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TER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
전자제품을 사면 매뉴얼이 함께 들어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약도 사면 항상 설명서가 있죠. 신용카드도 엄청난 길이의 약관을 함께 보내줍니다. 보다 잘 설명하고 쉽게 쓰기 위해서 중요한 정보는 항상 사용자에게 함께 제공됩니다. 회사생활도 엄청나게 알아야 할 게 많습니다. 보통 신입사원 때는 커다란 노트를 하나 펴 놓고 사수에게 가서 들은 내용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적고 외웁니다. 그러다보면 그것은 하나의 책이 되고 자기만의 지식이 되겠죠.
그런데 이런 내용에서는 철학이나 전략 등의 내용은 잘 없습니다. 대부분 이 일을 하려면 어딜 들어가서 무엇을 누르고, 엑셀의 어떤 함수를 쓰고 타 부서 담당자 이름은 누구인데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 그런 내용들입니다. 그래서 잔뜩 쓴 그 노트는 어느 순간 일이 손에 붙으면 안 볼 확률이 큽니다. 그 정도 프로세스는 다 외울 수 있기 때문이죠. 이런 ‘나만의 노트’는 종종 공식적으로 교육 교재처럼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같은 내용을 여러 명이 쓰는 게 아니라 표준적인 내용을 책으로 만들어 신입들에게 나누어 주기도 합니다. 두꺼운 책을 받아든 신입은 최대한 빨리 습득하고 익히려고 하지만 이 책은 만든 날짜에서 점점 멀어져 가면서 과거의 것이 되면서 교재는 교재대로 실무는 실무대로 다시 괴리가 생기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교재들이 전반적인 실무로 확대되어 하나의 매뉴얼화가 되면 전방위적으로 이런 현상이 벌어지게 됩니다. 무엇이 중요한지 알기 힘들만큼 전체적인 내용이 다루어지고 꾸준히 업데이트하지 않으면 현상과 괴리가 시작되고 회사의 교육은 교재를 나누어주는 것으로 대체되면서 진정성이 점점 떨어지게 되는 등 적지 않은 부작용이 발생합니다. 이것만이 아닙니다. 군대에서 쓰는 교재는 만드는 부서라도 따로 있지만, 일반 실무는 실무자가 그 매뉴얼을 만들어야 합니다. 매뉴얼 만드는 데 드는 시간은 그 사람의 성과도 아니고 또 모두가 인정할만한 수준으로 만들기도 어렵습니다. 정 반대죠 있죠. 정말 매뉴얼이 필요한데 제공되지 않아 별 것 아닌 업무를 해도 마치 해당 업무를 잘하는 사람으로 인정받기도 합니다.
대체 어떤 것을 매뉴얼로 만들고 어떤 것은 만들지 않는 게 좋을까요?
1. 도구를 사용하는 방법은 매뉴얼로 만드는 게 좋습니다
흔히 ‘이거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고 물어보는 게 있습니다. 보통 회사에서 쓰는 오라클이나 SAP의 서버를 다루는 방법이나 유의점, 서버에서 데이터를 추출하는 방법 등 이미 무얼 하고 싶은지 결정된 상황에서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에 대한 부분을 다루는 내용이라면 매뉴얼로 만드는 게 좋습니다. 이런 것은 이미 성과를 내기 위한 생각이 있는 상태에서 단순히 어던 과정 때문에 그것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에 누구에게 물어볼 필요 없이 매뉴얼로 정리되어 있는 게 낫습니다. 주로 시스템에 들어가서 하는 작업이나 작업에 필요한 장비를 다루는 내용 중심이 될 것입니다.
2. 실무의 핵심적인 성과를 올리는 내용은 매뉴얼로 담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매뉴얼로 정리할 수 없습니다. 이것을 정리하면 아마도 해당 직무의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을 열거하는 형태의 내용이 될 겁니다. 예를 들면 영업 담당이 하는 일에 대해 매뉴얼로 만들면 아침에 일어나서 거래처를 만나고 보고자료로 정리하고 주요 지표에 대해 어떻게 보고 어떤 의사결정을 어느 시점에 내리면 좋을지 등의 내용을 담게 될 겁니다. 엄청 두꺼운 책 수준으로 나오겠죠.
하지만, 이게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그래서 무엇부터 당장 해야겠다는 것을 모르는데 전체를 다 알려주어서 될 게 없죠. 특히 이런 부류의 내용은 시대의 변화나 조직 구조의 변화에 따라 과업의 성격이 변화하기 때문에 이렇게 정의하기 어려운 내용입니다.
실제 도제식으로 가장 중요한 한두가지 일을 직접 같이 하면서 스스로 정리하는 게 더 좋을 수 있습니다. 도제식으로 하면서 설명만 하는 게 아니라 나중에는 일을 맡겨보기도 하는 거죠. 이렇게 실무를 가지고 일을 다루어 볼 때에야 이게 정말 어떤 성격의 일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단순히 집체 교육을 열어서 그 두꺼운 교재를 나누어주고 책 읽어보라고 말하는 건 ‘아무 것도 하지 않겠다’와 다르지 않습니다. 실무야말로 다 할 필요가 없고, 이것이것 중심으로만 하면 된다가 더 중요한 영역이니까요. 실무자도 단순히 어떤 매뉴얼 만든다고 시간을 보내지 않을 겁니다.
예를 들어 화장품 업체 직영점 판매사가 무얼해야 하는지 판매사의 고객 응대 방법부터 의상, 화장법, 하루 타임테이블이 들어있는 큰 매뉴얼을 나누어 준다고 해도 판매사가 변화되기도 어렵고 성과를 직접적으로 거두기도 어렵습니다. 잘 하는 판매사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일을 같이하면서 보고 배우는 게 더 정석이죠. 아무리 ‘ㅇㅇ학교’, ‘XX 아카데미’를 해도 필드 위에서 익힌 것과 아닌 것은 적용에 큰 차이를 보입니다. 이렇게 하면 진열장 청소 등 실제는 가장 작은 것 하나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도 굳이 매뉴얼로 만들거라면, 그것이 뭔가 노하우의 축적이라고 생각한다면 아래 내용은 반드시 지켜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물론 안 만드는 게 백번 낫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1. 정기적인 업데이트를 하는 시점과 담당자를 별도로 정합니다.
매뉴얼의 업데이트 시기를 고정화하고 담당자를 별도 지정합니다. 이 부서 또는 이 사람은 이것을 현장에 맞게 바꾸는 작업을 해서 이것을 익히면 즉시 실무가 가능하도록 만듭니다. 다만, 실무자에게 이것을 만들라고 시키면 안됩니다. 한 달 내내 메뉴얼만 만들다가 시간이 가는 것만큼 고급 인력을 낭비하는 것도 없습니다. 매뉴얼의 폐기와 수정 작업은 도구와 시스템 다루는 방법에 대해 새롭게 생겨난 이슈와 이제 익히지 않아도 되는 것 중심으로 개정하면 좋습니다.
2. 교육에서 매뉴얼은 부분일 뿐입니다
실무의 노하우를 매뉴얼로 남기기를 원한다면 전반적인 교육의 철학에 대해 다시 물어봐야 합니다. 책을 주고 공부시키는 게 아니라 공부 과정 가운데 책이 필요한 것입니다. 집체로 수준과 니즈와 상관없이 모아서 매뉴얼을 나눠주고 강의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우수한 직원의 노하우를 도제식으로 이어져 나가게 하고 자기 정리를 시킬 것인지 스스로 얻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3. 정말 중요한 것은 강조해야 합니다
두꺼운 책은 다 보기도 어렵고 다 본 이후에도 뭐가 중요한지 한참을 생각하게 만듭니다. 정말 강조해야 할 내용에 대해서는 맨 앞에 싣거나 눈에 잘 보이는 방법으로 별도 표기를 해서 그것부터 혹은 그것만 먼저 하게 해야 합니다.
매뉴얼은 정보 전달의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노하우의 정리, 그 때 그 수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교육이나 실무 가이드로 적합하지 않습니다. 다만 위에서 다룬 것처럼 도구에 대한 사용 방법이라면 중요합니다. 과업은 매뉴얼로 정리되기 어렵습니다. 관계 속에서 정리되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변동이 많고 정확한 영역에 대한 정의도 다르게 요구받습니다. 이것은 그 때의 최적의 내용을 최고의 인재와 함께 해 보는 게 가장 좋은 교육의 방법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