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회사원입니다. 거의 10년 동안 기업에서 전략기획 업무를 주로 담당해온, 여러분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사람 중 한명입니다. 작지 않은 규모의 조직에서 실무자와 팀장으로 있으면서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참 많은 경험을 했습니다. 가끔 고속성장으로 이어진 사업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실패와 관련된 경험이었습니다.

조직에 아이디어가 없어서 실패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너무 많았죠. 인재가 없어서 사업이 실패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처음 조직에 들어올 때는 다들 대단했습니다. 곧 떠나갔지만요. 경영 이론이 없어서 실패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단언하자면 어떤 조직보다도 많은 경영 담론이 떠다녔고 분기마다 새로운 이론을 조직에 어떻게 적용시킬지 숱한 논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니 그래서 실패가 많았습니다. 실패는 꿈 많던 신입사원들을 젊은 나이에 커리어의 막다른 길로 몰아넣었고 회사를 믿고 투자한 많은 사람들의 삶을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함께 일했던 협력업체들도 생존의 위협에 처한 곳이 많아졌습니다. 기업의 실패는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킵니다. 물론 저도 그 파장을 온몸으로 맞아야만 했습니다. 몸 곳곳이 상했고 칼을 대고 약을 먹고 하면서 회사생활의 실패 못지 않게 야근과 특근으로 건강도 실패했습니다. 회사생활이 어려우면 가정생활에도 최선을 다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은데 어리석게도 저 역시 그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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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실패했을까? 

그 하나의 물음이 이 책을 쓰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실패하고 조용히 사라질 수 있는데 그러기에는 지금까지 들인 시간과 땀이 너무 아까웠습니다. 정리하고 싶었습니다. MBA를 방불케 하는 케이스 스터디에, 컨설팅 회사에서 쓰는 탬플릿이 난무하고, 심리학 기법을 동원한 인사제도까지 도입하고, 높은 수준의 복지와 보상이 이루어진 조직이 왜 실패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회사에서 주장하던 전략 안에 이미 답이 있었습니다.

현대 경영학을 열어젖힌 피터 드러커는 피드백이 유일한 학습 도구임을 강조했지만, 회사는 늘 기획과 실행을 마치고 피드백을 하는 단계에서 정말 무엇을 피드백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재무상태, 시장전략, 서비스 품질 같은 눈에 보이는 것은 쉽게 피드백하면서도 정작 그것을 만든 기업문화, 인사제도, 경영관리 방식 같은 것은 말하는 것조차 터부시했습니다. 무엇을 피드백해야 하는지 모른 채 늘 수 많은 보고서들이 넘쳐났고 그것들을 정리하고 발표하기 위한 무수한 회의만 일정을 가득 채웠습니다.

유수한 경영이론은 어떻습니까? 회사 어딘가에서 만들어진 전략은 그 자체로는 나무랄 데 없이 훌륭한 의도를 가졌지만, 그 쓰임이 항상 엇나갔습니다. 처음 의도는 곧 사라지고 개인과 부서의 이해관계가 이론을 변질시키고 토양이 어떤지에 상관없이 유행하는 묘목을 여기저기 심었습니다. 기획실에서 일하면서 회사의 경영진과 실무진이 서로 답답해 하면서도 대화를 진전시키지 못하는 상황들을 자주 목격했습니다. 전략은 늘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회사에서 마구잡이로 응용하던 경영이론들을 되짚어보면 원래 그런 뜻이 아닌데 우리 회사에서는 왜 그렇게 오용되고 있을까? 다시 펴본 책에서는 회사 상사의 주장과는 다른 얘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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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생각을 모아 카카오 브런치모비인사이드에 <흔한 전략기획의 브랜드 지키기>란 시리즈를 연재한 지 1년이 넘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공감해 주셨고 때로는 분에 넘치는 인기를 얻은 적도 있습니다. 이제 이 책에서 그 이야기를 더 쉽게 해보고자 합니다. 바다 건너 인정받은 경영이론이 여기로 오면 어떻게 변하는지, 잘해보려고 할수록 사업은 왜 더 안 되는지를 생생한 스토리로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기업에서 가장 피드백이 중요한 부분들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싶었습니다.

(도서) 회사언어 번역기, 불신과 비효율을 자율과 창의로 바꾸는 경영의 언어

에는 여러 회사원들이 등장합니다. 회사의 대표도 있고 팀장, 실무자도 있습니다. 그들은 맡은 바 역할이 있지만 종종 제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읽으시면서 ‘이럴 때는 이렇게 하는 게 맞는건데’, ‘저렇게 하면 저런 결과가 나올 텐데’ 하면서 공감하는 부분이 많으실 겁니다. 거기에 답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실 겁니다. 기업문화는 어느 한 명이 전부 만드는 게 아니기에 제대로 된 기업문화도 한 사람의 노력만으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한 명 한 명이 오롯이 해야 하는 고유의 역할들이 있습니다. 이 책은 각자 제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게 뭔지 그려내고자 했습니다.

각각의 에피소드들은 회사에서 벌어지는 모순적인 상황들을 극화해서 보여줍니다. 하지만 회사의 부조리한 모습을 드러내는 데서 그치지는 않습니다. 저마다 다른 말을 해서 의도와 결과가 왜곡되고 변형되는 불통의 현실을 바꾸기 위해 서로 알아들을 수 있는 올바른 언어로 소통하는 방법을 각 에피소드 말미에 별도로 제시했습니다. 현대 경영학은 조직에 속해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최고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을까에 답하는 다양한 연구결과를 내놓았습니다. 이런 이론들에서 인사이트를 얻어 수많은 사람들이 매일매일 회사생활에서 겪는고통을 해결하는 실마리를 여러분과 함께 찾고자 합니다. 부디 회사 안에서 겉도는 서로 다른 언어들을 모두 알아들을 수 있게 되는, 열린 경영의 세상이 오길 소원합니다.

– 회사 이야기를 필명으로밖에 남길 수 없는 ‘피터(Peter)’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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