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켜본 이들은 하나같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3월 9일 구글의 인공지능 알파고가 바둑기사 이세돌 9단와의 첫 대국에서 승리했다. 이 소식은 인터넷을 타고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비 IT인, IT인, 인공지능 전공자를 망라하고 이번 패배에 대한 충격이 큰 듯 하다.
마음이 무거운 이유에는 기계의 발전을 향한 무력감이 있을 것이다. 혹자는 ‘불쾌한 골짜기’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한다.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는 인간이 로봇이나 인간이 아닌 것들에 대해 느끼는 감정에 관련된 로보틱스 이론이다. 이것은 1970년 일본의 로보티시스트 모리 마사히로에 의해 소개되었지만, 실은 에른스트 옌치의 1906년 논문On the Psychology of the Uncanny에서 소개된 ‘uncanny’라는 개념에 매우 의존하고 있다. 옌치의 개념은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1919년 논문 The Uncanny (Das Unheimliche)에서 더욱 정교하게 발전되었다. 이러한 문제는 폴라 익스프레스와 같은 3D 컴퓨터 애니메이션에서도 똑같이 일어난다. – 위키피디아
그럴 법도 한 게 기술이 이미 우리의 일상의 많은 부분을 대체하고 있다. 파이낸셜뉴스가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로봇 저널리즘을 본격 가동하고, 매일 시황 기사를 정리한다. 페이스북의 얼굴인식 정확도는 97.25%로 인간의 평균 눈 수준(97.53%)을 위협한다.
우리의 마음 속에 있는 불안감을 제대로 자극한 것이 오늘의 대국이라고 생각한다. 인류 최강의 바둑기사로 꼽히는 이세돌 9단이 첫 판에서 진 것 자체에서 인간의 무력함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몬테 카를로 탐색 트리와 심층 신경망을 결합한 시스템 같은 전문 용어로 꾸민 것보다도 한 번의 패배가 갖는 의미는 이만큼 크다.
사실 구글은 인공지능의 우세함을 홍보하며 인류를 위협하기 위해 오늘의 이벤트를 한 것은 아니다. 당장 세계정복을 할 것도 아닌데 그럴 이유가 없지 않은가.
인공지능(AI) 하면 떠오르는 키워드는 IBM의 ‘왓슨’이었다. 특히 헬스케어 영역에서 왓슨이 가진 영향력은 절대적이었다. 지난 해 IBM 뉴스룸에 게재된 간단한 소개를 보자.
IBM은 애플, 존슨앤존슨 및 메드트로닉과 협력해 개별 의료, 의료 및 신체 단련 기기 등에서 수집한 정보를 활용하는 새로운 의료 기반 서비스(오퍼링)를 개발하고 있다. 이를 통해 보다 나은 통찰력, 실시간 피드백 및 권고 사항들을 도출함으로써 개별 의료 및 및 건강은 물론, 급성 및 만성 질환 치료에 이르는 모든 서비스를 향상시키게 될 것이다. 이들 관계는 배타적이지 않으며, IBM은 보다 많은 기업들이 왓슨 헬스 클라우드 플랫폼을 이용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 IBM, 다양한 기업 파트너십 체결 – 왓슨 및 개방형 클라우드로 개별 의료 서비스 혁신 주도
업계 관계자들이 인공지능을 칭송하며 꺼내는 키워드는 구글이 아니라 IBM이었으며, 왓슨이었다. MS와 애플, 페이스북이 언급되기도 하지만 최강자는 IBM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정작 IBM 측에서도 구글이나 페이스북이 갖고 있는 방대한 데이터와 이를 수집, 분석하는 기술에 대해 인정하는 분위기가 있음에도 말이다.
작년 이맘 때 간담회에서 만난 브렌다 L. 디트리히 IBM 왓슨그룹 부사장에게 ‘페이스북, 구글 같은 기업이 방대한 데이터 분석을 바탕으로 IBM을 뛰어넘는 것이 아닌가’라고 질문했더니 아래와 같은 답을 했다.
“구글과 페이스북은 전세계 사람들의 반응을 바탕으로 한 비정형 데이터를 많이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IBM은 정형 데이터를 많이 갖고 있죠. 저희는 이를 바탕으로 예측한 것과 실제 발생한 것의 상관관계를 밝히고자 합니다.”
구글이나 페이스북이 만날 빅데이터를 강조하고, 이 기술이 왓슨보다 뛰어난 점이 있다고 강조할지라도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
이를 한 방에 뒤집은 것이 오늘의 사건이다. 지디넷코리아의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은 아래와 같이 분석했다.
구글 입장에선 전 세계인을 상대로 5시간 동안 인공지능 기술을 프레젠테이션하는 기회를 얻은 셈이다. 그것도 무려 다섯 차례나. (중략) 이번 대결은 이렇게 축적한 기술력을 만천하에 공개하는 무대인 셈이다. 사실상 무한대에 가깝다는 ‘경우의 수’ 중에서 최적의 수를 선택하는 능력. 구글 알파고는 이세돌 9단과의 대결에서 바로 이 능력을 선보일 전망이다. 승패와 상관없이 이번 이벤트의 진정한 승자는 구글이란 평가가 나오는 것은 이런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 알파고 vs 이세돌…구글은 이미 승리했다(지디넷코리아)
알파고의 위력은 5시간 동안 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그것도 유튜브와 각종 미디어, 페이스북을 통해 홍보됐다. 심지어 이는 복잡한 알고리즘으로 설명되지 않았다. 이세돌이라는 유명인을 주연으로 한 편의 역전 드라마로 이해하기 쉽게 제작됐다.
이제 사람들은 인공지능 하면 IBM 왓슨 대신 구글의 알파고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인류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영화 ‘아이, 로봇’처럼 로봇이 사람을 위협하는 세상이 올까. 영화 ‘Her’처럼 사람과 인공지능이 사랑에 빠지게 되는 세상이 열릴까. 사람의 일자리는 다 없어지게 될 것인가. 아직은 희미하기만 하다.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기술은 경쟁을 통해 발전한다는 것이다. 구글, MS, IBM의 머신러닝, 인공지능 경쟁도 이제 막을 올린 셈이다. 페이스북, 바이두 등도 호시탐탐 엿보고 있다. 이들은 인간을 대체할 기술을 만들 목적으로 경쟁하지는 않는다. 다만, 언젠가는 그 발전한 기술이 인간을 향할 것이다.
참, 그리고 인공지능, 머신러닝을 키워드로 홍보하는 곳들도 국내에서 많이 보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