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의 로켓배송과 직접매입에 대한 업계 반응을 보면 꽤 큰 온도차가 느껴집니다. 거칠게 요약하면 ‘글로벌로 나갈 혁신 플랫폼’과 ‘마케팅 슬로건일 뿐’으로 양분됩니다.
‘혁신’의 근간은 제품의 매입부터 정규직 쿠팡맨의 영입을 통해 당일(2시간) 배송, 친절함 등에서 비롯됩니다. 쿠팡이 지난 1년 동안 세쿼이아캐피탈, 블랙록, 소프트뱅크로부터 총 1조 5500억 원의 거금을 당길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죠.
반면, 물류와 기존 오프라인 커머스 업계를 중심으로는 많은 의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쿠팡이 물류센터를 혁신해 직접 매입을 하는 것이 어불성설이라는 주장이 대표적입니다. 만약 물류센터에 직접 매입을 시작했다면 그곳에 물품을 조달하는 업체들에 의해 소문이 나는 것이 일반적인데, 매입을 시작했다고 발표한 지 2년이 지나도록 잠잠했기 때문입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쿠팡의 지난 2014년 실적 중 직접 매입을 통한 매출은 12%에 불과합니다. 물류업계의 주장이 더욱 힘을 얻는 작은 수치입니다. 저 역시도 이러한 의문을 과거 수차례 기사를 통해 언급했던 적이 있습니다.
쿠팡에도 남은 과제가 있습니다. 육아, 아동, 생활용품 중심으로 로켓 배송을 실시하고 있지만, 매출액 기준으로는 12%, 전체 제품 숫자 대비로는 한자리수(%) 비중에 머물러 있습니다. 더 많은 제품을 로켓 배송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물류센터에 쌓여있는 제품을 수요에 맞춰 배송하는 구조를 구축해야 합니다. 즉, 직접 매입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아마존닷컴이나 징동닷컴 같이 물류센터에 대한 대규모 투자가 필요합니다. 그럼에도 재고 문제가 발생하니까 블랙프라이데이나 사이버먼데이, 솔로데이 같은 재고 떨이 행사가 진행되는 거겠죠. – 쿠팡 1조1000억 원 규모 투자 유치에 담긴 의미(마이크로소프트웨어)
그렇다면 쿠팡은 마케팅 효과를 위해 거짓말을 하는 걸까요.
거짓말은 아니었습니다. 취재 결과 제품 매입 부서에서는 내년 1월 말 총 100만 품목 매입을 목표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현재까지는 24만 품목에 달한다고 하고요. 신세계 이마트가 10만 품목 정도를 직접 매입하는데, 쿠팡은 이를 뛰어넘은 셈입니다.
소문이 안나는 이유는 ‘소량 매입’이기 때문입니다. 품목당 최소 1개부터 매입을 시작한 뒤 구매 패턴을 분석해 많이 팔리는 제품에 한해 대량 매입을 시작합니다. 현재 로켓배송의 매출이 전체의 20%를 넘었단 말도 나옵니다.
위의 기사에 따르면 빅데이터를 이용한 매입 분석을 통해 2시간 내 배송을 한다는데 빅데이터까지는 아닌 것 같고, 태블로소프트웨어(Tableau Software)의 데이터시각화툴을 도입해 실시간 단위의 매출 분석을 구현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쿠팡은 ‘단 한명의 고객이라도 원하는 모든 제품을 로켓배송으로 구매할 수 있어야 하며, 그들이 찾는 순간 원하는 제품이 쿠팡 플랫폼 위에 진열돼야 한다’는 슬로건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정리하면 모든 제품이 고객이 찾는 순간에 매력적인 가격에 진열돼 있으며, 구입 후 빠른 시기에 친절하게 배송해줘야 하는 것이죠. 당일, 혹은 2시간 내에 도착하면 더욱 좋고요.
‘로켓배송’으로 주목을 받고 있지만, 정작 이를 구현할 수 있는 요인은 플랫폼이란 생각이 듭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쿠팡 플랫폼 위에 있으며, 모든 사람이 모바일 앱으로 원하는 제품을 적시에 구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것이죠.
물류업계와 오프라인 커머스 업계가 생각하는 직접매입과 물류센터의 혁신은 쿠팡과는 다른 의미입니다. 이들은 많은 물건을 매입한 뒤 최대한 많이 팔아 ‘마진’을 남기는 구조입니다. 즉, 돈을 더욱 많이 벌기 위해 필요한 제품을 많이 구입해놓는다는 것이죠.
하지만 쿠팡은 자사의 앱에 진열되는 제품을 ‘콘텐츠’로 정의하는 듯 했습니다. 단지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이 수많은 제품을 매입할 이유가 없습니다. 잘팔리는 것을 주력으로 판매하면 되는 것이죠. 로켓배송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물건을 많이 파는 것이 목적이라면 굳이 친절함과 빠름을 무기로 한 쿠팡맨을 ‘직접고용’할 필요가 없습니다.
쿠팡의 모습을 보면 네이버가 2000년대 초반 신문사를 돌아다니며 뉴스 제휴를 요청했던 시절이 오버랩됩니다. 그때만 하더라도 네이버에는 야후, 다음에도 못미치는 후발 포털사이트였을 뿐입니다. 모든 뉴스 콘텐츠를 네이버에서 볼 수 있도록 하자는 목적에 신문사를 찾아다니며 기사 제휴를 설득했죠.
그후 네이버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콘텐츠가 모이는 시총 15조~16조 원대 플랫폼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비록 모바일 시대에 와서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 밀려 주춤하는 형세이지만, 여전히 네이버 하면 플랫폼을 떠올리게 되죠.
쿠팡이 물류와 이커머스에 진입하는 방식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모든 물건을 자사의 앱 위에 모으는 플랫폼 전략이 숨겨져 있습니다. 남은 과제는 계속되는 적자와 거액의 투자 뒤에 오는 압박을 어떻게 견디냐 정도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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