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스타에디터 규리네님의 블로그에 게재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
우리는 현재 하루가 멀다하고 수많은 게임들이 쏟아져 나오는 세상 속에 살고 있다. 하지만 참 이상하다. 이렇게 많은 게임들이 나오고 있는데 왜 할 만한 게 없다고 느낄까? 대체 나오는 게임마다 왜 다 거기서 거기일까? 그림과 이야기만 조금 바뀌었을 뿐이지, 같은 틀에 색만 바꿔 입힌, 마치 공장에서 찍어내는 것같은 게임들, 도대체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걸까?
# 군중심리
사람은 집단ㆍ조직에 속하게 될 경우 책임성과 비판성이 저하되게 된다. 타당성 여부를 체크하거나 복잡하게 생각하기보다, 그저 주류가 하는 행동에 따른다. 이것이 바로 군중심리다.
투표할 때 ‘표를 많이 받을 만한 사람에게 내 표도 준다.’라는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차피 내가 다른 사람에게 투표해보았자, 다수가 지지하는 사람이 될 것이므로 될 만한 사람에게 투표하는 심리로 이 군중심리의 대표적인 예다.
사실 군중심리는 인류가 지금까지 생존할 수 있었던 경험의 산물이기도 하다. 다들 어느 한 방향으로 도망가고 있고, 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는 상황이라면 내 갈 길을 가는 것보다 그들을 따라 도망가는 게 생존에 도움이 된다.
다수의 의견이라고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많은 이가 한 길을 택했다는 것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 관료제
앞서 말한 군중심리 때문에 여러가지 단점이 발생하기도 한다. 관료제에 있어 발생하는 여러 단점들도 이 군중심리 때문이다. 목적 전치 현상, 인간 소외 현상, 개인의 창의성 상실, 무사 안일주의를 예로 들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일의 능률을 위해서 만든 조직체계가 도리어 개개인의 역량을 저하시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선 조직의 규모가 커질수록 수평관계보다는 수직관계로 나아간다. 게다가, 개성있는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억압된 환경을 이루고 있다. 이런 배경 때문에 게임업계의 개성이 죽고, 기존 게임과 차별되고 색다른 형식의 게임들이 나오기가 어렵다.
한 예로, 창의적인 면에서 대기업 게임보다는 인디게임들이 좀 더 자유분방하고 개성적인 것을 느낄 수 있다.
# 손실회피 경향
관료제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성과제를 도입하기도 하지만, 인간이란 손실회피 경향이 있다. ‘가만있으면 반이라도 간다.’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아무리 추가 수당이 있다해도, 성공보다는 실패의 무게를 더 크게 느끼기 때문에 도전하기 두려워한다. 본전이라도 찾으려면 남들이 한 만큼, 남들이 해놓은 대로 비슷하게 따라가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동메달 수상자는 기쁨과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반면 은메달 수상자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의 눈물을 흘리는 경우가 있다. 이는 손실회피경향 때문이다. 은메달 수상자는 금메달 놓친 것을 생각하고, 동메달 수상자는 메달권에 들지 못한 4등과 비교되기 때문이다. 즉, 한 등수 차이뿐이지만 둘 간의 손실의 무게가 확연히 다르다.
# 한국인의 성향
이같은 군중심리와 관료제, 조직문화, 손실회피 경향 말고도 게임에 있어 우리나라만의 성향에서도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아시다시피 많은 게임들이 부분 유료화 방식으로 가고 있다. 불법복제의 폐해, 과금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 이익을 추구해야 하는 기업의 입장이 서로 맞물려 나온 것이 부분 유료화방식이다. 무료의 탈을 쓴 유료게임이라고 보면된다. 결제를 하지 않고는 게임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부분 유료화는 지나치게 이윤추구에만 집중되어 있는 게임의 배경이 된다. 기업 입장에서는 게임 이용자 상위 1%의 결제료가 주 수입원이다. 그렇기에 대다수의 이용자를 만족시키기 보다는 소수 과금자들을 위한 게임을 만들고 운영해 나가게 된다.
# 게임사 간의 과도한 출혈경쟁
모바일시장이 대세로 떠오르면서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시장에 뛰어들면서 경쟁이 거세졌다. 짧은 제작기간 내에 고수익 창출을 노리다보니, 심지어는 처음부터 이용자들의 주머니를 털기 위한 치고 빠지기가 주 목적이라고 여겨지는 게임도 종종 보인다.
이는 기존 게임과 똑같은 틀로 찍어내고 본인들의 브랜드만 따와 씌워놓은 것 같은 게임 생산의 한 원인이 된다. 아울러 이런 지나친 상업성은 게임 속 세상에서조차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일어나게 했다. 이로 인해 게임 자체에 흥미를 잃어버리는 이용자가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 선택부담 효과
한편으로, 게임을 즐기는 이용자의 입장에서도 한 가지 흥미로운 심리효과를 살펴볼 수 있다.
옛날에 비해 다양한 게임들이 많이 나와 있음에도 여전히 할 만한 게임들이 없다고 느끼는 건, 오히려 선택권이 너무 많아졌기 때문이다.
이를 선택부담 효과라고 하는데, TV채널이 단 3개뿐인 옛날에 비해 현재는 수십개의 채널이 있음에도, 여전히 리모컨을 돌리며 볼 만하게 없다고 느끼는 것이 예다. 어떠한 일에 있어 개개인에게 선택권이 주어져야 하는 것은 당연하고도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선택할 가짓수가 너무 많아져버리면 그만큼 고려해야 할 것도 많아져서 선택권이 스트레스로 작용할 때가 있다.
이와 관련한 실험으로 스탠퍼드 대학의 마크 레퍼(Mark R. Lepper)교수와 콜럼비아 대학의 쉬나 아이옌거(Sheena S. Iyengar)교수의 실험이 있다. 슈퍼마켓에 6가지 잼과 24가지 잼을 시식할 수 있는 부스를 각각 설치했다. 24가지 잼이 마련된 시식대에는 지나가는 고객의 60%가 머물러 시식했고, 6가지 잼 시식대에는 40%의 고객만이 발길을 멈췄다. 선택권이 더 많아질 수록 고객을 더 많이 모으긴했다. 헌데 실제 구매율은 달랐다. 24가지 잼이 마련된 시식대에서는 단 3%의 고객만이 잼을 구매했고, 6가지 잼이 마련된 시식대에서는 30%의 고객이 잼을 구매했다. 선택권이 적을 수록 판매율이 훨씬 높았다. 이 같은 현상은 내용물을 바꿔서 실험했을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현상의 원인으로는 첫번째, 자신이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을까’하는 두려움 때문이다. 이 두려움은 자신의 선택에 대한 만족도도 떨어지게 하므로 내가 하고 싶은 것보단 남들이 많이 하는 선택에 따라가게 된다.
두번째로는 조금 전 위에서도 말했다시피, 너무 많은 선택권은 스트레스가 되기도 한다. 무엇을 골라야 할지 고민하는 것도 정신적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다. 안그래도 복잡하고 스트레스 많은 현대 사회 생활 속에 이 같은 고민들은 부담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선택부담 효과 때문에 군중심리와 현상유지편향이 강해진다.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고민되는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이 선택한 방향으로 나도 따라가게 되는 것이다. 또 뭘 할 지 고민하다가, 결국 예전에 했던 게임, 어렸을 적부터 먹었던 것을 고르게 된다. 인터넷 쇼핑 중 구매율이 높은 상품을 찾는 것, 입소문 좋은 상품을 고르는 것도 마찬가지다.
현상유지편향은 새로운 것에 대한 거부감도 불러일으킨다. 새로운 것을 접한다는 것은 그것을 배우기 위해 에너지를 다시 소모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예를들어 2벌식 키보드보다 3벌식 키보드가 타자속도가 빠르지만, 우리는 여전히 익숙한 2벌식 키보드를 선호한다. 단순히 효율성을 위해서 시간과 노력, 에너지를 소모하면서까지 기존의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배우기가 꺼려지는 것이다. 이 외에도 우리는 주변 곳곳에서, 더 나은 방법이 있음에도 기존의 방법ㆍ방식을 고수하는 일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러한 경향은 나이를 먹을수록 강해진다. 익숙한 것을 선호하고 새로운 것을 거부하는 경향은 기존 세대가 구세대가 되게하는 원인이기도 한다.
혁신과 창조가 중요한 걸 알아도, 막상 기존의 틀에서 한참 벗어나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거부감을 느낀다. 대표적으로 ‘시대를 너무 앞서 갔다.’는 말이 이에 해당한다. 말했다시피 현상유지편향 때문에 인간은 친숙하고 익숙한 것에서 편안함을 느끼는데, 이 때문에 적당한 변화는 즐거움과 재미를 주지만 너무 과한 변화엔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변화를 꾀할땐 적당한 수준에서 단계별로 가거나 때를 기다리는 것이 좋을 때도 있다.(사람들의 의식이 따라올 때까지!) 1995년 일본에서 “올해 가장 쓸모없는 발명품 1위” 를 차지한 셀카봉. 이 외에도 시대를 너무 앞서가서 빛을 보지 못한 것들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현 게임시장 동향의 원인을 소비자에게로만 돌려서는 안된다. 지나친 상업성과 개성없는 게임의 생산이 게임에의 재미를 떨어뜨리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게임산업 전체에 분명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따라서 서로가 win-win하기 위해서라도 소비자와 제작자의 근본적인 고민과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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