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는 다른 직종보다 부업이 매우 용이한 직업이다. 그래서 종종 지인의 부탁이나 본인의 의지로 용돈벌이 수준의 일을 진행하기도 한다.
물론 본업은 진행하면서도 생기는 여유 시간에 ‘놀아서 뭐하나’하는 생각으로 진행하는 수준의 프로젝트는 본인의 개발 능력을 진보시키는데에도 좋은 영향을 끼친다.
하지만 본업만큼 리소스가 소요되는 외주를 받아 일을 하는 경우가 있기도 한데, 이때 본업과 부업이 주객전도되어 실제적으로 중요한 본업이 등한시 되는 경우가 많다.
스타트업에 관심가지고 준비하는 개발자들은 풀타임으로 커리어를 시작하기 전에, 본업 중간중간 짬짬히 시간을 내어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이런 경우는 ‘스타트업으로의 합류 가능성을 계산하며 본업에 최대한 누를 끼치지 않는다. ‘ 라는 대전제를 최우선으로 설정하기에, 회사의 실질적인 피해는 거의 없는 편에 가깝다. (핵심 엔지니어의 퇴직은 어떤 식으로든 회사 입장에서 피해이긴 하지만…)
하지만 아래의 상황은 나쁜 프로그래머의 예로 들 수 있는, 회사에 실질적인 피해를 입히게 되는 경우이다.
위의 상황과는 완전 정반대의 방식으로 스타트업을 시작한 개발자 A씨가 있다. 풀타임 CTO로 5명의 멤버와 함께 창업을 하면서 개발에 관련된 전권을 획득하지만, 적은 월급을 이유로 팀원들에게 짬짬히 개인적인 알바를 할테니 이해를 해달라는 식으로 양해를 구했다. 팀원들은 찜찜하기는 하지만 대안을 찾기엔 너무 늦은 시기라 어물쩍 넘어갔다.
A씨가 외주받아 진행하는 일은 간단한 홈페이지 개발이거나 쇼핑몰의 유지, 보수였지만 (업무량으로 치면 2~3일 정도면 하나가 마무리 될수 있는 수준) 그 개수는 꽤나 많은 수준이었다. 처음 1~2개를 진행할 때야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완성된 프로젝트가 10개가 넘어가고, 20개가 되어가면서 본업과 주객전도되기 시작했다.
이미 완성된 외주작업에 수정 요청까지 쌓이기 시작하면서 집에서 진행해야할 외주작업이 회사까지 들어오고, 업무용 PC의 데스크탑 화면에는 회사의 업무파일보다 외주파일이 더 많아진다.
게다가 이익을 더 많이 남기기 위해서 멤버들의 자금으로 구매된 회사의 서버에 하나 둘씩 외주작업물들을 이주시키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완전 주객전도되었다. A씨는 결국 개발직원에게 회사업무보다 개인의 외주업무를 지시하기에 이른다.
아직 오픈하지 않은 서비스의 서버 트래픽 비용이 매주 꾸준히 오르는 것에 이상함을 느낀 재무 담당 팀원이 A씨의 팀원에게 넌지시 물어봤고 (이미 얘기가 되 있는 줄 아는) 팀원은 사실대로 얘기한다. 이에 A씨는 창업멤버들에게 신용을 완전히 잃게 된다.
A씨는 “아직 안 쓰는 서버였지만 일단 개인적으로 사용한 것은 미안하다. 하지만 내가 외주작업을 하겠다고 한 것은 이미 얘기가 된 것이 아닌가?”라고 항변했다. 하지만 상식적인 수준을 넘었다고 생각한 멤버들은 그를 이사에서 제외시키고 새로운 CTO를 찾게된다. ( A씨가 어디서 어떻게 생각했기에 괜찮을거라고 말한 건지 아직도 모르겠다.)
이런 레파토리는 많고도 많다. 비단 사내 서버를 개인적으로 쓰는 것으로 레파토리는 끝나지 않는다. IDC에서의 서버를 확인하기 위해 외근을 간다고 해놓고 개인적인 업무를 보러 가는 귀여운 짓부터, 대놓고 외주 코드 수정을 회사에서 하는 경우까지 있다. 전기도둑질까지 따지면 생각보다 많다.
‘상식적인 수준’이라는 단어를 어렵지 않게 생각하지만, 대부분의 타락은 그 ‘상식적인 수준’의 범위가 슬금슬금 확장하면서 시작된다. 그래서 본인이 생각하는 상식은 이미 타락한 뒤이기에 스스로 문제를 알아채기 매우 어렵다.
‘이 정도면 괜찮겠지’라고 생각한 몇 분이 한 시간이 되고, ‘이 정도 리소스는 괜찮겠지’하며 회사 서버에 심은 데이터 베이스가 몇 기가급으로 늘어나며, ‘아무도 모르겠지’라며 몰래 하던게 어느 순간 ‘나한테도 일 좀 떼다줘.’라고 문의하는 개발자 동료가 나오기 시작하면, 그 때는 이미 늦었다.
그냥 하지 말자. 회사에서는 회사일만 하자.
내가 좀 타이트하게 정의해주면,
근무하는 회사의 이득에 아무런 연관이 없고, 개인의 잔고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자체가 타락의 시작이다.
그거 해서 몇 천 만원씩 버는거 아니면 되도록 회사 근무시간에 하지 말자.
(몇 천 만원씩 버는거면 그냥 그거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