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분야의 베테랑 도안구 테크수다 기자와 프로 바둑기사 백대현 9단이 해설위원으로 같은 방송에 올라서는 재미난 일도 벌어졌다.

바둑 방송에 IT 기자들이 나오다니!

지난 주 3월 9일부터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 호텔에서 진행되고 있는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알파고VS이세돌 9단의 5번기 대국에서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IT 전문기자들이 대거 바둑 방송에 출연했다는 점입니다.

매경닷컴의 김용영 기자, 테크수다의 도안구 기자, KBS의 차정인 기자 등. 이 분야 종사자라면 누구나 알법한 기자들이 (안어울리게?) 정장을 입고 프로 바둑기사들과 함께 알파고와 이세돌 대국을 해설했습니다.

IT 전문기자들의 바둑 방송 출연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바둑이라는 인간의 영역에 인공지능이 들어오면서, IT적인 관점으로 해석을 해줄 누군가가 필요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바둑은 전통적으로 인간의 지능 영역에 속한 스포츠였습니다. 프로 바둑기사는 50수를 내다보며 수를 둔다고 하는데요. 이를 알기 쉽게 전달하는 것이 해설을 맡은 이들의 역할이었습니다.

하지만 알파고가 등장하면서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바둑의 패러다임이 바뀌게 됩니다. 이를 IT 관점으로 설명해줄 누군가가 필요하게 된 것이죠.

이는 바둑에만 해당되는 변화가 아닙니다.

가장 비근한 예로는 지난 2014년부터 혜성처럼 등장한 O2O(Online to Offline)를 들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형태의 서비스는 모바일(온라인)에 있는 이용자를 오프라인 매장으로 연결시켜주는 것이 가장 기본입니다.

모바일을 주로 활용하는 2030세대에게 O2O란 개념은 친숙합니다. 스마트폰 앱을 열고 터치를 하는 사용자 경험(UX)에 익숙하기 때문이죠. 난관은 제휴한 매장 주인들을 설득하는 데에 있었습니다.

택시앱의 경우에는 택시기사, 음식 배달앱은 식당 점주, 뷰티 서비스는 미용실이나 네일아트 점주, 숙박 서비스는 호텔이나 모텔의 점주들에게 모바일 기반의 서비스를 이식해야 했죠. 주로 4050세대로 구성된 점주들이 모바일 앱을 이용해 고객을 맞이하고, 또 그 앱을 통해 서비스를 홍보하고, 예약/결제까지 해야 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카카오의 고급택시 서비스 ‘카카오블랙’

결국 O2O 서비스와 제휴하는 파트너사들은 모바일, 그리고 기술에 대해 적응해야 하는 과제가 따릅니다. 선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 과제인 셈입니다.

스타트업의 조직 역시 이러한 변화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과거엔 마케팅이면 마케팅, 영업이면 영업만 잘 하면 됐습니다. 그러나 모든 서비스가 모바일로 통합되면서, 각 직무 역시 서비스를 개발하는 직군과 얼마나 잘 소통하느냐에 따라 서비스의 품질이 결정납니다. 지난 번 인터뷰했던 데일리호텔의 신인식 대표는 아래와 같이 설명했습니다.

“프로그래밍이 전사 업무의 기반이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영업 마케팅과 별개의 조직으로 되면 경쟁력을 갖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데일리호텔은 개발팀과 비개발팀이 분리돼 있다기보다는 개발 조직에 비개발팀원들이 붙어 있는 구조입니다. 저는 원팀스피릿(One Team Spirit)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개발자에게는 비개발자들에 대한, 비개발자는 개발자에 대한 이해와 소통능력을 가장 중요시하고 있습니다.” – 신인식 데일리호텔 대표 “개발-비개발 아우르는 원팀스피릿 문화가 우리의 저력”

서비스 중심으로 조직을 개편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영업마케팅 부서에서 요구하는 것과 개발을 통해 구현할 수 있는 것은 별개의 일이라 서로 대화가 되지 않는다면 서비스 개선이라든지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 때 방향성이 엉킬 수밖에 없다는 것인데요. 이 회사는 사내 메신저인 슬랙에서 개발팀 그룹을 오픈해 다른 부서에서도 직접 개발자에게 요청하고, 피드백을 받을 수 있게 하면서 서비스를 개선하고 있습니다.

마케팅, 영업팀원들이 개발팀 슬랙에서 자유롭게 의견을 주고받는 장면. 제공:데일리호텔

사실 이러한 방식의 조직 운영은 IT나 게임업계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이용자와 늘 소통하며 서비스를 업데이트하는 것이 경쟁력이기 때문이죠. 이유가 뭘까요. 김정 전 NHN 넥스트 교수가 작년 인터뷰 단락을 인용했습니다.

“서비스 개발자와 이용자가 직접 커뮤니케이션하는 시대가 열렸습니다. 스마트폰, 그리고 앱스토어가 등장하기 전에는 이 둘이 직접 만날 일이 없었습니다. 서비스 대부분이 기업용이었죠. 그래서 PC 시대에는 이용자를 모으는 것도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서비스 개발자와 이용자가 직접 소통하면서 서비스가 발전해가고 있죠. 이유는 모빌리티 때문입니다.” – 김정 교수에게 넥스트를 떠나 레진에 가는 이유를 물었다

서비스 개선이 곧 이용자 확보로 직결되던 인터넷 시대 서비스의 특징이 이제는 오프라인의 각 서비스로 확장됐습니다. 결국 각 직군에서 IT를 빼놓을 수 없게 됐죠. IT를 아는 마케터, 디자이너, 혹은 마케팅이나 디자인을 아는 개발자가 필요한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이 주는 교훈은 참 많습니다. 인공지능의 발전, 분산 컴퓨팅 기술의 힘, 데이터 분석의 가치 등. 하지만 사람의 역할 또한 바뀌고 있다는 것 역시 이번 대국에서 엿볼 수 있는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오후 1시부터 알파고와 이세돌의 5국이 진행됩니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위협하고, 대체하게 될 것이라는 위협을 논하기에 앞서 이러한 격변기에 사람과 사람, 사람과 기술에 대한 패러다임 변화에 어떻게 대처할지를 모색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기술을 아는 마케터’ ‘기술을 아는 디자이너’ 그리고 ‘마케팅과 디자인을 아는 개발자’. 더이상 덕목이 아니라 필수인 시대가 눈앞에 다가왔습니다. 생존을 위해 변화해야 하는 건 기업 뿐만이 아니라 개인에게도 해당되는 시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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