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패드 프로 9.7인치

오늘 새벽(3월 22일) 애플이 신제품 발표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4인치 아이폰SE, 아이패드 프로 9.7인치, 가격 인하된 애플워치와 액세서리 등이 발표됐습니다.

이를 보고 모두가 입을 모아 ‘혁신은 없었다’고 평가했습니다. 혁신이라는 키워드는 잡스 없는 애플에 늘 쫓아오는 단어입니다만, 이번에는 더욱 뼈아픈 평가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냐?

팀쿡 체제의 애플에서도 무언가 새로운 것들이 나왔습니다. 애플페이, 애플뮤직, 애플워치, 더 큰 화면의 아이폰 등의 킬러콘텐츠들이 매 발표 때 쫓아왔습니다. 그래서 ‘혁신이 없다’는 평가에 대해 나름의 할 말은 있었죠. 하지만 이번 발표는 다릅니다. 뭔가 새로운 게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인지 1시간여 동안 진행된 행사에 대해에 다소 허무하다는 반응까지 나왔습니다.

이를 어찌 봐야할까요. 기사의 내용처럼 혁신적인 게 보이진 않습니다만, 생각하고 넘어갈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전환하는 애플의 생태계’랄까요. 구체적인 내용을 논하기에 앞서 애플의 제품 발표 행사를 먼저 짚을 필요가 있습니다.

애플은 매년 세 차례의 행사를 합니다. 상반기(1~3월) 행사에서는 PC, 중반기(5~6월)에는 애플 개발자 행사(WWDC)에서의 소프트웨어, 하반기(9~10월)에는 아이폰, 패드 등의 모바일 기기를 발표해왔습니다. 예외는 있습니다. 아이폰 첫 시리즈는 2007년 1월에 발표됐고, 2015년 3월에는 애플워치의 본모습이 공개되기도 했죠.

여튼 애플 행사 중 가장 하이라이트는 하반기에 몰려 있었습니다. 이 시기는 마침 미국 최대의 할인 행사인 블랙프라이데이와 겹치기도 해서 더욱 주목을 받아왔죠. 상반기 행사는 맥북, 맥북에어, 맥북프로, 아이맥 등의 PC 라인이 발표됐기에 아이폰 발표만큼의 ‘혁신’을 논하는 행사는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허나 팀쿡 체제의 애플은 2015년 상반기에 하반기 만큼의 킬러콘텐츠를 쏟아붓기 시작합니다. ‘물 들어왔을 때 노젓는다’고 아이폰6, 6플러스에 애플페이, 워치를 토해내듯 쏟아냈던 해였죠.

사람들의 눈길을 빼앗을 만한 아이템들이 상반기, 하반기를 가리지 않고 마구 발표되니, 사람들은 3월 행사에도 무언가를 기대하게 됩니다.

하지만 웬 걸. 이번에 발표된 제품들은 실망감을 일으키기에 충분합니다.

  • 4인치 아이폰 SE
  • 9.7인치 아이패드 프로
  • 케어키트
  • 애플워치 인하와 새로운 밴드

새롭게 등장한 것이 없는 것은 물론, 업그레이드라기보단 다운그레이드에 가까운 내용들이 1시간 동안 ‘지루하게’ 진행됐습니다.

혹자는 이에 대해 9월 프리미엄 발표를 위한 한발 후퇴라고 평가하기도 하는데요. 그렇게 결론짓기에 마음에 걸리는 것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바로 아이패드 프로 9.7인치입니다.

아이패드 시리즈의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는 프로 버전에는 스마트 키보드와 애플펜슬이 따라붙습니다. 2015년 9월 행사 때 첫 선을 보였습니다.

원래 아이패드 시리즈는 상반기에 발표돼왔습니다. 아이패드1과 2, 그리고 3세대(뉴 아이패드)는 각각 2010년과 2011년, 2012년 상반기에 공개됐던 바 있죠. 하지만 2012년 하반기에 출시한 아이패드4세대부터는 미니 시리즈와 함께 하반기에 발표됩니다. 이러한 흐름은 작년까지 계속됐습니다.

애플의 아이패드 포지션에 대한 변화가 내포돼 있었던 건 아닐까요.

잡스는 소파에 앉아 아이패드1을 발표했습니다. 책상이 있는 곳에서 이용하는 랩탑과는 달리 소파에 앉거나 누워서도 PC를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을 상징한 장치였습니다.

이 시기만 하더라도 ‘태블릿 때문에 PC 점유율이 곤두박질 치고 있다‘는 식의 분석이 이곳저곳에서 쏟아져 나왔습니다. 마치 태블릿이 기존 PC 시장을 점령할 것만 같았죠.

하지만 콘텐츠를 소비하는 측면에서 랩탑과 데스크탑을 대체할 수 있을지 몰라도 생산성 측면에서는 한계가 분명했습니다. 아마도 2012년 하반기에 출시된 아이패드 4세대와 미니는 태블릿 PC의 한계를 인정하고 모바일 기기에 포함시켰다는 점을 상징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판매량도 마찬가지. 2013년초까지 최고점을 찍은 아이패드는 서서히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014년 기록을 보면 출하량 마저 18% 감소하며 6800만대에 그칩니다.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2015년도에는 전년보다 22% 감소한 4900만 대에 이릅니다.

(이에 대해 누군가는 ‘애플이 아이패드를 너무 튼튼하게 만들고 사후 지원을 잘해 사용 기간이 늘어나고 있다’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믿거나 말거나~)

이러한 고민의 결과물이 아이패드 프로라고 생각합니다. 2015년 9월 신제품 발표에서 아이패드 프로를 보자마자 아래와 같이 블로그에 정리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애플은 아이패드 프로를 한 번 시도해보고 버리는 제품으로 공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미래의 ‘태블릿형 랩톱’으로 자리잡게 할 목적이 분명히 담겨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패드의 OS는 정체된 시장의 OS X가 아니라 새로운 시장을 열어주는 iOS여야 하지 않았을까. 이미 iOS9은 화면 나누기와 같은 멀티태스킹이 된다. 호불호가 분명히 갈리겠지만, 아이패드 프로는 애플TV를 포함해 모든 OS의 라인업이 모바일 기반으로 재조정되고 있는 격변기에 등장한 애플의 킬링콘텐츠라고 생각한다. 이제 모든 것은 모바일을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다. 진정한 모바일 시대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 아이패드 프로는 왜 iOS를?(브런치) 

그리고 2016년 3월 22일 아이패드 프로 9.7인치가 등장합니다. 12.9인치 기기와 마찬가지로 스마트 키보드가 장착됐고, 애플펜슬도 쓸 수 있습니다. 가격은 12.9인치보다 200달러 저렴한 599달러부터입니다.

아이패드 프로 9.7인치의 3월 등장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아이패드 프로 라인이 9.7인치와 12.9인치로 완성됐으며, 랩탑을 대체할 라인으로 아이패드 프로 시리즈를 배치했다는 것이죠.

애플의 라인업은 대체로 ‘쌍’으로 완성되곤 합니다.

  • 아이폰: 4.7인치와 5.5인치
  • 애플워치: 38mm와 42mm
  • 아이패드: 7.9인치(미니)와 9.7인치(에어)
  • 파워북: 15인치와 17인치
  • 맥북에어: 11인치와 13인치
  • 맥북프로: 13인치와 15인치
  • 아이맥: 21.5인치와 27인치

과도기에 맥북 15인치, 아이맥 20인치, 아이폰 3.5인치 및 4인치 등이 있었습니다. 맥북이 등장하고 파워북이 사라졌듯 아이패드 에어와 미니 시리즈 역시 사라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저는 ‘이런 수준의 제품을 굳이 발표했을까?’라는 평가보다는 오히려 맥북 시리즈 발표가 3월 행사에 빠졌다는 점에 관심이 갑니다. 결국, 애플은 스마트폰 위치에 아이폰 4.7인치, 5.5인치의 메인 모델과 4인치의 보급형 모델, 랩탑에는 맥북 프로 13인치와 15인치, 그리고 아이패드 프로 9.7인치와 12.9인치, 데스크탑에 아이맥 21.5인치와 27인치를 배치한 게 아닐까요.

아이폰과 같이 하나하나의 퍼즐 조각이 빛났던 시기가 잡스의 애플이라면, 팀쿡의 애플은 그간 모은 퍼즐 조각을 완성해 하나의 그림을 완성시키는 시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모바일-랩탑-데스크탑-그리고 웨어러블까지를 아우르는 생태계를 말입니다. ‘혁신’의 의미를 다르게 해석할 여지가 아직은 남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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