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석 중국 IT 칼럼니스트가 미디엄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

쇼핑몰에서 데이터 기반 플랫폼이 되기까지의 간략사

2003년, 알리바바그룹이 고객간거래(C2C) 이커머스 플랫폼인 ‘타오바오’를 중국 시장에 선보입니다. 타오바오는 당시 시장을 점령하다시피 한 ‘이취(당시 시장 점유율 72%. 이베이가 인수)’의 점유율을 빼앗기 위해 ‘3년 간 입점비 및 수수료 무료’를 선언합니다. 중국 전 대륙의 상인들을 온라인 위로 모이게 되죠. 바이두 광고 퇴출 등 다양한 방해가 있었지만 2005년 점유율 80%를 넘기기에 이릅니다.

중국인들에게 새로운 세상이 열립니다. 비로소 인터넷을 통해 누구든 물건을 매매할 수 있게 된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죠. 중국의 2030세대 여성들이 타오바오에 열광을 하며 알리바바 창업주 마윈을 향해 ‘마윈아빠(马云爸爸)’라는 별명을 붙여줍니다. 딸에게 선물을 사다주는 아빠의 모습이랄까요.

이후 수많은 기업들이 경쟁하듯 등장합니다. 징동과 같이 전자제품 판매 쇼핑몰이었던 기업을 비롯하여 쑤닝과 같은 오프라인 강자들도 각각 이커머스 플랫폼을 만들기에 이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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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분기 기준 중국 종합 이커머스 플랫폼(앱) 순위. 1위 타오바오, 2위 징동, 3위 웨이핀후이(vip.com) 등. 출처:libra

현재 중국 1위 종합이커머스 플랫폼인 타오바오에 대한 주간 활성침투율(앱 활성 이용자수/중국 시장 전체 주간 활성 이용자수의 비중)은 16.7%에 달합니다. 즉, 중국 모바일 앱 이용자의 16%는 타오바오를 사용한다고 해석할 수 있는 지표입니다.

중국 사람들은 이커머스가 중국 인터넷 발전을 견인해왔다고 공공연히 말하곤 합니다. 즉, 중국 인터넷 산업의 20년 역사를 이커머스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것이죠.

중국 상무부의 ‘이커머스-정보화부(电子商务和信息化司)’에서 발간한 자료에도 관련 내용이 서술돼 있습니다. 간략하게 요약, 의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인터넷 거품이 사라진 직후, 이커머스 기술과 플랫폼은 나날이 개선됐다. 소프트웨어와 솔루션의 현지화 추세가 강화되면서, 이커머스는 기술적인 성과를 보이기 시작했다. 광대역 인터넷이 본격 도입되면서 인터넷 인구가 급속히 늘어났다. 이 시점에서 이커머스는 비즈니스용 실시간 메신저 및 통신 환경, 신용 시스템, 전자서명, 결제, 표준화 시스템 및 물류 서비스 등을 도입하는 등 쇼핑몰에서 ‘제3자 플랫폼(第三方平台)’로 자리매김하기에 이르렀다. 알리바바 창업주 마윈은 2004년 초 ‘인터넷 상인(网商)’이란 개념을 최초로 제시했는데, 2009년에 이르러 오프라인 판매자의 영역을 뛰어넘기에 이르렀다. — 이커머스의 흥기 및 신속한 발전(电子商务的兴起与迅速发展) 

한국에 사는 사람 입장에서는 인터넷 기술 발전하면 ‘게임’이란 키워드가 떠오를 것입니다. 저는 게임 영역의 배경이 있지 않아서 더욱 깊숙한 이야기를 알지는 못하지만, 한국에서 바람의 나라와 리니지 같은 다중접속온라인게임(MMORPG)이 인터넷의 발전을 견인했다는 이야기는 종종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오래 전 인터뷰했던 카이스트 전길남 교수도 “게임을 만들고 구현하는 건 소프트웨어 기술의 극한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굉장히 높은 수준의 기술을 요구한다”며 “당시 그 정도의 소프트웨어가 없었기에 이들은 게임을 하기 위해 스스로 시스템을 만들어야 했다”고 설명했죠.

즉, 인터넷으로 몰리는 수많은 트래픽을 감당하면서 끊김없는 게임 화면을 보여주는 동시에 최적의 그래픽을 구현하는 총 집결체가 게임인데, 여기에 사람들이 몰리면서 인터넷은 더욱 빠르게, 기술은 더욱 정교하게 발전해왔다는 것입니다. 유독 한국의 각종 서비스 중 게임 영역에서 데이터 분석이나, 트래픽 처리, 그래픽 기술 등이 발전한 배경이 여기에 있지 않았나 생각도 듭니다.

그렇다면 중국은 왜 이커머스였을까요? 판매자와 구매자 관점으로 크게 요약할 수 있습니다.

다시 2003년으로 시계를 돌려보면 타오바오의 등장은 누구나 온라인에서 물건을 판매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기에 이릅니다. 왜냐하면 입점비와 거래수수료를 3년간 받지 않았기 때문이죠. 여기에 판매자와 구매자를 온라인으로 연결해주는 알리왕왕(阿里旺旺)을 도입하면서 CS의 틈새를 메우고자 했습니다. (물론, 이와 별개로 가품 논란은 지금까지도 계속되지만요…)

구매자의 입장에서 타오바오의 등장은 새로운 쇼핑 공간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959만 6961km²의 면적에 14억 인구가 살고 있는 나라에서 단일화된 쇼핑 공간이 등장했다는 것은 거대한 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국 당국의 정책도 한몫합니다. 1998년 국가 우정국에서는 이커머스 영역이 포함된 통신망 확충을 위해 70억 위안을 투자해 인프라를 구축했으며, 1997년부터 2009년까지 12년간 농촌 지역의 99.3%에 인터넷 설비 구축을 위해 4조3000억 위안을 투입합니다. 그래서 96%의 영역에 광대역이 도입됐죠. 2005년에는 국무원에서 ‘이커머스 발전에 대한 몇가지 의견’을 발표하며 이 영역의 정책 환경 완화 및 지지를 발표했습니다. 이후 2011년, 2013년에도 비슷한 내용의 정책이 발표됐고, 2015년 시진핑 주석의 ‘일대일로’에서는 농촌 이커머스가, 리커창 총리의 ‘인터넷 플러스’에서는 이커머스 기술 영역이 핵심 키워드로 자리매김합니다.

중국 이커머스의 시작은 우리나라보다 늦었고, 품질도 그다지 좋지는 않았습니다. 허나 현재는 퍼블릭 클라우드 기술이 붙어서 일일 10억 건, 20조 규모의 거래를 과부하 없이 처리하고, 딥러닝 기반 이미지 인식 기술이 제품 검색 및 가품 관리를 해주며, 제3자 지불 결제 서비스가 붙어서 신용 관리까지 해주는 생태계를 만들기에 이릅니다.

변화를 견인했던 것은 중국 전국구 단위의 구매 수요, 정부의 정책, 플랫폼 사업자의 비전 등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선 게임을 마약이라고 짓밟고 있었을 때, 그토록 무시했던 바다 건너 중국에서는 이커머스를 키워드로 거대한 인터넷 세계가 만들어지고 있었던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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