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벗: 사업 방향을 바꾸는 일이다. 초기에 내세운 아이템이 가능성이 없다는 판단이 들면 과감하게 다른 길로 옮겨가야 한다. 에릭 리스는 책 ‘린 스타트업’에서 사업 전환을 이렇게 설명했다. “제품, 전략, 성장 엔진에 대한 새롭고 근본적인 가설을 테스트하려고 경로를 구조적으로 수정하는 것.” 사업 방향 전환은 과감성이 필요하다. 그동안 사업을 발전시켜온 노력을 물거품으로 돌리고 새롭게 시작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필요한 상황에 과감히 키를 바로잡을 수 있는 결단력이야말로 스타트업이 성공하기 위한 필수 요건이다. 많은 스타트업이 사업 방향을 바꾸고 나서야 성공했다. – 블로터 스타트업 용어사전 中
스타트업계의 화두인 키워드 중 ‘피벗’이 있다. 위의 문단에서 설명했듯 ‘사업 전환’을 의미하는 키워드다. 스타트업은 최소의 리소스로 최대의 성과를 내야 하는 상황에 늘 처해 있다. 이들에게 피벗이란 필수 불가결한 선택일 경우가 많다.
하지만 무조건적인 피벗은 위험하다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입장이다. 최근 만났던 엔젤네트워크 매쉬업엔젤스의 민윤정 파트너는 “스타트업에는 위기가 많이 오기 때문에 마켓, 타깃 고객, 제품 등에 대해 쉽게 피벗을 생각하지만 주제 없이 변화만 많이 한다고 성공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회사가 갖고 있는 핵심 역량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그에 대한 피벗을 해야 한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그런데 굵직한 피벗으로만 네 번, 비공식적인 것까지 합치면 열 번이 넘는 피벗을 하고도 승승장구하고 있는 스타트업이 한 곳 있었다. 도대체 이를 가능케 한 비결은 무엇이란 말인가. 궁금증은 지난 12월 3일 서울시 관악구 버즈니 사무실로 발을 이끌었다.
버즈니는 8년 전 포항공대 KLE(지식 및 언어공학) 연구실에서 탄생했다. 남상협, 김성국 두 연구원은 각각 검색과 언어처리 관련 석사과정을 밟던 중 의기투합해 회사를 차리기로 결심했다. 첫 서비스는 블로그 검색 서비스였다.
“저(남상협)와 김성국 대표는 포항공대 석사 시절 기술적 기반을 닦았습니다. 공부를 하면서 차별화된 지능 검색 엔진을 만들고 싶다는 욕구가 컸습니다. 그래서 블로그에 긍정적인 의미와 부정적인 의미를 분류해 검색해주는 엔진을 만들기에 이르렀는데요. 당시 미국 국립표준원 주최 대회에서 1등을 하며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버즈니의 첫 보금자리는 경기도 안산이었다. 두 대표는 “외부 세계와 벽을 쌓고 기술 개발을 하던 시기”라고 말했다. 개발자 둘이서 주도하는 서비스답게 정교함에 집중했다. 그게 패착이었다. 처음 선보인 블로그 검색 서비스는 ‘대 실패’로 끝났다. 사람들이 모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초기 2년 동안은 연구자금을 지원받으며 근근히 버텼다. 다행히도 사업을 한다는 이유로 회사 규모를 키우진 않았다. 매출이 없었던 상황에는 SK텔레콤, 에트리, KT 등에 솔루션을 팔면서 생존해왔다. 그러던 와중 스마트폰이 한반도를 휘젓기 시작했다. 다시 한 번 기회가 온 것이다.
“저희는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가 국내에 출시하기 전부터 에뮬레이터로 개발을 시작했습니다. 버즈니의 핵심 기술은 검색에 있기에, 이를 접목할 서비스를 끊임없이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영화 포스터 사진을 인식하는 서비스를 만들자’는 결정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의견 검색, 영상 인식 및 검색, 영화 상영시간, 추천 등의 기능을 넣은 서비스였죠.”
반응은 좋았다. ‘버즈니 영화 가이드’ 앱 다운로드만 250만 건을 달성한 것. 트래픽이 모이니 매출도 발생했다. 무엇보다 회사 브랜드 홍보가 됐다는 점이 가장 큰 기회였다. 2011년 5월 버즈니는 GS로부터 첫 투자를 받게 된다. 회사 창립 4년만에 첫 투자였다.
남상협 대표는 “예전에는 기술만 갖고 투자 유치를 위해 이곳저곳을 찾아다녔지만 거절당하기 일쑤였다”며 “영화 큐레이션 서비스로 이름을 알리자 투자가 잘 이뤄지지 않던 시기임에도 좋은 기회를 얻었다”고 말했다. 낮에는 SI로 돈을 벌고, 밤에는 버즈니의 일을 했던 삶을 끝내고, 이제 하고싶은 일에 집중할 수 있는 리소스가 생겼다. 김성국 대표는 “남의 밭과 내 밭을 갈던 주경야경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게 가장 행복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하지만 버즈니는 영화 큐레이션 서비스를 접기에 이른다. 돈이 안됐기 때문이다. 김성국 대표의 설명이 이어졌다.
“온라인 영화 광고시장 규모가 500억 원 정도 됐습니다. 그때 저희가 계산하기를 그곳의 10%를 버즈니가 차지하면 50억 원이 생기는 것 아니겠느냐는 단순한 계산을 했죠. 당시 연매출이 2억~3억 원 정도 나오던 시점이었는데요. 저희한테 떨어지는 돈이 5000만 원도 안되더군요. 빈부격차가 심했습니다. 주요 포털 사이트가 90%이상의 수익을 다 차지했던 시기였습니다. 영화제작사도 네이버나 다음 외에 광고비를 쓸 여력이 없었죠. 트래픽의 한계도 있었습니다. 일일활성이용자(DAU)가 5만 명에 이른 뒤로는 정체가 시작됐죠.”
다음 서비스는 ‘맛집’ 큐레이션이었다. 마침 미국의 옐프가 유명세를 떨치던 시기였기에, 많은 관심을 받을 것이란 기대감이 기저에 깔려 있었다. 버즈니 맛집가이드는 이렇게 탄생했다. 2012년 서비스를 론칭하고 순식간에 100만 다운로드를 달성했다. 하지만 맛집 서비스도 곧 종료를 하게 됐다. 사업의 본질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맛집 큐레이션 서비스의 본질은 온라인이 아니라 오프라인 매장이었더군요. 오프라인 매장이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 현재 상태는 어떠한지를 수집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잘못된 정보가 많았기 때문이죠. 만약 맛집이라고 소개해서 갔는데, 문을 닫았다면 이용자가 다시는 그 앱을 사용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저희는 데이터 분석 기술만 갖고 있었죠. 트래픽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용자를 축적하려면 최소 5년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선제 투자가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국내는 먼저 수익을 보장해야 투자를 해주는 분위기였죠. 그래서 눈물을 머금고 서비스를 종료하게 됐습니다.”
맛집 서비스의 다음은 게임 커뮤니티 추천 서비스였다. 구글 플레이에 올라온 게임앱의 모든 리뷰를 수집, 분석 후 추천하는 서비스였다. 이 서비스는 400만 다운로드, 월 광고 매출을 몇천만원씩 벌어들이며 자리를 잡는듯 싶었다. 하지만 모바일 게임의 생애주기가 짧다는 점이 예상밖 난관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배너를 통한 수익률이 악화되면서 이윤 역시 떨어졌다.
이후에는 캐시슬라이드와 같은 리워드 앱을 만들기도 했다. 그 와중에 론칭한 홈쇼핑모아앱이 시쳇말로 ‘대박’이 나기 시작했다. 그간 만들어온 서비스들은 사람이 모이면 돈이 안되고, 돈이 모이면 사람이 모이지 않았는데, 홈쇼핑모아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국내 8개 홈쇼핑업체의 정보를 홈쇼핑모아의 앱으로 다 모았습니다. 8곳 업체의 판매 정보를 앱으로 모으니 많은 관심을 얻게 됐습니다. 현재까지 250만 다운로드, 월간활성이용자수(MAU) 70만을 돌파했습니다.”
네 번의 피벗, 총 다섯 개의 서비스의 공통점은 하나였다. 버즈니의 핵심 역량인 ‘검색’과 ‘데이터마이닝’을 기반으로 한 서비스들이라는 것이다. 이의 구현을 가능케 했던 것은 버즈니만의 통합 시스템이다.
“버즈니에서 출시한 모든 서비스는 한 시스템에서 개발됐습니다. 검색기술과 추천 관련 데이터 마이닝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시스템인데요. 원하는 콘텐츠만 넣으면, 결과값을 볼 수 있는 파이프라인을 구축했습니다. 버즈니 모든 서비스의 프로토타입은 이 시스템을 통해 만들어집니다. 추후 사용할 서비스가 선정되면, 처음부터 다시 구축을 합니다.”
이는 버즈니만의 방식으로 만든 시스템 개발 형태로 모내기 한 모판을 논에서 키우는 개념인데, 처음부터 다시 개발을 할 경우 들어가는 시간이 상당할 수밖에 없다. 버즈니가 이러한 프로세스로 서비스를 구축할 수 있던 요인에는 두 공동대표가 모두 개발자라는 점을 들 수 있다. 남 대표는 “1~2개월을 다른 것 하지 않고 개발에 투입하는 점을 이해받을 수 있는 구조”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비즈니스를 모르는 개발자가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버즈니가 지난 8년 동안 네차례 피벗을 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결과적으로 홈쇼핑모아가 안착돼 좋은 실패 경험으로 기억할 수 있으나, 그 과정이 쉽지는 않았을 터. 두 대표는 전문 경영인을 영입할 생각도 했지만, 기술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의 경영은 더 위험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현장에서 부딪쳐왔다. 김성국 대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난 8년은 버즈니가 가장 잘하는 기술이 통할 수 있는 서비스를 수색해온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피벗 과정마다 구성원들 모두 힘들어했지만, 극복해야만 했던 과정이었죠. 저희가 리워드 앱을 만들 때를 제외하고는 모두 검색, 데이터마이닝 기술을 활용한 서비스들이었습니다. 그래서 홈쇼핑모아를 만들기에 이르게 됐죠. 그게 끝은 아닙니다. 딥러닝 기술에 기반한 이미지 인식 기술을 통해 홈쇼핑에 머물지 않고 모바일 쇼핑 전체 검색 시장을 아우르는 플랫폼으로 변신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를 테면 특정 쇼핑몰을 통해 나온 제품의 이미지를 인식해 자동으로 최저가 제품을 보여주는 기능 등이 포함될 것입니다.”
버즈니는 스타트업계의 이단아다. 네 번이나 피벗을 하고도 승승장구하고 있는 스타트업이기 때문이다. 돌아보니 이들이 그토록 많이 서비스를 바꾸고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 ‘핵심 기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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