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시장 분석 관련 글을 보면 ‘장님 코끼리 만지는 격’인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에 두 가지 이유에 기인합니다. 중국 자체의 거대함, 그리고 불투명한 정보 및 지표를 들 수 있습니다. 특히, 중국 시장을 진단하는 조사 기관의 공신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간극은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각 기관마다 발표하는 분석, 진단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연유로 인해 현지 실무자들은 ‘중국 전문가’라는 건 없단 말을 종종 합니다. 모비데이즈에서 중국 사업 총괄을 맡고 있는 유재령 매니저도 아래와 같이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중국 전역에 대한 전문가는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역에 따른 문화, 기후, 식생 모든 게 다르기 때문이죠. 중국 사람도 모든 지역을 알지 못합니다. 중국 대륙은 화동, 화서, 화남, 화북 네 구역으로 쪼개지고, 이에 따라 문화와 습관이 완전히 다릅니다. 저 같은 경우는 북경에서만 5년 6개월을 보내면서 화북 지역은 이해하지만 나머지 지역은 잘 모릅니다.” |
지금부터 쓰는 글 역시 거대한 중국에 대해 일부분의 진단일 수 있습니다. 다만, 최근 트렌드의 변화에서 기회의 지점을 설명할 필요는 있겠죠. 중국 스타트업 생태계가 급변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현상이니까요. 두 가지 측면을 중심으로 급변하는 정세를 정리했습니다.
1. 서남 지역으로 이동하는 스타트업 투자 열기
‘중국 진출’을 이야기할 때면 꼭 언급되는 도시가 세군데 쯤 있습니다. 정치, 경제의 중심지 베이징, 국제도시 상하이, 하드웨어 중심 도시 션전 등 제1 도시들이 대표적입니다. 한국 스타트업의 중국 진출 관련 데모데이나 콘퍼런스 등이 이 세 도시에서 열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죠.
하지만 제1 도시 쪽 엑셀러레이터나 창업가들에게 이야기를 들어보면 데모데이와 콘퍼런스가 투자로 직결되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중국 벤처캐피탈(VC)의 주요 관심사는 중국 스타트업들인데, 이들의 경쟁마저 치열한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지역에서 절대 투자를 받을 수 없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좀 더 기회가 주어지는 곳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죠.
대표적인 곳이 쓰촨성의 청두와 총칭입니다. 플래텀 기사에 청두 지역 산업단지 조성에 대한 일부 내용이 언급돼 있습니다.
“리커창 중국 총리는 ‘인터넷 플러스’ 정책을 내세우며 중국 창업 부흥의 핵심적 역할을 한 인물이다. 그런 그가 정상회담에서 반복해 언급한 사안이고 국가 간 합의도 이루어진만큼, 양측 정부도 실질적인 계획 추진을 위해 TF 팀을 결성하는 등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듯 했다. 리커창 총리의 발언 이후 중국 청두시 측에서는 오는 3월 개소하는 약 7만7천 평의 창업혁신단지인 롱창광장(蓉创广场, Chengdu Start-up Hub) 내에 한국 기업이 입주할 수 있는 공간을 별도로 마련해뒀다. 총 8개의 건물 중 2, 3번 건물 전체와 8번 건물의 일부를 중한혁신단지로 선정한 것이다. 해당건물 외벽에는 한글로 ‘중한혁신창업보육파크’라는 네온사인 간판도 큼지막하게 걸려있다.” – 7만 제곱미터 규모 ‘중한혁신창업보육파크’, 중국은 준비됐다. 응답하라 한국!(플래텀) |
중국 서남 지역에 대한 정부의 투자가 이어지면서 청두나 총칭 지역에서는 투자금이 넘쳐나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인지도 때문인지 스타트업 입주가 많지 않습니다. 베이징이나 상하이 등 주요 도시와 거리도 멀기에 망설일 수밖에 없는데요.
성 정부 차원에서 돈을 쏟아넣고 있는 지금이 적기라는 진단이 많습니다. 국내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벤처 기업들이 청두나 총칭에서 성 정부와 매칭해 펀딩을 받는 등 성과를 거두고 있죠.
2. 中 스타트업과의 연맹
중국에서 데모데이나 콘퍼런스는 투자나 진출의 통로가 아니라는 내용을 골자로 한 글을 최근 작성한 적이 있습니다.
“데모데이에 참여하는 목적은 투자, 혹은 시장 확장에 있습니다. 하지만 중국에서 그러한 목표를 피칭 한 번에 달성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피칭이 의미가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피칭하는 스타트업이 발표한 내용이 과연 중국에서 비즈니스적으로 어떠한 가치가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없다면 ‘그들’은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 [유재석의 비틀어보기] 당신이 아는 중국이 아니다(下) 비즈니스 |
이에 따라 한국 스타트업의 데모데이를 주관하는 현지 기관들에 대한 많은 불만들이 발생하고 있다는 후문도 들립니다.
그런데 한 번 더 생각해보면 데모데이 한 번으로 투자를 받지 못하는 게 당연한 겁니다. 중국 VC가 한국 스타트업의 한 번 발표를 본 뒤 투자를 결정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입니다. 국내 VC들도 그렇게 쉽게 투자를 결정하지 않죠.
중국 진출을 준비하며 한국에서 스타트업을 만든 한 지인이 “최근 중국 제1 도시 탐방 행사를 참여한 뒤 새로운 활로를 찾았다”고 말해준 내용이 떠오릅니다.
지인은 데모데이 및 현지 중국 VC과 매칭해준다는 내용에 참여를 했는데, 행사장이 텅텅 비었다고 합니다. 오히려 남은 자유 시간에 기회를 찾았습니다. 창업 카페에서 서성이던 중 중국 스타트업 관계자를 만났는데, 우연히도 같은 영역에서 사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같은 카테고리의 스타트업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빠르게 친구가 됐는데, 다음 날 곧바로 이 중국인이 속한 회사와 해당 분야의 학교 탐방까지 같이 시켜줬다고 합니다.
중국 스타트업과 관계를 만들고 협업한 뒤, 중국 VC들에 투자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관련 업계의 중론입니다. ‘검증 받았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죠.
제일 처음 언급했듯, 중국은 대국입니다. 한 마디로 ‘중국의 생태계는 어떠하니 이러이러한 방법을 써야 한다’는 건 어불성설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중국 시장에 대한 환상을 내려놓고, 그들의 문화와 방식을 이해한 다음에 시장에 접근해야 하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일 것입니다.
중국의 스타트업들 수준은 이미 우리나라를 다 따라잡았거나, 심지어는 큰 격차로 앞서 있기도 합니다. ‘우리 정도면 베이징, 상하이, 선전(심천)에 진출해야지’, 혹은 ‘우리의 아이템 정도면 중국 VC 투자는 당연하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자신감과 기대감은 ‘독’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서비스의 진가를 알아줄 중국 다른 도시들과, 중국 스타트업에 손을 내미는 등, 보다 적극적인 태도가 필요합니다. 관련 시장과 파트너를 이해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비즈니스의 가장 기본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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