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4년 전. 수습 딱지를 막 뗐던 여름의 어느 날 휴가를 내고 놀고 있는데 갑자기 데스크로부터 전화가 왔다.
‘재석아 중국 예능 프로그램 좀 출연해야겠다. 중국어 할 줄 알고 미혼인 사람이 너밖에 없어.’
중국 예능 1위 프로그램이었던 장수웨이슬TV(JSTV)의 페이청우라오(非诚勿扰)에서 한국 특집 출연자를 모집하고 있었던 것. 당시 나는 일개 수습이었던지라(…) “충성!”을 외치고 등록할 수밖에 없었다.
우선, 페이청우라오가 무슨 프로그램인지 궁금한 분들을 위해 간략히 설명하면…
1. 25명의 여성 출연자가 서 있는 무대로 남성 출연자 한 명이 등장, 마음에 드는 여성 출연자 한 명을 몰래 지정한다. 이는 시청자와 MC에게만 알려준다.
2. 약 20여분에 걸쳐 MC와 대화를 나누며 사전 촬영했던 VCR 영상이 세차례 나온다. 각 여성 출연자들은 남성이 맘에 들지 않을 경우 버튼을 눌러 분홍색 불빛을 점멸시킬 수 있다.
3. 세번째 VCR이 끝나고 불빛을 점멸하지 않은 여성이 두 명 이상 있을 때, 남성 출연자는 처음 지정했던 여성 출연자까지 총 세 명 앞에서 최종 선택을 할 수 있다. 점멸하지 않은 여성을 선택할 경우 바로 해피엔딩, 처음 지정한 여성 출연자를 택했을 경우 그 여성 출연자의 선택에 따라 커플 성사 여부가 결정된다.
4. 방송사에서 제공하는 이메일로 출연 이후에도 시청자들과 연락하게끔 한다.
러브스위치 같은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하지만 갈 길은 멀다. 한국에서 총 2차에 걸친 예선을 통과해야만 할 수 있다. 그 후에라야 중국 난징의 장수웨이슬TV 본사에서 녹화 방송을 하게 되는데, 자랑스럽게도 예선을 모두 통과했다. 편집 촬영을 해야한다면서 삼청동에서 ‘가을 남자’ 콘셉트로 오글거리는 멘트를 했던 흑역사도 있긴 했지만 말이다.
여튼 회사에서 굳이 돈을 써가면서 나를 난징에 보낸 데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었다. 당시 회사는 중국 시장에 꽂혀있었는데, 페이청우라오에 내가 출연해서 홍보를 한다면 브랜드 마케팅 효과가 어마어마하리라는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웬 걸?
난징에 도착한 다음 날 곧바로 오리엔테이션이 진행됐는데, 담당 PD는 우리가 해서는 안될 것들을 몇가지 설명해주고 서약서에 사인을 하게 했다. 대표적인 내용은 아래와 같다.
- 방송 중에 회사 소개를 하지 말 것
2. 방송 중에 회사의 물건을 들고 나오지 말 것
3. 방송 출연 후 6개월 간 중국 내 타사 방송 출연 금지
이를 본 남성 출연자들 거의 모두가 멘붕이 왔는데, 사실 이들 대부분(이라고 쓰고 전부라고 읽자)은 회사의 무언가를 홍보하기 위해 난징까지 왔던 것이다. 물론, 나도 포함.
누군가는 인삼 음료를 들고 와서 방송 중에 관객들에게 뿌릴 거라고 했고, 누군가는 화장품을 들고 왔다. 결국, 이들 모두 목적 달성에 실패했다. 우리가 소속된 회사 이름조차 가려져서 나왔기 때문이다. 그냥 서울 사는 00세 누구라고만 자막이 걸렸다.
2012년 10월. 녹화는 모두 종료됐고, 한 달 뒤에 방영됐다. 덕분에 당시 중국서 공부하고 있던 교환학생 후배들, 중국 지인들에게 수많은 전화를 받았더랬다. 심지어 션전쪽 방송사에서까지.
이렇게 특별한 경험은 끝….이 아니다. 방송의 숨겨진 수혜자들은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페이청우라오의 여성 출연자들에게 힌트가 있었다. 특별 출연자를 제외한 장기 출연자들 대부분은 온라인 쇼핑몰 운영을 하고 있었다. 이들 대부분은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의 얼굴과 이름을 알렸다.
본방 시청자수만 해도 6000만 명, 누적 시청자수는 회당 2억명 수준. 시청자들은 자연스럽게 검색을 통해 출연자를 검색했다. 듣기로는 여성 출연자들은 하루에 1만~2만통의 이메일을 받았다고들 했으니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던 것.
출연자 개인은 자신의 브랜드를 홍보하며, 이를 비즈니스로 연결했다. 국내에서 떠오르고 있는 MCN(Multi Channel Network) 크리에이터가 떠오르기도 하는 대목이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마케팅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지만, 개인의 영역에서는 본인의 얼굴과 이름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에게 노출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셈이다.
개인적으로 4년 전의 기억을 끄집어낸 이유는, 중국에 진출하고자 하는 한국 기업이 처한 상황과, 각 개인에게 주어진 기회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 관련 기사: MBC 예능PD들의 이유있는 사표 행렬(한국일보)
한국 스타 PD들, 콘텐츠 제작자, 혹은 비즈니스 플레이어 각 개인에게 중국 땅은 새로운 기회를 준다. 중국 기업은 한국 콘텐츠, 기술, 디자인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기에 키맨들을 적극 영입하고자 하고 있다.
가령, 중국 내 면세점 단지를 조성하고자 한다면, 국내 면세사업부의 핵심 인재들을 영입한다. 쌀집아저씨로 유명한 김영희 PD가 중국에서 회사를 세우고 중국 공영방송인 CCTV의 ‘빠오펑시아오저(폭풍효자)’를 제작하며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하지만 기업의 입장은 다르다. 중국 정부는 계속해서 법을 개정하며 외자 기업의 활동을 규제하고 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중국 공업정보화부와 국가신문출판광전총국은 외국계 합자, 또는 합영기업이 인터넷 출판 서비스에 종사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의 ‘인터넷출판서비스 관리 규정’을 3월 3일부터 시행한다고 밝혔다. – 中 외국기업 인터넷콘텐츠 규제…한류 타격 우려(연합뉴스)
중국에서 규제를 하는 목적은 경제적인 이유가 가장 우선된다. 외화 유출 방지, 내수 진작, 혹은 정치적인 안정을 위해 온라인 생태계를 계속해서 제어하고 있고, 그 연장선에 한국 기업들까지 영향을 받고 있는 형국이다.
그러나 개인을 규제하지는 않는다. 개인에게는 여전히 기회의 땅인 셈이다. 마치 페이청우라오에 장기 출연했던 여성 패널들이 떼돈을 벌었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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