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ter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
이 글을 보는 모든 분들은 지난 몇 년간 많은 계획들을 세웠을 겁니다. 개인적인 삶의 목표부터 금전적인 내용까지, 일을 하면서는 일의 목적과 방향, 세부 실행 계획까지. 우리는 늘 계획 혹은 그 비슷한 마스터 플랜을 짜는데 많은 공을 들였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안 했거나, 할 수 없는 것이었거나, 하다가 포기할 수 밖에 없는 게 대부분이었습니다.
영어공부를 하려고 시작한 전화영어나, 건강을 찾으려고 등록한 헬스클럽은 몇 번 써보지 못했는데, 이것들은 그냥 못한 것 만은 아니었습니다. 일을 마치는 시간이나 금전적인 부분, 장기적인 여행 등 나랑 맞지 않는 이슈를 받아들이기에는 그 방법은 적절치 못했기 때문이었을 수 있습니다. 물론 더 이상 영어 공부를 할 필요가 없어진지도 모르죠.
우리의 관심사는 늘 그 이후 새로운 것, 또 같은 계획을 세우고 잠시 마음의 평안을 얻는 것이었습니다. 인생의 중요한 자원인 시간과 금전을 쓰면서 이런 계획을 세우는 데, 왜 안됐을까요? 회사 업무로 들어가면 이는 더 큰 복잡성을 띠게 됩니다. 혼자 계획하고 혼자 잘하면 되는 개인사와 달리, 조직은 기본적인 이해관계가 자리잡고 있는 정글이니까요. 많은 기업들의 경영계획이 그저 기획실의 보고서로 남는 것은 ‘보고서를 쓴 취지와 상황’이 타성적이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는 실행이 제대로 안된 문제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밤샘을 하고 몇 달에 걸쳐 갖은 정신적, 신체적 스트레스를 견디고 만든 계획이 왜 매년 반복되는 계획으로만 남게 되는 걸까요?
어떻게 하면 보고서로만 남지 않을까요?
전략기획실로 몇 년간 일하면서 왜 매번 같은 계획이 쓰여지고 거기 머물러 있는지, 시간 흐름 관점에서 정리해 보면 이러 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싶어서 정리해 보았습니다.
1. 최초에 모든 관련 부서를 다 부른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전체 계획의 절반은 보고서의 활자로만 남고 실제 누구에게 어떻게 일을 분배할지 몰라 표류합니다. 그것은 억지로 구색을 맞춘 계획이거나(의지부족) 아예 할 계획이 없는 상태로 아이디어에 머물러 있기 때문(역량부족)입니다. 또 적당히 일부 부서에, 처음이 아닌 좀 시간을 거쳐서 뒤늦게 이것이 공유되어 시작하기도 전 인큐베이팅이 안되는 일이 벌어지고 시간에 쫒겨 아무 결과물이 없는 경우를 낳기도 합니다. 리더는 두려움 없이 최초에 관련된 모든 당사자를 다 불러야 합니다. 팀장만 불러서도 이야기가 전달되고, 팀원까지 처음에 다 부르는 것이 공감하고 함께 고민하는 데 도움이 더 많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2. 외부의 변화와 시스템 변화의 목적 – KPI만 가이드를 준다
당사자들을 모은 다음 실수를 하는 리더도 많습니다. 흔한 관료제 문화가 원인입니다. 지나치게 관여하여 아랫 직원들의 생각을 앗아가거나(의욕감퇴, 혁신없음), 그냥 방치하여 다들 멀뚱멀뚱 서로를 바라보기만 할 수 있습니다. 최초 아젠다를 그들이 소화할 수 있는(공감할 수 있는) 수준으로 정리해서 이 변화를 할 수 밖에 없는 시장과 고객의 변화에 대해 설명하고 달성할 목적(결과물)만 알려주는 것이 좋습니다.
3. 실무자가 고민하게 만든다
중요한 것은 기획한 리더가 고민하는 것이 아닌, 실제 일을 실행하고 피드백을 할(책임과 권한을 현장에서 가진) 실무자가 더 고민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는 세련된 코칭이 필요합니다. 친밀하게 실무자와 관계를 형성하고 실무자의 고민이 막힘 없이 수시로 전달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현장에서 가설이 분명하다면, 안되는 것 빼고는 다 되는 긍정적 조직으로 실무자에게 맡겨 두어야 합니다. 실무자는 모든 생각의 과정들을 기록하여 나중에 확인할 수 있게 합니다.
4. 일회용이 아닌 사용할 수 있는 양식으로 툴을 준다
보고서가 최초에 있었고, 이것을 실무자가 실행하면서 다시 보고서를 받는 것은 대표적으로 잘못된 기업 문화입니다. 실무자에게 필요한 것은 보고서가 아닌, 실제 가설과 결과를 기록하고 본인의 생각을 정리하는 ‘강낭콩 관찰 기록장’ 같은 것입니다. 프레젠테이션 할 대상이 없는 게 맞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아젠다가 정해졌고, 최초에 토론을 거쳐 합의를 했는데, 다시 누구에게 보고하는 것만큼 일을 지지부진하게 만드는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강낭콩 관찰 기록장’을 실무자가 만들고, 그것을 기록하면서 일을 하면서 겪게 되는 많은 고칠 내용에 대해 정리하는 조직이 비지니스 구조가 발전하는 조직입니다.
5. 될 수 있는 역량과 시스템, 지식을 붙여준다
무능한 리더는 안되는 결과에 대해 아랫직원 탓만을 하지만, 경영자는 할 수 있는 역량이 무엇이고, 무엇이 부족한지 알고 그것을 이 팀에 붙여줍니다. 보통 일을 하는 실무자는 전체 큰 판을 다 모르고 핵심 액션 중심으로만 아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무자가 다 못보는 부분이지만, 전체 결과가 나오지 않게 만드는 부족한 것이 있다면 실무자와 상의 후 되는 사람과 시스템을 만들어 주는 것이 좋습니다. 혁신의 의지가 없는 조직은 이 점을 리더가 생각하지 않습니다.
6. 실행해보고 나온 피드백을 통해 잘못된 프로세스, 프로젝트 팀원을 가려낸다
일단 실행했다면, 절반 이상 성공한 것입니다. 실패도 소중한 경험인데 이것을 통해 바뀔 내용에 대해 피드백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앞서 실무자가 작성한 ‘강낭콩 관찰 기록장’이 성실하게 작성되었다면, 무엇을 바꾸어야 할지 어렵지 않게 명확한 근거를 가지고 정리될 것입니다. 중간에 의지가 없는 사람, 팀웍을 일방적으로 깨는 사람도 정기적인 피드백을 통해 가려내야 할 부분입니다. 다만, 우리 조직이 혁신적인 사람을 ‘불만분자’로 여기고 현장에서 나온 반대의견을 가로막는 게 아닌지 리더는 돌아보아야 합니다. 이런 리더가 생각보다 많습니다.
7. 최초 보고서의 모순을 리뷰한다
실무에서 나온 피드백을 바탕으로 기획자는 다시 최초 아젠다를 리뷰합니다. 시장 상황이 바뀌었거나 실체가 없는 이야기 중심으로 짠 보고서라면 리뷰 과정에서 모순과 스스로 계획을 세팅할 때의 문제점을 알게 됩니다. 리뷰를 하는데 문제가 없는데 실적이 나오지 않는다면, 자신이 기획자인 것 자체를 설명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8. 목적과 방법에 대해 수정하여 다시 1번으로 돌아간다
아젠다를 리뷰한 결과에 따라 다시 다음 시기에 해야 할 내용을 정리합니다. 시장의 변화를 다시 보고 이슈를 재정의 하고 1번으로 돌아가서 관련된(해오던) 팀을 다시 부릅니다. 실무진의 미시적 피드백과 기획진의 거시적 피드백에 대해 한 자리에서 소통하고 다시 실행에 필요한 액션과 자원을 정리합니다. 그리고 다시 2번에서 7번까지의 내용을 KPI가 달성될 때까지 실행합니다.
말은 쉬운데, 집요한 의지가 없이는 어려운 내용입니다. 이런 게 왜 필요하냐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사람조차도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는 물 흐러가듯 나름의 자신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경영이 표류되고 있다면 자신의 인생 목표는 잘 돌아가고 있는지 지켜보는 것도 관전 포인트가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