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 전문 리서치 스타트업 ‘피넥터’팀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

블록체인 탄생 이전

비트코인은 블록체인 기술이 처음으로 실용화된 사례다. 비트코인이 탄생하기까지 수많은 역사적 실험과 제반 기술의 발전이 있었으며, 다양한 형태의 화폐가 탄생하고 발전되어 왔다. 디지털화폐부터 암호화폐까지의 흐름을 간단히 살펴보자.

화폐 (Currency)

화폐(currency)는 시장에 유통되며 가치를 창출하는 돈을 가리킨다. 학계에서는 아래 5가지 조건을 충족하면 화폐라고 본다.

1. 시장이 화폐로 인식하고 받아들인다.
2. 가치가 안정돼 크게 변하지 않는다
3. 화폐를 관리할 최종 책임 주체가 있다.
4. 액면가가 같은 화폐는 가치가 같다. 나누거나 합치더라도 가치가 달라지지 않는다.
5. 다른 것과 쉽게 구분되며 내구성을 지닌다.

이런 성질을 지니기 때문에 화폐는 아래와 같은 기능을 한다.

1. 교환 수단
2. 계산 단위
3. 가치 저장 수단
4. 지불 수단

학계의 정의에 따르면 선사시대에 돈 대신 쓰인 희귀한 조개껍데기부터 동네 아이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딱지까지도 화폐라고 볼 수 있다. 화폐의 발전 단계를 아울러 연구해야 하기 때문에 유연하게 정의되었다.

규제기관은 학계보다 화폐를 더 엄격하게 규정한다. 미 재무부 산하 규제기관인 금융경제분석기구(FinCEN)의 화폐(currency)에 대한 정의는 다음과 같다.

1. (각국 정부가) 법정 화폐로 지정한다.
2. 유통된다.
3. 발행 국가에서 교환수단으로 통용된다.

화폐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수렵채집 생활을 하면서도 인류는 작은 경제를 운영했다.이웃 부족과 생산물을 맞바꾸는 정도로 원시적인 물물교환 경제였지만 모든 상품을 자급자족하기보다교환을 통해 더 효율적인 경제생활을 영위한다는 기본적인 개념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화폐는 인류의 경제 규모가 확장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귀금속으로 동전을 주조해 교환과 가치 저장수단으로 쓰면서 대항해 시대의 토대가 마련됐다. 국가 간 무역이 급증하면서 각국 정부 대신 중앙은행에 보관된 금으로 화폐 가치를 보증하는 금본위제가 도입됐다. 세계대전 즈음 금본위 화폐만으로는 전쟁 비용을 충당할 수 없던 미국이 은행권을 금으로 교환하는 것을 금지하며 금본위제 폐지에 불을 댕겼다. 1929년 대공황이생기자 각국 정부는 금본위제를 폐지한다. 화폐 발행량이 금에 구속되지 않게 되자 세계 경제는 한층 크게 성장했다.

금본위제 폐지는 신용 화폐(credit money)의 시대를 불러왔다. 금세공자의 보관증서에서 유래한 신용 화폐가 역사의 전면으로 부상했다. 신용화폐란 화폐의 가치가 신용에서 유래한다는 뜻이다. 금본위제가 폐지되자 화폐의 가치는 실물 자산에게 뒷받침받지 못했다. 대신 화폐를 독점적으로 생산하는 정부가 화폐의 가치를 보증했다. 정부의 신용이 곧 정부 발행 화폐의 값을 결정했다. 화폐 발행량이 금 생산량에서 해방되자 세계 경제 규모는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디지털 화폐 (Digital Currency)

디지털 화폐(digital currency)란 컴퓨터 데이터로 존재하는 화폐를 칭한다. 컴퓨터가 발명된 뒤로 각종 자료를 문서로 만들어 서류함에 보관하기보다 물리적인 공간을 차지하지 않는 디지털 파일로 보관하는 것이 대세가 됐다.

화폐도 마찬가지로 금융 거래 내역을 장부에 적는 대신 컴퓨터로 기록하고 보관하는 편이 효율적이다.이 때문에 금융 분야는 적극적으로 디지털 기술을 도입했다. 이미 대다수 화폐는 실물 화폐가 아니라 장부에 적힌 숫자인 신용 화폐였기에 이를 디지털로 대체하는 것은 큰 어려움이 없었다.

가상 화폐 (Virtual Currency)

이런 맥락에서 가상 화폐(virtual currency)가 나타난다. 가상 화폐란 특정한 이용자끼리 화폐로 통용하는 디지털 화폐다. 유럽중앙은행(ECB)3은 가상 화폐를 아래처럼 정의했다.


규제되지 않은 디지털 화폐의 한 가지 유형이다.
개발자가 발행하고주로 같은 개발자가 통제하며 특정한 가상 공동체 안에서 인정받고 사용된다.

인터넷이 보급돼 전자상거래가 활성화되며 다양한 가상 화폐가 등장했다. 사회 관계망 서비스(SNS)인싸이월드에서 배경음악과 꾸미기 아이템을 살 때 썼던 도토리가 대표적인 예다. 미국 MMORPG 세컨드라이프(Second Life)에서는 린든 달러(linden dollar)라는 가상 화폐가 쓰였다. 게임 내 경제가 성공적으로 성장하자 개발사는 상업은행과 제휴를 맺고 일정 환율로 린든 달러를 미 달러화로 환전해주기도 했다. 게임 속 가상세계가 가상 화폐를 매개로 실제 세계와 연동되자 다양한 기업이 세컨드라이프 안에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한창때 세컨드라이프 주민이 창출하는 가치는 5~6억 달러에 달하기도 했다.하지만 미 연방수사국(FBI)이 불법 온라인 도박 혐의로 세컨드라이프 내 카지노 영업을 중단시키고, 미의회가 가상현실에서 벌인 사업에서 얻은 소득에 세금을 부과하겠다는 입장을 밝히자 세컨드라이프 내경제는 급격히 쇠락했다.

가상 화폐는 특정 개발자가 발행하고 관리하기 때문에 해당 주체에 종속된다는 한계를 갖는다. 싸이월드 도토리는 싸이월드와 함께 인기를 잃었다. 더는 예전처럼 도토리로 생일 선물을 주는 이는 없다. 린든달러 역시 세컨드라이프라는 서비스와 흥망성쇠를 같이한다.

e골드 (e-gold)

국경을 초월한다는 인터넷의 속성을 활용하면서 주류 경제에 밀착한 가상 화폐를 만들려는 시도가 나타났다. e골드의 발상은 간단하다. 고객이 실물 금이나 은을 운영사인 ‘골드앤실버리저브(Gold & SilverReserve Inc.)’로 부치면 이를 보관하고 상당액의 e골드를 계좌에 넣어준다. 회사에 돈을 부치면 상당액의 실물 금은을 사서 보관하고 e골드를 계좌에 충전해주기도 했다. 금(은)본위 가상화폐를 발행한 셈이다. e골드 충전액을 거래하면 실물 금(은)을 거래하는 것과 같으니 국가 간 무역업에 종사하며 환차손으로 어려움을 겪던 고객에게 호응을 얻었다.

하지만 일반 회사가 금본위 화폐를 만든다는 발상은 화폐 발권력을 독점해 통화 정책을 펼쳐야 하는 정부가 수용하기 어려웠다. 2001년 9·11테러 이후 미국 정부가 만든 애국법(Patriot Act)은 테러 자금추적을 명분으로 송금업체가 송금 라이센스를 취득하도록 못 박았다. 미 재무부는 애국법 제정 5년 전부터 사업을 시작한 e골드 역시 송금업체로 규정하고 법무부와 공조해 e골드를 수사했다. 이즈음 가상 화폐를 화폐의 정의에 포함하는 광범위한 규제 개혁도 병행했다. e골드가 화폐가 아니라 실물 자산을 거래하는 곳이라고 발뺌하지 못하도록 매듭짓는 조치였다. 설상가상으로 e골드 서비스를 이용해 아동음란물을 구매한 사용자의 덜미가 잡혔다.

법무부는 e골드 이사진을 자금세탁방지법 위반과 아동음란물 구매 방조 혐의로 기소했다. 압수수색도이뤄졌다. 압수수색 당일 e골드 거래액은 25% 줄어들었다. 법무부는 검사 허락 없이 e골드 잔액을 실물로 바꿀 수 없다고 발표했다. 수사 대상의 자산을 보존하려는 조치였으나, 이런 발표는 e골드의 가치를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수사와 재판이 진행되는 와중에 e골드는 시장으로서 매력을 잃어버렸다.

재판 중 이사진은 혐의를 인정하고 보석을 신청(plea to guilty)했다. 더글라스 잭슨(Douglas Jack-son) 대표는 사회봉사 300시간과 벌금 200달러, 6개월 가택 구금을 포함한 보호관찰 3년형을 선고6받았다. 애초 검찰이 연방법 위반으로 그에게 최대 벌금 50만달러와 20년형을 구형했던 것에 비하면 상당히 가벼워진 결과였다. 판사는 그가 법을 준수하며 불법 행위에 가담할 의도가 없었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암호 화폐 (Crypto Currency)

앞서 등장한 가상 화폐는 모두 발행 또는 운영 주체인 특정 업체에 종속된다는 한계를 갖는다. 운영사가 신뢰를 잃거나 서비스를 종료할 경우 가상 화폐도 가치를 잃는다. 이 때문에 가상 화폐는 진짜 화폐처럼 널리 통용되기 어렵다.

이런 종속성을 초월해 더 보편적으로 쓰일 가상 화폐를 만들려는 시도가 바로 암호 화폐를 낳았다. 암호화폐는 암호화 기술(cryptography)을 접목한 가상 화폐이다.

디지캐시 (Digicash)

더 독립적이면서도 더 안전한 가상 화폐를 만들어 더 널리 보급하려는 기획은 사실 오래전 등장했다.1983년 암호학자 데이비드 차움(David Chaum)은 웹 보안에 널리 쓰이는 RSA 알고리즘을 확장한 공식을 고안7했다. 거래 당사자의 정보를 암호화해 금융기관 등 관리 주체가 거래 당사자를 추적하지 못하게 하면서도 거래의 완결성을 확보하는 기술이었다.

그는 이 기술을 가상 화폐 거래에 적용하기 위해 동료 암호학자와 1990년 디지캐시(DigiCash)라는 회사를 창업했다. 디지캐시는 관리주체가 거래 내역을 볼 수 없다는 면에서 새로운 차원의 가상 화폐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일련의 경영 실패로 획기적인 기술을 널리 보급하는 데 실패하고 1998년 파산했다.

 

[fbcomments url=”http://www.mobiinside.com/kr/2017/03/10/blockchain_1/” width=”100%” count=”off” num=”5″ countmsg=”wonderful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