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욱님이 브런치에 작성한 글을 모비인사이드에서 소개합니다.
0에서 1이 되는 것은 1에서 10이 되는 것과 완전히 다르다. 그 뒤에는 수많은 삽질의 역사가 숨어 있다. 대부분의 첫 번째 출시 제품은 대부분 구리다. 그런데 소비자들은 절대 구린 제품을 구매하지 않는다. 스타트업이 만들었다고 해서 품질을 타협해주지도 않는다. 그들은 그냥 좋은 제품을 좋은 가격에 구매하면 그만인 것이다. 그 제품을 스타트업이 만들었는지 대기업이 만들었는지는 알 바 아니다. 더욱이 무료로 사용하는 제품이 아니라 ‘유료’로 구매해야 하는 제품이라면 더 더욱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누군가에게 처음으로 ‘유료’로 제품을 판매했다는 것은, 그리고 그 사용자가 만족을 느끼고 다시금 구매하러 온다는 것은 단순히 사용자가 한 명 증가한 것이 아닌 위대한 시작을 의미한다. 그 첫번째 숫자 뒤에는 제품을 만든 모든 사람의 엄청난 삽질의 역사, 고난의 시간이 녹아 있다. 그리고 이들이 삽질을 많이 하면 할수록, 고민의 깊이가 깊으면 깊을수록 경쟁자들보다 앞서 나갈 수 있다.
그런데 이 삽질의 역사에는 단순히 시장에 적합한 제품을 만드는 과정만 포함된 것이 아니다. 회사를 만들고 운영하는 온갖 자질구레하지만,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일들이 포함되어 있다. 처음에는 이런 일들이 너무 시간을 많이 빼앗고 본질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적당히 무시하거나 후딱 처리하려고 했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어느 정도 가능했다.
하지만 독일에서는 불가능했다. 게다가 안정적인 생활이 세팅되지 않으면 일의 효율성에도 치명적인 영향을 주었다. 성격이 정말 급한 나에게 지옥 같은 시간이었다. 나도 독일에서의 삶에 대해 간간이 블로그 글을 많이 참고해서 나의 삽질의 역사도 다음번에는 누군가에게 큰 도움이 되기를 희망한다. 매우 디테일한 내용이 있기 때문에 혹시 독일에서 사업을 시작하지 않을 분들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독일에서 혹독한 3개월을 겪은 후 느낀 점은 지금까지 내가 독일에 대해 가지고 있던 이미지는 상당 부분 허구라는 것이다. 그 이미지는 아래와 같다.
1) 독일 사람들은 시간 약속을 잘 지킨다.
2) 독일 사람들은 일 처리가 느린 대신 매우 철저하다.
3) 독일 사람들은 신뢰를 중요시한다.
글쎄…내가 조금 더 살아보면 달라질지 모르겠지만, 내가 지금까지 겪은 바로는 위 세 가지 인식은 모두 잘못되었다. 이 사람들은 약속 시각을 딱히 잘 지키지 않고, 일 처리가 지독하게 느린데 철저하지도 않으며, 자신들이 한 말을 잘 지키지도 않는다. 독일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유럽’이었다.
독일에서 정말 힘들었던 건, A를 하려면 B가 되어야 하고, B를 하려면 C가 되어야 하는데, C가 완료되는 건 기약이 없다는 것이다. 모든 일이 다 이런 식이었다. 내가 독일에 오자마자 가장 시급하게 마무리해야 했던 일은 아래와 같다.
1) 법인 설립
2) 사무실 구하기
3) 11명의 집 구하기
4) 비자 발급하기
근데 나는 독일을 너무 (x1000) 몰랐기 때문에 이 일들이 1개월이면 다 해결될 줄 알았다. 이렇게 힘들 줄 알았으면 더 일찍 독일에 왔을 것이다. 저 네 가지는 서로서로 너무 얽혀 있어서 주제를 명확히 구분하긴 어렵지만, 일단 나눠서 하나하나 경험을 공유해보겠다.
독일에서 회사 세우기 & 사무실 구하기
독일로 이주하기 2개월 전 베를린에 있는 한인 교포 변호사를 소개받았다. 이 분은 꽤 저렴한 가격에 (이 때는 저렴한 줄 몰랐는데, 지금 와서 독일 변호사들의 어마어마한 인건비를 보니까 엄청나게 저렴한 가격이었다) 빠르게 일을 진행해주시고, 이미 한국 기업들의 독일 정착을 여러 차례 진행해본 경험이 있으신 베테랑이었다.
한국에서는 내가 법인 설립을 직접 발품 팔아가면서 했었기 때문에 솔직히 회사 세우는데 뭐 이렇게까지 큰돈을 써야 하나 싶긴 했지만, 어쨌든 내가 전혀 모르는, 그리고 정보를 얻을 수도 없는 일인 데다가 다른 일로도 매우 바빴기 때문에 일단 진행하기로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혼자 해볼 수 있었을 거라는 발상은 너무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나 혼자서는 절대 못 했을 것이다.
첫 번째 문제는 회사 이름을 정하는 것에서부터 터졌다. BEPRO라는 이름 자체가 소프트웨어 업종은 아니지만 다른 업종의 회사에서 비슷하게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그와 유사한 모든 이름을 전부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2년 가까이 사용해오던 회사 이름을 갑자기 새로 만들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1개월 내내 고민하다가 결국 Epiko CS GmbH라는 이름을 우선 사용하기로 했다. 솔직히 그다지 마음에 들진 않지만, 언젠가 상표권을 출원하고 다시 비프로라는 이름을 되찾길 희망하면서 우선은 진행했다. 이름을 정한 다음에 실질적으로 어떤 일들이 진행되었는지는 변호사님이 다 진행해주셔서 잘 모르겠다. 원래는 사무실을 먼저 구한 다음에 그 사무실을 주소로 법인을 세워야 하는데 우리 같이 사무실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사무실 주소만 빌려주는 곳이 있어서, 거기에 비용을 지급하고 우선 진행하기로 했다. 내가 이후에 해야 했던 것들은 함부르크에 첫발을 딛고 2일 뒤에 공증 변호사 서명을 하기 위해 무려 베를린까지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독일 에어비앤비 데뷔전 (난이도★☆☆)
드디어 6월 19일에 함부르크에 처음 도착했다. 집이 금방 구해질 줄 알고 그냥 저렴한 에어비앤비 방을 일단 10일 예약했는데, 도착해보니 내가 지금까지 가 본 에어비앤비 방 중 최악이었다. 분명히 침대가 2개라고 했는데 사람 하나 겨우 누울 수 있는 소파베드 하나가 전부였고 모든 게 낡고 더러웠다. 도저히 여기서는 못 살겠다 싶어 호스트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첫날 하루만 간신히 보낸 뒤 나머지 예약을 취소했다. 에어비앤비로 예약한 방 사진을 찍어두지 않은 게 정말 아쉽다. 에어비앤비 목록에는 분명히 침대도 2개이고, 모든 게 완벽하다고 되어 있었는데 아무것도 갖추어져 있지 않아서 그 내용을 에어비앤비 리뷰로 남겼다.
그리고 새로운 에어비앤비 방으로 이사한 이후에 이런 연락을 받았다.
자초지종은 이렇다. 첫날 에어비앤비 체크인을 할 때 호스트가 직접 오지 않고 호스트가 고용한 어떤 흑인 친구가 와서 인수인계를 해주었다. 아마 이 친구가 그 집을 전적으로 관리 담당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내 리뷰를 보고 호스트는 그 친구가 일을 잘못했다고 생각해서인지 그 친구를 혼냈고 그 친구가 화가 나서 나에게 전화/왓츠앱 메시지 폭탄을 날린 것이다. 독일어랑 영어가 뒤죽박죽이지만 뭐…무슨 말인지는 알 것 같다. 내가 여행객이었으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텐데 여기 살 생각으로 오자마자 겪은 일이라 솔직히 조금 무서웠다. 나도 화가 나서 호스트에게 “아니 내가 무슨 악담을 퍼부은 것도 아니고, 침대는 2개라고 했는데 실제로는 소파베드 1개만 있었고, 좀 ‘낡았다’라고 리뷰를 단 게 이렇게까지 ‘fucking guy’ 소리를 들을 정도의 일이냐”라며 따졌고 에어비앤비에 정식으로 제보하겠다고 했다. 호스트는 이 친구가 일자리를 잃은 건 아니고 그냥 일 제대로 안 하면 해고하겠다고 혼내기만 했다고 얘기했다. 결국은 그 호스트가 잘 달래서 이 친구가 왓츠앱으로 더 전화 하진 않았는데 독일에 오자마자 아주 뭣 같은 경험이었다.
설마 내가 이 글에 썼다고 또 뭐라 하진 않겠지…?
독일 기차 데뷔전(난이도★★☆)
그리고 독일에 오고 3일째 되는 날 공증 변호사 앞에서 ‘사인’ 만 하러 글로벌 디렉터 형과 아침부터 베를린에 갈 준비를 했다. 그 날 아침에 진짜 심각할 정도로 태풍이 몰아쳤는데 진지하게 그냥 가지 말까 생각하다가 비바람을 뚫고 겨우겨우 역에 도착했다. 함부르크에서 베를린까지는 기차로 2시간 정도 거리인데 이 때는 우리가 기차를 어떻게 예약하는지 몰라서 그냥 기차역에 가서 표를 사는 바람에 한 명당 5~60유로 안팎이면 사는 기차표를 한 사람당 무려 120유로 가까이 주고 구매했다. 12시 기차였고 2시에 베를린에 도착하면 3시 30분에 있는 공증 변호사 예약까지는 시간이 충분했다. 날씨는 언제 태풍이 왔었냐는 듯이 매우 좋았다.
그렇게 20분 정도 달려서 함부르크 외곽의 시골을 달리던 중에 기차가 갑자기 정차했다. 뭐 잠깐 일이 있겠거니..,하고 잠깐 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1시간이 지나도 기차가 움직이지 않는 것이었다. 이제 조금만 더 늦으면 정말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할 상황이라 기차 승무원에게 무슨 상황이냐고 물어보았다. 승무원은 태풍 때문에 나무가 부러져 선로가 차단되어 모든 기차가 지금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인데, 언제 다시 출발할 수 있을지는 모른다고 했다. 다른 사람들은 기차 밖에 나와 날씨를 구경하거나, 사진 찍거나, 담배를 피우거나 기차 안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다들 태평하게 전화로 “기차가 지금 운행을 안 해서 오늘 약속은 못 갈 것 같아.”라고 말하고 여유 있게 보내고 있었다. 정말 믿을 수 없는 문화충격이었다. 결국, 기차는 12시 30분 정도에 멈췄다가 5시 정도에 다시 운행하기 시작했고, 베를린에는 오후 6시에 도착했다. 공증 변호사 예약은 다른 날짜로 미뤘고 그 날은 간단히 변호사분을 만나서 앞으로 어떤 절차 남았는지 설명만 듣고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돌아올 때도 오후 9시 기차를 끊었는데 10시 30분까지 기차가 안 와서 1시간 30분을 역 안에서 기다렸다. 그 1시간 30분 동안 누구도 기차가 언제 오는지 알려주지 않았고 기차가 왔을 때 바로 타지 않으면 그냥 기차는 떠나버리는 상황이라 어디 다른 곳에 가 있을 수도 없었다. 아니 이게 말이 되는 상황인가? 보상도 없나? 독일인 친구에게 물어보니 그런 기차 연착은 종종 있고 뭐 보상받을 순 있지만 좀 귀찮을 거라고 했다. 독일에서 개고생의 시작이었다.
독일은 정말 무식할 정도로 서류 작업을 중시하는 나라이다. 모든 중요한 서류는 메일도 아니고 ‘우편’으로 전달되고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팩스를 보내야 하기도 한다. 언제적 우편과 팩스를… 그러다 보니 출력하고 서명한 뒤 스캔을 해야 할 일이 많았는데, 처음에는 얼마 되지 않을 줄 알고 근처에 있는 카피 샵에 가서 출력 및 스캔을 했다. 여기는 사람 노동력이 말도 안 될 정도로 비싸서 고작 5장 정도 출력하고 서명해서 스캔하는데 5.20 유로가 넘게 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생각보다 자주 스캔을 할 일이 생기자 그냥 앞으로 사무실에서 쓸 겸 복합기를 하나 구매하기로 했다. 중앙역 근처에 있는 전자상가에서 복합기를 사서 들고 집까지 오는데 갑자기 비가 엄청 쏟아져서 비를 쫄딱 맞으며 복합기를 들고 숙소까지 왔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내가 이 고생을 하는가 생각이 들었다.
독일 집 구하기 데뷔전 (난이도★★☆)
회사 설립을 진행하는 동시에 모든 멤버들이 살 집을 동시에 구하기 시작했다. 독일은 집 구하기가 현지인들도 정말 정말 어렵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과연 우리 같은 아시안이 빨리 구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독일에는 immobilienscout24와 immowelt라는 서비스가 있다. 우리나라의 직방/다방 같은 부동산 매물 서비스다. 여기에 가입해서 올라와 있는 사진과 옵션을 보고 마음에 들면 집주인 또는 에이전트와 연락해 예약을 잡는다. 집을 직접 한 번 본 후에도 마음에 들면 계약을 진행하는 구조였다. 뭔가 전화로 물어보기는 좀 꺼려져서 우선은 마음에 드는 매물들에 모두 이메일을 쭉 돌렸다. 그러자 꽤 빨리 두 곳에서 특정 날짜에 보러 오라는 답장이 받았다. 그때는 “뭐야 생각보다 쉬운데?”라고 생각했다.
처음으로 집을 보러 예약 시간에 맞춰 도착했다. 그 집은 5명 정도가 한 방씩 쓸 수 있는 2층 집이었는데 정원도 있고 동네도 한적해서 정말 좋았다. 그런데 30분을 기다려도 아무도 오지 않았다. 전화해도 한참을 받지 않다가 마침내 받아서는 “미안하다. 약속을 잊어버렸다다. 다른 날 다시 잡자”라고 했다. 하…그래서 알겠다고 하고 왓츠앱으로 언제 시간 가능한지 물어봤는데 그 이후로 영영 답장을 받지 못했다. 독일인들은 약속 시각 칼같이 잘 지킨다며?
그리고 또 다른 집을 보러 가게 되었다. 이번에는 약속시간에 맞춰 집을 볼 수 있었고, 우리가 직접 본 첫 번째 독일 집이었다. 그 집은 어린 아기와 부부가 살던 집이었는데 시내에서 약간 멀긴 했지만 대중교통으로 충분히 가능한 거리였고 무엇보다 집이 정말 환상적이었다. 3층 집인데 정원도 있고 모던하고 방도 5명 정도가 여유 있게 쓸 수 있었다. 게다가 화장실과 샤워실도 충분했다. 그 이후에 정말 수많은 집을 봤지만 아직도 그 집 같은 집은 본 적이 없다.
마침 그 집 세입자 남편도 개발자였는데 베를린으로 발령을 받게 되어서 급하게 집을 내놓게 되었다고 한다. 그 세입자들의 계약 기간이 1년 정도 남아서 그 임대 계약을 재임대하는 형식이었고, 1년이라는 시간이 좀 짧게 느껴지긴 했지만 어쨌든 지금 당장 5명의 집을 바로 구할 수 있다는 사실과 집의 퀄리티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심지어 당장 7월 1일에 바로 이사할 수 있다고 했다. 아쉽게도 1년 이후에는 집주인 아들이 살게 되어 그 이상 계약을 연장할 수는 없다고 한다. 세입자 부부는 아시아인들은 실내에서 신발도 안 신고 무척 깨끗하게 집을 쓴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우리도 그 부부가 괜찮은 사람들인 것 같아 바로 계약을 하고 싶었다. 집주인들에게는 본인들이 적극적으로 추천하겠다고 했다. 뭐야 집 구하기 너무 쉬운데? 처음으로 보러 간 집을 바로 계약?
형이랑 나는 기쁜 마음에 팀원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한국에서 독일로 넘어오자마자 바로 여기로 들어오면 될 거라고 얘기했다. 세입자 부부에게 허락을 구한 뒤 한국에서 모든 짐도 전부 이 집 주소로 보내달라고 했다. 그래서 급하게 필요한 항공 배송 짐과, 40여 일이 걸리는 선박 배송 짐이 모두 그 집 주소로 출발했다. 그리고 이후 집 계약서를 준비했다. 집주인을 위해 우리가 여기에 무슨 일을 하려고 왔는지, 여기서 급여는 얼마나 받는지 등등 필요한 자료를 준비했다. 이제 5명의 팀원이 거주할 집 문제는 해결됐다. 다른 나머지 팀원 4명의 집과 또 다른 팀원 부부가 살 집 하나씩만 구하면 되겠다는 생각에 그 집들을 집중적으로 알아보고 있었다.
그렇게 1주일이 지났을 즈음 이런 연락을 받았다.
읽기 귀찮은 분들을 위해 요약하자면, 남편의 베를린 프로젝트가 취소되어서 남은 계약 기간 동안 함부르크 그 집에 계속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헐! 이미 구해진 줄 알고 팀원들에게는 얼른 함부르크로 넘어오라고 했는데…게다가 짐은 이미 이 주소로 다 보냈고 심지어 이 집에 거주할 팀원들은 임시 에어비앤비가 필요 없을 거란 생각에 에어비앤비도 알아보지 않고 있었다. 어쩐지 일이 잘 풀린다 했다.
그래서 결국 이 집은 계약하지 못했다. 우편으로 이미 보낸 물건들은 나중에 따로 가서 한 번에 받았다. 에어비앤비를 통해 처음 5명이 지낼 곳만 예약했다가 취소하고 9명 (부부 2인 제외) 멤버가 모두 함께 지낼 수 있는 곳으로 일단 급하게 5일 정도만 예약했다. 이때 느낀 교훈은 (세계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겠지만) 독일에서도 ‘사인하기 직전까지는 아무것도 믿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얼마 뒤 팀원들 모두 함부르크에 도착했다. 나와 디렉터 형은 9명이 함께 지낼 수 있는 에어비앤비 방에서 팀원들을 맞이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모든 멤버들과 함께 개고생 할 거라고는 여전히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처음 9명이 함께 지내는 5일 정도의 삶은 나름 꽤 재밌었다. 마치 독일로 워크숍을 온 기분이었다. 마침 팀원들이 도착한 날이 금요일 저녁이었기 때문에 매일 이것저것 같이 해먹을 수 있었다. 저녁 늦게까지 술을 마시며 독일 정착의 기분을 만끽했다.
그 이후 우리 9명 모두 집을 나와 에어비앤비를 통해 1개월 통째로 3팀으로 나누어 방을 구했다. 이사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지나고 나니 힘든 사실도 다 잊어버렸다.
독일 사무실 구하기 (난이도 ★☆☆)
그리고 집을 구하는 동시에 사무실도 구해야 했는데, 일단 사무실을 구하기 전까지는 ‘베타 하우스’라는 코워킹 스페이스를 사용하기로 했다. 독일에서는 인터넷이 꽤 빠른 곳이고 조용히 집중하기도 좋아서 모든 팀원들이 처음에 만족했다. 그리고 베타 하우스에 있는 사람들과도 오며 가며 인사하고 친해질 수도 있어서 아주 괜찮다고 생각했다.
사무실을 구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독일은 부동산 에이전트 구조가 한국과 다른데, 부동산 에이전트 수수료를 건물주 또는 집주인이 100% 부담하는 구조였다. 부동산 에이전트는 세입자를 대변하는 데 비용은 건물주로부터 받는 신기한 구조였다. 보통 에이전트 비용은 3개월 치 임대료 정도로 꽤 높다.
집은 공급에 비해 수요가 항상 넘쳐났지만, 사무실은 그렇지 않았다. 당연히 사무실이 집보다 비싸기 때문에 사무실을 구해주는 전문 에이전트는 많지만 집을 구해주는 에이전트는 사실상 거의 없었다. 우리를 도와주던 에이전트는 Cushman & Wakefield라는 꽤 나름 유명한 회사의 Jan이라는 친구였는데, 이 친구의 도움으로 여러 사무실을 쭉 둘러보았다. 그러던 중,
1) 이전에 페이스북과 에어비앤비 지사가 사용했으며
2) 완전 교통의 요지 역세권에 위치한 데다
3) 1층에 스타벅스가 있고
4) 건물주도 IT 기업 친화적인지라 인원이 늘어나면 추후 건물 다른 층으로 확장이 가능하며
5) 바로 입주할 수 있고
6) 임대료도 저렴한 엄청 좋은 사무실을 찾게 되었다.
우리에겐 무엇보다도 최대한 빨리 입주하는 게 중요했는데 다른 사무실들은 보통 공사를 하면 8주가량 소요되어서 그 시간 동안 코워킹 스페이스에 있어야 했다. 신기한 건 사무실 공사를 입주하는 회사가 원하는 구조대로 다 할 수 있는 데, 이 공사 비용도 건물주가 부담한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벽 구조를 바꾸고 싶다든지, 새롭게 벽을 쳐서 공간을 나누고 싶다든지, 벽지를 새로 바르고 싶다든지 등등의 것들을 건물주가 해주고 그 공사 기간에는 임대료를 내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시간을 기다릴 수도 없고 귀찮기도 해서 최대한 우리가 원하는 구조가 잘 세팅된 사무실을 원했다.
그때는 새로운 사무실에 입주하기까지 8주 넘게 걸릴 것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문제는 인터넷 설치였다. 인터넷을 설치하기 위해 전화를 하면 대기는 기본이었고 10분 이상 대기해도 아무도 응대를 해주지 않았다. 연락되더라도 “미안 나 영어 못해”, “영어 할 줄 아는 애 연결해줄게”라며 다른 사람에게 연결을 해주었고 다시 연결이 되더라도 “내 담당이 아니야”라는 태도는 기본이었다. 인터넷 예약이 제대로 되었는지, 테크니션을 언제 보내줄 것인지 알 방법이 없었다. 그저 무작정 기다리기만 하라고 한다. 어느 날에는 거의 반나절을 인터넷 사업자에 전화하는 데 쓰기도 했다.
독일 계좌 개설 / 자본금 납입하기 (난이도 ★★★)
자 다시 회사를 설립하는 일로 돌아가 보자. 베를린으로 갈 때 ‘기차 소동’을 겪어 못 만난 공증 변호사를 다시 만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기차표를 다시 예약했다. (이번엔 미리 구매해서 저렴하게 샀다) 나 혼자 베를린으로 향했다. 공증 변호사 앞에서 서명하는 건 너무 간단했는데 “당신은 적법한 절차에 따라 독일에 회사를 설립하고자 합니까?”라고 물어보는 것에 “네”라고 대답하고 서명하고 끝이었다. 고작 이걸 직접 하기 위해 이 고생을…
이제 남은 프로세스는 은행에 법인 계좌를 열고 자본금을 납입한 후에 자본금이 납입되었다는 증명서를 그 공증 변호사에게 보내는 일이었다. 지나고 생각해보니 개인적으로 독일에서 진행했던 일 중에 난이도 극상인 하드코어한 일이었다. 이 일을 진행하면서 진심으로 은행이 망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먼저 독일에서 계좌를 열어야 했다. 독일은 아무 때나 은행 계좌를 열 수 있는 게 아니고 무조건 사전에 예약을 잡아야 한다. 그리고 가서는 은행에서 원하는 엄청 많은 서류를 제출하고 인터뷰를 봐야 한다. 게다가 그들은 내 자금을 굴려 이익을 낼 텐데, 나는 통장 유지비라는 명목으로 매달 꽤 많은 비용의 금액을 은행에 납부해야 했다. 일단 우리 본사가 될 사무실 근처에 있는 도이치방크나 코메츠방크와 같은 큰 은행들에 예약 전화를 했다. 근처의 모든 은행들에 다 전화해봤는 데, 일단 전화 자체가 거의 안 되었을 뿐만 아니라 받은 답변은 전부 “지금 담당자 전부 휴가 갔어”라던가 “미안 우린 법인 업무 안 해”였다.
이틀 동안 은행 하나 찾지 못했다. 이대로는 도저히 안 될 것 같아 지금은 우리 팀 운영 총괄로 합류한 독일인 C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C는 나에게 Fidor Bank라는 인터넷 은행 담당자를 소개해줬다. 독일에서 전통적인 은행들에 시달리던 나에게 이 은행은 완전 신세계였다. 모든 절차는 온라인에서 마치 일반 서비스 회원 가입하듯이 진행하면 됐다. 특이한 점이라면 비디오 인터뷰로 내 신분을 확인하고, 여권을 보여주고, 기타 특수 절차들을 약 20분 정도만 시간을 들여서 진행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이 비디오 인터뷰를 진행하는 데 문제가 많아서 엄청 오래 걸리긴 했지만 어쨌든 다행히 법인 계좌임에도 은행 본점 한 번 방문 안 하고 계좌를 개설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아주 잘 쓰고 있다. 은행 업무를 볼 때 맥북이나 크롬 브라우저에서도 잘 작동되고, 공인인증서나 액티브 엑스도 필요 없다. 엄청 직관적인 인터페이스로 쉽게 은행 업무를 볼 수 있는 인터넷 은행이라니… ‘갓도뱅크’ 사랑합니다. 이런 서비스라면 계좌 운영비로 매 달 얼마든지 비용을 낼 용의가 있는데 심지어 인터넷 은행은 계좌 운영비도 무료다.
사실 진짜 하드코어 한 문제는 독일에 있지 않았다. 한국 은행이 문제였다. 독일 법인 설립 자본금으로 대략 몇천만 원 단위의 꽤 큰돈을 송금해야 했다. 처음에는 아주 순진한 생각으로 우X은행 홈페이지에서 송금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애초에 홈페이지에서는 그렇게 큰 금액을 송금할 수 없고 별도로 영업점에 연락을 하라는 것이다. 한국-독일 시차 때문에 은행 영업시간에 전화하려면 독일 시간으로는 오전 11시 전에 전화해서 모든 업무를 다 끝내야만 했다.
은행에 전화해보니 외환법상 법인이 그렇게 큰 금액을, 그것도 수입이 아니라 투자 목적으로 해외에 송금하려면 ‘법인등기부등본’, ‘법인인감증명서’ 같은 극혐 서류들을 지참해서 은행 영업점에 직접 방문해야 한다고 한다.
“???!!!”
직접 방문해야 한다고? 외환 업무를 하는 사람들은 해외에 체류하는 사람들도 정말 많을 텐데 그 일들 매번 처리하기 위해 한국에 가야 한다고? 상식적으로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게다가 애당초 해외에 지사를 설립하려면 아래 3가지가 필요하다고 한다.
1) 해외 지사: 과거 1년간 외화획득 실적이 미화 1백만 불 이상인 자 또는 한국무역협회장이 외화획득 전망 등을 고려하여 해외지점의 설치가 필요하다고 인정한 자
2) 해외 사무소: 과거 1년간 외화획득 실적이 미화 30만 불 이상인 자 등(나머지는 우리 해당 사항 없음)
3) 해외 직접투자: ~~~~~~ 한 엄청난 증빙 서류들
아니 해외에 외화를 획득하려고 지사, 사무소를 내는 건데 해외에서 외화를 획득한 자만 설립할 수 있다니? 스타트업 글로벌 진출해야 한다느니, 심지어 어떤 전 대통령은 한국이 텅텅 빌 정도로 청년들이 중동에서 도전을 해보라느니 온갖 휘황찬란한 말들은 다 했는데… 정작 해외에 나가려는 사람들의 발목을 잡는 게 무엇인지 제대로 좀 생각해보았으면 좋겠다. 물론 본인들 손으로 뭐라도 한 번 해봤어야 알겠지만 말이다.
사실 해외지사 또는 사무소로 송금하는 게 더 서류가 적어서 그렇게 하려고 했었다. 한국무역협회에 연락하고 증명서를 얻기 위해 사업계획서를 보내려고 다 준비했지만 그 후에도 은행 업무는 여전히 많아서 그냥 깔끔하게 포기했다. 그리고 ‘3) 해외 직접투자’로 진행하기로 했다.
우리 회사는 처음 법인을 설립할 때 서울대학교 연구공원 지하에 있는 우X은행에서 계좌를 개설했었다. 현재는 그 지점이 서울대학교 우X은행으로 통합되어서 학교 안에 있는 영업점에 가야만 했다. 학교 영업점 입장에서는 난데없이 해외에 몇만 유로를 송금하겠다고 하니, 그 말을 듣고 참 황당했을 것이다.
이 일을 내가 몇 번 해봤다면 대리인을 보내서 했겠지만, 나도 정확히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무작정 서류만 한국으로 보내서 대리인에게 알아서 하라고는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마침 K리그 일정도 있고 겸사겸사 다른 일정들도 있어서 한국에 일주일 정도 가기로 했다. 7월 중순이었는데 이렇게 빨리 한국에 다시 돌아가게 될 줄은 몰랐다.
한국에 돌아가서도 필요한 서류들을 다 준비했지만 끝난 게 끝나는 게 아니었다. 우선은 내가 가지고 간 서류를 제출하면 은행에서 그걸 확인한다. 그리고 결재를 올린다. 이후에 승인이 나면 다시 은행에 재방문을 해야 하고 추가적으로 다른 서류들을 작성해야 한다. 세 차례 정도 은행에 방문한 후에야 독일 회사에 자본금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이걸 한국에서 한 번 했다고 해서 계속 쉽게 보낼 수 있는 건 아니다. 처음에 승인받은 금액 외 추가적으로 송금을 해야 할 일이 있을 때, 또 똑같은 프로세스로 매번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한다. 정말 아름다운 구조가 아닐 수 없다.
이후에 독일로 돌아와서 사무실과 집 계약을 하기 위해 보증금을 냈다. 기타 큼직한 비용을 먼저 집행하니 자본금만으로는 부족하게 되었다. 다행히 한국에 갔을 때 자금을 여유 있게 신청해 두었어서 이번에는 복잡한 절차 없이 더 많은 금액을 쉽게 보낼 수 있었다.
송금을 해결하니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싱가포르에서 꽤 큰 금액을 한국에서 받은 후 그 돈을 다시 독일로 보내야만 했다. 근데 싱가포르에서 보낸 돈을 한국에서 받는 게 말썽이었다. 자금을 그냥 받으면 되는 게 아니고 무슨 ‘외화전용계좌’를 개설해야지만 돈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그 계좌를 개설하려면 대표자가 직접 은행에 방문해야 하고, 실제로 돈을 받는데 까지 수 일이 걸린다는 것이다. 이런 뭣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수수료는 또 어마어마하게 떼 간다. 다행히 외화전용계좌로 돈을 받지 않고 다른 방식으로 돈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독일로 송금했다. 이거 준비하고 처리하는데만 1주일이 넘게 걸렸다.
독일로 자본금 송금이 완료되고, 이후 추가 금액 송금까지 해서 법인 설립과 사무실 보증금 납입은 일단락되었다. 그렇게 하니 어느새 7월의 마지막 날이었다. 7월 하루하루가 이런 일들과의 사투였다. 무엇보다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아니 독일에서 일이 잘 될지 안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 일이 잘 되게 하기 위해 내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도 모자란데 이런 쓸데없는 일들로 한 달의 시간을 보냈다니 너무 절망스럽다’라는 생각이었다. 7월은 유럽 휴가철이라 우리 잠재 고객들은 전부 휴가 중이었고, 나는 본질적인 일들은 하나도 진행하지 못한 상태였다. 팀원들의 삶이 모두 안정된 것도 아닌 채로 독일에서의 첫 달을 보냈다.
어쨌든 이 글을 빌어 나와 함께 고생해주신 우X은행 서울대 지점 모 계장님께 감사드립니다!
기타 에피소드 (난이도 ★★☆)
독일에서 정말 X 같았던 스토리에는 이걸 빼먹을 수 없다. 하루는 디자인 총괄 형이 호숫가를 뛰다가 에어비앤비 방 열쇠를 잃어버렸다. 독일에서는 아직도 사람들이 열쇠를 사용하는데 도어록은 보안이 걱정된다며 거의 쓰려고 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열쇠가 잃어버리면 진짜 답이 없는데 일단 복사 비용이 어마어마하게 비싸다. 게다가 허가된 사업자에게, 집주인의 복사 허가증을 가지고 가야만 열쇠를 복사할 수 있다. 만약 운이 나빠 집주인이 너희의 실수로 열쇠를 잃어버렸으니 보안을 위해 모든 집의 열쇠를 다 교체해야 한다고 주장하면 정말 어마어마한 비용을 물어야 한다.
일단 디자인 형은 에어비앤비 호스트에게 열쇠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이야기했다. 에어비앤비 호스트는 집주인에게 물어본 후 열쇠 회사로부터 견적을 받아보았다. 건물 전체 모든 사람들의 열쇠를 다 바꿔줘야 해서 2,000유로를 내야 한다고 했다. 2,000 유로라니… 어마어마한 돈이라 우리는 십시일반 해서 돈을 보태주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너무 비용이 커서 이상하다는 생각에 독일인 C에게 보통 이 정도인지를 물어봤다. 그런데 C는 열쇠 복사 비용이 비싸긴 하지만 그 정도는 아니라며 이상하다고 하면서 견적서를 보내달라고 했다. C는 견적서를 보고는 독일 회사에서 발행한 견적서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허접해서 직접 전화해 한 번 확인해봐야겠다고 했다.
그리고 직접 전화해보니 놀랍게도 이 견적서는 가짜였다. 에어비앤비 호스트가 우리가 독일어 한 마디 못하는 아시안이라 설마 직접 회사에 전화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가짜 견적서를 만든 것이었다. 독일인 C는 가짜라는 걸 확인하고는 매우 분노해서 직접 호스트에게 전화를 걸어 “이거 전화해보니까 가짜 견적서라는 거 확인했고, 너 고소할 거야”라고 했다. 그 에어비앤비 호스트는 그 말을 듣고 당황해서 “아… 그랬냐.. 몰랐다. 난 진짜로 알았다.. 다시 확인해서 제대로 된 견적 보내주겠다” 라며 얼버무렸다. 우리는 귀찮은 일을 벌이고 싶진 않아서 당연히 고소를 하진 않았고, 그냥 열쇠 잃어버린 걸 퉁치는 선으로 이 일을 정리하기로 했다.
1개월 뒤에 뜬금없이 그리고 정말 어리석게도 해당 호스트는 이 문제를 에어비앤비에 제기를 했다. 나는 장문의 보고서를 에어비앤비 쪽에 보냈고, 에어비앤비는 이 호스트를 정지시키는 것으로 이 일을 마무리를 지었다. 물론 나는 그럴 의도가 있었던 건 아니다. 만약 C가 없었다면 영문도 모르고 우리끼리 “독일에서 정착하려면 이런저런 일이 다 있는 거지 뭐~” 하면서 200유로씩 모았을 것이다.
7월 어느 하루는 집을 하나 보고 자전거를 타고 다음 약속 장소로 이동하는 길에 약속 장소에서 엄청나게 먼 곳에서 체인이 빠져버렸다. 또 하루는 자전거를 타고 다음 약속 장소로 이동하는 길에 갑자기 비가 엄청나게 쏟아져서 더 이상 갈 수 없게 되었다. 신기하게도 그 이후에는 이런 돌발 상황이 없었지만, 유독 7, 8월에 이런 일이 많았다. 그때마다 쓸쓸히 돌아가면서 내 처지가 정말 처량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내가 너무 무모한 도전을 하고 있는 건가? 나의 말도 안 되는 객기로 다른 팀원들도 함께 고난의 길로 가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엄청 많이 들었다. 마치 만화 ‘원피스’에서 실력없는 선장이 대책도 없이 위대한 항로에 호기롭게 들어갔다가 초입부터 개박살 나고 쓸쓸히 돌아가야 하는 느낌이었다.
그때마다 내가 굳게 다짐했던 건 ‘결국 끝내 누가 이기나 보자! 이 따위 일로 절대 좌절하지 않겠다!’라는 생각이었다. ‘여기서 이렇게 개고생 한 만큼 끝끝내 결국엔 모든 일이 잘 되게 하겠다’라는 생각을 하며 오히려 더욱 강해질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일을 해내면 앞으로 어떤 일이든 견뎌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지나고 나서 돌아보면 나의 급한 성격 때문에 정말 말도 안 되는 속도로 독일에서의 세팅 작업을 마쳤다. 3개월 남짓한 시간에 회사를 세우고, 사무실을 구하고, 아시아인 11명이 거주할 집을 구하고, 비자를 발급받았다. 그리고 추후 다시 적을 기회가 있겠지만 엄청 좋은 반응을 얻으며 ‘유료 서비스’를 꽤 많은 유저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마침내 0에서 1을 만들어 낸 것이다. 0에서 1이 되기는, 그것도 해외 시장에서 그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이렇게나 어렵다. 하지만 결국 우리는 그 고난을 이겨냈고 이 경험은 나와 우리 팀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있을 모든 고난들도 이겨낼 힘을 줄 것이다.
독일에서 집 구하는 팁(난이도 ★★★★★)과 비자 프로세스에 대해서도 쓰고 싶었는데 글이 너무 길어져서 안 하기로 했다. 혹시 추가로 연재할 기회가 있다면 ‘후속 편’ 정도로 짧게 더 적도록 하겠다. 여담이지만 그 이후에 거짓말이 아니고 거의 100곳에 가까운 집에 연락을 하고 그중 일부에만 방문 약속을 잡아 방문할 수 있었다. 내가 매번 집에 연락할 때마다 에버노트에 기록한 것들이 아래와 같다. 앞으로 무슨 일이든 다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고 했지만 다시는 독일에서 집을 구하고 싶진 않다. 그건 못 이겨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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