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TER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
지금부터의 내용은 ‘브랜드가 망가지는 9단계‘ 중 9번째 내용인 ‘우수한 유통망의 철수’에 대해 수집한 사례를 중심으로 자세히 설명한 내용입니다.
경쟁사 조사를 하는 오래된 방법
기업에서는 외부 기업 정보에 늘 목말라 있습니다. 시험을 치면 옆 사람 점수가 궁금하듯이 기업은 혼자 고민해서 잘 살 궁리만큼이나 옆 기업은 어떤 상황인지 보고 내가 평균보다 나은지 못한 지 알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다른 회사 정보가 오픈되어 있는 곳은 업계 전문 정보지나 DART 정도 수준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다른 회사의 정보를 빨리 간파하는 조직이 있습니다. 우수한 소비재 회사의 점포 개발팀이 이런 일을 의외로 해냅니다. 기업 조직 중에서 가장 조직 외부와 강제적으로 연결된 곳이 점포 개발팀이기 때문입니다. 외부 정보를 많이 알수록 투자의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에 기업은 궁여지책으로 이 조직을 활용해서 외부 기업의 정보를 알아내기도 합니다.
우수한 점포 개발팀은 알고 싶은 외부 회사의 매장 점포를 운영하는 사람들과 친분을 쌓습니다. 잠재적인 투자자이기 때문에 친분을 쌓는 경우도 있지만, 상대 브랜드의 사정을 확인하기 위해서 접근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점포를 운영하는 사람 입장에서도 상황에 따라서 운영하는 브랜드를 바꾸어야 할 수 있기 때문에 다른 회사 점포 개발팀과 나쁘게 지낼 이유는 없습니다. 보통 이런 이유들로 업계에는 회사를 넘어서 이해관계 덕분에 서로 친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점포 개발팀은 상대 브랜드의 고객 반응과 본사의 정책 등 일반적인 것을 물어봅니다. 그런데 보통 이런 것은 다년간의 판매처 유지를 한 사람 외에는 깊이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본사에서도 이런 정책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해 주는 곳이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정적으로 상대 회사 사정을 아는 방법이 있습니다. 판매처에 재고량이 얼마나 들어왔고 그것이 시기에 따라 어떤 변화를 겪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입니다.
제조업에서 재고는 치명적인 리스크이기에 최적의 재고 운영을 철학으로 합니다. 보유를 줄이면서 판매를 극대화 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이죠. 판매처 입장에서도 위탁 형식의 판매라면 재고를 더 받아서 팔고 싶고 사입 형태의 운영 방식이라면 적정량의 잘 나갈 것 같은 상품만 들이고 싶어합니다. 이런 이해 관계로 재고에 대한 목소리는 어느 브랜드, 어느 매장이나 불만의 첫 번째 요인이 됩니다. 많이 줘도 문제, 적게 줘도 문제가 됩니다.
점포 개발팀이 확인해서 판매처의 재고량이 필요 이상으로 적을 경우 상대 회사의 자금 사정이 어렵다는 판단을 할 때가 있습니다. 이상하게 확 줄어들었을 때 판매처의 고객망이나 상권의 변화가 급격하게 일어나지 않았다면 다운사이징을 하는 이유가 분명히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브랜드 운영이 외부로 알려지는 것에 비해 어려운 상황이거나 적어도 이 판매처는 버리는 카드라는 의사표현인 것입니다. 가능성이 있는 판매처일 경우 점포 개발팀은 재고량의 불만에서 발생된 판매처의 줄어든 수입을 타겟으로 해서 판매처에서 다루는 브랜드를 바꿔 버립니다. 더 많은 물량이나 더 좋은 수입 조건 등으로 제안 하기도 합니다.
‘살아 남는 것’의 역설
이런 형태의 판매처 경쟁은 시장이 어려울수록 가열됩니다. 호황기에는 ‘더 버는 것’이 판매망의 고민이었다면 불황기에는 ‘살아 남는 것’이 고민이 되기 때문에 어떻게든 행동을 취할 확률이 더 높아지는 것입니다.
각 판매처마다 판매처의 고유한 손익 분기점이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오프라인에서 B2C 판매를 직접 하는 브랜드라면 각 매장별로 손익 분기점이 되는 매출 수준을 파악하고 있습니다. 손익 분기점을 넘어서야 판매처가 유지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본적으로 건물의 임차료부터 판매 직원을 고용하는 비용, 포장비와 운송비, 판매망을 오픈할 때 쓴 인테리어 비용 등 고정적으로 드는 비용부터 위탁 판매의 형태라면 본사 수수료, 사입 형태라면 사입하는 원가 등 변동 비용이 늘 고정적으로 있기 때문입니다. 판매처는 최대한 이익을 남기기 위해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직영점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위탁 판매와 사입 판매와 다른 점이 있다면 모든 비용을 본사비용으로 내야 한다는 것이죠. 비용 자체는 더 많이 드는 형태입니다. 플랫폼을 제공하는 유통점이나 오픈마켓 등에서도 해당 유무형의 장소를 제공하는 대가로 받는 수수료의 절대 금액이 커야 계속 판매망을 플랫폼에서 운영할 수 있도록 해 줍니다.
이런 각각의 판매처의 이익을 일정 수준 이상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매출이 계속 나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재고액을 늘 갖추는 것이 핵심이죠. 플랫폼 사업자가 컨텐츠 사업자에게 늘 요구하는 것이 재고액입니다. 재고에 대한 부담이 없는 플랫폼 사업자는 수수료를 극대화 하기 위해서 계속 요구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브랜드가 다운 사이징의 사이클에 들어가면 재고액을 맞추는 것은 어려워 집니다. 당장 컨텐츠의 생산과 핵심 인프라 유지에만 해도 버티기 어려운 자금이 들기 때문입니다. 일정 기간 이상 판매율이 떨어질 경우에는 회전할 자금 자체가 부족하게 되고 판매처에 투입할수 있는 재고액은 줄어들 수 밖에 없습니다.
전체 재고액을 줄일 때 판매처의 구조조정이 없으면 결국 가장 많은 유지 비용이 드는 우수한 거래처부터 떨어져 나갑니다. 브랜드가 쇠락할 때 먼저 철수하는 판매처는 지방의 작은 상권에 있는 작은 재고액을 들고 있는 매장이 아니라 주요 상권에 고객이 많이 지나다니는 매장들입니다. 브랜딩이 퇴색하면 우수한 백화점이나 쇼핑몰에서 먼저 자취를 감추지만 지방 어디나 변두리 상권에서는 유지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알려진 상권에서 살아남기 힘들어진 컨텐츠 생산자는 생존을 위해 비용이 적은 상권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브랜딩이 채널에서까지 망가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습니다. 일단 후퇴한 이후 다시 제품의 경쟁력을 강화해서 재 진출 하자는 각오를 하고 보통 더 등급이 낮은 상권으로 이동합니다.
그러나 고객은 구매하는 채널에 의해 브랜드를 암묵적으로 구분합니다. 이것은 온오프라인 모두 해당되는 고객의 심리입니다. 고객은 이동한 상권을 보면서 브랜딩을 느끼기 더 어려워 집니다. 이런 일이 자연스럽게 벌어지는 것은 마지막까지 놓지 못하는 양적 단기 성과에 목마른 브랜드 관리자 때문입니다. 어떻게든 판매망의 숫자를 유지시키는 것이 내부적으로 평가받는 그들의 지상과제가 되기 때문입니다. 직전 분기에 500개의 점포를 가진 브랜드는 이번 분기에도 500개에 준하거나 그 이상의 점포를 가져야 내부 평가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기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적자가 나는 우수한 상권의 점포를 유지하라는 취지의 말은 아닙니다.
매출이 떨어져도 채널망을 숫자로 유지하는 모습을 보이면 노력을 하고 있다는 엉뚱한 평가가 나오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현장에 둔감한 경영진은 판매처의 질적 상태에 많은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다만 데이터로 나타난 판매처의 숫자만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경영진이 알고 있는 상권은 유지하면서 기타 핵심 판매처를 잃어버려도 잃어버린 만큼 더 안 좋은 상권에서 채널망의 숫자를 맞춰냅니다. 안 그래도 줄어든 재고가 안 좋은 상권에 그대로 옮겨가게 되고 아직 남은 좋은 상권의 손익분기점을 맞출 매출은 성장하지 않는 일이 벌어집니다. 재고의 효율성이 감소하면서 남아 있는 차선의 질 좋은 판매처도 곧 문을 닫거나 다른 브랜드로 이동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고객이 봤을 때는 백화점 브랜드에서 시장 브랜드가 되었는데도 내부에서는 여전히 백화점 브랜드라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백화점 브랜드가 낫고 시장 브랜드가 나쁘다는 말이 아닙니다. 컨텐츠와 채널의 괴리를 말하는 것이죠. 내부에서는 예전처럼 여전히 백화점 수준의 가격으로 그 원료로 진부한 제품을 양산하는데 타겟 고객에게 먹힐 리가 없는 것입니다. 이미 무너진 판매망에는 전혀 다른 고객들이 지나가고 있는 것을 애써 무시하고 있는 것이죠.
매출의 감소보다 무서운 건 신뢰의 감소
이 과정에서 정말 무서워해야 할 것은 시장의 신뢰를 잃는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강제적인 철수와 무리한 오픈, 기약없는 재고 약속 등 매끄럽지 못하고, 거짓말로 시간을 끄는 행위로 거래처와 유통망에서 신뢰를 잃어 버리는 것입니다. 다시 재기한다고 해도 시장에서 잃은 신뢰는 쉽게 회복되지 않기에 기존 생태계 안으로 재진입하는 것이 무척 어려워집니다.
한 번 잃어버린 신뢰는 나중에는 역량의 한계를 스스로 만드는 원인이 됩니다. 앞서가는 디자인 상품과 우수한 판매력을 가진 브랜드에서 디자인이 진부해지면 곧 다운사이징의 위기를 맞지만 거래처와 유통망과 거짓없고 시간 끄는 것 없이 신뢰를 개별적으로 유지했다면 디자인이 좋아졌을 때 재진입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때 판매처와의 관계가 경색되면 나중에 디자인이 좋아졌다고 해도 판매할 곳이 제한되는 역량의 한계를 맞습니다.
이것은 판매망과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역량 있는 공급망과의 관계에도 적용되는 부분입니다. 컨텐츠 자체만 가지고 있고 생산 인프라는 아웃소싱에 맡기는 기업이 많습니다. 디자인과 제조 기술이 분리되어 있거나 모든 것을 다 잘할 수 없는 기업에서 흔히 이루어지는 제휴입니다.
이런 생산망에서 일정 수준의 생산액을 사전에 합의 했다고 하면 일정 수준의 생산량을 유지하기 위해 발주를 하는 업체에서 최선을 다 해야 합니다. 상호 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제조 기술을 쓰고 안정적인 생산을 할 수 있도록 계약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최초의 내용과 달리 약속한 발주액을 맞추지 못할 경우에는 연속적인 관계를 가지기 어렵습니다. 해당 생산망에서도 약속된 발주를 위해 인력과 원료를 준비했는데 손해가 나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 발견한 최적의 생산망이 신뢰의 부재로 인해 끊어지는 것이죠. 다음에 찾는 생산망은 처음보다 안 좋을 확률이 보통 더 높을 것입니다.
체불 문제도 있습니다. 약속한 발주액이나 재고액을 모두 맞추어 주어도 현금 자체를 늦게 지불하는 문제로 거래망에게 자금의 어려움을 줄 수 있습니다. 납부 지연은 반드시 사전에 합의가 되어야 하는 것이지만 기업의 규모가 클수록 일방적인 통보나 날짜가 지난 후에 약속한 액수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흔히 말하는 ‘대기업의 갑질’입니다. 독과점 시장에서 대기업이 협력 업체에게 늦은 결제나 어음 등의 형식으로 갑질을 하는 경우가 여전히 많습니다. 보통 이럴 경우 협력 업체는 종속적인 관계를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유지하지만 다른 거래처를 찾는 계기로 삼거나 자체 브랜드를 만들어 시장에 뛰어드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종종 전에 갑질을 하던 회사를 넘어서는 기업이 탄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fbcomments url=”http://www.mobiinside.com/kr/2017/06/21/branding-99/” width=”100%” count=”off” num=”5″ countmsg=”wonderful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