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VR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는 방식은 PC/콘솔 기반과 모바일 기반 두가지 방식으로 나뉜다. 모바일 HMD는 움직임에 제약없이 콘텐츠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단 장점이 있으나, 낮은 하드웨어 사양 때문에 콘텐츠 퀄리티가 낮은 편이다. PC/콘솔 기반은 CPU, GPU 등의 성능이 좋을수록 고 퀄리티의 콘텐츠를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HMD는 PC/콘솔과 유선으로 연결해야 하기에 유저의 움직임이 제한적이다. 재미있게 게임하다가 선에 걸려 넘어지면…상상하기도 싫다.
이용자 움직임에 제약없이 고퀄리티의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클릭트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주는 ‘에어 VR(AirVR)’이라는 솔루션을 만들었다. PC에서만 가능했던 고사양의 콘텐츠를 모바일 HMD에서 실시간 스트리밍하는 기술이다. 이들은 어떻게 이 기술을 개발하게 됐을까. 그리고 특징은 무엇일까. 지난 3월 22일 상수역 클릭트 사무실에서 정덕영 대표(사진)를 만나서 그들이 AirVR을 개발한 이야기를 들었다.
디자인을 전공한 정덕영 대표는 20년 지기 개발자 친구를 15년 동안 설득해 2013년 ‘클릭트’를 설립했다. 처음 클릭트는 디지털 미디어 콘텐츠를 만드는 회사로 시작했다. 마북 현대 인재개발원 대형 미디어 월과 삼성 본사 딜라이이트 숍에 전시된 콘텐츠는 클릭트의 대표적인 프로젝트다.
회사가 설립될 당시 VR은 1990년대 반짝 등장했다가 사라진 오락실 게임에 불과했다. 지금과 비교하면 너무 조악했다. 하지만 10년 사이 기술은 빠르게 진화하고 있었고, 정 대표의 눈앞에도 새로운 파도가 밀려오고 있었다.
“가상현실은 누구나 생각해본 미래입니다. 대학시절 가상현실을 주제로 과제를 진행하면서 ‘이런게 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죠. 지인을 통해 오큘러스 개발자키트1(DK1)를 사용한 후, 미래를 변화시킬 큰 파도가 밀려오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 후 본격적으로 VR 기술에 투자하기 시작했죠.”
정 대표는 가상현실을 체험한 이후 VR 시장에 대한 가능성뿐만 아니라 한계도 깨달았다고 밝혔다. 그 원인은 바로 멀미였다.
“오큘러스 개발문서에서도 멀미를 유발하지 않는 콘텐츠를 만들라는 안내가 있습니다. 처음 5~10분은 신기했지만, 이후 멀미 때문에 하루종일 아무것도 못 했죠.(웃음) 처음에는 VR로 헤일로 같은 콘텐츠를 만들고 싶었는데, 그게 쉽지 않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됐죠”
VR과 멀미, 아직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VR에서 멀미가 발생하는 이유는 차멀미를 하는 이유와 유사하다. 몸은 가만히 앉아있지만, 차장 밖 풍경이 빠르게 움직이면서 멀미가 발생한다. 그 동안 경험하지 못한 환경 때문에 뇌에서 혼란이 일어나는 것이다. 오히려 더 나아가 새로운 감각(?)이 생기기도 한다.
“VR 멀미를 극복하려면 1~2년 동안은 줄곧 VR 콘텐츠를 사용해야 될 것 같아요. VR 콘텐츠를 오래 이용하다 보니 최근에는 멀미가 아니라 이상한 감각(?)이 생겼습니다.(웃음) 비행기를 탔는 데, 비행기의 움직임이 시각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하더군요. VR에서 몸은 가만히 있고 화면이 움직이는 형태와 정반대의 상황이었죠. 나중에 이 현상이 학문적으로 정의될거 같아요.(웃음)”
게임엔진 기반의 VR 콘텐츠를 제작할 경우 컴퓨터의 연산능력이 중요하다. CG(Computer Graphic)로 사물을 표현할 때 ‘폴리곤’이 사용되는 데, 폴리곤 수가 많을수록 세밀한 표현이 가능하지만, 그만큼 연산처리 능력이 가능한 고사양의 기기가 필요하다.
폴리곤: 주로 3D 컴퓨터 그래픽에서 면(점, 선, 면 할때의 그 면)의 조합으로 물체를 표현할 때의 각 요소를 이렇게 부른다. 일단 기본적으로 ‘폴리곤’이라고 부르긴 하지만, 실제로 화면에 렌더링되는 요소는 대부분 삼각형이다 (나무위키)
“일반 노트북에서도 고퀄리티의 VR 콘텐츠를 실행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고사양의 PC를 사용하면 500~600만 폴리곤까지 가능한데, 모바일에서는 5만 폴리곤까지가 한계입니다. 이 때문에 PC와 모바일 VR 콘텐츠가 갖는 차이가 크죠.”
정 대표는 미디어 아티스트 정연두 작가의 개인전에서 VR을 활용한 ‘Blind Perspective’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했다. 가상현실 속 아름다운 숲속인 줄 알았는데, 현실은 바다 쓰레기로 가득찬 공간이었다는 내용의 전시다. 당시 오큘러스 DK2를 사용해 가상현실을 구현했는데, 이 과정에서 정대표는 VR의 무선화가 꼭 필요하다고 느꼈다고 한다.
“당시 참관객이 가상현실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HMD와 연결된 4kg 가방을 메야했습니다. 생각보다 무겁죠. GPU 때문에 베터리도 한시간마다 교체해야했고, 노트북 발열도 심했죠. 총체적으로 콘텐츠를 운영하는데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그러한 경험이 있다면 누구나 생각해 볼만한 문제였죠. 운이 좋았어요. 또 무선화를 진행할 기술력도 있어서 남들보다 먼저 VR에서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AirVR을 개발하게 됐습니다.”
AirVR 개발에 대해 내부에서도 불가능하지 않느냐는 의견이 많았다. 이용자의 움직임에 따른 영상 처리 속도(Motion to photon latency)를 개선시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이용자 움직임에 따른 영상 처리 속도가 늦어질 경우 이용자는 바로 멀미와 어지러움증을 느낀다. 영상의 반응 속도가 20ms(millisecond) 이하일 때 이용자는 위화감 없이 가상현실을 이용할 수 있다.
“PC기반의 VR 콘텐츠가 무선으로 지원되면 영상 처리 속도가 100ms가 되어 이용자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면 영상이 늘어지게 됩니다. AirVR을 개발할 당시에는 네트워크로 20ms의 반응속도를 낼 수 있을거라고 생각할 수 없었지만 결국 해냈습니다. 반드시 필요한 기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개발을 계속할 수 있었죠. 지금은 ‘Asynchronous timewarp (ATW)‘기술을 네트워크상에서 행해지도록 해 20ms의 반응속도를 낼 수 있게 됐습니다.”
AIR VR은 와이파이 환경에서 콘텐츠를 압축해 모바일로 전송한다. 화질적으로는 오큘러스 리프트, 바이브와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 정 대표의 의견이다. AIR VR은 오는 4월부터 전세계 오픈베타를 시작할 예정이다. 정 대표는 앞으로 기어VR 외 다양한 모바일 기기에서도 AIR VR을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가상현실의 등장은 단순히 3D 볼거리가 늘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콘텐츠 소비환경, 기술의 진보, 비즈니스 등 앞으로 우리 주변 생활을 다양하게 변화할 새로운 물결인 셈이다. VR기기를 하도 쓰고 돌아다니다보니 비행기를 탄 상태에서 실내의 움직임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그의 멘트가 잊혀지지 않는다. 새로운 감각을 깨우는 VR의 시대가 거센 파도처럼 몰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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