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인기 작가(?) 허양일입니다(웃음).”
허양일 R’FN 대표(사진)는 최근 미디엄에 올린 ‘잘 다니던 회사 때려치고 스타트업으로 가려는 당신을 위한 5가지 조언’ 등의 포스팅으로 더 유명해졌다. 긴 분량이지만 직접 겪은 경험이 담긴 글은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일파만파로 퍼졌다.
그의 첫 직업은 ‘웹디’였다. 물론 그 이전에는 편집디자인과 관련해서 프리랜서 디자이너로도 일했지만. 지난 1998년 창업했던 작은 회사에서 했던 일은 멀티미디어, 웹디자인이었다. 그러던 그가 홍익인터넷, NHN, 선데이토즈를 겪은 뒤 변했다. 2015년. 스타트업의 경영관리도구를 만드는 스타트업 R’FN을 설립했다. 스타트업들의 교육 연결체인 ‘유니콘 네트워크’도 조직했다. 그게 다가 아니다. 최근에는 ‘한중청년불패’를 조직해 중국 베이징 최대 스타트업 단지인 중관촌을 방문해 중국 스타트업 종사자들과 네트워킹하는 행사를 실행하고 있다.
이제는 허양일 대표를 한 단어로 설명할 수 없게 됐다. 그는 왜 이렇게 다양한 일을 동시에 하고 있는 걸까. 도대체 지난 20년 가까운 세월에 무슨 풍파를 겪은 걸까. 궁금한 게 많았다. 10월 26일 서울 강남구 하이브아레나에서 그를 만났다.
“지난 십수년 넘게 홍익인터넷, NHN(네이버) 등 급성장한 인터넷 기업들을 겪었더니 모바일 시대가 보이더군요.”
허양일 대표의 이직 타이밍을 볼 때면 ‘기가 막힌다’는 표현이 절로 나온다. 2000년 홍익인터넷에 합류할 때 당시 업계 최초로 미국 벤처캐피탈(VC)인 체이스 캐피탈(Chase Capital)에 1200만 달러를 투자받는다. NHN은 2003년 허 대표를 포함해 단 둘이서 네이버 블로그, 카페 디자인 업무를 담당했던 수준에서 마케팅, 디자인, UI개발 등 조직이 560명까지 확장됐다. 그는 구성원을 관리하는 업무까지 하게 된다.
그게 전부가 아니다. 모바일 게임 영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했던 선데이토즈에 합류하며, 모바일 시대 스타트업의 급성장 과정을 경험했다. 이쯤 되면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다.
“닷컴 시절 초창기부터 홈페이지 만드는 일을 해왔습니다. 컴퓨터 키즈 출신이다 보니 웹 프로그램이건 뭐건 상관없이 당시에는 프리랜서로 일하다가 창업도 하게 됐죠. 그리고 홍익인터넷을 거쳐 이후에 몇번의 창업을 하고 2003년 NHN에 합류해 블로그와 카페 론칭에 참여했습니다. 그 당시 다음커뮤니케이션즈에 입사해 쇼핑 페이지를 만드는 일을 할 수도 있었는데, NHN은 새로운 프로젝트여서 더 매력적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곳으로 갔죠.”
허 대표의 전공은 아이러닉하게도 디자인이나 컴퓨터 관련 전공이 아니다. 경영학이다. 급성장하는 조직에서는 한 가지 업무만 할 수 없기에, 어렸을 적부터 관심 있었던 마케팅과 UX/UI 관련 분야의 일도 병행했던 것. 기술에 대해 모르는 것도 아니었기에 특히 이와 관련된 디자인 일을 많이 했다.
초창기 모바일이었던 무선 애플리케이션 프로토콜(WAP)을 비롯해, 초기 스마트폰이라 할 수 있는 PDA폰 등 피쳐폰 시절의 네이버 모바일 페이지들도 그의 손이 거친 프로젝트였다. NHN에선 40여개 계열사의 다양한 경영분석, 관리 도구와 관련된 일도 참여했다. 이후에는 자연히 조직이 커지면서 그의 업무는 경영으로 옮겨갔다.
그가 선데이토즈로 합류하게 됐던 것도 확고한 결심에 따른 것은 아니었다. 알고 지내던 동생(이정웅 선데이토즈 대표)이 모바일 게임사를 만들었는데, 게임 운영, 홍보 전반의 디자인을 도와줄 사람이 선데이토즈에 없었기 때문이다. 허 대표는 “프리랜서는 돈이라도 받고 일한다”며 “돈 한 푼 받지 않고 디자인이나 회사소개서 쓰는 업무를 해줬다”고 설명하며 웃었다.
허 대표는 친한 동생의 부탁이어서 짬이 날 때마다 도왔을 뿐인데, 어느새 회사가 급격히 성장해버렸다. 결국 그는 NHN을 나와 선데이토즈로 합류하게 된다.
“선데이토즈에서 했던 일은 NHN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해요. 조직이 급격히 성장하다보니 이를 관리할 역할이 필요했던 것이죠. 저는 내부 디자인팀이 없는 상황에서 CI, 게임 내 버튼 설정, 배너 만드는 일을 비롯해, 재무관리, 회사소개서, 보도자료 작성 등 회사 전반에 필요한 모든 업무를 하게 됐습니다.”
똑같이 급성장하는 조직이었는데, 무엇이 달랐을까. 허 대표는 벤처붐이었던 2000년대 초반과 스타트업으로 대표되는 2010년대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인적 구성’이라고 설명했다.
“NHN을 비롯한 닷컴시절의 벤처들은 대부분 대기업의 팀에서 합류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회사의 기본적인 시스템이 있는 편이었습니다. 일례로 팀의 리더가 팀원들을 죄다 데리고 오는 경우가 많았었고, 그래서 문화 역시 큰 차이가 없었죠. 스타트업은 다릅니다. 소수의 창업 멤버, 혹은 창업자 홀로 맨땅에서 처음부터 쌓아 올리는 구조입니다.”
벤처든 스타트업이든 척박한 환경인 건 마찬가지 아닐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허 대표가 두 번째 요인으로 제시한 것은 ‘모바일’이라는 환경이었다.
“당시 많은 회사들이 앱 개발과 같은 모바일 분야를 등한시했습니다. 대부분 외주를 주기 일쑤였죠. 내부에서 모바일 프로젝트를 했던 경험이 많지 않았죠. 주로 아웃소싱이나 제품 개발과정의 관리를 해왔습니다. 그나마 인터넷 서비스를 하면서 고객의 변화를 체감했던 네이버나 다음 등 IT 서비스 기업 출신들이 모바일에 빠르게 적응해 스타트업을 조직할 수 있었던 시대가 된거죠.”
업태가 중요했다. 그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IT 서비스 출신이 주로 스타트업을 구성을 할 수 있던 데에는 조직의 공고함보다는 트렌드에 대한 적응력이 관건이었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는 “모바일이 이렇게 세상을 바꿀 것을 예상했던 사람들은 당시에도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이렇듯 거대 IT 기업이 외면했던 분야는 곧 스타트업들에게 기회의 땅이었다. 아무런 가이드라인이 없던 모바일 분야에서 뭐든 가리지 않고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이 인재상이었다. 이 역시 분업화와 전문화에 익숙한 대기업의 구조와 상반되는 부분이다.
허 대표가 선데이토즈에서 맡은 직무는 경영 관리. 그는 경영전략팀장으로서 이에 모든 역량을 집중했다. 예산, 재무관리, 홍보, 채용, 사무실 만드는 일까지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 조직이 급속도로 팽창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당시에는 1~2주에 한 명만 채용하는 원칙을 만들어 신규 구성원이 조직에 잘 녹아들 수 있는 것에 집중했다.
“저는 팀을 만드는 과정이 가장 어렵고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스타트업에 대한 외부 강의에서는 정말로 듣기 어려운 요소입니다(웃음). 그 부분이 개인적으로는 의아한데요. 급속도로 변화하는 모바일 환경에서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어떻게 인력을 배치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극과 극으로 나뉩니다.”
허 대표는 선데이토즈가 상장한 이후에 스타트업 R’FN을 창업한다. R’FN은 스타트업의 경영, 재무, 회계, HR 등을 일원화한 모바일 기반의 솔루션을 개발하는 회사다.
“선데이토즈에서 일할 때는 구글앱스와 독스를 갖고 휴가신청 페이지, 인사시스템, 전자결제 등의 시스템을 직접 만들었습니다. 그만큼 스타트업에 맞는 시스템이 부족하다는 건데요. 그래서 처음에는 재무, 회계 관리 정도만 하려는 생각으로 스마트카운트라는 이름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더군요. 결국, 경영 전반을 다루는 솔루션으로 확장해야겠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알프레드(R’fred)’로 이름을 바꾸게 된 계기죠. 엄밀히 따져보면 핀테크 영역의 솔루션인데요. 개인적으로는 국내 인터넷 은행 개설 뒤 더욱 많은 기회를 얻게 될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허 대표는 여기에 더해 ‘유니콘 네트워크’라는 교육 조직을 만들어 스타트업 창업자와 종사자들을 교육하고 있다. 단순히 솔루션을 팔기보다는 성장하는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한 환경, 특히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일례로 어떤 회사가 공시를 하면서 한국회계기준(GAAP)에서 국제회계기준(IFRS)으로 변경을 했을 뿐인데, 투자받은 금액이 죄다 손실액으로 잡혔습니다. 전문가 입장에선 당연히 회계기준의 변동으로 인한 변화이지만, 일반 개인 투자자 입장에서는 손실이 많은 회사가 상장했다는 인식이 생기죠. 성장하는 과정에서 이를 미리 틈틈히 전환해두었더라면 이러한 문제가 없었을 텐데요. 이러한 아무도 잘 알려주지 않고 어렵게 설명하는 부분들을 ‘스타트업클래스’라는 타이틀로 교육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여기에 더해 ‘한중청년불패’라는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다. 중국을 진출하고자 하는 스타트업은 많지만 중국을 알고 있는 곳은 많지 않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래서 1인 창업가나 스타트업의 구성원들이 중국 베이징의 스타트업 단지인 중관촌에서 현지의 스타트업 대표, 종사자들과 끈끈하게 연결되는 네트워크를 구성하기 위한 만남의 장을 준비했다.
“NHN에서 일하던 시절의 화두도 중국이었습니다. 그때 알게 된 게 가장 중요한 것은 현지 중국 기업과의 관계를 먼저 열어야 한다는 것이에요. ‘꽌시’라고 불리기도 하죠. 이런 것을 하지 않고 백날 중국 행사에서 부스를 만드는 건 큰 효과를 얻지 못합니다. 저 역시도 직접 부딛히고 실행하지 않는다면 가장 큰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민간스타트업을 중심으로 중관촌의 담당자와 연결해 현지의 스타트업 종사자들과의 만남을 주선하게 됐습니다.”
“특히 저는 스타트업에게 필요한 환경을 만드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허양일 대표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직접 실행하는 것에 대해 이렇게 대답했다. “제 아무리 비즈니스 솔루션이 있다고 한 들, 이걸 왜 써야 하는지, 이게 왜 필요한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오픈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최소한 스타트업이 필요하다 생각되는 것들을 먼저 이루어 놓으려고 합니다. 그 첫번째가 교육이었고 두번째가 글로벌 네트워크입니다.”
<11월 11일부터 4박 5일 간 베이징 중관촌에서 진행되는 한중청년불패 행사와 관련해 허 대표는 Business Track(이미 창업한 스타트업 – 99만원)은 마감됐고 Entrepreneur Track(예비창업가 등 – 69만원)은 열 몇 석 여유가 있다고 전했다. 늦게라도 함께 가고 싶은 사람들은 김민지 PM(jetpoolkorea@gmail.com)에게 이메일을 보내면 모비인사이드 독자에 한 해서 특별히 참여 가능토록 요청했다.>
돌아보니 지난 17년간 허양일이라는 사람의 인생은 한 번도 평탄한 적이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결과 지금의 허양일 대표가 있다. R’FN 창업 이후 알프레드 개발, 성장하는 스타트업을 교육하는 유니콘네트워크, 중국으로 네트워크를 확장하는 한중청년불패까지. 동시에 세 가지의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 그이지만, 핵심은 한 가지다. 격변하는 시기 스타트업을 어떻게 성장시켜야 할 것인지라는 질문에서 나온 답들인 셈이다.
허 대표는 모바일 시대를 너무나도 기다렸다고 한다. 스마트폰이라는 조그마한 기기가 모든 사람을 하나로 연결하면서 IT와 비IT 영역을 망라한 변화의 폭풍이 불고 있다. 모든 것이 연결되는 시점, 허양일이라는 사람은 모든 스타트업을 네트워킹하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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