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T특허법률사무소 엄정한 변리사가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번 더 소개합니다.
기술창업 아이템은 연구과제 아이템과 완전히 다르다. 연구과제 아이템의 경우, 국가에서 국책연구소나 대학에 미래 기술을 개발할 것을 조건으로 자금지원이 들어가거나, 대기업에서 해당기업의 연구소에 특정한 기술을 개발할 조건으로 자금지원이 들어가서 진행되게 되는데, 기술창업 아이템은 ‘당신의 생존’을 위한 아이템이어야 하기 때문에, 한번의 시도로 한번의 성공을 거두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기술창업 사업아이템의 선정은 매우 중요하다. ‘유의미한 결과를 얻은 것만으로도 성과를 인정받을 수 있는’ 연구과제 아이템과는 차원이 다르다.
1. 아이템이 중요한가?
아이템은 사업의 성패를 결정하는 코어이다. 기술창업자들은 기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업아이템이 없어도, 일단 창업은 할 수 있다. 하지만, 사업아이템 없이 ‘기술능력’에 의존하여 창업을 하게되면, 자칫하다가 좀비벤처가 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일은 들어 올 것이다. 하지만, 항상 남의 일을 해주는 방식으로 사업이 진행되다 보면, 나중에는 자기 아이템을 하고 싶어도 이미 불어난 직원들의 급여를 담당하느라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기술창업자들은 창업을 하기 전에 반드시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사업아이템’을 준비해서 창업하여야 한다. 아이템 없이 기술창업을 시작하다가는 끝없는 용역의 길로 빠질 수도 있다.
용병으로 살기 위해서, 창업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2. 기술창업 사업아이템 선정 3원칙
1) 가장 잘 할 수 있는 기술분야인지 생각하고, 더 비틀어라.
기술창업자들은 대부분 자신이 대기업이나 대학연구소에 있을 때 연구했던 분야와 관련있는 분야의 미래 아이템으로 창업을 한다. 구글을 만든 래리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도 검색과 컴퓨팅기술에 관한 연구를 스탠포드에서 하였고, ‘야후’가 가진 디렉토리 방식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페이지랭크’ 방식의 검색알고리즘을 만들었다.
넥슨의 김정주 대표도 KAIST 전산학과 박사 과정 중 온라인 게임업체 넥슨을 창업하고, 바람의 나라를 개발했다. 가끔, 대기업 연구소 출신의 창업가 중에 자신의 전공과는 무관한 서비스창업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물론, 본인이 꿈꾸던 필생의 사업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 ‘이게 요즘 뜬다던데…’라는 이유만으로 잘 모르는 서비스 시장에, 해당 아이템을 가지고 창업하는 것은 솔직히 말리고 싶다.
현재 자신이 가장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의하고, 그것으로부터 파생하는 수 많은 기회들을 분석하는 것이 기술창업 아이템 선정의 첫번째 단계다. 그리고, 분석결과 이미 레드오션 시장인 아이템이라면, 샤오미처럼 가격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는 기술과 투자자들 보유하고 있지 않은 이상, 기술창업자들의 선택을 말리고 싶다. 당신이 가진 기술력을 이용하여, 몇배의 성과를 낼 수 있는 새로운 아이템은 반드시 존재한다.
필자의 기술창업 사례인 넥시스(주)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넥시스의 설립자(이자, 내가 모시고 있는)인 김동현 박사는 한 때 국내 블랙박스 시장의 50%를 점유하던 D사의 연구소장이었고, 20년간의 영상처리기술 및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제어기술을 바탕으로 ‘웨어러블 디바이스 플랫폼’ 아이템으로 창업하였다. 아직은 시장개화를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지만, 제품력 하나는 국내외적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스마트헬멧’ 잠재수요 고객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우리 팀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기술영역이 무엇인지 분석하고, 그것에서 접목할 수 있는 아이템이 무엇인지 계획하는 것이 기술창업 사업아이템 선정의 1단계이다.
2) 기술완성까지의 시간을 고려하라
기술창업자들은 기술완성까지의 시간을 고려해야한다. 아무리 좋은 아이템이라고 하더라도, 기술완성에 소요되는 시간을 계산하지 않고 시작했다가는 몇년 후 나타난 비슷한 제품을 보고 ‘아.. 그거 내가 옛날에 만들던건데…’라는 아쉬운 소리를 할 수 있게 된다.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사업아이템인 경우, 투자자를 확보하고 진행하는 것이 필수다. 그것이 패밀리펀드(아빠 돈, 친척 돈)가 되었던, 기관투자가 되었던, 시간을 벌기 위한 ‘버티는 돈’이 필수적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술을 완성하는데 소요되는 시간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몇 명이 얼마의 기간동안 달려들어야 기술을 완성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계획이 없다면, 끝없는 개발의 수렁으로 빠지게 된다.
한편, 린 스타트업 방식은 물론 좋은 방법론이지만, 하드웨어가 중심인 사업아이템에서는 권하고 싶지 않다. 첫 제품을 보고 실망하고, 다시는 당신을 찾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제품을 3~4개월마다 린하게 출시한다면 모르겠지만, 그것 또한 역효과가 크다.(그렇다고 제품수정만 하다가 제품출시 시기를 놓지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어려운 일이다.) 또, 기술완성까지의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면, 같이 하는 동료들도 점점 지쳐서 나가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당신이 준비한 자금에 비해서 개발기간이 너무 과도하게 걸리는 사업아이템은 피해야 한다. 기술완성까지의 소요시간을 계산하고, 1단계에서 생각해낸 수 많은 아이템 중에 ‘기간 내에는 안될 것들’을 쳐내는 것이 기술창업 사업아이템 선정의 2단계이다.
물론, 완전한 제품까지의 개발기간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완전한 제품이라는 것은 없다. 그래도, 기술창업가라면, 일단 어느 정도 작동하는 시제품(또는 베타 서비스)까지의 개발 기간을 예상하고 창업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래의 프로세스를 참고하여, 나의 사업아이템이 내가 준비할 수 있는 자본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것이라면, 과감하게 사업아이템을 재조정 하자. (위 step 1에서 확장했던 아이템들 중에 다시 선정하면 된다.)
3) 시장형성까지의 시간, 시장의 규모를 예상하라
기술창업자 사업아이템 선정의 2단계인 기술완성까지의 기간 추정이 끝났다면, 앞으로 시장형성까지의 시간을 예상하는 것이 중요하다. 고생해서 다 만들어놓고, 시장이 없어서 팔지 못해 사업이 망하는 경우가 많다. 신기술은 원래 시장에 존재하지 않거나, 거의 없는 솔루션이다. 하지만, ‘앞으로도 시장이 없을’ 기술을 사업아이템으로 선택해서는 안된다. Step 2에서는 나의 사업아이템을 완성하는데 소요되는 ‘돈과 시간’을 감안하여 아이템을 고르는 과정이라면, Step 3는 선택한 아이템을 완성하여 시장을 창출하는데까지 소요되는 ‘돈과 시간’을 감안하는 단계라고 볼 수 있다. 물론, 나 혼자서 쓰는 돈과 시간은 아니다. 정부, 대학, 연구소, 경쟁사 등이 함께 시장을 만들어가는 ‘기술마케팅’의 과정이기 때문에, 정확한 시장개화의 시점을 예측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경제학에서는 초기시장에서 주류시장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일시적으로 수요가 정체되거나 후퇴하는 단절현상을 가리켜 ‘케즘(chasm)’이라고 한다. 해당 사업아이템이 케즘을 넘지 못한다는 이야기는 해당 신기술이 시장을 만들어낼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케즘이 어느 시점에 닥칠 것인지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기술창업자 본인의 판단에 의해서라도 이 시점에 대한 나름대로의 기준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마케팅 비용’이 얼마나 들어갈지를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니치마켓(틈새시장)을 지향하는 아이템이라고 하더라도, 시장수요자가 많거나, 아이템의 가격이 높다면, 케즘을 넘어가서 일정한 시장을 만들어낼 수 있다. 중국이 좋은 시장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일반적인 구매력을 갖춘 인구수가 상당히 많기 때문에, 니치마켓 아이템으로도 케즘을 빨리 넘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이 좋은 시장인 이유는 괜찮은 기술에 대한 상당한 가격을 지불하는 문화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 둘을 모두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신기술을 보유한 회사들 대부분이 꿈꾸는 시장인 것이다.
Step 3는 단순한 ‘제품 마케팅’에 소요되는 시간을 예측하는 단계가 아니다. ‘기술 마케팅’의 영역인 것이다. 해당 기술 분야가 시장 수요자들의 주목을 받아야 ‘내 제품’이 팔릴 수 있다. 아무리 멋진 페라리를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도로가 깔리지 않으면 성능을 낼 수 없다. 따라서, 기술창업가는 ‘언제 도로가 뚫리는지’에 대한 예상을 해야하고, 도로가 깔리는 시점이 너무 오래 소요될 것 같다면, 해당 사업아이템을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물론, ‘도로’는 정부에서 주도하는 경우가 많으며, 각종 연구과제, 정부 인프라사업 등으로 대표되는 정부R&D예산(우리나라는 연간 17조 원)의 분포를 분석해보면, 과연 내가 하는 이 사업아이템에 관한 ‘도로’가 언제 깔릴지를 대략적으로 예상할 수 있다. 이것은 우리나라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며, 미국의 경우도 DARPA나 DOE 등의 기관에서 엄청난 예산을 들여서 미래기술을 띄우고, 인프라를 설치하는데 힘을 기울인다. (참고: https://namu.wiki/w/DARPA )
시장형성까지의 시간을 예측하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그것을 맞춘 듯한 전문가 그룹에는 찬사가 따른다. 가트너 하이프사이클(이머징 테크놀로지 부문)의 경우가 대표적인데, 앞에서 본 케즘이론과 비슷하면서도, 구체적인 ‘곧 올것만 같은 시장’을 언급한다는 점에서, 많은 기술창업가들의 관심을 얻고 있다. 물론, 과학적이지 않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 하이프사이클이지만, 나름 괜찮은 적중률을 가지고 있으며, 시장의 개화시기를 알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어찌됐든)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참조 : https://goo.gl/D1qK4h)
3. 아이템은 신중하게
기술창업에서 사업아이템은 너무나 중요하다. 아무리 열심히 개발하고 마케팅한다고 하더라도, 아이템이 좋지 않으면 시장은 열리지 않는다. 사업아이템 선정은 대부분 창업자의 ‘감’이나 ‘관성’으로 이루어졌었기 때문에, 수렁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위와 같은 3단계의 1)우리팀의 능력에 기초한 사업아이템 아이디어 확장, 2)기술완성까지의 돈과 시간을 감안한 아이템 수렴, 3)시장개화시기의 예상. 이 3단계를 여러번 거치다 보면, 1샷 1킬의 사업아이템을 선정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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