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욱님이 브런치에 작성한 글을 모비인사이드에서 소개합니다.

글로벌 기업은 모든 창업팀의 꿈이다.

한편으론 글로벌 기업을 꿈꾸지 않는 창업팀이라면 훌륭한 창업팀이라고 할 수 없다. 기업의 세계에서는 안타깝게도 ‘적당히 먹고 살 정도’라는 말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기업이란 성장하지 못하면 도태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고정적으로 할당되어 있는 몫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멈춰 있는 동안 다른 누군가는 뛰어가고 있기 때문에 내가 열심히 하지 않는다면 나는 상대적으로 도태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위대한 기업을 꿈꾸고 발버둥 쳐야만 역설적으로 ‘적당히 먹고 살 정도’의 기업으로라도 남아 있을 수 있다.

여기서 개인을 칭하는 ‘창업가’라는 표현은 가급적이면 피하려고 한다. 이 글을 통해 쓰는 여정은 개인이 아닌 팀 전체의 스토리이기 때문이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너무나도 멀지만, 혹시나 지금까지 우리가 작게라도 이룬 것이 있다면 그것은 어느 한 천재의 슈퍼 플레이가 아닌 팀플레이에 의한 성공이었다.

마크 주커버그 역시 팀플레이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여러 가지 의미에서 어딘가에 회사의 이야기를 적는 것은 상당히 조심스러웠다.

그 이유는

1. 아직 성공한 것도 아닌데 마치 무언가 아는 양, 그리고 남에게 조언하는 양 글을 쓰기는 정말 싫다.

2. 이 스토리는 나 혼자만의 스토리가 아니라, 함께한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인데 내가 글을 잘 쓰면 마치 내가 잘 한 것처럼 보이고, 내가 글을 못 쓰면 우리가 함께한 성과가 바래기 때문이다.

3. 마지막으로 무엇보다 누군가 시간을 내어 내 글을 읽는다면 그 시간을 투자한 만큼 무언가를 얻어가야 할 텐데 그만한 인사이트를 담을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창업가 필 나이트의 ‘슈독’ 을 올해 초와 중순 두 번 읽고 큰 감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창업가 스토리는 본인이 아닌 누군가의 목소리에 의해 기록된다. 이렇게 되면 창업가 본인의 스토리가 아니라 그 이야기를 듣고 적은 기록자의 스토리로 변하게 된다. 그러나 ‘슈독’에는 필 나이트의 매 상황별 감정이 말년에 소설을 공부하고 있다는 그의 수려한 글 솜씨로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었다. ‘나이키의 창업자도 똑같은 인간이구나, 그도 긴장하고 위축되고 걱정하는구나’ 하면서 엄청나게 위안을 얻었다.

지금까지 독일에서의 삶이 너무 스펙터클 했고, 또 앞으로도 그럴 것이기에 지금 느끼는 이 감정들을 기록해두지 않으면 나중에 많이 아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론에서 드리블이 길었다. 우선 본 글은 한 편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생각날 때마다 꾸준히 연재할 예정이다. 이번 편에서는 무슨 생각으로 독일 진출을 준비했는지 적으면서 우리 팀의 색깔과 일하는 방식을 기록해두려고 한다.

그리고 아래 4개를 주제로 추가로 더 쓸 예정이다.

1. ‘첫 번째’ 성과를 만들기 위해서 우리 팀이 해왔던 수많은 발버둥들 (집 구하기, 인터넷 설치하기 등등…)
2. 연고도 없는 타지에서 어떻게 영업을 하고 수익을 내는가
3. 어떻게 현지에서 제품을 고도화해나가는가
4. 독일에 특화된 여러 비즈니스 환경들

 

#실행력

우리 팀이 제일 잘하는 걸 딱 하나만 꼽아보라면 단연 ‘실행력’이다. 공격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어차피 내 글이니까 눈치 보지 않고 말하자면 우리는 탁상에 앉아서 가설에 가설을 거듭한 것을 ‘논리’라고 칭하며 구상하는 류의 ‘전략’과는 거리가 멀다. 아이디어가 있으면 괜찮은 아이디어인지 토론을 한 후에 괜찮다는 생각이 들면 일단 ‘해본다’. 해보지 않고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그래서 우리 만의 대회도 개최해보고 하드웨어도 만들어보고 이것저것 다 건드려봤다. 해 볼 때는 우리가 가진 100을 전부 다 써서 낼 수 있는 최고의 결과물을 만든다. 그리고 철저한 반성의 시간을 거치고 계속할지 말지를 결정한다.

처음 독일에 가겠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대단하다!’ 또는 ‘정말?!(반신반의)’ 둘 중 하나였다. 아니면 둘 다 였을 수도 있다. 재미있었던 건 단순히 독일에 가겠다고 결정한 사실만으로 우리 팀의 가치가 높아졌다는 것이다. 그들이 보기엔 쉽지 않은 결정을 해서, 또는 팀 단합력이 좋아서 등등의 이유였을 것이다.

그런데 외부의 시선과 다르게 우리 팀이 독일을 가겠다고 결정한 것은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이것도 우리는 ‘해본다’의 일환으로 처음엔 생각했었다. 처음 사업을 시작하면서 단 한순간도 글로벌을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다. 특히 우리가 하는 일, 전세계 스포츠인들을 하나로 연결하는 것은 한국에만 머물러서는 아무 의미가 없는 사업이다. 우리는 늘 “전 세계에서 제2의 메시를 가장 빨리 찾는 서비스가 되겠다”라고 공언해왔다. 언제든 준비만 되면 박차고 나갈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시장성 증명

그런데 결정적인 트리거가 된 것은 어떤 투자자 분을 만났을 때이다. 그분은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하는 사업을 듣고는 시장성이 없는 구린 아이템이라고 하셨다. 지금까지 투자자로부터 가장 많이 들었고, 또 가장 싫어하고 의미 없다고 생각하는 피드백이다.

‘시장성’이란 대체 뭘까. “저명한 모 기관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A 시장은 연 40조 원 크기이다”와 같은 쓰레기를 말하는 건가? 피터 티엘은 ‘제로 투 원’에서 전체 시장 크기인 X만 바라보고, 그 속에서 우리 회사가 가져갈 수 있는 Y%에는 주목하지 않는 현실을 비판한다.

모든 인간은 밥을 먹는다. 그리고 대부분의 인간은 옷을 입는다. 그렇기 때문에 의식주 시장은 매우 크다!

사실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 우리 회사가 가져갈 수 있는 비율은 얼마나 될까? 의식주는 시장이 큰 만큼 너무나도 다양한 요소들로 분화되어 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큰 시장에는 큰 플레이어가 이미 자리 잡고 있다.

그럼에도 스타트업이 여전히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것은 큰 플레이어가 주목하지 않은 아주 작은 마켓을 공략하였는데, 이게 마침 기술의 발전이나 사람들의 생활 패턴 변화 등 큰 파도에 힘입어 기존에 큰 플레이어가 장악하고 있던 큰 시장을 뒤엎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아마존이 책을 더 효율적으로 팔기 위해 오프라인 서점을 창업하지 않았고, 에어비앤비가 전세계 모든 도시의 숙박업소를 커버하기 위해 호텔 체인을 창업하지 않았다. 우리는 제프 베조스와 브라이언 체스키에게 “누가 인터넷에서 책을 사냐!”, “누가 남의 집에서 잠을 자고 자기 집을 빌려주냐!”라고 했던 사람들의 결과를 잘 알고 있다.

난 제프 베조스나 브라이언 체스키를 직접 만나보진 못해서 이들이 처음부터 본인들이 세운 회사가 큰 플레이어들을 하나씩 넘어뜨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지는 모르겠다. 다만 제프 베조스가 첫 투자자인 부모님께 본인이 실패할 확률이 70%가 넘는다고 했던 점 등을 미루어 볼 때 굳이 나보고 베팅을 하라면 상상하지 못했다는 쪽에 걸겠다. 주커버그 역시 페이스북 초창기에 본인들의 모습이 어떤 형태일지 모르니 섣불리 우리의 모습을 재단하지 말자고 했다. 초기 팀에게 중요한 건 아이디어가 정말 쓰레기 같지 않은 이상 그 팀의 능력과 실제로 해나가고 있는 결과물들을 가지고 베팅할 수밖에 없다. 아마존과 에어비앤비는 아이디어가 좋아서도 처음 시작했던 시장 크기가 무궁무진해서도 아니고 그냥 제프 베조스, 브라이언 체스키와 그들의 팀이 훌륭했기 때문이다.

물론 시장성 검토는 너무나도 중요하다. 이걸 지적하는 것이 아니다. 스타트업이 처음 시작한 마켓을 두고 시장이 얼마나 큰지를 보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이 회사가 아주 작은 마켓에서 돌풍을 일으켜 점차 덩치를 키워나갔을 때 궁극적으로 넘어뜨릴 수 있는 큰 마켓이 어디인가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는 정말 자신이 있었다. 스포츠 시장 자체의 시장 크기는 의식주의 그것과 비교해 크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 속에서 우리가 차지할 위상은 독보적일 것이다.

그리고 인류가 존재하는 한 스포츠는 계속된다. 그리고 우리가 시작하는 마켓은 큰 플레이어들이 보잘 것 없다고 생각하는 니치 마켓이지만, 이를 발판 삼아 스포츠 시장을 그리고 그걸 넘어 다른 시장까지도 넘어뜨릴 비전과 각오도 있다.

하지만 어쨌든 우리가 아무리 큰 마켓을 넘어뜨릴 수 있다고 비전을 그려봐도 결국 가설일 뿐이고, 이번에도 어김없이 ‘너희는 시장성이 없어’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특히 스타트업 투자는 그다지 과학적인 방법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서 투자를 집행하는 사람이 ‘경험한 시장’에 따라 크게 좌지우지된다. 그 사람이 자주 겪어 익숙한 것이라면 시장을 크게 느끼고, 그렇지 못하다면 시장이 없다고 생각한다. 처음 투자를 집행하고자 하는 사람의 눈에 들어간다면 그 이후 프로세스는 다 비슷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한국 투자자 분들은 스포츠 시장에 익숙하지 않다. 실제로 한국 스포츠 시장이 그렇게 크지 않기도 하다. 그래서 스포츠로 회사가 얼마나 커질지 가늠해보기 어렵다고 한다.

그분은 마지막으로 ‘한국은 진짜 시장성이 없는데 만약 너네가 진짜 시장성이 있는 독일, 영국 같은 곳에서 굴러보겠다면 2억 정도는 넣어줄게’라고 하셨다. 오기가 생겼다. 그분에게 투자받고 싶어서는 아니고 우리의 능력과 우리의 시장성 두 가지를 한 번 증명해보고 싶었다. 둘 중 하나라도 증명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굳이 우리의 젊은 날을 바쳐 이 사업을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엉덩이가 더 무거워지기 전에 결정했다.

 

#시장 조사

그날 바로 돌아와서 팀원들과 회의를 한 후 나는 ‘한 번 미친 척하고 가서 굴러보자!’라고 제안했다. 우리 중 일부는 소중한 여자 친구는 있었지만, 아직 결혼 한 사람은 없었다. 당연히 팀원 중 어느 누구도 아이를 가진 사람도 없었다. 우리가 한국에서 수백억 원 대의 어마어마한 기존 사업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잃을 게 없었다. 만약 한국에서 우리를 믿어주고 있는 고객들에 대한 서비스가 저해되지 않는 한, 새로운 곳에 가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밭을 일구기 시작하지 못할 게 뭐가 있겠는가.

일단 우리가 어디를 어떻게 가서 무엇을 팔아야 할지를 고민해보기로 했다. 그때는 기존에 하던 아마추어 스포츠팀을 위한 서비스를 서서히 접고 스포츠팀을 위한 비디오와 데이터 분석 서비스로 한참 옮겨갈 시기였다. 우리가 생각했던 독일, 영국, 스페인의 축구 시스템은 대충 어떻게 되어 있는지, 그 나라에 축구팀은 얼마나 있고, 우리 경쟁사는 누구며, 처음 컨택할 수 있는 포인트는 어떤 것들이 있을지를 글로벌 디렉터 형이랑 같이 열심히 연구했다.

그리고 독일에 한 번 가보기로 결정했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아래와 같이 요약할 수 있었다.

1. 글로벌 디렉터 형이 독일 함부르크에 본사를 둔 유럽 최대 스포츠 마케팅 회사에 오래 다녀 네트워크가 있다.
2. 축구 시스템이 가장 잘 되어 있고 특히나 비디오&데이터 분석의 가치와 활용법에 대해 제일 잘 인지하고 있다.
3. 독일의 경제력은 높은 수준을 자랑한다. 그렇기 때문에 스포츠 팀들이 유료 프로덕트를 구매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4. 앞에서 말한 것처럼, 직접 ‘해보지’ 않고 구글만 두들겨서 시장을 조사할 수 있으면 누가 글로벌 기업을 못 만들겠는가?

이건 내 개인적인 생각일 수도 있지만, 다른 멤버들도 어느 정도는 동의할 거라 믿는다. 우리 팀은 “유저가 돈 내고 쓰는” 프로덕트를 만들고 싶었다. 소프트웨어의 수익모델은 다양하지만, 광고 등을 통해 돈을 벌기보다는 정말 우리가 고객에게 부가가치를 창출했다는 걸 느끼고 싶었다. 사실 처음부터 팀 대상으로 한 B2B SaaS 프로그램을 만들 생각은 없었다. 그게 뭔지도 사실 잘 몰랐다. 그냥 유저가 정말 돈을 낼 정도로 필요로 하고, 또 값어치 있는 소프트웨어는 뭐가 있을까를 끊임없이 실험해보다가 자연스럽게 이 쪽으로 흘러오게 되었다.

경쟁사를 조사해보니 실제로 많은 팀들이 경쟁사 서비스를 돈 내고 쓰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또 높은 수준의 팀이 쓰는 S라는 서비스가 있었는데 이 업계에 오래 있었던 것 치고는 우리가 못 이길 수준의 프로덕트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래서 만약 독일에 갔을 때 대부분의 팀이 S를 쓰고 있다면 우리도 해볼 만할 거라고 생각했고, S 이외에 다른 서비스를 쓰고 있는지 또는 아예 이런 서비스를 경험조차 못 해봤는지를 보고자 했다.

 

#2번의 독일 출장 (1/2)

그렇게 2016년 11월 처음 독일에 왔다. 독일은 생전 처음 와봤고, 독일어는 당연히 한 마디도 몰랐으며 영어를 딱히 잘하는 것도 아니다. 시장을 관통할 대단한 인사이트나 전략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냥 갔다. 나는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미리 엄청난 준비와 계획을 세우기보다는 즉흥적으로 상황에 맞게 임기응변하는 것이 내 몇 안 되는 능력이자 내가 좋아하는 일이다.

완벽한 준비란 있을 수 없다. 물론 내가 독일어를 더 잘했으면, 제품이 더 훌륭했으면 좋았겠지만 안타깝게도 시장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또한 우리가 완벽히 준비했다고 생각하는 것들도 막상 시장에서 부딪혀보면 잘못된 방향으로 열심히 달려온 것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독일어를 공부한 뒤 독일에 가야 한다면 도대체 어느 정도까지 해야 하는가? 제품이 완벽했을 때 가야 한다면 도대체 어느 정도 완벽해야 하며, 그게 시장에 딱 맞는 완벽함이라는 건 누구의 생각인가? 결국 역설적으로 준비 역시도 직접 ‘해보지’ 않으면 완벽히 준비할 수 없다.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조차 알기 어렵다.

일단 부딪혀보았을 때 성공하지 못한다면? 그건 둘 중 하나인데 내 능력이 부족했거나, 아니면 애초에 내 판단이 잘못되었던 것일 확률이 크다. 어찌 되었든 내 잘못이다. 내 능력 이상의 것을 가지려 욕심을 부린 것이다. 그렇게 되면 후회 없이 내려놓을 수 있다. 내 능력 밖의 일인지 아니면 도전해볼 만한 일인지도 역시나 해봐야 안다. 자기가 지금 가지고 있는 능력으로 모든 일을 다 해낼 수 있다는 오만함이나, 실패할 것이 두려워서 또는 아직 준비가 안 되었다고 생각해서 도전하지 못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부딪혀 봤을 때 해 볼만한 생각이 든다면 죽어라 노력해서 능력을 키우면 된다. 그래서 “지르는 용기와 수습하는 능력” 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처음 독일에 도착해서 돈을 아끼기 위해 글로벌 디렉터 형이랑 더블 침대 하나 간신히 들어가는 에어비앤비에서 성적 취향이 나와 다른 호스트와 함께 살았다 (뭔 일이 있었던 건 아니다). 개고생의 시작이구나 싶었는데 사실 개고생 해서 얻어내지 않으면 무슨 재미가 있을까.

함부르크에서 1주일 지내는 동안 글로벌 디렉터 형이 알던 수많은 축구계 인사들을 만났다. 전 직장 보스, 지금은 다른 곳에서 일하는 직장 동료, 유명한 스포츠 에이전트, 하부리그 축구팀 코치, 분데스리가 소속 상파울리 팀 코치 등등…

그들이 한결같이 우리 서비스를 보고 난 후의 반응은 한국식으로 표현하자면 ‘개쩐다’였다. 아직도 형의 전 직장 보스이자, 스포츠 마케팅 회사에서 잔뼈가 굵은 E가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독일의 아마추어 축구 시장이 얼마나 되냐고? Endless야.

어느 누구도 “프로덕트가 별로다, 시장이 작다”라는 말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이들은 대부분 우리가 예측했던 대로 경쟁사인 S 제품을 쓰거나 심지어 이런 제품을 경험조차 해보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그 외 다른 의미 있는 경쟁자는 없었다.

이들은 우리가 빨리 독일로 왔으면 좋겠다고 하면서 “혹시 이런 것도 가능해?” 라며 온갖 아이디어를 던져주었다. 그 때 형이랑 상파울리 클럽하우스를 나와 담배 한 대 피면서 “야 우리 진짜 제대로 잡은 것 같다”라며 기뻐하던 장면이 아직도 눈앞에 생생하다.

그렇게 한국에 돌아와서 우리는 독일 친구들이 던져준 수많은 아이디어들 중 핵심을 추려 분데스리가 겨울 휴식기가 끝나는 2월에 맞춰 업그레이드한 후에 다시 찾아가기로 했다. 우리 스케줄은 늘 빡셌지만 그때는 진짜로 연말도 없이 더 빡세게 일을 했었다.

 

#2번의 독일 출장 (2/2)

그리고 마침내 2017년 2월 출장 시기가 왔다. 이번에 우리는 소프트웨어 말고 9m 삼각대라는 또 다른 무기가 생겼다. 축구에서는 공을 갖고 있는 선수만큼이나 공을 갖고 있지 않은 선수들의 움직임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한데 일반 아이레벨(eye-level) 카메라로는 이 장면을 다 담기가 어렵다. 이 문제는 한국 고객들에게도 1년 내내 계속해서 제기되었어서 엄청 고민을 많이 했는데 드디어 해법을 찾은 것이다. 그리고 9m 카메라로 촬영한 버드아이 (bird-eye) 뷰 영상이 있으면 향후 우리가 하려는 트래킹 시스템 및 기타 등등 미래에도 훨씬 더 가까워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아이레벨 뷰 (비프로 애널리틱스 화면)

 

버드아이 뷰 (비프로 애널리틱스 화면)

둘 다 내가 직접 찍은 경기인데 차이가 확연히 느껴진다.

독일로 가는 비행기에서 필 나이트의 ‘슈독’을 처음으로 읽었다. 필 나이트가 일본 오니츠카 타이거와 쇼부를 보러 일본으로 가는 비행기에서 엄청 긴장했던 모습을 담담하게 적어둔 구절을 읽으며 지금 독일로 떠나는 내 모습과 진짜 비슷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그때 ‘슈독’을 내 인생 책 리스트에 추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번에는 우선 베를린에 먼저 가서 투자자, 다른 회사 창업자, 이미 엑싯한 창업자 등등을 만나보며 대충 독일 스타트업 바닥이 어떻게 굴러가는지를 먼저 보려고 했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독일 편에서 더 자세히 쓰겠지만 내가 받은 느낌을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독일이라는 나라의 경제 규모에 비해 스타트업 판은 굉장히 작고, 능력 있는 인재들도 생각보다 오려고 하지 않으며, ‘로켓 인터넷’의 영향으로 참신한 아이디어보다는 미국에서 잘 나가는 서비스를 독일 시장에 맞게 베껴오려는 성향이 강한 데다, 기술력도 그렇게 대단하지 않아서 우리가 충분히 비벼볼 수 있겠다” 정도를 느꼈다. 독일에 와서 지내면 지낼수록 느끼는 건데 이건 우리한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당연히 절대 아니고 한국에서 잘하는 스타트업 팀들이라면 누구나 와서 한 번 해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두 번째로 함부르크에 도착했다. 이번에는 운 좋게도 저렴한 가격에 진짜 좋은 에어비앤비를 빌릴 수 있었다. 15일 동안 ‘정말 우리가 독일에서 산다면 어떨까?’라는 느낌을 체험하기 위해 대중교통이나 우리나라의 쏘카 같은 드라이브 나우를 활용하고 음식은 주로 마트에서 재료를 사다가 해 먹었으며 카페보다는 코워킹 스페이스 같은 곳을 찾아 일을 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가 11월부터 2월까지 갈고 닦은 칼을 함부르크의 유저들에게 선보일 때가 왔다. 이번에는 다른 축구계 관계자 말고 철저히 잠재고객들 하고만 시간을 보냈다. 9m 삼각대로 경기를 찍어주고 우리 소프트웨어를 보여주었을 때 모든 유저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우선 삼각대가 너무 눈에 띄기 때문에 경기장에 설치하면 경기를 보러 온 팬들 (독일은 하부리그라도 직관하러 오는 팬들이 꽤 많다) 뿐만 아니라 상대 팀 코치들까지도 관심을 보인다. 경기 중 상대팀 코치 연락처를 받은 후 주중에 미팅을 하면 어느새 한 팀이 늘어나 있다. 독일에는 리그가 정말 많은데 각 리그별로 거점 팀을 하나씩 세일즈하고 이 팀이 한 시즌 쭉 다른 상대 팀들과 경기를 한다면?

독일은 전 세계에서 교육받은 코치 수가 제일 많은 국가이다. 2위인 영국보다 뒤에 0이 하나 더 붙는 수준이다. 심지어 어떤 클럽의 1군 팀 (6부 리그) 감독은 터키 국가대표팀 출신이고, 2군 팀 (8부 리그) 코치는 UEFA A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친구들은 진짜 데이터 분석 덕후였다. 영상과 데이터를 두고 토론하고 의미를 찾아내는 일을 즐겼다. 다만 지금까지는 그게 중요한 지 알면서도 가격이 너무 비싸서 또는 쓸 줄을 몰라서 그런 프로덕트들을 못 쓰고 있었던 것이다. 이 친구들에게 우리 프로덕트는 실크로드를 건너 온 동방의 상인들이 판매하는 물건이었다. “(맨날 축구를 보고 하고 고민하는 우리도 상상도 못 하였는데) 어떻게 이런 걸 생각했어?” 가 항상 주된 반응이다.

이 나라는 진짜 축구에 미친 나라다. 많은 사람들이 지역 클럽에 속해서 축구를 하고, 운동 일정이 있어서 먼저 퇴근해봐야겠다는 말이 먹히는 나라다. 심지어 비즈니스 접대도 축구장 VIP 룸에서 한다. 상대 파트너가 어떤 팀, 어떤 선수를 좋아하는지 미리 조사하고 그 경기를 잡는다.

지역 5부, 6부 리그 경기를 해도 관중이 많이 오고, 심지어 그 관중들은 입장료도 낸다(수준은 우리나라 꽤 잘하는 아마추어 팀 정도인데!!). 모든 축구 팬들의 로망은 구단주인데, 독일 지역 유지들은 1부 리그 구단주가 될 수준은 아니지만 대신 5부, 6부 리그 지역 구단을 사서 키운다. 8부 리그 선수들까지 작게라도 월급을 받고 뛴다. 회비를 내도 모자랄 판에 체계적으로 훈련도 받고, 유니폼 및 기타 모든 용품들도 다 지급받는데, 월급도 받는다!! 이건 진짜 미쳤다! 게다가 웬만한 구단들은 다 각자의 홈구장과 클럽하우스를 가지고 있다.

한 번은 우리가 서비스해준 팀의 상대 팀에서 가격이 얼마냐고 물어봤다. 그래서 가장 낮은 베이직 버전이 얼마라고 대답해줬다. 적은 금액이 아니다. 그런데 그럼 그 다음 단계인 어드밴스 버전은 얼마냐고, 뭐가 다르냐고 묻는다. 그래서 대답해줬다. 그랬더니 어드밴스 버전을 쓰겠다고 한다. 근데 그게 6부 리그 팀이고 함부르크에는 축구팀이 3천 개가 넘는다. 저명한 회사에서 조사한 결과에 따른 것이 아니고 직접 독일 축구협회에 들어가서 등록된 팀들을 지역별로 하나하나 카운트한 결과물이다.

만나는 거의 모든 팀들이 프로덕트를 써보고 싶다고 했다. 근데 안타깝게도 우리는 한국 법인 밖에 없었고, 그 팀이 서비스를 쓰려면 한국 회사와 계약을 맺고, 은행에 계좌이체를 해야 했다. 독일에서 겪은 한국 은행 시스템의 거지 같음은 글을 몇 개를 써도 부족하다. 어쨌든 그 상태로 팀과 계약을 맺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당장 장비도 보내고 CS도 해야 하는데 한국에 있는 상태로는 이들에게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어떻게 3개월 만에 이 많은 시스템을 구축했는지에 대해 정말 놀라워했다. 그래서 대답했다. “너희가 1개월 동안 연말 휴가 보내고 있을 때 우리는 일했어. 그리고 평상시에도 우리가 너희보다 훨씬 일을 많이 할 거야”. 후에 다시 이야기할 기회가 있겠지만, 나는 이 부분이 한국 회사들이 가지고 있는 엄청난 경쟁력이자 기회라고 생각한다(중국이나 일본도 이런 문화가 있나? 잘 모르겠다). 유럽이 과연 빠르게 변화하는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나갈 수 있을까? 글쎄…

어쨌든 그래서 함부르크로 가야겠다고 확신했다. 함부르크로 아예 이사 와서 사업을 하겠다는 말을 상파울리 유스 총괄 매니저에게 했더니 그때부터 우리를 ‘Crazy Korean’라고 불렀다. 실제로 와이프랑 통화하면서 ‘지금 Crazy Korean들이랑 보드카 한 잔 하고 있다’라고 했다. 그날 과음하고 늦게 들어가서 와이프가 많이 걱정했을 것 같다.

한 번은 어떤 클럽에서 연세 지긋하신 클럽 프레지던트와 보드(Board) 앞에서 나와 디렉터 형이 PT를 한 적이 있다. 연세가 있으신 분들에게 웹 서비스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서비스를 소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사실 그분들이 의사결정자라고 들어오시는 걸 보고 계약하기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설명을 마치고 그분들이 “와 진짜 좋네. 쓰자!”라고 했던 게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우리의 첫 번째 유료 고객이었다. 그날 그 클럽의 클럽하우스에서 구단 직원, 감독, 코치, 팬들과 보드카와 맥주를 진탕 마셨는데 그 기분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클럽하우스

 

당시 클럽 총괄 매니저이자 이제는 친구가 된 알란

 

1군 팀 감독님

독일에 와서 인간의 보편적 특성에 관심이 많다. 사람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문화권은 생각보다 그렇게 엄청나게 큰 변수는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성별, 세대, 재산 수준, 외모와 같은 것들이 더 크게 좌우한다. 20대 중산층 독일 남성과 20대 중산층 한국 남성은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비슷하다. 그리고 이 보편적 특성을 더 깊이 이해할 때 진정한 글로벌 서비스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어떤 분야를 진심으로 좋아하면 더 잘하게 되고 싶은 것은 인간의 보편적인 욕구이다.

우리는 기존에 프로들만 사용하던 분석 시스템을 프로뿐만 아니라 세미프로와 아마추어 팀들에게까지 확대하여 이들이 자기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분야에서 더 성장하고 나은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하고 있다.

우리 회사가 서비스 내적/외적으로 갖고자 하는 단어가 있다면 ‘능력의 성장’이다. 독일은 우리의 비전을 실현하기에 너무나도 좋은 환경이다.

 

#이주 준비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서 본격적으로 독일에 갈 준비를 했다.

  • 당연히 제 1순위는 독일에서 서비스하기 위해 프로덕트를 갈고 닦는 일이다.
  • 독일에서 1년 자리 잡고 제대로 굴러보려면 투자를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 두 명의 능력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한 명은 경험 많은 시니어 개발자, 한 명은 우리의 다음 프로젝트인 트래킹 시스템을 준비할 컴퓨터 비전 개발자였다.
  • 그 외 부수적이지만 결코 작지 않은 일들 (법인 설립 / 비자 발급 / 짐 부치기 등등..)

두 번의 출장 이후로 독일에서의 성공을 단 한 번도 의심해본 적이 없다. 지금도 그렇다. 하지만 막상 6월 함부르크 주민이 되기 위해 도착했을 때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일이 문제가 아니라 “부수적이지만 결코 작지 않은 일들” 때문이었다. 해외에서 사업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시장성과 ‘우리 팀이 그 시장에서 진짜로 무언가를 해볼 수 있느냐’ 뿐만 아니라, ‘우리가 도전하기 위해서 기타 생활적인 부분이 얼마나 안정적이냐’도 중요하다. 하지만 이걸 처음에는 그렇게 크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서 처음 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내 생각엔 앞으로 한동안, 이 문제 때문에 정말 고생을 많이 했고 하게 될 것 같다. 이 부분은 글이 길어졌으니 다음으로 넘기도록 하겠다.

내 또 다른 인생 책인 ‘Good to Great’에 ‘스톡데일 패러독스’가 나온다.

“냉혹한 현실을 냉정하게 받아들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최종 승리에 대한 흔들림 없는 믿음과 냉혹한 현실을 이겨내고 위대한 회사로 우뚝 서고야 말리라는 맹세를 지켰다. 우리는 이 이중성을 ‘스톡데일 패러독스’라고 부르기로 했다.”

체 게바라가 했던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속에는 불가능한 꿈을 갖자”라는 말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다. 요새는 그걸 ‘그릿(Grit)’ 이라고도 하는 것 같다.

이번 편의 주제가 실행력이었다면 다음 편의 주제는 “될 때까지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라는 의지이다. 사실 다음 편이 진짜 쓰고 싶었던 글이었는데 배경 설명이 필요할 것 같아 프롤로그를 만들었다.

이번 편은 장밋빛 미래였다면 다음 편은 지금 처한 냉혹한 현실이자, 앞으로의 의지가 꺾이지 않기 위한 다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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