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일 퍼틸레인 고문이 페이스북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
이 글은 ‘왜 이마트는 중국에서 실패했는가?‘의 후속편으로 쓰기 시작했지만, 사실상 잡설에 가깝다. 앞의 글에 비해 딱히 마케팅이나 시장전략 관련한 이슈가 담겨져 있지는 않다. 물론 그렇다고 앞에 글이 마케팅이나 시장전략의 교훈이 있었던 것도 아니지만 지금까지 작성했던 글 중에 가장 호응이 좋아서 어쩔 수 없는 후속편에 대한 압박감(?)을 느껴 이어서 써 본다.
상해의 한국마트로 가장 먼저 자리를 잡은 브랜드는 ‘천사마트(1004마트)’이다. 2000년대 초반 홍첸루 한인타운이 개발될 당시 별 생각없이 들어온 것으로 추정 되는데, 이전편에서 이야기했듯 역시 선점의 효과가 컸다. 주로 보따리 상을 통해 한국에서 가지고 온 물건들을 상당한 마진을 붙인 고가에 팔았는데, 놀랍게도 불티나게 팔리며 1차 성장을 했다.
생각해보면 당시 중국진출 붐을 타고 유학생 및 주재원 등이 대거 상해로 건너 왔는데, 금방 질려 버리는 중국음식탓에 라면만 먹어도 고국 음식에 대한 갈증이 풀렸으니, 마트입장에서는 신라면만 가져다 놓아도 장사는 잘 되던 시절이었다.
좀 다른 이야기지만, 중국에서 성공한 한국계 식품기업은 대표적으로 ‘오리온’과 ‘농심’이 있는데 오리온이 철저하게 중국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제품을 개발하고 광고의 포인트도 중국인의 정서에 맞춘 반면, 농심은 북경과 상해의 한인타운을 중심으로 라면들이 불티나게 팔려나가면서 입소문과 더불어 성장했다.
오리온은 한국에서 빅히트한 ‘초코파이’에 ‘정 캠페인’을 그대로 중국에도 써 먹었는데, 이는 중국인들에게도 사랑받는 광고가 됐다. 창업주의 사위이자 현재 오리온 회장을 맡고 있는 ‘담철곤’ 회장이 중국사업을 주도했는데, 그가 화교라는 점도 꽌시 사회인 중국시장 진출에 좀 더 수월했으리라 추측된다.
처음에 보따리상을 통해 가져오던 물건들이 시기적으로 농심, 오리온, 롯데 등이 아예 중국에 공장을 지어 좀 더 수월하게 다양한 물품 공급이 됐고 이에 생활소비재 전반을 취급하면서 천사마트는 급성장했다.
여기에 일본마트에서 생선과 육류를 깔끔하게 가공해서 파는 것에 착안해서 한국식으로 생선을 손질해서 팔고 육류도 다듬어서 팔기 시작하면서 독보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비싸도 퀄리티가 좋고 깔끔하니, 한국주재원 부인들의 절대적인 인기를 얻은 것이다.
물론 중간중간 도전은 있었다. 주로 소규모 중국자본으로 이뤄진 컨소시엄 형태로 천사마트 부근에 경쟁마트(하오마트 등)가 생겨났는데, 상기에 언급한 육류 및 생선을 다듬는 기술자 확보에 실패해서 무난하게 도전을 물리칠 수 있었다.
이는 그냥 재료만 잘 다음어서는 안되고 말이 통해야 하기 때문이다. 중국어가 안되는 한국출신의 주부들이 원하는 부위 혹은 원하는 다듬는 방식을 이해하고 그것에 맞춰서 제공을 해야 하는데, 단순하게 조선족 판매직원들이 (한국에서 오랫동안 살아보지 않았다면) 한국주부들이 원하는 부위를 처리할 수 없었던 것이다.
천사마트가 상해한인마트의 지존자리에서 강력한 도전을 받았던 적은 두번 정도 있었는데, 첫번째는 이마트의 진출이었다. 홍첸루 부근 차오바오루라는 곳에 초대형 규모로 오픈을 해서 천사마트는 잔뜩 긴장을 했으나, 이마트는 너무도 허무하게 중국마트도 한국마트도 외국인 마트도 아닌 어정쩡한 포지셔닝으로 돈만 쓰다가 스스로 무너지고 철수했다.
이후 당시 한인타운 최고의 상가였던 갤러리아(징팅따샤) 건물이라는 곳에 ‘갤러리아 마트’라고 한국인 투자자들이 천사마트의 상당부분을 벤치마킹에서 천사마트보다 좀 더 큰 규모로 개업을 했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 무렵에는 살짝 위기가 오기도 했었다.
갤러리아 마트는 거의 비슷한 퀄리티의 제품, 비슷한 가격정책에다가 ‘배달’이라는 측면에서 천사마트보다 좀 더 넓은 지역까지 서비스 함으로써 일순간 천사마트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급성장 했으나, 너무도 어이없게 무너졌으니 그 이유는 갤러리아 마트의 창업자가 두 명의 투자자에게 사기를 치고 잠적을 해 버린 탓이다.
이 스토리는 거의 유쥬얼서스펙트급 반전이 있는 흥미로운 스토리인데, 간략하게 요약을 하면 A라는 사람이 B와 C에게 각각 투자를 받아 마트를 오픈했는데, B와 C는 투자자가 자신 뿐이라고 믿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그렇게 믿도록 A가 사기를 친 것이다. 그러다가 우연히 B가 마트에서 종업원들의 복무태도에 대해 지적하던 C에게 ‘당신은 누구인데 여기서 주인행세를 하시오?’라고 묻게 되고 덕분에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게 됐다.
화가난 B와 C는 A를 찾아 따졌으나, A는 태연하게 둘을 인사시키고 자신의 지분을 B와 C에게 추가로 주기로 하면서 사태를 무마시킨다. 아울러 천사마트와의 경쟁에 좀 더 실탄(자금)이 필요하니, 좀 더 자금을 수혈해 달라는 뻔뻔한 요구까지 하고 정말로 그걸 받아내는 놀라운 수완을 발휘했다.
사실 A는 당시에 투자금의 절반을 딴 주머니(한국 유자차 공장)에 투자하고 있었는데, 갤러리아 마트는 짧은 시간에 천사마트와의 경쟁에 도달할만큼 급성장 했으나, 그의 주관심사인 유자차 사업은 잘 안되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때마침 마트 관련 후속 투자를 받아내 다시 유자차 공장에 재투자를 하는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계속 하고 있었다.
오히려 투자자인 B, C는 의기투합해서 갤러리아 마트 운영에 열정을 가지고 돈과 시간을 투자하고 있었다. 조금만 더 하면 천사마트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던 것이다. 문제는 그렇게 투자한 돈이 고스란히 유자차 공장으로 넘어갔다는 것이고 그들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 너무도 불행한 일이었다.
무언가 이상하다는 점을 B, C가 발견할 무렵 드디어 유자차 공장이 성공에 도달했고 이후 A는 신속하게 갤러리아 마트의 지분을 다른 투자자 D에게 넘기고 유자차 공장마저 처분한 후 호주로 잠적해 버렸다는 것이다.
분노한 B, C는 A의 아들이 다니던 학교에도 가 보았으나, 이미 몇 개월전에 해외로 전학간 상황이었고 그 와중에 무언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아이의 성과 아빠인 A의 성이 다른 것이었다. A의 여권사본을 가지고 영사관 및 현지 공안에 신고했으나, 알고보니 여권은 위조 여권이었다. 갤러리아 마트를 만들어 상해 일등 한인마트의 자리를 위협했던 A의 진정한 정체는 현재까지도 미궁에 빠져있는 미스테리한 사건이었다.
상해 한인사회에서는 얼마전 이민호 공연을 해 주겠다고 중국인들에게 12억의 계약금을 가로채고 도망친 에이전시와 더불어 양대 사기사건으로 회자가 되고 있는 전설같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비록 갤러리아 마트는 희대의 사기극으로 인해 스스로 망했지만, 천사마트도 홍첸루의 상권유지를 위해 무리수를 두었는데, 같은 상권에 또 하나의 천사마트를 낸 것이다. 덕분에 원래 있던 1호점(본점)은 매출에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두 마트는 약 200미터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갤러리아 마트는 그 중간에 있었다. 설마 이걸 노린 것일까? 양쪽에서의 압박?)
그 외에 구베이지점과 따무즈지점(푸동쪽)은 여전히 장사가 잘 되는 편이긴 하나, 사실 한인타운이라는 상징성은 나와서 밥도 먹고 장도 본다는 컨셉이기에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1호점을 해당 한인타운의 거리에서 확장이전 하는 편이 나았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천사마트의 경우 이후 잘 나가는 마트 사업자들의 고질적인 문제점이 고스란히 노출되었는데, 중국인 판매직원들의 불친절함(정말 불친절하다. 일본마트의 직원들과는 비교도 안되고 까르푸에 비해서도 친절도가 많이 떨어진다)과 계산실수(주로 더 돈을 받았는데, 이 계산실수도 의도적인 것이라는 구설수에 늘 시달린다. 덕분에 계산대에서 영수증을 한참 들여다보는 한국인들이 많고 그 때문에 줄이 밀린다)로 인해 항상 노이즈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물건값이 비쌌다. 순수 한국에서 건너온 것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중국에서 생산된 것까지 지나치게 과도한 마진을 붙여서 파는 것은 늘 불평과 원성의 대상이었다.
‘별에서 온 그대’ 이후 한인타운의 인기는 최고조에 이르렀다. 경쟁지역인 구베이를 압도할 정도로 중국인 관광객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한국에 가지 못하는 것을 이곳 한인타운에 와서 쇼핑을 하고 한식을 먹으면서 대리만족을 느끼는 중국인들이 대폭 늘어난 것이고, 여기에 천사마트도 한국인들보다 중국인들이 더 많이 오는 기현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천사마트도 여기까지는 행복한 고민인데 ‘태양의 후예’로 한인타운의 인기가 다시한번 꿈틀거릴 무렵 새로운 경쟁자가 다시 생겨났다.
바로 ‘더블유마트(W마트)’라는 곳인데 이곳은 중국인(혹은 조선족) 자본으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위치는 문제의 갤러리아 마트가 있던 빌딩 입구 1층(역으로 두 천사마트 중간에 파고든 셈인데 영리한 전략이다)에 꽤나 성대한 규모로 오픈했고, 물건의 규모와 질이 천사마트 못지 않으며 무엇보다 친절함과 배송에 대한 직원들의 훈련이 잘 되어있다. 최근 우리 가족은 이곳에서 주로 장을 본다.
오픈효과이긴 하나 요 몇 주 동안 더블유 마트는 천사마트를 압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고, 뒤늦게 천사마트는 갑자기 열심히 세일 프로모션도 하고 있다. 왠지 느낌탓이겠지만, 이전에 없던 친절함이 묻어 나오는 것 같기는 하다. 이래서 독점보다는 경쟁체제가 소비자에게는 좋은 것이다.
천사마트가 15년 넘게 이어온 한국마트의 지존자리를 지킬지, 혹은 후발주자들에게 밀릴지 평가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하지만 잘 나갈 때 더 겸손해야 한다는 단순한 명제를 유통이나 요식업을 하는 이들은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