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프터모멘트 크레이티브 랩 박창선 CEO가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번 더 소개합니다.

일단 명백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브랜딩이라는 단어가 남발하는 요즘, 사실 이 단어자체가 올바른 표현인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죠. 당초 ‘Brand’라는 어휘는 피부에 새긴 화상과 같은 낙인이나 흔적을 의하는 burn의 어원과 그 맥을 함께합니다. 브랜드라는 뜻이 라틴어로는 ‘불태우다’ 라는 뜻이기 때문이죠.

이는 당연히 무언가를 구별/식별하기 위한 ‘표식’ 의 의미로 쓰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냥 로고를 의미했던 것이었죠. 하지만, 요즘엔 그 의미가 많이 확장/변형되었습니다. 이유는 단순해요. 너무 많은 표식들이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오래전엔 죄수나 사형수, 범죄자, 이상한애들에게 부여했던 것이 ‘낙인’이었기에 사람들에게 매력을 어필할 필요가 없었어요. 그냥 그런 표식을 지닌 애들을 피하면 그만이었죠. 그러나 요즘의 브랜드는 비지니스 자체이니 사람들의 마음과 지갑을 열게 해야합니다. ‘낙인’의 역할이 완전히 바뀌게 된 것이죠.

예전엔 낙인을 ‘구별’ 하기만 하면 되었지만,
요즘엔 낙인을 ‘선택’ 해야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구별과 선택은 다른 개념이예요. 구별은 인식의 개념이기 때문에 ‘아 그렇구나’ 하고 끄덕이기만 하면 됩니다. 하지만 선택은 행동의 개념이라서 ‘하나를 선택하고 나머지를 포기하게 끔’ 해야 하죠. 이 때 기회비용이 발생하면서(심리적이든, 실물적이든) 브랜드는 그것 이상의 가치를 제공해야 하는 입장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눈요기와 정책, 장점, 특징들을 내세우며 “우린 가치가 있어!!” 라고 소리지르고 있는 상태가 바로 요즘입니다.

이미지: Getty Images

 

자, 하지만 여기서 함정이 발생합니다.

위에서 말했듯 고객은 무언가를 선택할 때 얻는 이득과 기회비용 사이의 가치를 저울질합니다. 그리고 더 합리적인 선택을 하겠죠. 적어도 이론적으론 말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엉망진창입니다. 사람은 그리 합리적인 존재도 아니고 이득과 기회비용 사이의 가치를 정확히 판단하지도 못합니다. 게다가 그 판단의 기준은 지극히 개인적인 성향과 가치관에 좌우되기도 하고, 심지어 그 성향과 가치관이란 것은 트렌드와 다수의 압박 등 예상치 못한 변수들에 의해 기묘하게 변질되기도 합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일관적인 기묘하게 이상한 포인트에서 대박치는 회사가 있는가 하면, 정석대로 해도 영 반응이 시원찮은 경우도 많습니다. 때문에 브랜드를 하는 사람들이나 그걸 원하는 회사나 도무지 갈피를 잡기가 힘들어졌죠.

물론 데이터가 쌓이면서 일정 패턴이 발생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인지/사회심리학의 도움으로 인간 행동의 불특정성을 어느정도 규명해나가고 있는 것이죠. 그러나 그것이 규명되는 속도보다 사람과 시대의 변화속도가 훨씬 빠르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행동이 이렇게 가변적이니 전략을 짜는 사람 입장에선 그것에 일일이 맞추다가 늙어죽을 것 같았을 겁니다. 그러다 누군가가 이런생각을 했겠죠. 사실 생각을 했다기보단 천성적인 마이웨이가 있던 사람이었을 겁니다. 그냥 하던거나 계속 해야겠다…라고.

그리고는 그냥 해오던 걸 꾸준히 계속 묵묵히 했더니. 생각지도 못했던 평가들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꾸준한 일관성은 캐릭터를 만들어냈고, 그들은 예측가능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보통 이러면 매력이 사라져야 맞는데, 오히려 그 일관성에 열광하는 팬층이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팬층을 동경하던 어중간한 포지션에 있던 사람들이 그들을 따라서 유입되기도 했죠. 굳이 어디라고 얘기하지 않아도 익히 알려진 대부분의 성공사례의 기업들의 브랜딩 전략을 떠올려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프로세스가 성공사례로 속속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브랜딩은 더이상 ‘우리가 그들에게 무언가를 하는 것’ 의 개념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나는 그냥 하던 걸 잘하는 것이고, 브랜딩은 그것을 통해 “되어지는 것”이죠. 그래서 브랜딩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일종의 부수효과라고 하는 편이 오히려 맞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 “Branding…브랜딩을 한다!”라는 능동적표현보단 “Branded 브랜딩 되어진다”라는 수동적 표현이 오히려 적절하지 않을까 싶네요.

물론 반론의 여지가 있긴 합니다. 예를 들어 키엘의 경우 Lab느낌의 화장품 매장을 컨셉화했고, 직원들에게 기본적인 의학적 지식을 교육시키는 등 어떤 전략에 의해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또한 이것이 키엘의 브랜드를 명확하게 만들었으니, 이것은 ‘화장품 전문가를 원하던 고객들의 니즈를 파악해서 그에 응답한 것이 아니냐?!’라는 의견이 나올 수 있겠죠.

Kiehl’s : 약국에서 화장품을 판다!..라는 컨셉으로 직원들은 약사복을 입고 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물론 키엘은 수많은 서칭과 서베이, 내부회의를 거쳐서 최초 컨셉을 기획하고 확장시켰을 것입니다. 그러나, 애플도 그랬고 다이슨도 그랬고 키엘이나 이니스프리, 에뛰드하우스도 그렇듯 ‘고객이 이걸 원하니까 이걸하자!’라고 시작하진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렇게 색깔이 분명한 곳들은 최초의 리스크가 엄청났을 텐데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합리적이거나 효율적인 선택은 아니었겠죠. 그걸 원하지 않는 대다수의 사람들을 포기해야 했을 테니까요.

대신 그들이 선택한 것은 이게 시장이 원하든 원치 않든 내가 옳다고 생각되는 색깔을 일관성있게 밀어붙이고 유지하는 것이었습니다. “너희가 원하니까 이걸 하겠습니다…”가 아니고 “우린 이런 기업입니다.”라고 무심하고 담담하게 걸어가는 편을 택한 것이죠.

그러니, 브랜드라는 것은 이제 한 순간의 낙인과 표식의 의미가 아닙니다. 그것은 꾸준한 행동과 신념의 일관성을 의미하는 단어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모두가 아닌, 우리를 사랑하고 지지해주는 고객들을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사회적책임을 다하고 제품이면 제품, 서비스면 서비스 그 자체에 충실했습니다. 브랜드는 이런 일련의 과정과 시간을 통해 자연스럽게 축적되어가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지금부터 알아볼 것은,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던 일을 어떻게 꾸준히 지속시키고 깊이 있게 만들것인가를 고민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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