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페이스북을 통해 한 스타트업의 휴업 소식을 접했다.
매달 세계 맥주를 정기 배송해주는 ‘벨루가’ 김상민 대표는 페이스북을 통해 정부 규제로 인해 무기한 휴업 상태에 돌입한다고 발표했다. 창업 준비기간 약 1년, 출시 3개월 만에 서비스를 종료했다. 이용자들도 놀랐겠지만, 서비스를 운영하는 당사자들의 마음은 더욱 착찹했을 것이다.
안녕하세요, 벨루가 창업자 김상민입니다.
어느덧 2016년 7월 처음 서비스를 구상하고 시작한지 벌써 만1년이 되었습니다.
준비하는 과정부터 운영하기까지 즐겁고 보람찬 순간도 있었고, 안타깝고 감정이 소비되는 …
벨루가 – Veluga에 의해 게시 됨 2017년 7월 18일 화요일
최근 수입/수제 맥주가 인기를 얻으면서 벨루가도 함께 주목을 받았다. 특히 시중에서 접할 수 없던 맥주를 집에서 편하게 즐길 수 있다는 사실에 맥주 애호가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났다. 주변 맥주 덕후들이 많아서인지, 벨루가 맥주가 배송되는 날이면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소셜 미디어에 인증샷이 도배되곤 했다. 시장성, 성장성이 충분했던 서비스가 한 순간에 문을 닫게 되어 매우 아쉬웠는데, 한편으로는 ‘왜?’ 이런 결과가 초래됐는지 궁금증이 생겼다.
스타트업과 규제는 매우 긴밀한 관계에 있다. 기존 플레이어들과 시장에서 혁신을 꾀하는 스타트업들은 규제를 놓고 치열한 공방을 벌이기도 한다. 헤이딜러, 콜버스, 8퍼센트 등 여러 산업에서 스타트업과 규제는 빈번하게 부딫쳤다. 이 때마다 스타트업은 서비스를 재정비하거나, 연합을 만들기도 하고, 규제에 정면으로 대항하기도 했다. 반면, 벨루가는 무기한 휴업을 선택했다.
“무기한 휴업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7월 25일 김상민 벨루가 대표(사진)를 만나 스타트업과 정부 규제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
김 대표는 2014년 영문 교정 서비스 ‘에디켓’의 창업 멤버로 스타트업에 발을 내딛었다. 이후 게스트 하우스 공유 플랫폼 ‘지냄’의 전략이사로 합류하게 됐다. 스타트업에 매력을 느낀 김 대표는 새로운 아이템을 고민하며 창업을 준비했는데, 불현듯 기회가 찾아왔다.
“2012년 쯤 해외 스타트업 ‘원달러쉐이브클럽’을 알게 됐습니다. 매월 면도날을 정기 배송해주는 서비스인데요. 미국에서 한창 주목을 받을 때 우리나라에서는 어떻게 바꿔볼까 생각했죠. 마침 작년 주류 배달과 관련된 법 조항이 완화되면서 벨루가라는 서비스를 시작하게 됐죠.”
이후 김 대표는 서비스 기획, 디자인, 홈페이지 개발까지 모든 부분을 혼자 힘으로 준비했다. 빠른 행동력으로 시장을 선점하여 대기업, 경쟁사보다 경쟁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전략이였다. 약 1년 동안 서비스를 준비하고 올해 5월 본격적으로 서비스를 출시했는데, 시장의 반응은 뜨거웠다.
“처음에는 맥주 커뮤니티를 통해 약 30명의 회원을 모아 서비스를 운영했죠. 직접 배달다니며 유저들의 피드백을 받기도 했죠. 본격적으로 서비스가 출시된 후에는 벨루가의 성장성을 쉽게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맥주를 좋아하시는 분들이 매우 만족해하는 서비스였고 초반 팬층을 형성할 수 있었죠. 3개월 만에 유료회원은 200명을 돌파했고, 매출곡선도 가파르게 상승했죠. 특히 이용자 재구매율은 80%가 넘었습니다.”
정부의 규제 완화가 새로운 비즈니스의 기회를 제공하지만, 한편으로는 정부의 움직임을 주시해야 한다. 개정안이 유동적으로 변경되어 스타트업 성장의 발목을 잡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법학을 전공한 만큼 서비스를 준비하면서 꼼꼼히 법적 조항을 살폈지만, 문제는 법 외적인 곳에서 발생했다.
“벨루가를 준비하면서 고문 변리사님, 변호사님을 통해 법적 검토를 받았고 세무서, 국세청에도 문의를 했습니다. 그 당시 법률적 검토 과정을 거쳤죠. 하지만, 서비스 시작 이후 정부측에 많은 민원이 접수됐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정부 입장에서는 민원이 접수되면 대응을 해줘야 하는데요. 완화된 규제에 부수적인 조항이 추가되면서 개정안이 발표되더라구요. 개정안을 예고없이 2주 전에 고지하는 부분은 매우 당혹스러웠습니다. 스타트업 입장에서 서비스를 개편하기나 규제에 대비하기에 매우 부족한 시간이죠.”
- 관련 기사: ‘수제맥주’ 배달 스타트업, ‘무기한 휴업’ 선언한 사연(디지털 타임스)
벨루가 출시 3개월 동안 다양한 일이 있었다. 처음 개정안이 발표된 이후에는 맥주와 함께 배달할 음식 레시피를 만드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법적 테두리 안에서 서비스를 운영하기 위해 노력한 셈이다.
“서비스 생존을 위해서 맥주와 함께 배달할 수 있는 음식을 찾아야했죠. 특히 한 여름 폭염에도 상하지 않는 식품이여야 했습니다. 서비스 성격이 갑자기 변화하게 되어 이용자들의 반응을 걱정했는데, 오히려 기존 회원분들이 많은 도움과 의견을 주셨습니다. 이용자들의 피드백으로 진공포장, 다른 스타트업과의 제휴를 준비하고 있었죠. 하지만, 결국 음식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최근 정부는 ‘음식에 부수적으로 주류를 배달할 수 있다’고 개정안을 발표했다. 햄버거와 핫도그를 조리해 대처했던 벨루가에게는 또 다른 민원이 접수되었다. 이에 김 대표는 세무서에 방문하여 문의했지만, 돌아온 대답에서는 도무지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세무서에서 나와서 법 조항을 말하며 음식에 부수한 맥주 배달은 괜찮지만, 수입 맥주와 크레프트 맥주를 배달하는 경의를 봤을 때 의도성과 목적성이 주류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서 불법이라고 말하더군요. 음식이 문제 되는 것도 아니고, 목적과 의도성을 기준으로 법조항을 해석해 서비스를 규제하는 모습에 말문이 막혔습니다. 오히려 추가적으로 민원이 들어오면 과태료를 부과 할테니, 자신있으면 사업을 지속하라고 말하더군요.”
대한민국 스타트업 중에 정부 규제에 대항할 수 있는 곳은 얼마나 될까?
벨루가는 여름철 성수기를 앞두고 대형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었지만, 시장에 나쁜 사례를 남기기 싫어 무기한 휴업을 결정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스타트업이 정부 규제를 바꾼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형 프로젝트를 앞두고 서비스를 지속할수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과태료 처분을 받으며 서비스적으로 제재를 받고 폐업하는 모습이 대한민국 스타트업 시장에 안좋은 모습이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사업적으로 크게 피봇팅을 할 수도 있지만, 서비스의 고유한 색깔이 사라지는 형태라면 폐업을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결과적으로 벨루가는 무기한 휴업을 하게 됐지만, 김 대표는 여전히 더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답했다. 그동안 함께 한 팀원 5명은 중 일부는 퇴사할 수 밖에 없었고, 혼자서 이용자들에게 일일이 전화하여 환불처리를 진행하고 있다. 또한, 최근 마련한 사무실을 어떻게 감당할지도 고민거리이다.
“스타트업을 운영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을 꼽자면 자본금이라고 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번 돈은 없지만, 필요한 곳은 상당히 많죠. 특히 사무실이 가장 큰 이슈였습니다. 벨루가는 주류를 관리하다 보니, 주류 면허가 필요했고 근린 생활시설 2종 면허 자리에 일반 음식점 형태로 사업자를 내야했죠. 다른 스타트업들은 코워킹플레이스로 사무실을 대체하지만, 벨루가는 불가능했습니다. 다른 곳에 전대차로 사글세를 내면서 시작했습니다. 최근 이대 근처에 임대를 했는데, 서비스가 휴업하게 됐네요.”
벨루가는 무기한 휴업에 돌입했지만, 김상민 대표는 벨루가 DNA를 살릴 수 있는 사업을 계속 고민하고 있다고 답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대한민국 맥주시장 활성화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김대표는 스타트업 종사자들에게 서비스를 시작하기 전 법적 검토의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스타트업에서 생각한 비즈니스 아이디어가 불법인지 합법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인지하지 못하는 것 뿐이지, 사실 불법인 경우가 많이 있을 것입니다. 범법적인 경우 문제가 커지면 골치 아파지겠죠. 하지만,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미리 검토한다면 나중에 문제가 생겨도 할 말이 있습니다. 벨루가는 서비스를 시작할 때 여러 부분을 확인했지만, 이런 식으로 법을 개정하면서까지 사업을 발목잡는 의도가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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