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 22일, SI시장에 관한 개발자들의 속내를 듣기 위해, 개발자 커뮤니티 ‘OKKY‘의 오프라인 모임에 참여했다. ‘SI’란 말을 꺼내자 기다렸다는 듯이 여러 의견이 나왔다.
SI시장에 종사하는 개발자들은 기업/정부의 시스템을 기획, 개발, 통합, 유지 관리하여 고객들이 안정적인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일조하고 있다. ‘한국 개발시장의 70%는 SI시장이다’라고 할 수 있을만큼 규모도 크고, 한국이 IT강국이 된데에는 이들의 공이 만만치않다. 하지만 이들이 받는 대우는 터무니없이 열악하다.
한국의 시스템 구축은 용역구조가 기본이다. 갑-을 구조로 프로젝트를 받아 파견되는 SI업계의 특성 때문에 이리저리 옮겨 다녀야하는 것은 기본이다. 하도급 구조로 인해 입찰 단계를 거치면서 인력비는 줄어들고 프로젝트의 기일은 짧아진다. 안 그래도 빠듯한 일정인데, 고객들이 요구하는 변동 사항을 적용하다보면 (야근 수당없이)야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되버렸다. 개발자들 사이에서도 SI시장은 흉흉하기로 이미 소문이 나있는데 왜 아직까지도 야근, 갑을구조, 낮은 인력비에 관한 문제는 끊기지 않을 뿐더러 개발자 사이에서도 어쩔 수 없는 것이 되어버렸을까?
어쩌면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을 위해 만들어진 정책이 제대로 쓰여지지 않아서 비롯된 문제들은 아닐까? 개발자들의 입장에서 정책들과 SI시장을 어떻게 보고있는지 이야기 나눴다.
#국비지원 개발자 양성 프로그램
개발자들이 제일 많은 목소리를 낸 문제는 ‘국비지원 개발자 양성 프로그램’이다. 일단 국비지원 프로그램을 설명하자면, 2개월~10개월의 단기간 진행되는 수업으로 비전공자들도 지원해서 들을 수 있다. 실업자와 미취업자에게 재교육을 제공해 구직에 도움을 준다는 점은 누구나 동감하는 장점이다. 하지만 생태계 활성화와 구직에 도움이라는 이점이 상쇄될 만큼 부작용도 크다. 사실 누구나 혹 할만한 것들은 내실이 약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길어야 10개월, 짧으면 2개월 밖에 되지 않는 교육과정은 개발자가 되기엔 짧은 기간이다. 또한 국비지원학원들은 취업률이라는 그 성과가 중요하므로 오랜기간 취업을 못하는 학생들을 무등록 인력소에 보내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서 생기는 불법 인력소 증가 문제, 개발자들의 수가 많아지면서 생기는 일자리 경쟁,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경력 뻥튀기, 인력공급은 지속적으로 늘어나지만 이에 비해 큰 변동이 없는 인력수요와 인력비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초급개발자들의 과잉으로 인한 박봉 문제 등이 있다. 우후죽순 생겨나는 학원 때문에 검증되지 않은 강의자의 자질로 인한 피해 사례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국비지원 프로그램이 개발자를 위한 교육은 제공하고 있지만, 관리를 하기엔 부족함이 틀림없다.
사실 극심한 취업난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고, 구직에 도움과 더불어 프로그래밍을 좀 더 보편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장점도 있는 프로그램이다. 그렇기에 감히 ‘국비지원은 당장 폐지해야한다’라고 말할 수 없어, 가해자없는 피해자만 속출하고 있는 상황이다.
#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
그 다음으로 꼽힌 문제는, 2013년도에 개정된 ‘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SW산업진흥법)’이다. 대기업의 SI시장 독점을 막고 중소/중견기업의 공공SW부분 출자를 돕고자하는 의도를 가지고 시작됐다.
의도대로 LG CNS, SK C&C, 삼성 SDS와 같은 대기업은 공공SI사업에서 에너지 사업, 인공지능, 물류 쪽으로 신사업을 찾아 눈을 돌렸다. 하지만 법개정과 동시에 경기가 침체되기 시작하면서 SI시장자체도 축소되어 중소기업들이 실제로 이익 본 매출액에는 의문점이 있다. 게다가 중소기업은 대기업보다 떨어지는 가격협상력을 가지고 있어 입찰시에나, 해외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를 쓸 때도 결코 유리하지 않다. 또한, 독자적으로 수주를 받고 수행해 본 경험이 많이 없는 중소, 중견기업들은 시스템 유지와 보수 관리측면에서 기술력이 부족하기에 품질저하를 낳았다는 매몰찬 의견도 듣고 있다.
결국 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으로 중요한 중소기업들의 영업이익률을 하락되었다는 결론이 나왔다. 오히려 중소기업끼리의 경쟁이 더 치열해져서 먹고 살기가 더 힘들어졌다는게 실제 종사자들의 의견이다.
# Man/Month 인력 산출법
예전에 SI시장에서 인력비를 산출하던 법은 M/M(Man/Month, 또는 Head counting)방식을 따랐다. 프로젝트에 투입되는 인력들의 능력을 동일하게 보고 인력수에 따라 비용을 산출하는 방식이다.
더 많은 인력을 투입한다고 비례하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는 업계의 특성을 무시한 계산법이다. 개개인의 능력치를 동일하게 두는 것도 문제다. 초급 개발자 2명이 모여도 1명의 고급 개발자의 기술을 따라갈 수는 없다.
M/M 산출법에서 벗어나기 위해 2009년부터 사업의 난이도를 점수화해 그에 따른 단가로 계산하는 Function points(FPs)를 사용하도록 제도가 수정됐다. 하지만 아직도 보편적으로 M/M이 쓰이고 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SI시장에서 업계는 프로젝트 마감날을 맞추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고객들이 고도화된 기술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경우도 많고, 일단 싸고 빠른 것을 요구하는 것이 일반적인 고객의 입장이다. 그렇기에 기술력으로 입찰경쟁하는 것이 아닌, 인력량으로 경쟁하고 있어 M/M(Head counting)산출법을 아직 이용하는 업체가 많다. 고객의 입장에서도 작업의 난이도를 점수화시켜야하는 어려운 FPs 방법보다는 단순한 계산법인 M/M를 선호하기에 쉽게 체제가 바뀌지 않고 있다. 고객의 입맛에 맞추려는 SI업체의 수주경쟁으로 중간의 개발자의 등만 터지고 있는 셈이다.
#초과근무에 대한 제재
이미 초과근무 수당과 초과 근무시간 제한 법도 존재한다. 하지만 개발자들의 일주일은 아직까지 ‘월화수목금금금’인 경우가 있다. 지켜지지 않는 법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지키지 않아도 ‘일할 사람은 많다’라는 ‘배째라’하는 심보로, 법적으로 규정되어있는 것들을 지키지 않는 기업들이 태반이다. 하지만 제재를 가하면 기업이 죽는다는 이유로 정부 또한 솜방망이 처벌을 하면서 개발자들의 정부에 대한 불신은 더 깊어졌다. 정부가 지금껏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을 위해 많은 법을 만들었지만, 제대로 지켜지지도 않고 지지도 받지 못하고 있는건 바로 기본 근로 환경 재고가 부족해서가 아닐까?
효율적은 근무 문화를 위해 인력비 산정에 Man/Hour을 도입하는 것도 방법이다. 다른 전문직종이 으레 그러하듯이 개발자들에게도 시간당 단가가 정해지면 야근이 당연시되는 풍조도 사라지고 고객의 과도한 사양변경 요청도 막을 수 있다. 다른 방법도 있다. 계약을 맺을 때, 미리 고객들과의 계약 상황응 명확히 문서화시켜 추가 프로젝트에 변경 요청이 들어올 시에는 추가 금액을 지불해야함을 명시하고 프로젝트 일정을 미룰 수 있도록 해야한다. 또한 앞서 말한 FPs방식을 사용해 프로젝트의 난이도를 산출하고, 일정 수의 개발자를 보유하지 않으면 발주 규모에 제한을 두는 것도 방법이다.
#그 외의 문제들
OKKY에서 어느 개발자가, ‘우리들이 만든 제품조차 제대로 된 취급을 못 받고 있는데 저희가 어떻게 제대로 된 취급을 받을 수 있겠어요?’ 라는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졌다. 정품 소프트웨어를 사용해야한다는 의무감과 IT 지적재산권의 대한 인식을 강화해야한다는 의견이다. 소프트웨어는 당연히 돈을 내고 구입하는 게 맞다는 것과 지적재산권도 중요하게 지켜야함을 초중고 의무교육에서 더 공고히 가르쳐야된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전자정부프레임워크에 대한 의견도 나왔다. 편하지만 개발자들에게 편의성은 부족하며 버그가 많고, 고객들의 요청사항에 따라 변형시키기에 어렵다는 문제점을 꼬집었다.
또한, 공공 SI사업에서 프로젝트에 책임감과 이해감을 공유할 수 있는 개발자 출신의 공무원을 둘 것과 2008년 없어진 정보통신부를 부활시켜 IT업계를 이끌 컨트롤 타워가 필요함을 적시했다. 특히, 한국SW산업협회는 개발자들에게 득보다는 실을 더 많이 안겨준다는 의견도 나왔다. 한국SW산업협회는 2017년부터 개발자들을 학력, 교육 훈련, 수상 내역, 경력등으로 등급을 정하는 ‘IT산업역량체계(ITSQF, IT Sectoral Qualification Framework)’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체계를 잡겠다는 그들의 취지와는 달리 개발자들은 ‘면접이나 코딩테스트 대신 학력, 교육 과정 이수의 여부로 개발자를 평가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그렇게 따지면 마크 주크버그는 10년 경력을 가진 고졸 개발자이니 중급 개발자인 셈이다.’라며 ITSQF 체계에 대해 반감을 나타냈다.
‘fender’라는 가명의 개발자는 정책의 문제도 있지만, 시장 자체에도 문제가 있음을 언급했다. 충분히 좋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고도화된 시스템을 다룰 수 있는 개발자들이 있다. 하지만 ‘싸고 빠른 것’을 장땡으로 여기고 인력에서 비용을 아껴 수익을 남기려는 인력지향적 인식을 가진 고객들이 존재한다면 앞으로 어떤 정책이 나와도 SI시장의 문제는 고쳐지지 않을 것이라는 논조를 띄었다. fender의 언급처럼, 시장에는 문제가 있고 이 고질적인 문제는 90년대까지 거슬러간다. IMF가 일어나면서 많은 벤처기업이 무너졌고, 90년대 말과 2000년도 초반에 닷컴버블(IT버블)이 일어나며 개발자들에 대한 인식과 대우는 낮아졌다. 그리고 지금의 개발자에 대한 시선은 아직도 그 때 그 과거에 머물러있다. M/H의 도입, 하도급 구조 개선, SW산업협회의 실효성문제를 개선하면 고질적이었던 몇 십년전부터 이어져오던 문제가 고쳐질 수 있을까?
앞으로 오랫동안 말이 많았던 ‘SW분할 발주 의무화’와 ‘근무 시간 단축’ 정책이 남아있다. 이 정책들이 SI시장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과연 의도대로 SW분할 발주가 과업 변경을 막을 수 있고,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근로 단축 혜택을 개발자들도 볼 수 있을지, 개발자들은 20대 국회에 관심을 모으고 있다. (* 현재 법정근로 40시간+연장 근로 12시간+휴일근로 18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