히 유명했습니다. 하지만, LG가 삼성보다 실제로 가전쪽의 품질이 우수할까요? 뭐 항간의 소문에는 모터달린 것은 LG것을 사라는 얘기도 있었지만, 그것은 낭설일 뿐입니다. 물론 품질면에서 누가 더 낫다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LG의 백색가전은 튼튼하고 오래 쓸 수 있죠. 그러나 백색가전 신디롬의 팩트는 어떤 데이터나 근거가 아닌 그저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얘기일 뿐입니다. 이것이 퍼져나간 것은 바이럴의 힘입니다.
보통 백색가전은 신혼부부의 수요가 많고, 순환주기가 느린 편입니다. 이 얘기는 한 번 살 때 이것저것 꽤나 따져보게 된다는 이야기죠. 그러나 태어나서 한번도 냉장고, TV, 세탁기를 내 돈으로 사본 적이 없는데 혼수를 장만하려니 뭐 알겠습니까? 그러니 커뮤니티와 인터넷 노가다를 통해서 정보를 얻게 되는데, LG는 대기업입니다. 삼성과 항상 비교 당하죠.
‘1등 제품은 물론 겁나 좋다!!’라는 인식이 있지만, 비싸다..라는 선입견도 함께 작용합니다. ‘2등은 저것보단 조금 안좋겠지만 특정 부분은 좋다더라. 근데 2등이니까 조금 더 쌀거야.’라는 말도 안되는 사고회로가 작용합니다.
이것은 순위에 대한 선입견이 개입하면서 발생하는 논리의 오류입니다. 실제로 LG가 삼성보다 싸진 않습니다. 오히려 비싼 제품군들도 있죠. 그리고 뭐가 좋다, 안좋다에 대한 명확한 판단의 근거가 없습니다. 그냥 소비자는 아는 언니가 써보니 좋았다더라는게 ‘옆집 이모통신‘의 정보가 더 신빙성있게 다가오기 마련이니까요.
게다가 오래 쓰기 때문에 구매에 있어서 인지부조화가 잘 이루어지는 편입니다.
단점이 생활로 카바되는 거죠. ‘저놈의 세탁기가 덜덜덜덜덜더더덜덜덜덜 거려도 쓸만하고 잘 빨리더라’ 등…어차피 오래 쓸 내 가구니까 기왕이면 장점을 보자..라는 인지부조화의 오류가 재구매로 이어지는 이상한 기현상을 만들기도 합니다. 내가 쓰고 있으니, 그걸 추천하고 싶은 것도 당연합니다. 단 레몬 합리화죠. 내가 가지고 있는 레몬은 달고 맛있다고 여기는 거예요. ‘내 제품은 쓰레기니 이거 사지마!!’라고 할 사람은 사실 거의 없습니다. 만약 있다면 진실과 진리를 탐구하는 머나먼 역사 속 성현의 후손으로 생각하고 발을 씻겨드릴 수 있습니다. (실제로 있긴 합니다.)
분명 LG의 마케팅은 거지같습니다. 뭐 요즘엔 LG그램 광고를 이 실험 저 실험하면서 열심히 하고 있긴한데…정작 굉장한 능력들은 쉽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이건 LG 마케팅 팀의 기본전략이 다소 보수적이고 교과서적인 STP전략을 따르고 있는 탓이 큽니다. 타켓에 필요한 특정 기능만을 부각하고 나머지는 감추는 셈이죠. 감춘다기 보단 아예 얘기를 안한달까요. 물론 마케팅 팀이 일을 안하는 것도 있지만, 개판치는 경우도 많습니다.
LG V20의 티저 광고 문구 “듣다 보다 그 이상”의 경우는 세로드립으로 듣보잡? 이라는 놀림을 받기도 했고,
LG G5의 제품 사진 한 가운데 애플 로고가 떠 있기도 했습니다. 이건 뭐..아예 검수를 안한건지…
게다가 좋은 제품의 특성들은 그냥 쌩까버리죠. 토네이도에 날려 던져진 냉장고가 고장없이 작동하고 있었다던가, LG그램의 무게를 최저가 아닌, 평균치로 계산해버려서 오히려 10g 무겁게 광고한다던가… 뭔가;;; 오전에 알밤막걸리 한잔씩하고 일하는 건지 흥미진진한 마케팅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고객들이 알아서 마케팅을 해주겠다고 장점들을 찾아서 마구 뿌려줍니다. 물론 가십과 루머들이 많지만, 자연스러운 바이럴이 이루어지면서 고객들 자체적으로 LG는 마케팅을 안할 뿐, 잘하는 기업이라는 인식을 만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 2위에 대한 측은함,
- 제품에 대한 만족도,
- 마케팅에 대한 불만
이 섞이면서 몇몇 덕력 넘치는 사람들의 소수 가십으로 시작된 바이럴브랜딩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처럼 인간의 행동과 움직임은 역회전시켜서 던진 탱탱볼과 같습니다. 심리적 반동과 인지부조화, 불만의 역주행 등..다양한 구매심리가 뒤섞이고 서로 방향을 달리하면서 예상치못한 흐름을 만들어내기도 하죠.
2. 한결같이 키치한 배달의민족
배민의 브랜딩은 이미 유명합니다. 사실 분석하고 말 것도 없죠. 물론 내부적인 이런저런 사정이야 있겠지만, 브랜딩을 하는 사람들에게 아주 유용한 레퍼런스임은 변치 않는 사실입니다. 소비자입장에서 배민의 브랜드는 ‘한결같음’ 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비지니스가 한결같았냐..하면 그건 아닙니다. 배달앱으로 시작했고, 푸드플랫폼으로 확장하다가, 지금은 반찬가게 느낌으로 바뀌었습니다. 종종 도시락을 배달시켜먹곤 했는데, 어느 순간 반찬만 가득하더라구요. 분명 비지니스는 역동적으로 바뀌고 있지만 중요한 건 그걸 눈치채지 못하게 정말 한결같은 브랜드 철학을 고집했다는 겁니다.
배민의 브랜드컨셉은 전반적으로 ‘키치함’ 입니다. 위트있고 유머러스한 언어유희와 아주 대중적인 것과 의외의 것들을 섞은 치믈리에 프로젝트 등 어렵고 복잡한 것이 아닌,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쉬운 언어’를 사용합니다. 이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대부분의 회사가 제품과 서비스의 장점을 극대화시키려고 전문용어나 추상적인 용어를 남발하는 것에 비해 배민의 언어는 8살짜리도 이해할 수 있죠. 또한 브랜드와 관련한 다양한 굿즈들이 제작되면서 인스타와 페북에 널리널리 퍼져가기 시작했습니다. 이 굿즈들은 은행로고 박혀있는 2017년 달력같은 게 아니라, 그 자체로 소장하고 싶은 욕구가 넘치는 재밌고 예쁜 것들이었죠. 사람들은 배민 브랜드제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자랑하고 싶어했습니다. 그냥 사은품이나 한낱 판촉물이 아니라, 그것 자체가 곧 완성된 제품과도 같았죠.
하지만 대부분의 회사는 어떤가요. 그 3색 펜에다가 로고 띡 박아서는 졸라 어디가서 쓰지도 못하게 촌스러운 투명초록색 목걸이펜 증정품….이라던지, 다이어리 뒷면에는 왜 꼭 무슨 생명..하고 턱 하니 박아서 들고다니면 친구에게 …’어….오..오랜만이긴한데..너 요즘 보험하니…?’ 라는 소리나 듣게 만드는 그런 것들 투성입니다. 일단 판촉물자체의 퀄리티가 낮은데 그것에 정성도 없고, 브랜드굿즈라는 인식도 없습니다. 로고만 박혀있으면 끝났다!!~~~라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죠.
배민의 브랜드 성공비결은 개인적으론
- 한결같은 쉬운 언어와 키치함
- 모든 것에 브랜드 언어를 녹여낸 치밀함
- 공감과 트렌드를 적용한 멋진 워딩들
이라고 생각합니다. 소비자가 임의대로 조작한 이미지가 아니라, 배민이 원하는 이미지 그대로 시장에 퍼져나가도록 아주 일관성있고 지속적인 브랜딩을 진행했다고 봅니다. 물론 직접 그런 의도로 하지 않았어도…이미 그렇게 보인달까요.
3. 카카오의 강력한 무기, 캐릭터와 컬러
세번째는 카카오입니다. 카카오의 브랜딩은 말할 것이 없죠. 뭔가 유쾌하고 트렌디하지만 배민의 그것과는 확연히 다릅니다. 카카오에 대해선 마케팅 부분에 대한 여러가지 분석해놓은 글들이 많아서, 여기선 그것까진 논하지 않겠습니다. 비쥬얼적인 부분만 볼께요. 일단 카카오의 브랜딩을 선도적으로 이끌었던 것은 다름아닌 ‘캐릭터’ 입니다. 그리고 ‘색깔’이죠.
카카오의 캐릭터는 정말 엄청나게 귀엽습니다. 놀라운 건 이 귀여움이 스토리를 눌러버렸다는 것이죠. 흔한 상식으론 ‘캐릭터 = 스토리’라는 공식이 있습니다. 스토리가 탄탄한 캐릭터가 성공한다는 것이 일반론이죠. 하지만, 아직도 라이언이 사자인지 곰탱이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널려있고 무지가 토끼라는 등등… 이런 모습을 보면 사실 ‘스토리가 정말 중요한 것인가??’라는 의문이 듭니다. 귀여움은 스토리보다 강한 것 같습니다. 게다가 저 캐릭터는 사실 이모티콘으로 시작했던 것이라서 그 캐릭터 자체라기 보단 ‘언어의 일환’으로 작용했습니다. ‘이모티콘=언어’인 셈이죠. 언어. 사람들끼리의 유대와 문화를 만들어가는 가장 강력한 요소입니다.
언어. 사람들끼리의 유대와 문화를 만들어가는 가장 강력한 요소.
캐릭터를 보내고 받는다는 것은 곧 ‘카카오의 브랜드’가 언어가 되고 문화가 되어간다는 얘깁니다. 한 번 습득한 언어는 쉽사리 바뀌지 않죠.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조한 것에 비하면 상놈이겠지만, 여튼 캐릭터 이모티콘과 움짤 이모티콘으로 21세기의 새로운 나랏말쌈을 지으셨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두 번째 요소는 컬러입니다. 뭐 기업의 색깔이 있니..그 딴 색이 아니라, 그냥 진짜 ‘컬러’ 말입니다. 노랑. 카카오하면 딱 떠오르는건 노란색입니다. 그것도 꽤나 쨍한 노란색이죠. 채도가 엄청 강합니다. 사실 브랜드의 색으로 적합할까??? 싶기도 할 정도의 강렬한 노랑에, 심지어 아주 짙은 갈색톤의 백그라운드가 있습니다. 엄청난 대비죠.
누가봐도 그냥 카카오입니다. 이런 강력한 색대비를 통한 비쥬얼 브랜딩은 사실 유일무이하다고 보여집니다. 딱 떠올려보면, 온라인 기반 서비스 중 색으로만 설명되는 브랜드가 떠오르시나요? 사실 그리 많지 않습니다. 메인 앱이미지의 색정도는 있겠지만, 이렇게 온통 노란색으로 치덕치덕해놓은 곳은 드물죠.
비쥬얼브랜딩이 어떻게 전체 브랜드를 지배할 수 있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색은 매우 원초적인 개념입니다. 딸기는 빨강, 바다는 파랑, 하늘은 하늘색 등..우리는 딱 사물과 색을 연결시켜서 인식하려고 합니다. 포도가 흰색이면 아주 개떡같겠죠? 회색 수박을 생각해보셨나요? 그렇습니다… 이 개념은 쉽사리 바뀌지 않습니다. 시각정보 중에서 가장 강력한 브랜딩수단은 바로 ‘색’ 입니다. 카카오는 이 부분을 성공적으로 녹여냈고, 모든 굿즈와 제품, 서비스에 동일한 컬러패턴을 유지시켰습니다. 대충 누가봐도 카카오란 것을 알 수 있는 비쥬얼컨셉은 사실상 사람들이 ‘카카오’와 ‘다른 어떤 것’을 구별시키는 데에 크게 기여했죠.
마지막으론 서비스포인트입니다. 사실 요즘에 카카오가 아닌 곳이 없습니다. 카카오톡은 물론이고, 택시, 팝업스토어, 악세서리, 네비게이션, 뱅크까지 생활전반의 크고작은 부분에 카카오 서비스가 침투해 들어가기 시작하는데, “뗄레야 뗄 수 없는” 것들에 잠식하기 시작하면서 브랜드라기 보단 하나의 인프라로 작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문제도 많았죠. 카카오 계열사 중에선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폭망한 것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소비자 입장에선 알바가 아니죠.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카카오택시가 택시를 잘 부르는 장땡이니까요.
이러한 인프라가 만들어지기 위해선 이미 성공적인 브랜드구축을 기반으로 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서비스를 키워나가면서 다시 브랜딩이 되는 식의 순환구조를 만듭니다. 브랜드의 힘은 이미 정보와 신뢰, 기성 인프라의 축을 흔들고 있습니다. 가장 보수적이고 신뢰를 기반으로 한다고 여겨지던 은행업계에 파급력을 미치면서 그것을 증명했죠. 이미 시대는 정보의 독점이나 어려운 용어와 절차를 통해 상하관계를 만들던 시대를 넘어섰습니다. 누구든 정보에 접근할 수 있고, 고객들은 선택의 폭이 넓어졌으며 똑똑해졌습니다. 기고만장하게 콧대세우고 있는 은행들의 잣가지 높아 고고한 서리바람 아래 화랑의 모습보단 친구같고 편안한 은행인 카카오에 방향을 돌린 것은 그 이유입니다.
카카오의 브랜딩포인트는
- 새로운 언어를 창조하다
- 강려크한 색으로 아이덴티티를 규정하다
- 브랜드, 인프라가 되다.
입니다.
[눈으로 보이는 생각 : Branding] 시리즈
(8) 디자이너를 위한 표정으로 알아보는 클라이언트의 유형
(7) 뭔가 조금 솔직한 제안서 이야기(팩트폭행주의)
(6) 마케터를 위한 알쏭달쏭 클라이언트들의 용어정리
(5) 회사소개서를 만들어보자! (빡셈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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