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박상훈
박상훈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다가, 무거운 부담감으로 적고 있는 글을 이제야 마무리합니다. 이 글은 ‘자카르타 경제신문’에 연재되고 있는 글을 제 브런치에 조금의 편집을 거쳐서 올리는 글입니다. 이제까지는 특별히 내용이 다른 부분이 없었지만, 이 번 글은 경제신문에 기고한 글과 조금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신문에 올리기에는 조금 강한(?) 글이 있어 써 두고 편집을 했지만, 제 브런치에는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그대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올 한 해는 정말 인도네시아와 동남아 진출의 신호탄이 쏘아 올려진 한 해 인 것 같습니다. 인도네시아에서 9년 살면서, 이렇게 많은 한국의 분들의 관심이 느껴졌던 해는 개인적으로 올해가 유일합니다. 어느 곳에서 사업을 해도 쉬운 사업은 없습니다. 철저하게 준비하시고, 분석하셔서 많은 대한민국의 기업과 개인들이 동남아라는 새로운 시장에서 성공하는 모습을 기대해 보면서, ‘동남아 진출을 꿈꾸는 스타트업에 드리는 글’ 마지막 이야기 들려 드립니다.
7. 타임머신 전략
한국에서 동남아 진출을 꿈꾸는 초급 인원들에게서 많이 들을 수 있는 이야기는 1회에 소개해 드렸던 한류와 싼 인건비입니다. 하지만 동남아 진출을 이야기하는 전문가 집단에서 자주 들을 수 있는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타임머신 전략”
며칠 전 카카오의 부사장님께서 카카오가 인수한 ‘Path’의 서비스 총괄로 오신다는 기사에도 “타임머신 전략”이 언급되었습니다. 신문의 내용을 그대로 인용해 보면 “타임머신 전략, 즉 정보기술(IT) 인프라가 막 깔리는 동남아 지역에서 ‘제2의 카카오톡 신화’를재현하겠다는 글로벌 진출 계획의 신호탄이란 분석이 나온다.” 비단 이 기사뿐만이 아닙니다. 한국에서 동남아에 나가서 성공한 업체를 분석할 때 한국의 전문가들이 자주 이야기하는 부분 또한 타임머신 전략입니다.
IT 인프라가 완숙기에 들어선 한국시장에서의 경험은 IT 인프라가 막 깔리는 동남아 시장으로의 타임머신을 제공해 줄 수 있을까요? 저는 타임머신 전략이라는 말이 아주 위험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의 시장 경험이 별다른 의미가 없다는 이야기인가?라는 질문을 하신다면, 한국에서의 경험은 아주 중요한 부분이고 이 곳에서 분명한 가치를 가진다고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타임머신이라는 말은 분명 위험한 표현입니다. 한국의 IT 시장이 커 왔던 그림과 인도네시아의 IT 시장이 커나가는 그림은 분명히 달랐고 다를 것입니다. 10년 전의 한국 시장이 절대로 다시 이곳에서 똑같이 반복되는 일은 어려울 것입니다.
한국은 웹 1.0을 거쳐서 웹 2.0으로 발전해왔지만, 인도네시아는 웹 1.0 시장을 건너뛰고 바로 웹 2.0 시장으로 진입했습니다. 이 곳에서의 사용자의 인터넷 이용 방식은 한국과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모바일 사용자 수와 스마트폰 사용자 수는 경제 수준에 비해서 높지만 선불심 사용이 96%에 달하고, 선불심의 특징상 핸드폰 번호만으로는 사용자가 누구인지 개인 인식이 불가능합니다. 선불심이 결제수단으로써의 필요충분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것입니다.
인터넷 브로드밴드 사용자는 한국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적습니다. 이커머스 분야로 넘어가 보면 많은 쇼핑몰들이 COD(Cash onDelivery)를 고민하고 있으며, 주요 쇼핑몰의 회원이 남자가 더 많고, 정식 오픈마켓이나 인터넷 쇼핑몰보다 포럼이나 SNS를 통한 인터넷 쇼핑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동남아 최대의 유통시장 규모를 가지고 있지만, 그중 이커머스가 차지하는 비율은 0.3%~0.6%에 불가하다고 합니다.
검색, SNS, 메일, 메신저 등 많은 분야에서 인도네시아 자체 서비스가 두각을 나타내는 경우가 없으며, 세계 1위가 인도네시아 1위인 경우가 많으나, BBM(블랙베리 메신저)이나 Path처럼 유달리 인니에서만 강세를 보이는 서비스도 있습니다. 한국에서 올해 많은 MCN 업체들이 성공가도를 달릴 때, 인도네시아에는 메이커스튜디오가 직접 진출해서 인니의 유명 1인 크리에이터들과 계약을 맺고 있습니다. 여기서 언급하기에 힘들 정도로 선진시장과 같은 점만큼이나 다른 점이 많은 시장입니다.
여러분들이 가진 선진 시장에서의 경험들은 분명히 존중하고 가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나는 다 해 본거야’라는 지나친 자신감만은 가지지 마시라고 이야기드리고 싶습니다. 동남아 시장은 커지고 파괴력을 보일 것이라는 것은 분명히 타임머신이 알려주는 사실이지만, 한국의 시장이 발전했던 모습과 똑같은 모습으로는 시장이 전개되지 않을 것입니다. 좋은 경험과 지식을 가지고 계시다면, 그 경험과 지식으로 더 자세히 동남아 시장을 분석하셨으면 합니다.
한국에서 성공했던 카카오톡을 버리고 인도네시아에서만 성공한 Path로 갈아타는 것을 타임머신 전략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무언가 오류가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저는 개인적으로 인니 시장에서 지지부진했던 카카오톡에 미련을 가지지 않고 과감히 Path로 갈아탄 카카오의 결정에 찬사를 보내는 입장입니다. 향후 Path의 성장이 어떻게 갈 것인지에 대해서도 상당히 관심 있게 보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의 커뮤니티의 특성을 이해하려면 Path를 공부해 보셔야 합니다.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Path를 떠날 때,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페이스북에서 Path로 갈아탔습니다. 이것만 보아도 여러분들이 타임머신의 오류에 빠지지 말아야 할 중요한 이유 한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7. 언어 그리고 소통
언어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제가 이 글을 통해서 따로 강조할 필요도 없을 것 같습니다. 현지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언어이고 소통입니다. 사실 저도 언어에 대해서 이야기하기에는 부끄러운 부분이 많습니다. 이 곳에서도 요즘에는 대기업 같은 경우 인도네시아어 어학연수 과정을 먼저 듣게 한 후에 업무에 투입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지만, 아직도 작은 기업에서는 연수 과정을 따로 듣지 못하고 업무에 투입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일본 회사들이 철저하게 어학연수 코스를 강조하는 분위기에 비해 아직 한국 회사들은 그런 부분들이 부족합니다.
얼마 전 지인 분이 인도네시아에서 BBM(블랙베리 메신저)이 선전하는 까닭은 인도네시아도 영어권이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니냐고 물어보셨습니다. 동남아에서도 남부권역인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중에서 영어권이 아닌 유일한 국가가 인도네시아입니다.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의 경우에는 영어, 인니어, 중국어 순으로 쓰이지만 인니는 상위층의 경우만 영어에 익숙하고, 그 외 계층에서는 영어가 잘 통하지 않는다고 보시면 됩니다. 현지 언어는 능숙하면 능숙하실수록 좋습니다. 그리고 영어가 능숙한 것은 어느 나라에 가도 분명한 플러스가 있습니다. 실제 인터넷 비즈니스를 협상하고 이야기할 대상들은 교육 수준이 높은 현지인이라고 봐야 하고 대부분 영어에 능숙합니다. 이 곳의 상위층은 초등학교 때부터 대부분 National Plus라는 국사, 사회, 자국어를 제외한 모든 수업을 영어로 하는 학교나 아니면 전체 수업을 영어로 하는 국제학교에 다니기 때문에 영어가 아주 능숙합니다.
언어는 강력한 경쟁력입니다. 저도 모든 사람이 다 영어를 잘 해야 하고 외국어를 잘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글로벌 비즈니스를 원하시는 분들에게 언어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그리고 언어를 익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과 소통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더 중요한 부분일 것 같습니다.
8. 동남아 시장은 현지 정부 시스템과의 전쟁이다.
한국에서 인도네시아에 진출해서 실패하는 일반적인 케이스 하나를 알려 드리겠습니다.
인도네시아 이야기 듣고 한두 번 출장 온 이후에 현지에 본격적인 진출을 시도합니다. 직원 한두 명이 인도네시아로 들어와서 사무실 구하고, 법인 허가를 냅니다. BKPM(인도네시아 투자청) 직원에게 들었던 법인 설립 기간은 분명 한 달 내였는데, 투자 법인 하나 만드는데 6개월 이상이 걸립니다. 직원들 이민국 허가받고, 수입허가받기 위해 또 3개월 이상을 허비합니다. 그 사이에 한국보다 결코 싸지 않은 사무실 임대비용 들어가고, 직원들 숙소에 차량에 한국에서의 비용보다 훨씬 많은 비용이 들어가고 있습니다. 수입허가받고 나면 식약청 허가받아야 되는 제품인 경우 또 거기부터 6개월이 걸립니다. 철자 하나 틀렸다고 문서에 문제가 있다고 다시 하라고 하지, 중간중간 한국적인 사고로 이해하기 어려운 정부에 지불해야 할 비용과 복잡한 프로세스에 점점 지쳐갑니다. 대략 1년 6개월 정도가 걸리고 나면, 사업을 할 수 있는 서류적인 허가가 이제 겨우 다 끝나 있습니다. 막상 시작을 제대로 해야 할 이때 대부분의 업체는 인도네시아에 질려서 이 곳에서 철수를 결정합니다. 1년 6개월 동안 든 비용 적게는 10만 불에서 많은 경우 50만 불.
“인도네시아에서는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다.” 여기서 살면서 정말 뼈저리게 느끼고 사는 말입니다. 인도네시아어로 정부 관청을 뜻하는 ‘balai’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그 단어 앞에 단어를 붙여 ‘halai-balai’라는 단어가 되면 게으른, 혼란한 이라는 단어가 됩니다. 동남아에 진출하신다면, 고객과의 전쟁이 아니라 후진적인 정부 시스템과의 전쟁을 준비하셔 합니다. 동남아 시장 결코 쉬운 시장이 아닙니다. 충분히 분석하시고, 대비하시고 들어오셔야 합니다.
9. 글로벌 시장 글로벌한 마인드부터
인도네시아에서 식당을 가면 자주 보게 되는 모습이 있습니다. 많은 친척들이 함께 모여 인사하고, 식사하는 모습입니다. 요즘 한국 식당에서 친지들이 함께 모여서 식사하는 모습 쉽게 볼 수 있는 모습인가요? 이 곳에서는 주말에 식당에 가면, 몇 테이블은 꼭 친지들이 모여서 나이 든 어른부터 어린아이까지 함께 모여 식사하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요즘 인도네시아에 와서 일하시는 분들 중에 현지인 분과 국제결혼을 한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이 국제결혼에 대해서 편견을 가지신 분들이 있습니다. 일부가 그렇다고 하기에는, 솔직히 제가 느끼기에는 한국사람 중에 제법 많은 분들이 이런 편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단일민족’이라는 것이 그렇게 소중한 가치인가요? 이제 ‘단일민족 콤플렉스’ 벗어나도 될 때가 되지 않았나요?
서양 사람만 보면 뭐가 그렇게 대우를 해야 하는지 세세한 손님 접대까지 신경 쓰던 사람들이, 동남아 바이어에게는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이는 분들. 한국 사람인 걸 무슨 벼슬로 알고, 현지인들 막무가내로 대하는 분들. 국제결혼 한 한국분 은근히 비웃는 사람들. 우리 민족이 우리나라가 그렇게 남들 무시해도 될 만큼 대단한 민족이고, 대단한 나라인가요?
인도네시아는 결혼을 통해서 가족이 된다면, 그 사람이 어느 민족이고 어느 나람 사람인지는 따지지 않습니다. 그냥 가족일 뿐입니다. 자주 만나서 식사하고, 이야기 나누고 한 가족으로 대우받습니다. 저는 이 가족의 개념부터 글로벌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한국사람의 경우에는 더 더욱 필요한 부분입니다. 우월한 민족이 어디 있고, 우월한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단일민족이 이 시대에 지켜야 할 지고지순한 가치인가요? 글로벌 비즈니스 준비하신 다면, 글로벌한 마인드부터 시작하십시오. 타 문화를 존중하지 못한다면, 당장의 결과는 만들어 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큰 성공은 결코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 중에 혹시 동남아 시장 특히 인도네시아 시장에 대해서 궁금하신 사항이 있다면 제 메일(sanghoon.pak@gmail.com)로 언제라도 연락 주십시오. 많은 도움은 되지 못하겠지만, 제가 도움드릴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알려 드리겠습니다. 이 곳에 진출하시는 분께 정답을 알려드리지는 못해도 함정이 있는 길은 피하실 수 있도록, 지름길은 아니라도 많이 돌아가지 않는 길을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남의 돈 벌어먹고 사는데 쉬운 일이 없다.’라는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언어도 다르고 문화도 다른 곳에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다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이 될 수 있겠습니까? 동남아 시장, 인도네시아 시장, 참 매력적인 시장입니다. 아무쪼록 부족한 제 글이 한국에서 동남아 진출을 생각하시는 분들께 조그만 도움이라도 되는 글이었으면 합니다. 부족한 글 읽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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