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중국판 블랙프라이데이인 ‘광군제’에 뜬금없이 노출된 한국 기업이 있었다. 페이먼트&로지스틱스 전문 업체인 아이씨비(ICB)란 기업이다.
아이씨비는 현재 티몰 글로벌에 입점한 롯데닷컴·LG생활건강·이마트·위메프·G마켓·더제이미 등 57개 업체와 계약을 맺고 배송을 대행하고 있다. 전체 티몰 글로벌 입점 한국 업체(64개) 물건의 약 90%가 아이씨비를 통해 고객에게 전달되는 셈이다. –한국업체, 광군제 판매실적 미국·일본 이어 3위(연합뉴스)
아이씨비는 이번 광군제에서 알리바바의 글로벌 이커머스 플랫폼 ‘티몰’에 입점한 한국 쇼핑몰의 90%를 담당했다는 소식과 함께 주목을 받았다. 2013년 설립된 이 회사는 알리페이의 한국 공식파트너로도 알려져 있다.
올해 4월 마윈 알리바바그룹 창업주가 방한한 뒤 “한국 IT 기업과 협력할 것”이라고 말한 이후 개인적으로 아이씨비란 기업을 알게됐지만, 관련 자료가 전무해 취재로 연결하지 못했던 기억도 있다. 우연한 기회로 인연이 돼 지난 11월 몇차례 만남을 가졌고, 지난 12월 23일 인터뷰의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서울 마포구 상수동 아이씨비 사무실에서 이한용 대표(사진)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앞서 언급했듯 아이씨비는 설립된 지 2년 된 스타트업이다. 하지만 알리바바의 인연은 8년 전부터 시작됐다. 이한용 대표와의 개인적인 인연이었다.
“저는 2000년 부터 석유와 수산관련 B2B 전자상거래 회사에 몸담고 있었어요. 당시 싱가포르에서 관련 현물 시장이 열렸는데요. 마치 외환 딜러와 같은 역할을 그곳에서 했습니다. 그런데 거래와 결제의 시간차가 상당히 컸습니다. 거래는 초단위였는데, 최종 결제까지는 몇달이 걸렸죠. 기업들의 불편함이 클 수밖에요. 그래서 어느날 ‘거래와 결제를 묶을 수는 없는 걸까?’라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다 눈에 띈 곳이 B2B 플랫폼인 알리바바닷컴이었습니다. 그리고 2007년엔 현재 저와 같이 일하고 있는 김동철 부사장을 B2B 전자상거래 업체에서 만나게 됐죠.”
당시엔 회사원이었던 이한용 대표와 김동철 부사장은 알리바바닷컴에서 석유, 수산물 등의 제품이 거래되고, 동시에 결제가 붙는 그림을 그린 뒤 알리바바그룹에 이메일을 보냈다. 생각보다 답이 빨랐다. 알리페이의 담당자를 연결해주겠다는 것이었다.
“그 해 추석에 항저우 알리페이 사무실로 와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중국에서 추석(中秋节)은 휴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당황했지만, 급히 준비를 해 찾아갔죠. 알리페이는 그다지 큰 규모가 아니었습니다. 직원은 300여명에 불과했죠. 유니온페이 출신들이 많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귀국한 후에도 여러차례 이메일을 주고받았습니다. 제 회사는 기억 못해도 영문이름인 제이슨은 기억해줬죠. 그때 만났던 직원과는 지금까지도 만나고 있습니다. 이제는 임원이 됐죠.”
항저우에서 만났던 알리페이 담당자는 “내가 생각했던 것과 비슷한 모델이었다”고 말해줬다고 한다. 그랬음에도 이 대표가 제안한 시스템은 구현되지 못했다. 알리페이의 관심사는 B2C에 있었기 때문이다.
한 번 만난 것으로 비즈니스 관계를 얻지는 못했다. 중국에서 말하는 꽌시(关系)는 쉽게 형성되는 것이 아니었다. 당시 이 대표가 속했던 기업 규모도 알리바바가 대응하기엔 작은 기업에 불과했다. 저들의 마음을 열기 위해서는 무언가 승부수가 필요했다. 기회는 우연히 찾아왔다.
“알리페이 쪽의 마음을 열게 하기 위해선 무언가 성의를 보여야겠다는 생각을 계속 했습니다. 그때 베이징에서 알리페이 주관 행사를 한단 소식을 듣고 바로 비행기표를 끊었습니다. 약속도 안잡은 채로 김 부사장과 함께 행사가 열리는 호텔에 렌트한 차를 끌고 갔죠. 당시 행사 담당자인 알리페이 직원을 납치하듯 차에 태운 뒤 ‘1시간만 내어 달라’고 말했고, 그와 차를 마시면서 제가 갖고 있는 사업 비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두 사람이 그간 보낸 수많은 이메일과 두 차례 방문은 알리페이의 마음을 열었다. 베이징에서 만났던 직원은 “두 분의 회사는 모르겠지만, 두 사람이 하는 사업은 믿겠다”고 그 자리에서 말했다. 그렇게 알리페이와의 인연이 시작됐다.
하지만 이후 사업적으로 파트너를 맺을 기회가 좀처럼 생기지 않았다. 2년 뒤인 2009년엔 타오바오 한국관 중개를 총괄하면서 국내 기업들과 협의를 했는데, 결과적으로 잘 되지 않아 접을 수밖에 없던 상황에 에이컴메이트를 연결지어주는 것에 그쳤다.
“알리페이 담당자들과는 주기적으로 만나고 식사도 해왔습니다. 먼저 사업 제안을 받기도 했지만, 실행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죠. 하지만 관계라는 게 한 번 열리니 사업적으로 연결되지 않더라도 계속 연결이 되더군요. 그게 중국과 우리나라의 큰 차이점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진짜 ‘펑요(朋友)’가 된 것이죠.”
알리페이와의 본격적인 비즈니스는 이한용 대표와 김동철 부대표가 2013년 6월 아이씨비를 창업한 다음부터 열렸다. 알리페이 쪽에서 이례적으로 알리페이 로고를 아이씨비 명함에 부착할 수 있게끔 허용하고, 본격적인 사업 제안도 한 것이다.
“2013년 김 부대표와 함께 회사를 그만뒀습니다. 그해 7월에 알리페이 담당자들을 만나 그 동안 고마웠다는 인사를 건네면서 이 소식을 전했죠. 그랬더니 ‘두 사람 아이디어 많은데, 새로운 사업을 해보는 건 어때?’라는 역제안이 왔습니다. O2O(Online to Offline)란 키워드를 말하더군요. 당시만 하더라도 완전히 생소한 단어였습니다. 저에게 했던 제안은 스마트폰에 알리페이 서비스를 내장해 결제할 수 있는 환경을 한국에 만들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저희가 사업을 본격화 하기 위해서는 알리페이의 이름이 필요하다고 말하면서, 로고를 명함에 부착할 수 있게끔 요청했는데요. 알리페이가 전세계 파트너사중 이례적으로 아이씨비만 알리페이 로고를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해줬습니다.”
이 대표가 제안한 것은 ‘바코드 결제’였다. 당시 알리페이에서도 바코드 결제를 검토하고 있었는데 유리 반사로 인한 인식 문제가 발목을 잡고 있었다. 그는 알리페이 직원들을 데리고 명동 CJ 올리브영에 방문해 바코드 결제 원리를 보여줬다. 이들은 바코드 화면이 열리면 화면을 밝게 해 인식률을 높아지는 형태를 보고 바코드 시스템을 만들었다. 현재 한국에 방문하는 요우커들이 바코드로 결제하는 환경이 이때 만들어진 것이다.
한국에 있는 가맹점들이 알리페이를 받기 위해서는 선행 조건이 하나 더 있었다. 바로 현금 환급 문제다. 기존 신용카드로 하더라도 2~3일 후에나 현금으로 받을 수 있는 구조였다. 현금이 편리할 수밖에. 중국 관광객들에게 현금으로 받던 가맹점들의 마음을 열기 위해서는 환급 기간을 대폭 줄여야 했다. 하나은행이 적극적으로 도왔다.
“당시만 하더라도 외국에서 들어오는 화폐를 분배해서 가맹점에게 주는 것도 외환업에 속했습니다. 은행이 중간에 꼭 있어야 했죠. 그리고 밴(Value Added Network)사도 필요했습니다. 밴사에는 한국정보통신(KICC), 은행은 하나은행이 참여했습니다. 특히, 하나은행의 헌신이 컸습니다. 알리페이로부터 돈을 받기 전에 가맹점들에게 환급을 먼저 해주기로 결정한 것이죠. 그렇게 해서 국내에서도 알리페이가 유니온페이의 영역을 야금야금 빼앗기 시작했습니다.”
간편결제 생태계를 연 다음 종착지는 ‘물류’였다. 이커머스, 쇼핑몰을 막론하고 ‘중국 역직구’에서 가장 큰 고민은 배송 비용과 기간이었다. 국제특송(EMS)은 너무 비쌌고, 적은 거래량에도 물류센터 폭주는 일상적인 일이었다. 통관에서 비대면 거래시 개인 신원 확인 문제도 있었다. 아이씨비는 이러한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하는 시스템 ‘알리페이 이패스’를 국내에 도입할 준비를 시작했다.
“작년 5월에 위메프와 같이 알리페이와 미팅을 했을 때 역직구의 어려움에 대한 많은 부분을 알게 됐습니다. 그런데 알리페이가 8월에 알리페이 이패스라는 통합 물류/결제 시스템을 미국에 론칭하더군요. 알리페이의 결제와 알리바바그룹의 물류 자회사인 차이니아오의 물류 시스템이 결합돼 배송 비용, 결제, 속도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그림이었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알리페이에 차이니아오와 만나게 해달라고 했죠. 차이니아오도 흔쾌히 마음을 열었습니다. 저희가 물류회사가 아님에도 그간 알리페이와 쌓아온 신뢰를 봤기 때문이죠. 처음엔 3개월 단위 계약을 맺은 뒤 종료 직전 1년으로 확대했습니다.”
알리페이 이패스에 참여할 국내 물류 기업을 찾는 일만 남았다. 처음에는 CJ 대한통운을 찾아갔으나, 수수료에 대한 이견 차이로 결렬됐다. 다음엔 현대로지스틱스를 만났는데, 마침 담당 임원이 미국 잡지에서 차이니아오란 회사를 보고 관심을 갖고 있던 상황이었다. 아이씨비는 현대로지스틱스와 손을 잡고 2015년 광군제를 본격 준비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했다.
“현재 알리바바그룹과의 역직구를 담당하는 유일한 업체는 아이씨비입니다. 지난 달에 CJ대한통운이 담당하던 알리바바 역직구 물량이 아이씨비로 넘어갔단 보도가 나왔는데,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차이니아오의 파트너 위앤통의 하청을 받아 홍콩 노선의 일부를 대한통운이 담당했고, 대륙은 저희가 차이니아오와 협력해 진행왔는데요. 홍콩 관련 노선도 아이씨비가 하면 좋겠다는 제안을 차이니아오에 받았을 뿐이죠.”
아이씨비는 올해 5월부터 2015년 광군제를 준비했다. 현대로지스틱스, 아시아나항공, 티몰 입점업체들과 함께 워크샵을 열고, 본격적인 시나리오를 짰다.
“엄청난 물량을 배송해야 할 거라는 압박감이 많았습니다. 일단 전세기를 3대 계약했죠. 아시아나항공 2대, 동방항공 1대였습니다. 창고도 군포, 김포로 확대했습니다. 저희의 역할은 차이니아오 관련 물량을 체크하는 것, 한국에서 넘어가는 모든 집하 물량을 취급하는 일이었습니다. 광군제가 시작하고 물건이 연일 밀려들었습니다. 광군제 당일에 40만 개가 들이닥쳤죠. 전세 비행기 한 대에 많이 실어야 7만 개 정도였는데 말이죠. 그 와중에 차이니아오의 가이드라인도 지켜야 했습니다. 가령 개별 무게 측량을 다 해서 보내야 했죠.”
광군제가 끝나자 블랙프라이데이가 다가왔다. 사실, 아이씨비를 비롯한 이커머스, 물류 업체 모두 광군제에서 엄청난 물량을 처리했기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많이 팔려야 1000~2000개 정도를 예상했는데, 위메프만 해도 주말에 3만 개를 팔아치웠다. 전체 파트너사에서 처리한 물량이 10만개가 넘었다. 블랙프라이데이가 끝나니 타오바오의 ‘1212’가 다가왔다. 10만 개가 더 팔렸다. 그리고 이제 설날(春节)이 다가오고 있다. 관련 업체들 모두 즐거운 비명을 내지르고 있는 상황이다.
올해로 8년째. 이러한 거대한 프로젝트를 아이씨비라는 스타트업이 주도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알리바바그룹이 파트너사를 함부로 버리지 않는다는 철학이 크게 작용했다.
“6년 전 타오바오 한국관 사업을 알리바바와 함께 했을 때 있었던 일입니다. 저희의 제안을 받은 대기업들이 겉으로는 한다고 하고 뒤로는 타오바오와 직접 계약을 하려는 일이 발생하곤 했는데요. 그때면 타오바오 담당자가 직접 전화를 해줍니다. 그러고는 ‘너네 한국 기업들 만날 때 조심해야겠어. 걱정하지마 우리는 너희랑만 일할 거야’라고 조언을 해줬죠. 마윈 회장은 알리바바그룹의 1순위는 고객, 2순위는 셀러와 저희같은 파트너사, 3순위는 직원, 4순위는 주주라는 가치를 천명한 뒤 전사적으로 이를 실천하고 있습니다. 저희 같은 작은 기업이 알리바바의 사업을 계속할 수 있던 비결도 여기에 있었죠.”
아이씨비는 국가와 국가의 비즈니스를 연결해주는 페이먼트&로지스틱스 허브를 자처하고 있다. 아이씨비가 내년에 할 일은 참으로 많다. B2B 무역 플랫폼인 알리바바닷컴 도입, 역직구몰 본격 운영, 알리바바 이커머스 플랫폼에 올라가는 국내 쇼핑몰, 이커머스 업체들의 인프라를 알리클라우드(阿里云)로 옮기는 작업 등을 진행하고 있다. 요우커를 위한 O2O 사업도 본격 확대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리고 모바일 기반의 B2B 대출형 크라우드 플랫폼도 구축할 계획이다.
“제로투세븐, 블랙야크 등의 역직구 쇼핑몰을 저희가 준비, 관리를 총괄하고 있는데요. 내년엔 알리바바 플랫폼 위에서 물품을 적극적으로 팔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습니다. 알리바바닷컴 사업도 본격화해 한국 무역업체들의 해외 진출 기회도 마련할 계획입니다. 한국에 방문하는 요우커들에게 여행, 쇼핑 콘텐츠를 큐레이션하는 플랫폼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또한, 핀테크 영역 진출 준비도 이미 끝마쳤습니다. B2B의 대출과 투자를 중심으로 하는 핀테크 분야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펀페이(FunPay)라는 도메인도 준비했죠. 중국어 발음으로는 공유(分配)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B2B 영역은 대출 규모가 상당히 크기에 수요가 많으나 이를 뒷받침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저희는 30억~50억 원 규모의 자기 자본을 만든 뒤 일부를 크라우드펀딩으로 모아 대출을 집행하는 형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8년 전 이메일로 시작한 알리바바그룹과의 관계가 조금씩 진전되면서 이한용이라는 개인 자체가 기업이 돼 한국과 중국의 물류, 제품, 서비스, 결제를 연결하는 허브로 자리매김했다. 아이씨비는 물류센터가 없으나 물류업을 하고, 돈을 직접 결제, 대출해주지 않으나 결제업을 하고 있다. 모든 것을 연결해주는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지난 번 블로그에서 언급했듯 ‘5차 산업 시대‘의 주역은 무언가를 생산하고, 서비스하는 기업이 아닌 연결짓는 네트워커로서의 기업일 것이다. 아이씨비는 그 역할을 충분히 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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