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Co. 조명광 대표가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번 더 소개합니다.
마케터는 새빨간 거짓말쟁이?
미국드라마 중에 ‘화이트 칼라(White Collar)’라는 시리즈가 있다. ‘닐’이란 꽃미남 사기꾼과 ‘피터’라는 FBI 수사관이 펼치는 수사 드라마이다. 시즌 6까지 제작되었으니 인기 시리즈였다고 볼 수 있겠다. 물론 본편 사기꾼의 속어로 생각된다. 처음 마케팅 업무에 발을 내밀었을 때 사수가 “마케터는 약간의 사짜 기질이 필요해”라고 조언해 주었다. 당시 어린 나이였던 데다 신입 직원이었으니 그 말의 깊이를 알기는 어려웠으나 뭔가 사람들에게 없어도 있는 척 만들고 보여주는 것이 마케터의 역할인가보다 하고 생각했었다. 물론 과거의 마케팅에는 이런 말이 통했을 때가 있다. 대부분의 아파트 분양광고에 등장하는 ‘지하철역까지 5분 거리’라는 문구를 두고 도대체 누구의 5분 거리냐는 자조 섞인 말부터, 먹기만 해도 빠진다는 다이어트 약은 얼마나 많이 먹어야 살이 빠지는지 누구도 알지 못했다. 들어갔다 하면 연예인이 된다는 성형외과에서 나오는 사람들은 코끼리가 많았고(코끼리 모양의 마스크를 쓰고 나온다) 명문대 입학이 많다던 학원광고에는 명문대라고 하기엔 의문이 드는 학교도 많았다.
이러니 마케터를 사짜에 비교하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사짜 기질이란 진짜 사기 마케팅과는 다르다. 생각보다 진짜 사기를 치는 마케팅도 많이 있다. 예를 들어 ‘맘에 안 들면 무조건 반품’이라는 식의 고지를 해놓지만 정작 하려고 보면 조건이 많고 까다로워 반품이 어렵다든가, 조금의 비용으로 부모님의 가시는 길 준비하라고 해놓고 도망을 간다는 식의 마케팅이다. 이것은 마케팅이 아니고 그냥 사기다. 한 외국 자동차 회사가 벌인 연비문제도 사실 사기나 마찬가지이다. 그건 과장이라고 할 만한 것이 아니다. 연비는 팩트여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과자’ 같은 문구는 과장이지만 ‘절대 살찌지 않는 과자’ 같은 문구사기인 것과 같다. 최근에 논란이 된 포스터가 하나 있다. 이것을 사기인지 아닌지 판단하기 뭐하지만 결과적으론 소비자는 속았다. 그냥 재미로 보기 바란다. 팬들은 속상하니까 …….
한 프로야구 구단의 프로모션 카피다.
“OOO가 무료 입장권을 통 크게 쏜다”
“OOOOO 순위가 한 계단씩 올라갈 때마다 대전 구장 입장권을 무조건 두 배씩 쏩니다“
성적 향상을 위해 준비한 프로모션이었지만 성적이 오르지 않아 결과적으로 거짓말이 되었다. 아마도 선배가 말했던 사짜 기질이란 소비자가 자기도 모르게 빠져들게 만드는 황홀한 유혹 같은 마케팅 기법으로 유인하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그런 마케팅을 하는 훌륭한 마케터가 되라는 의미였으리라.
하지만 최근의 마케팅 트렌드는 ‘절대 마법 같은 것은 없다’고 말하고 있다.
마케팅의 홍수에 사는 소비자들은 현명해지기 시작했고 기업은 소비자들의 날카로운 눈빛을 피해나가지 못하고 있다. 논란이 되는 상품이나 마케팅이 펼쳐지면 소비자들은 어김없이 강한 어퍼컷을 기업에 날리기 시작했다.
상품도 진실하게 만들고 마케팅도 진솔하게 하고 커뮤니케이션도 진정성이 있어야 소비자들이 선택하는 시대가 되었다. 물론 마케팅 전략이니 기획이니 분석이니 조사니 다 중요한 요소들이다. 기본적으로 다 거쳐야 통과의례이고 마케팅을 위한 밑거름이다.
하지만 마케터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소비자를 대하는 진정성이다. 물론 쉽지 않다. 최고가 아닌 상품을 최고로 포장해서 팔아야 하거나 경쟁사와 별반 다른 게 없는데 차별화를 고민해야 하고 새로운 채널을 찾아야 하는데 뻔한 채널밖에 없고 매스 커뮤니케이션에서는 진정성을 전달하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존경 받는 그리고 소비자에게 신뢰받아 오랫동안 사랑 받아온 상품이나 기업들은 가장 밑바탕에 소비자에 대한 진정성이 깔려 있었기에 지금의 결과가 있었던 것이다.
사실 존경의 의미가 무엇이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리고 매년 어느 컨설팅 회사에서 뽑는 존경 받는 회사가 정말 존경할 만한 회사인지는 모르겠지만 진정성을 가진 회사는 소비자를 기만하지 않고 소비자는 그 진정성을 느끼게 되는 것이 현재의 마케팅 필드의 환경이다.
마케팅계의 스승, 세스 고딘은 상품을 위한 고객을 찾지 말고 고객을 위한 상품을 찾으라고 말했다. 그의 책 《마케터는 새빨간 거짓말쟁이》에서 요즘은 객관적인 ‘필요’보다 비합리적인 ‘욕구’에 의해 소비자의 선택이 좌우된다고 했다. 제품에 관한 객관적 정보만을 제공해서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고 하며 마케터는 스토리를 만들어내고, 소비자들은 그것을 믿고 소비한다고 말한다. 물론 중요한 것은 진정성이라고 강조한다. 아무리 만들어낸 스토리여도, 그것은 진실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케터라면 누구나 지금도 어떤 스토리로 어떤 프로모션으로 소비자에게 다가갈지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핵심은 내가 진정성을 느낀다면 소비자도 느낀다는 것이다.
더 이상 마케팅의 영역에 사짜 기질은 필요하지 않다. 진정성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진정성은 그 자체로 이미 존재하기 때문이다. 진정성을 가진 마케터가 되려면 어떤 덕목들이 필요할까? 마케팅을 업으로 삼기 시작하면서 끊임없는 자기질문이 유발되었고 마케터로서 살아온, 그리고 살아갈 세상을 고민하면서 마케터가 지녀야 할 덕목이 무엇인지 지금도 고민하고 있는 질문이다.
마케터가 지녀야 할 덕목
1. Ready to Change(변화를 두려워하지 마라)
세상은 변한다. 사람도 변한다. 자연도 변한다.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고 하지만 세월 앞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인간 최고의 덕목인 사랑도 변하는데 뭔들 변하지 않을 것인가 싶다. 마케터에게 가장 큰 덕목은 변화에 대한 자세다. 마케팅은 세상의 변화에 가장 민감해야 할 경영학 분야이다. 다른 인사 재무 회계 등등 많은 것이 변해도 기본이 잘 변하지 않는 분야에 비해 마케팅은 세상의 변화에 기본이 송두리째 바뀌는 분야이다. 마케팅의 4P는 불변 같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다양한 변수와 요소들이 등장하고 4P는 과거의 유물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이런 분야를 맡고 있는 사람들이 변하지 않고 일을 할 수는 없다. ‘나는 주관이 뚜렷하고 취향도 변하지 않아’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마케팅보다 다른 분야를 선택하는 편이 낫다. 조변석개하는 곳이 마케팅 필드이다. 어제는 정답 같던 프로세스들이 하루아침에 구식이 되고 필요 없어지기도 한다. 기술의 발달과 세상의 변화에 곧바로 영향을 받는 곳이 바로 마케팅인 것이다.
어쩌면 모든 직장인들이나 자영업자 모두가 이런 덕목을 가져야 하겠지만 마케터는 스스로 변할 준비를 항상 하고 있어야 한다. 마케터가 스스로 트렌드 세터가 될 필요는 없다. 다만 트렌드 와처가 되어야 한다. 유행은 트렌드와 다른 것이다. 유행은 우연적이어서 전망하기 어렵지만 트렌드는 필연적이어서 전망이 가능하다. 마케터는 미래를 읽을 줄 알아야 한다. 미래를 읽기 위해 변화에 민감하고 변화에 능동적이어야 한다. 변화를 주도하지 못하고 변화에 편승하는 기업들은 많이 사려져 갔다. 변화에 적응하지 못했다기보다는 변화를 지켜보기만 했다는 것이 문제였을 것이다. 거기엔 트렌드를 읽지 못한 마케터들의 탓이 크다. 물론 의사결정권자들의 책임이 더 크겠지만
<다윗과 골리앗 같던 Netflix와 Blockbuster, 결과는 물론 다윗 Netflix의 승리>
2. Be Sensitive(예민할수록 좋다)
변화를 감지하기 위해 필요한 능력은 바로 예민함이다. 우량기업의 여부를 떠나 이제는 예민하냐 둔감하냐에 따라 기업의 흥망이 정해지는 시대가 되었다. 공룡이 멸종한 이유가 둔감했기 때문이라는 학설이 있다. 쥐가 꼬리를 갉아먹는데도 그 사실을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것이다. 이는 대형 기업들이 내부의 문제를 모른다는 예시에 이용되기도 하고 외부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한다는 유의 얘기에 비유되기도 한다. 변화하는 시류에 편승하지 못해 망해간 글로벌 회사들이 부지기수다. 짐 콜린스가 위대한 기업으로 꼽았던 기업들 중에 10년만에 사라진 기업이 한둘이 아니다. S&P 500대 기업의 존속 기간이 1950년대의 50년에서 10년 미만으로 축소되고 있다고 한다. 까칠할 필요까지는 없어도 예민해져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예민함이 사라지면 자만해진다. 예민함은 자만함으로 가는 길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예민한 사람들은 까다롭다고 평가하기 쉽다. 하지만 예민하다는 것은 바로 변화를 감지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반증이다. 조변석개가 아닌 초변초개하는 시대를 살아가려면 예민함으로 무장해야 한다. 바야흐로 예민한 기업들이 살아남는 시대이다.
<쥐가 원인이든 방주에 타는 날을 까먹었든 공룡은 멸종하고 말았다.>
3. Have an Open mind(열린 자세 열린 마음)
변화를 받아들일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열린 자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열린 자세를 처음부터 가지고 태어나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스스로 방어하려는 기제가 있다. 방어하려는 마음은 곧 자연스럽게 닫힌 자세를 만든다. 오픈 마인드를 지니기 위해서는 내 것에 대한 자부심도 일부 내려놓아야 한다. 사실 마케터에게 자신의 것이란 없다. 특허를 가지는 것도 아니고, 단지 시간과 돈과 사람으로 일하는 사람이다. 기술자도 아니고 과학자도 아니다. 사실에 입각한 실험을 하며 성과를 만들어내지 않는다. 자신의 것이 없다는 것은 반대로 모든 것이 자기의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오픈 마인드는 아이디어를 수집하고 수집된 아이디어는 아이디어를 생산한다. 오픈 마인드는 계속해서 재생산을 하는 공장과도 같다.
나 혼자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이 마케팅이다. 컬래버레이션을 가능하게 하고 이슈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문을 열어 두어야 한다. 문 앞을 계속 지나가는 기회를 잡으려면 문을 열고 손을 내밀어야 한다.
4. Sense of Reality(현실을 직시하라)
눈이 오는 날, 영화 러브 스토리를 떠올린다면 이상적인 사람이고 차들로 꽉 막힌 도로가 생각난다면 현실적인 사람일 것이다. 마케터는 이상적이기도 해야 하지만 현실감각이 떨어져서는 안 된다. 이상적인 소비자를 현실세계로 끌어들여주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물론 이상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마케터의 역할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소비자와 함께 꿈꾸기만 할 수는 없다. 마케터는 시장의 처음부터 끝까지 볼 줄 알아야 한다. 결국 자원이 어떻게 운영되고 결과를 내는지에 대해서도 알아야 하고 어떤 비용이 어떤 손익을 가져오는지도 알아야 진정한 마케터가 되는 것이다. 내 역할은 여기까지라고 단정짓는 것은 ‘나는 꿈꿀 테니 너희는 나가서 물건을 팔라’고 하는 것과 같다. 꿈만 꾼다고 해서 상품과 서비스가 팔리지는 않는다. 문을 열어 변화와 기회를 받아들여도 그것을 현실화시키는 작업은 결국 현실의 문제다. 가장 이상에 가깝게 현실화하는 것은 결국 현실감각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 밖에도 마케터에게 요구되는 자질로 도전정신이나 창조적 아이디어 같은 것들이 있겠지만 모두 직접 손으로 만질 수 없는 것들이다. 손에 만져지지 않다 보면 똥볼을 차는 소리만 할 수도 있다. 현실도 모르고 헛발질만 하는 마케터는 몽상가일 뿐이다.
내부적인 힘으로 변화를 이루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그렇게 할 수 없을 것 같다면 외부의 힘을 빌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변화를 위해선 계기가 필요한데 그 계기는 스스로 만들 수도 있고 외부적 환경변화에 의해 만들어질 수도 있다. 다만 마케터의 자질을 키우는 것은 스스로의 힘으로 밖에 되지 않는다. 변화를 일으키는 힘은 순간적으로 나타나지만 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프로세스의 정립이 필요하다. 마케터도 엔지니어나 과학자처럼 스스로의 힘으로 공식도 만들고 프로세스도 만들어 실험해보고 결과를 감정해봐야 한다. 마케터는 머리로 꿈꾸고 다리로 실행해야 하는 피곤한 직업이다. 어느 회사에서든지 마케팅팀은 늦게 퇴근하는 부서 중 하나일 것이다. 마케터가 되려면 피곤함을 에너지로 바꾸는 컨버터도 필요하다. 피곤함을 피곤함으로 이기려고 하지 말고 스스로 몸과 마음을 리프레시할 수 있는 스스로의 프로세스도 필요하다. 자극적인 것보다는 담백한 것을 선호해야 한다. 담백해야 다른 것들의 맛을 볼 수 있다. 어느 정도의 절제가 필요한 일이 마케터의 일이다. 힘든 일이지만 매력적인 일이다. 이런 매력적인 일을 하기 위한 마케터의 자질은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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