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프터모멘트 크레이티브 랩 박창선 CEO가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번 더 소개합니다.
브랜딩이 ‘뭔가 거창한 걸 시작해보쟛!!!’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하던 걸 꾸준히 하는 것’이라고 정의 내려보았습니다. 사실 사람도 그렇고 비지니스도 그렇죠. 뭔가 자꾸 매달리고 좋다고 생색 낼수록 좀 정 떨어지는 감이 있습니다. 물론 부정적인 각인을 통해서 잊혀지지 않거나, 그런 진상 이미지가 캐릭터가 되는 경우도 종종 있긴 하지만, ‘이미지 따윈 모르겠고 우린 매출이나 내쟈!!’라는 사람들이 딱히 브랜딩을 생각할 것 같진 않으니 그런 경우는 잠시 넣어두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하던 걸 꾸준히’에 대해서 얘기해보겠습니다.
아니 이러란 이야기는 아니고…
브랜딩에 있어서 하던 걸 꾸준히 하란 얘기는 ‘일관성‘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비지니스의 색깔, 컨셉, 방향성 등 추구하고자 하는 것들에 대한 생각과 행동의 방향을 일치시키란 이야기죠. 하지만 문제가 있습니다. 다음의 대화를 한 번 보도록 하죠
<오전9시23분 회의실>
김팀장 : 에…이번에 우리 프로모션 이벤트를 해야하는지 각자 아이디어 있으면 공유바랄께요.
팀원들 : Chim mook.
김팀장 : 그..이번 우리 신제품 관련한 이벤트를 좀 재미있게 알리고 싶은데..
팀원들 : 아……..음..
김팀장 : 이번에 배민에서 치믈리에 이벤트했던 거 어때요? 재밌던데? 우리도 그런 경연대회 한번 해볼까?
팀원1 : 근데 우리 상품의 컨셉상…오프라인 이벤트는 비용이 많이 들 것 같은데요. 일단 SNS이벤트로 진행해보는건 어떨까요.
김팀장 : 오, 좋아요. 요즘 좀 핫한 SNS이벤트 뭐있지? 우리도 그 사연 공모같은거 해볼까?
팀원2 : 어떤 사연으로..?
김팀장 : 사용후기 공모 한 번 때려보죠. 아직 사진 찍어서 뭐 태그올리고 상품주던가.
본질적인 문제는… 대부분의 회사에서 ‘지금껏 하던 것’이 없다는 겁니다. 대부분은 어디 유명사례나 이슈가 되었던 이벤트를 따라하는 등의 “우리도 그거 한 번 해볼까?”는 식의 의사결정이 대다수였습니다. 어디서 본 듯한 카드뉴스와, 다른 누군가가 해서 대박친 이벤트 등 따라하기가 급급하죠. 배달의민족에서 치믈리에 이벤트를 했던건 그 이벤트 자체가 재밌어서 성공을 한 게 아닙니다. 배달의민족이었기에 가능한 것이죠. 그들이 지금까지 유지해온 키치한 코드와 CF와 대외홍보에서 꾸준히 진행해오던 일관적인 소셜이벤트와 맥을 함께하기에 ‘배민답다.’ 라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배달의민족에서 치믈리에 이벤트를 했던 건 그 이벤트자체가 재밌어서 성공을 한 게 아닙니다. 배달의민족이었기에 가능한 것이죠.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좀 심각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창업이래 일관적으로 유지해오고 있는 ‘CODE는 무엇인가?’라는 질문. 물론 알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초기창업체는 수많은 프로토타입과 시행착오를 통해 격하게 변화를 거듭합니다. 타겟부터 서비스의 방향성까지 끊임없이 수정되고 바뀌어가죠. 그러나 소위 변화라는 것은 기준이 존재하고 그 기준에서의 변곡점을 얼만큼 만들어 낼 것인가의 이슈이지, 기준 자체를 이리저리 움직이자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는 3가지가 있습니다.
1. 결정에 근거가 없습니다.
대부분 어떤 의사결정을 진행할 때 그 근거는 ‘그게 잘되었으니까’ 라는 결과론적 명제인데, 논리적으로 이것은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게 잘된 이유가 이벤트의 퀄리티나 컨셉의 포지셔닝 따위가 아니기 때문이지요. 이것의 큰 함정은 사실 기존의 컨설팅이나 책에서 언급하는 여러가지 유명사례들의 오용 탓도 있다고 봅니다. 개인적으론 브랜딩 시장에 어느정도 깊이에 대한 재고와 자성이 필요한 시점이라고도 생각되죠. 케이스스터디를 진행할 때는 그 맥락과 근거에 대해 명확히 규명해야 합니다. 단순히 아마존이 어째서, 애플이 어째서… 이런 식의 결론은 적절치 못하죠. 우린 식료품을 판매하는 업체인데 애플의 마케팅전략을 가져다쓰겠다?…그게 잘 되었으니까?…이것도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모든 결정의 근거는 “우리 회사는 OO을 추구하기 때문이야.”라는 명제에 기인해야 합니다. 그 OO이 뭔가 거창한 사회적 가치나 지구평화일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우린 ‘깔끔함을 추구해’, 우린 ‘편리함을 추구해’, 우린 ‘저렴함을 추구해’ 등 뭔가 구체적인 Keyword로 정의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대신 “우린 사회적가치를 추구해” “우린 고객만족을 추구해” 등 뭉게구름같은 소리만 하고있으면 머지않아 사업자등록증이 루비콘강을 건너게 되겠죠.
2. 다양성과 난잡함은 다릅니다.
이것은 의사결정권자 또는 직원들의 성향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다양한 시도’를 해보는 것과 ‘덕지덕지 가져다 쓰는 것’은 분명히 다릅니다. 앞서 설명했던 배달의 민족은 폰트를 개발해서 오픈소스로 공급하거나 치믈리에 행사를 진행하거나 키치한 CF를 만들거나 하는 등 굉장히 다양한 액션을 선보였음에도 한결같은 ‘배민다움’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이 모든 액션들이 하나의 색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실수하는 건 흔히 ‘가치중심뽕’에 취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회적약자를 도와야하니까, 사회적약자를 대상으로 행사를 하자! 이런식의 크나 큰 아젠다에 흠뻑 취해서 그것만 바라보고 있는 것이죠. 브랜드는 뭔가 전략을 통해 억지로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대표와 구성원들이 만들어내는 그 고유의 ‘기질’…그러니까 흔히 똘끼라던가, 병신미라던가, 진지함이라던가, 사랑꾼이라던가…뭔가 이런 성격들이 곧 회사의 이미지를 결정하고 그 방향성을 선명하게 만들어갈 뿐입니다. 이러한 기질에서 출발한 브랜드 고유의 색깔은 이들이 어떤 행동을 해도 그 색깔에 물들게 만들죠. 다양성은 바로 이것에 기인해야 합니다. 그 색깔이 없이 이것저것 끌어다쓰면 그걸 진행하는 사람도 지치고, 뭘 왜 하는 지도 모른 채 돈만 불태우는 계획들만 나오는 겁니다.
3. 변화는 혁신은 분명하게!
에뛰드하우스는 최초에 고객들에게 프린세스 판타지 브랜드를 유지해왔습니다. 그러나 이어 찾아온 실적부진에 브랜드개혁에 필요성을 느끼고 2014년 권금주 대표의 취임과 동시에 대대적인 개편을 진행했습니다. 이 때 두 가지의 놀라운 전략은 이것입니다.
“기존의 프린세스 판타지 컨셉은 과감히 버린다.”
“이제부터 모든 정책은 20대의 라이프스타일에 포커싱한다.”
버릴 때는 과감히 버려야 합니다.
“헤헤헤, 우리 그래도 이것가지고 좀 먹고 살았는데..그래도 이건 남겨두는게…” 라는 생각따윈 저 멀리 던져버리란 얘기이죠. 그리고 바뀌는 정책을 추진할 때는 한번에! 일제히! 확! 강렬하게! 바꾸는 겁니다. 점진적인 변화 이런건…진짜 어디 말만 번지르르 좋은 거지 점진적이란 건 대부분 처음에 돈이 너무 많이 들 것 같으니 돈 생길때마다 그때그때 바꿔가자…라는 얘기인데 제가 지금까지 브랜딩했던 업체 중 이렇게 해서 점진적 변화가 성공한 곳은 단 한곳도 없었습니다. 대부분은 몇 개월 뒤 그냥 흐지부지 되는 경우가 다반사였죠.
에뛰드 하우스는 이후 20대 여성만 타겟으로 맞춰갔습니다. ‘청순거짓 브라우 젤 틴트, 플레이 101스틱, 빅 커버 컨실러 BB’ 등을 주력으로 잡아가며 SNS나, 스토어이벤트 또한 20대의 라이프에 관련된 컨텐츠만 집중적으로 공략하기 시작한 것이죠. 또한 김숙을 신제품 ‘핑크 생기 워터 세럼’의 모델로 활용하며 파격적으로 공감대를 만들어내는 데에 주력하기도 했습니다.
이와 더불어 2way전략으로 아시아권(중국, 싱가폴 등)에서는 프린세스판타지 코드를 그대로 유지하여 그 포지션을 외부로 확장시켜 가는 정책을 폈습니다. 심지어 그대로 전파하는 수준이 아닌, 판타지를 비쥬얼적으로 풀어낸 내부 인테리어와 궁전식 스토어를 만드는 등 플래그쉽 마케팅을 활용하기도 했습니다.
두 가지의 브랜딩이 동시에 가능했던 이유는 에뛰드의 메인철학이 ‘Enjoy Makeup Play’ 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화장을 일상의 행위가 아닌 ‘놀이’로 규정했죠. 공주님의 놀이에서 20대의 놀이로 그 계층적 벽을 허물었다라는 느낌을 주면서도 기본철학에서 어긋나지 않는 변화를 꾀했습니다.
이것이 강력한 변화를 일제히 진행하면서도 전혀 위화감없이 시장에 녹아들 수 있는 비결이었죠. 물론 에뛰드가 완벽하게 최고의 사례는 아닐 것입니다. 사실 실무적인 입장을 보면 개판이었을 수도 있죠. 하라는 거 안하고, 막 컨셉 섞여있고…야 그냥 대충해..란 소리도 비일비재 했을 겁니다…하지만 성공적으로 브랜딩을 궤도에 올려놓을 수 있었던 것은 거의 반강제적인 ‘거친 변화’ 를 추구했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이러한 변화를 진행하려고 하는데 한 명, 한 명 설득시켜가며
“우리가 이번에 이렇게 바꿀건데..그 이유는 이렇고.그래서 우린 이렇게 해야하고…”
를 해명하고 다독이며 진행할 시간이 있을까 싶습니다. 가끔은 공표하고 거칠게 추진하는 순간도 필요한 것이죠. 그 변화의 리스크를 감당할 각오는 해야겠지만 말입니다. 🙂
읽다보면 한가지 모순을 느끼셨을 겁니다. 2번과 3번은 스타일이 완전 다른데?라는 것이죠. 2번은 구성원들의 성향과 기질로 자연스럽게 브랜드를 만들어내는 것이고, 3번은 정책과 시스템으로 회사의 방향을 확 트는 경우니까요. 사실 이 둘은 모순의 관계가 아닙니다. 필연의 관계라고 하는 편이 맞겠네요. 한가지 컨셉으로 회사가 평생 운영되는 경우는 드뭅니다. 어느 순간에는 뭔가를 크게 변화시켜야 할 순간이 오겠죠. 또한 2번에서 언급한 것처럼 성향만으로 브랜드의 색깔을 선명하게 만들기는 힘듭니다. 그것은 내부적인 문화를 만들기는 적절할 지 모르나, ‘일’을 해야하는 상황에 적용하기엔 다소 응집력이 약하죠. 이러한 관점에서 시스템은 두 가지 역할을 합니다.
하나는 내부의 자연스러운 고유색깔을 극대화시켜서 정돈하는 역할이죠. 비쥬얼적으로나, 정책적으로나, 기획적으로나.. 어떤 방식이든 우리의 성격과 방식을 드러내는 수단적인 부분이 존재해야 합니다. 우리가 성격과취향을 패션이나 말투, 행동으로 드러내듯 기업도 마찬가지이죠.
또 하나는 변화의 코드와 기준을 잡고 강제성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시스템은 브랜드를 위해 존재합니다. 회사도 브랜드를 위해 존재하죠. 회사가 돈벌려고 브랜드를 만드는 게 아니라, 브랜드를 구현하는 방식이 곧 회사라도 김봉진대표님이 언급하셨더군요. 그리고 이러한 시스템은 개인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좀 더 커다란 목적을 위해 존재하죠. 그러니까 브랜드가 급커브를 하거나 전혀 다른 국면으로 변화해야 할 때 시스템은 그 변화를 전담하고 통제하는 역할을 맡는 것입니다. 그러니 조금 냉정하게 말해서 개인의 성향이 그 변화와 맞냐, 그렇지 않냐 따윈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일관성은 때론 나갈 사람은 나가고 남을 사람은 남는 소위 ‘물갈이’가 이루어지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위와 같은 이유로 대부분 방향성이나 컨셉없이 흐지부지 사라진 브랜드의 추억을 안고있거나, 애시당초 만들지 못한 기업들도 허다합니다. 키워드나 컨셉도 없이 이것저것 가져다 쓰다가 내가 뭔지도 잃어버린 제이슨 본이 되거나, 우리도 변화를 해보쟈!! 싶어서 절벽에 올라간 매의 심정으로 깃털을 쪼다가 아 시발 이건 원래 뻥이었지..를 깨닫고 너덜너덜하게 처참해지거나. 여러모로 브랜딩은 어렵고 알쏭달쏭하기 때문에 이것저것 해보다가 돈만 날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 시간이 지나서 창업1년이 넘고, 2년,3년차가 되어도 우리만의 컨텐츠가 뭔질 잘 모르겠고..우리만의 색깔에 대해서도 지구평화와 우주정복과 같은 뜬구름잡는 소리만 하고있다면 진지하게 STOP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명백하게 마케팅 회의시간에 구석에 앉아서 직원들이 하는 얘기를 곰곰히 들어보세요.
“어디가 그거 했는데 잘되었다더라…”
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면, 오늘 점심은 혼자 드시면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지 고민을 좀 해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다음엔 그 혼밥의 시간 이후에… 여러분의 결심을 도와드릴 얘기들을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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