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일 퍼틸레인 고문이 페이스북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
모두가 ‘포켓몬 고’에 열광할 때 다른 주제의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IP와 그 투자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오늘 이야기 할 내용은 이미 끝난 거래이지만 알려지지 않은 그러면서도 흥미진진한 내용을 담고있다.
90년대 일본 게임 명가중에 SNK라는 회사가 있다. ‘사무라이 쇼다운’, ‘아랑전설’ ‘용호의권’, ‘킹오브파이터’ 등의 히트작을 가지고 있었다. 90년대에는 Sega, Namco에 밀리지 않을 명가중에 명가였다.
SNK가 몰락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90년대 후반 후속작들의 실패 (신기하게도 프랜차이즈의 3번째 시리즈에서 모조리 실패했다. 특히 거액의 제작비 투자를 한 아랑전설3의 실패는 뼈 아팠다)와 이로인한 조급한 사업확장이 몰락의 계기였다. 네오지오(하이퍼, 포켓 등) 판매도 실패했고, 파칭코 업체와의 협업도 실패했다. 불꽃처럼 한 시대를 휩쓸다가 쓰러져간 일본기업 답지 않은 회사였다.
하지만 워낙 출중한 IP들을 보유하고 있어 회사는 2001년 파산신청을 하고 ‘SNK Play More’라는 IP관리 회사의 형태로 재탄생했다. 이 회사에서 SNK의 모든 IP를 보유하고 관리했다.
뒷북이지만, 2000년 초중반 (펌프를 통해 상장까지 한) 한국의 이오리스와 메가엔터프라이즈는 이 회사에 충분한 재정적 지원 및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고 경우에 따라서는 인수까지도 시도해 볼만 타이밍이 있었지만 못했다. 아케이드 기반인지 두 회사 다 세련된 비즈니스와는 거리가 멀었다.
2014년 중국에서 ‘전민기적’의 대성공은 그때까지 ‘IP는 먼저 쓰는 쪽이 임자’라는 사고방식에 빠져있던 중국 게임업계에 일대 충격을 가져다줬다. 합법적 계약을 통한 IP 라이센싱이 마케팅 비용을 1/20로 줄이고도 동일한 효과를 가져다 준다는 업계의 표준이 생기기 시작했고, 이는 ‘IP 확보 전쟁’으로 발전해서 현재까지 이르게 된다. 지금도 피튀기는 전쟁 중이다.
이후 최대의 수혜자는 ‘넷이즈’였다. 과거 한국게임들을 수입해서 성공한 상해쪽 퍼블리싱 기반의 회사들과 달리 자체개발을 통해 발전했기 때문이다. 이는 ‘개발력의 축적’이라는 기대했던 효과 외에도 ‘대형IP 확보’라는 기대하지 않았던 유산까지 챙기게 됐다. ‘자체개발력+자체 대형 IP’의 힘은 모바일게임 시대에 이르러 넷이즈를 천하의 텐센트 마저 위협하는 수준의 곤고한 2등으로 성장시킨다.
‘전민기적’의 성공 직후 중국 투자업계에는 핫이슈가 한번 있었다. 퍼블리셔이자 투자기반이 강한 ‘아워팜’이 전민기적의 개발사 ‘천마시공’을 인수한 것이다. 의아했다. 왜 본인들의 퍼블리셔인 킹넷이 아니고 아워팜일까?
원래 전민기적을 개발하던 북경천마시공은 주인이 2~3번 바뀌었던 회사이다. 프로젝트도 웹에서 모바일로 바뀌고 현재의 퍼블리셔인 킹넷의 ‘지분투자+퍼블리싱’ 결정 이후에 현재와 같은 ‘MU 기반의 모바일 ARPG 형태’로 방향이 잡힌 것인데, 어째든 그 과정에 천마시공은 배고픔에 허덕였고 모진 고생을 했다. 사실 킹넷이 투자와 퍼블리싱 결정을 해 주지 않았다면 천마는 망했을 것이고 전민기적은 시장에 나오기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 가운데 천마가 킹넷이 아닌 아워팜에 팔린 것은 사실 의외가 아닐 수 없다. 도의적이지도 않다.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그 중심에 킹넷의 핵심임원이 한명 껴 있었다. 그가 샤오미도 끌어 들이고 레이쥔도 끌어들이고 천마에 투자도 하고 그런데 하필 엑싯은 아워팜에 했다. (물론 MU IP 계약이 없었다면 절대 불가능한 딜이다)
어째든 아워팜은 행복했고, 킹넷은 뒤통수를 한대 맞았다. 원래대로라면 킹넷은 본인들의 지분 20%를 아워팜에 비싸게 넘기는 것이 좋을텐데 아직까지도 그것을 꼭 쥐고 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의미없는 일로 보이지만 말이다.
천마를 인수했지만, 아워팜에 만족을 주기에 그들은 여전히 스틸 헝그리 했다. 전민기적 전체 수익에서 천마가 가지고 오는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플랫폼, 웹젠, 킹넷 등에 떼어 주고 나면 먹을게 많지 않다. 그때부터 아워팜은 IP와 IP를 가진 개발사에 집중 투자를 하러 다니기 시작했다. 당시에 한국도 뻔질나게 드나 들었고 여러형태에 인수제안을 날렸지만, 다 실패했다. 한국 모바일게임 업계에는 텐센트의 입김이 닿은 곳과 닿지 않은 두 종류의 회사만이 있었고 텐센트의 입김이 닿지 않는 곳은 그들로서도 인수가 불가능한 사이즈 혹은 관심이 없는 매물이기 때문이다. ‘프리스타일 IP’ 사용 계약이 유일했다.
그 와중에 ‘대장문’을 개발했던 인수한 스튜디오를 통해 때마침 ‘킹오파97’ IP를 기반으로 한 모바일게임(권항 97)이 완성되어 갔다. 모르긴해도 원래는 중국식으로 그냥 만들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데, 전민기적의 성공을 보고 부랴부랴 SNK와 IP계약을 맺었을 확률이 대단히 높다.
아워팜은 고민했다. 괜찮은 IP를 가지고 게임을 만들었지만, 성공에 대한 확신은 불안했다. 이미 철지난 ‘도탑전기’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고심끝에 아워팜은 텐센트에 퍼블리싱 계약을 했다. 익히 알다시피 텐센트와의 계약은 손해는 안 보지만, 대박났을 경우 배가 아프게 된다. 텐센트가 가져가는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아워팜은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쪽으로 선택을 했고, 이후 결과는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권황 97’은 초대박이 났다. 1년간 수천억의 매출을 뽑았다. 하지만 아워팜은 그렇게 큰 재미를 못 보았다. 정말 배가 아프게 된 것이다.
‘전민기적’, ‘열혈전기’, ‘권황97’, ‘몽환서유’, ‘대화서유’ 등 IP 기반의 모바일 게임이 연이어 성공을 하면서 IP의 중요성이 부각되자 IP확보의 움직임은 더 거세어졌다. 특히 초대형 일본의 IP들은 중국 회사들에게 언제나 관심 1순위였다.
이미 킹오파를 활용한 ‘권황 97’을 성공한 아워팜은 SNK PLAYMORE를 인수하려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었다. 당연한 전략이다.
하지만 아워팜이 움직일 무렵 이미 다른 중국의 자본가들이 SNK에 접촉하고 있었다. 그들은 게임과 아무런 상관없는 그냥 투자자들이고 철저하게 기획투자의 개념으로 접근했고, 벼락처럼 신속하게 회사를 인수하는데 성공했다.
간략하게 요약을 하면 중국의 ‘顺荣三七互娱’와 ‘东方星晖’가 펀드를 만들어서 6350만 달러에 SNK PLAYMORE를 인수했다. 东方星晖가 80%, 顺荣三七互娱가 20% 출자하여 ‘喆元文化’를 설립했고 이 회사를 통해 인수에 성공한 것이다.
‘顺荣三七互娱’는 상장사인데, 제조업 기반의 회사들을 몇몇 가지고 있고 지금은 상장한 자금을 바탕으로 이것저것 돈 되는 일이라면 다 덤비고 있다. ‘东方星晖’은 그 유명한 동방증권의 산하 펀드이다. 즉 게임이나 콘텐츠와 무관한 회사들이 돈 냄새를 맡고 덤빈 것인데, 보란듯이 성공한 것이다.
喆元文化가 SNK PLAYMORE를 당시 권황 97의 1~2개월 매출 수준에 불과한 6350만 불에 인수한 것은 투자 및 게임업계에서 일대 파란을 일으켰는데, 이는 그들의 인수작전이 워낙 은밀했고 철저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심지어 SNK PLAYMORE의 경영진과 접촉조차 하지 않았다. 이미 SNK 경영진은 자신들의 IP의 가치를 어느정도 인지할 무렵이기도 하고 또한 주인이 바뀌면 본인들의 거취에 문제가 생길텐데, 해당 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설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대신 그들은 실제 SNK PLAYMORE의 대주주를 찾는 쪽에 총력을 기울였다. 여기에는 비용을 아끼지 않았다. 실제 주인을 찾는데 10만 불, 테이블까지 주인을 끌어내기만 하면 100만 불을 주는 것을 조건으로 해당 꽌시가 있는 사람을 찾는 것에 주력했고 마침내 성공했다. 끝내 협상 테이블에 주인들이 나오도록 한 것이다. 그리고 그때까지만 해도 망한 회사의 오래된 IP를 관리하는 회사정도로 생각했던 SNK PLAYMORE의 실제 주인들은 중국애들의 공격적인 베팅에 ‘이게 웬 떡인가?’하고 상황파악을 할 사이도 없이 오케이를 했다. 660억은 은퇴자금으로 사실 충분한 돈이다. 그것을 당장 현금으로 꽂아 주는 것이니 말이다.
이 무렵 아워팜은 SNK PLAYMORE의 경영진과 인수관련 타진을 하고 있었으니, 이는 정말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는 것이 적절한 표현이 아닐 수 없다.
한편 SNK의 CEO는 자신이 대표로 있는 회사가 매각되는지 3일전에 알았다고 한다. 그 정도로 은밀하고 전격적인 M&A였다. 투자자들이 한번쯤 타산지적으로 봐야할 내용이 아닐까 싶다.
이것과 비슷한 사례로 샨다의 투자자들이 있다. 동기는 비슷한데, 결과는 그렇지 않다.
우리가 알고 있는 샨다의 설립자이자 중국게임업계의 대부인 ‘천텐차오(陈天桥)’는 2013년 진작 샨다를 떠났다. 이후 샨다의 주인은 ‘정확히 누구인가?’ 헷갈릴 정도로 뒤바뀌기도 하고 여러 형태의 투자(라고 쓰고 투기라고 읽는다)자본이 들어오기도 했다. 게임과는 전혀 무관한 자본들이다. 한국 언론에는 수시로 매각이 됐다고 나오지만 대부분 오보다. 복잡하게 뒤섞였을 뿐이다.
샨다에 투자를 한 자본의 목적은 분명하다. ‘미르의 전설 IP’가 현재 최고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 시점이니 나스닥에 상장폐지 후 중국에 재상장 해서 큰 돈을 벌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스닥 상장폐지는 쉽게 했는데, 이후 중국에 재상장은 못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위메이드와 ‘IP 분쟁’까지 생겼다.
천마시공과 SNK 인수와는 비교도 안되게 대규모 자본이 투입됐는데, 그들의 계획(작전)은 현재 표류 중이다. 사실은 주주들끼리도 지금 여러가지 소송이 복잡하게 얽혀 있기도 하다. 일이 뜻대로 안 풀릴 때 생기는 전형적인 현상이다. 이 건 관련해서는 너무 복잡하고 한국의 대형 IP인 미르와도 얽혀 있는 일이 많으니, 나중에 기회가 되면 따로 소개 하도록 하겠다. (여기도 정말 흥미진진하다)
글의 마무리를 하자면 강한자가 버티는 것이 아니고 버티는 자가 강한 것이다. 버티다 보면 기회가 온다. 하지만 준비되지 않은 자에게 기회가 오면 그것이 기회인지 모르고 지나간다. 그래서 늘 준비를 해야 한다.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수 있도록 말이다. 정보획득에 게을리 하지 말고 트렌드 파악에 뒤처지지 말자.
중국회사와의 협상은 베짱과 인내심의 싸움이다. 조급한 쪽이 진다. 버스와 여자와 중국의 투자자는 지나가고 나서 손 들 필요없다. 대신 기다리면 또 온다. 조급해 하지 말자.
마지막으로 프로는 프로와 일을 할 때 가장 좋은 시너지가 난다. 딜의 구조를 만드는 것 부터 마무리까지 결국은 프로들이 나서야 완성이 된다.
‘나는 프로일까?’ 문득 궁금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